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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삼매도(首楞嚴三昧圖)와 청화큰스님의 법문- 1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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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편 서분의 명구문이라,

명구문(名句文)이란 것은 불경의 술어로서 명()과 구()와 문()으로 구성된 문장으로서 요즈음 말하는 문학적, 문법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문(經文)을 말합니다.

재행(諸行) 두 글자는 명()이요, 재행무상 네 글자는 구()며 재행무상 시생멸법 생명멸이 적멸위락 16자는 문()으로서 자성(自性)의 체()를 전()하여 나타냄이 명()이요, 뜻을 나타냄이 구()며, 체와 용을 아울러서 보이는 문장이 문()이니, 본편은 수릉엄삼매도에 거시(擧示)한 불조(佛祖)의 약간 명구를 원문 혹은 찬문 곧 약간 풀이한 말씀으로써 인증(引證)하여 본결의 서분에 대함이니라,

따라서 금강심론에 있는 법문들은 불조의 경론(經論)에서 많은 인용을 한 것입니다.


首楞嚴

首楞嚴三昧經에 「菩薩得 首楞嚴三昧하면 能以三千大千世界入芥子中하야 令諸山河日月星宿悉現케 하되 如故而不迫逃하야 示諸衆生하나니 首楞嚴三昧不可思議勢力如是라」시고「智度論四十七에 「首楞嚴三昧者素言 健相이니 分別知諸三昧行相多少淺深함이 如大將知諸兵力多少라」하고「復次 菩薩得此三昧하면 諸煩惱魔及魔人無能壞者하나니 譬如 轉輪聖王主兵寶將所往至處無熊壞伏」이랐으며 「玄應音義二十三에 「首楞伽摩此云健行定이오 亦言 健相인 바 舊云首楞嚴也」랐고 「涅槃經二十七에「首楞嚴者名 一切事竟이니 嚴者名堅이라 一切畢竟而得堅固함을 名首楞嚴일새 以是故言首楞嚴定이며 名爲佛性이니 首楞嚴三昧者-有五 種名하야 一者 首楞嚴三昧二者 般若波羅蜜이오 三者 金剛三昧四者 獅子吼三昧五者 佛性이라 隨其所作處處에 得名이라」시니 首楞嚴이란 新云 首楞伽摩로서 健相이라 健行이라 一切事竟이라 佛所得三昧名인 바 健相이란 佛德堅固하사 諸魔能壞치 못 함일새요 健行이란 諸佛修行如金剛般若行임으로 써요 一切事竟이란 佛德究竟함이니

換言하면 一實相一相이오 一相健相일새 곧 首楞嚴이란 먼저 觀念的 一相三昧로써 健相實相見證하고 健行般若一行으로써 理事契合하되 如金剛堅圈하야 卽理卽事一切事通達究竟함이니라


수릉엄삼매경에 ‘보살이 수릉엄삼매를 얻으면 능히 삼천대천 세계가 개자(芥子)씨 가운데에 들어가서 모든 산하 일월성수로 다 나타나게 한다’ 함은 한도 끝도 없이 넓은 삼천대천 세계가 개자씨 가운데 들어가서 산이나 내나 해나 달이나 별이나 모두를 다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여고이 불박책(如故而不迫逃)이라’ 이전에 있는 산이나 시냇물이나 또는 무엇이나 조금도 좁혀지지 않고서 ‘모든 중생에게 보이나니’ 작은 것, 큰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중생의 차별 견해에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삼천대천 세계를 아주 작다고 할 수 있는 개자씨 안에 들어가게 해서 능히 해나 달을 이전과 조금도 차이 없이, 줄이지 않고서 모든 중생에게 보이나니 ‘수릉엄삼매의 불가사의 세력이 이와 같도다’ 하였습니다.

생명의 실상인 진여불성은 대소(大小)나 높낮이의 차이나 또는 있다 없다는 상이나 모든 상을 다 떠났기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 또는 많다 적다 크다 작다 하는 구분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도론(智度論) 47에 ‘수릉엄삼매자는 진언(秦言)으로 건상(建相)이니’ 건상이란 다시 파괴할 수 없는 상이란 뜻으로 상을 떠난 실상을 말한 셈입니다. ‘모든 삼매의 행상을 알고 많고 적음과 깊고 옅은 것을 분별해서 다 아는 것이 마치 대장이 병력의 수를 아는 것과 같다’고 하였고 ‘또한 보살이 이 삼매를 얻으면 모든 번뇌마라든가 마군이가 능히 파괴할 수 없나니 마치 전륜성왕이’ 전륜성왕은 마군이를 척파하고 선법을 지키는 왕으로 왕 가운데 가장 신성한 왕을 말합니다. ‘모든 병졸이나 장군들이 이르는 곳에, 마군이나 또는 번뇌가 덤빌 수가 없듯이 수릉엄삼매를 얻는다면 모든 마장이 능히 파괴할 수가 없다’ 고 하였고

현응음의(玄應音義) 23에 ‘수릉가마(首楞伽摩 Suramgama)는 건행정(健行定)이라, 이것도 역시 파괴할 수 없는 정()이요, 삼매며 다시 말하기를 건상(建相)인 바, 파괴할 수 없는 실상인 바 이전 경에서 말한 것은 수릉엄이니라’ 하였고 또는

열반경 27에 ‘수릉엄자는 명일체사경(名一體事竟)이니’ 모두를 다 할 수 있는 일체종지를 성취한다는 말입니다. ‘엄()이란 이름하여 견()이라, 일체필경이라 모두를 다 마쳐서 견고부동함을 수릉엄이라고 이름할새 이런 고로 수릉엄정이라 말하며’ 수릉엄은 가장 참된 건상 건행이란 뜻입니다. 파괴없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파괴할 수 없는 가장 깊고 견고한 삼매라는 말입니다. ‘또 바로 불성이라 이름하는 것이니 수릉엄삼매는 다섯 종류의 이름이 있어서 하나는 수릉엄삼매요, 둘은 반야바라밀이요, 셋에는 금강삼매요, 넷에는 사자후삼매요, 사자가 백수의 왕이므로 삼매 가운데 왕이라는 뜻입니다. 다섯에는 불성이라,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서 이름을 붙였다’ 하였으니,


수릉엄이란 수릉가마로서 건상이라, 바로 실상이라 건행이라, 여법한 삼매요 행위라 일체사경이라, 모든 일체 종지를 다 성취했다, 이렇게 번역하는데 부처님께서 얻는 삼매명인 바, 건상이란 불덕(佛德)이 견고하여 제마(諸魔)가 능히 파괴치 못 함일새요, 건행이란 제불(諸佛)의 수행이 금강반야행임과 같음으로써요, 파괴할 수 없는 반야행이라는 말입니다. 반야는 제법공의 지혜인데 파괴하려야 어떻게 파괴할 수 있겠습니까.

일체사경이란 불덕(佛德)의 구경(究境)을 말함이니, (여기까지는 각 경론을 의지했고 다음은 저자의 말이 됩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일실상(一實相)인 일상(一相)이요 (실상이 둘이나 셋이나 있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일상이란 것도 단순한 하나의 상()이 아니라 상대를 여읜 절대적(絶對的)인 실상입니다) 일상은 건상일새(여법한 상일새) 곧 수릉엄이란 먼저 관념적 일상삼매(一相三昧)로써 (우리가 아직 범부지 인지라 처음에는 관념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우리의 마음이 불성과 온전히 결합되었다면 모르거니와 아직 그렇지 못한 중생 경계에서는 우선 관념적으로 부처님 말씀에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건상인 실상을 견증(見證)하고 또는 건행인 반야일행(般若一行)으로써 (건상과 건행인 여법한 수행은 바로 반야일행입니다. 제법공도리를 놓치지 않는 수행이 이른바 반야일행이라는 말입니다. ) 이와 같이 리사(理事)를 계합하되 여금강(如金剛)의 견고를 득하여(금강의 견고함과 같음을 얻어서) 즉리즉사(卽理卽事)라 (리가 바로 사인) 일체사에 통달구경함이니라, (일체 만사에 원만히 통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출처: 금강(金鋼) http://cafe.daum.net/vaj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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