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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출처 - 이인식 목사 기독교 통일신라때 이미들어오다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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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의 가장 큰 고민이 신도 수의 감소입니다만, 예수의 가르침을 좇자면 문제될 것도 없습니다.”

미국 신학의 명문 시카고 신학대학교 발전위원회 명예이사인 이인식(72) 목사가 잠시 귀국해 들려준 말이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미국의 동양선교문화연구원을 1년 전 고향인 경기 안성시 고삼면 가유리에 개설한 이 목사는 올해로 12년째 동양 기독교 연구에 바치고 있다. 그것은 동양 기독교에서 서구 기독교가 가야 할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 기독교 2000년 역사상 100년 내지 200년 만에 이룬 한국교회의 급성장은 세계선교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성장이 멈춰버리고, 지금은 감소추세에 있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

그는 한국교회는 미국교회를 답습할 수밖에 없는데, 이미 미국 기독교는 2억의 기독교 인구 중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신도 수가 50%에 육박하고 있으며, 많은 신학교들이 문을 닫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150년 전통의 시카고 신학대도 학생 수 감소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미주에 기독교를 전파한 유럽의 경우 90%의 교회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역설이 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성행하던 기독교가 2차대전 이후 교회 문이 하나씩 닫히더니 반세기가 지난 오늘, 대륙에는 총성이 멈추고 평화가 왔고, 수천년 동안 분열돼 내려오던 민족 간의 갈등이 화해로 변했으며, 대륙이 유럽연합(EU)으로 통일되는 사건까지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이 목사는 이러한 모순은 앞으로 서구 기독교가 짊어지고 갈 숙제요, 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서구 기독교의 모순을 푸는 열쇠를 동양 기독교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들려줬다. 동양 기독교는 ‘파사교(波斯敎·파사는 페르시아를 가리키는 중국말)’라는 이름으로 서기 635년 당나라 태종 9년에 중국에 들어온다. 이후 ‘대진교(大秦敎·대진은 로마제국을 가리키는 중국말)’라는 이름을 거쳐 경교(景敎)로 불리게 된다. 경교는 이후 중국에서 가장 찬란한 꽃을 피웠으나, 유교와 도교 신봉자들의 박해로 사양길을 걷는다. 이때 경교의 업적을 찬양해 세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일명 경교비)’도 산시성 서안에서 지하에 묻힌다. 중국에서 동양기독교의 전래 사실은 800년 동안 까맣게 지워져 있다가 1625년 청나라 초기에 ‘경교비’가 발굴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미 기독교가 7세기 중엽 중국에 들어가 국교로까지 발전했던 것이다.

◇(왼쪽)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출토된 돌십자가(7∼8세기, 통일신라시대, 숭실대 부설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오른쪽)1956년 경주에서 출토된 불보살 모양의 마리아상( 7∼8세기, 통일신라시대, 숭실대 부설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출토된 돌십자가, 경주에서 출토된 불보살 모양의 마리아상, 십자무늬 장식 등의 수수께끼도 풀리게 된 거죠. 경교는 통일신라시대 한반도에까지 유입됐던 겁니다.”

얼마 전 그가 고향 무수막(가유리)에서 제막식을 가진 모조 ‘경교비’에도 십자가 문양이 들어가 있다. 당시 동양 기독교는 아무런 성과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목사의 주장이다. ‘보이는 교회’는 죽었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는 지금도 살아서 교회 밖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서 헬라(그리스) 문화로 번역되지 않고 히브리적 동양사상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에데사(시리아)를 거쳐 페르시아 땅으로 퍼져나와 중국에까지 들어간 동양 기독교는 ‘소금의 교회’였죠. 소금은 자신을 녹여 보이지 않게 그 역할을 다합니다. 이에 반해 서구 기독교는 ‘빛의 교회’입니다. 늘 드러내기만 해왔지 한번도 자신을 희생시키려는 사고를 갖지 않았습니다.”

당나라 때 중국에서는 불교의 사찰이나 기독교의 교회도 똑같이 사(寺)로 통칭됐다. 일례로, ‘대진사(大秦寺)’는 기독교의 대표적 교회였다. 오히려 동양 기독교, 곧 경교는 중국의 불교 속에 들어가 대승불교를 이뤄냈다는 것이다. 경교가 서구 기독교로부터 이단시된 것은 17세기 이후 중국에 들어간 서구 선교사들의 당혹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첫 선교사라고 자부했는데, 이미 7세기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을 알고 힘이 빠졌다고나 할까. 그래서 경교는 당시 천주교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안 일파로 몰렸고, 이것을 개신교도 묵인했다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는 지금 무엇이 문제일까. 이 목사는 예수의 가르침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시스템이 문제라고 했다. 모두가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진 유럽에서 사람들은 소금의 역할은커녕 예수의 뜻에 걸림돌이 돼 온 교회를 떠나갔지만, 그들의 삶 속에 기독교 정신은 오롯이 살아 있었던 셈이다. 이 목사는 “이런 이야기들을 인터넷과 월간 ‘기독교 교육’에 연재하면서 보수 교단으로부터 비판도 받았지만, 워낙 많은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여 긴장하며 글을 썼다”며 “아무튼 경교는 연구할 것이 많다”고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는 6월 초 미국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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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려나 곡학아세도 이쯤되면 역사이래 동서양에서 최고의 걸작품이다

논의의 가치가 없는 이글에 대하여 포교사나 스님들의 연구발표가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침묵은 긍정을뜻하는 것으로 받아드릴수가있다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사단 정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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