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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출처 - 불교 목공예

서용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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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工藝 나무를 재료로 하여 미술적 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 제품. 가구·집물·창호 등도 이에 포함된다.
〔서아시아·서유럽〕 목제 가구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옥좌를 비롯하여, 침대·의자·함·테이블·화장상자·두가(頭架) 등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장식에는 조각·상감·금박 등 목공예의 주요 장식기법이 사용되었다.
목재를 가공하는 데 사용되었던 공구는 톱·끌·망치·도끼·송곳·칼·숫돌 등이었고, 대패는 17세기에야 출현한다.
부재(部材)조립에 장부이음 기법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고대 이집트의 목공기술은 매우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목공에 중요한 녹로기술은 메소포타미아지방의 고대국가의 가구에 많이 보이기 때문에, 이 기술의 발생지는 메소포타미아지방이라 생각된다. 영국의 가구사(家具史) 연구가인 P. 매코이드는 가구의 역사를 사용된 목재에 따라 <오크시대(1400∼1660)> <호두나무시대(1660∼1720)> <마호가니시대(1720∼70)> <새틴우드시대(1770∼19세기 초)>로 구분하고 있다. 19세기 중기 이후에는 주역을 담당한 목재는 없고 용도에 따라 다종다양한 목재가 사용되었다.
목제가구의 미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대부터 여러 가지 장식기법이 사용되어왔는데, 그 주요한 것은 조각·녹로가공·쪽매이음·상감·베니어단장·도장(塗裝)·금박붙이기 등이다.
① 조각:음각·부조·투조 등이 있다. 고딕기 초기의 지방가구에서는 오크 표면을 칼로 판 소박한 음각장식을 볼 수 있다. 18세기 미국 동부의 가구에도 음각의 화초 모양 장식을 볼 수 있다. 음각 기술이 낮은 지방가구에 사용된 것과는 달리, 르네상스시대부터 바로크시대까지 호두나무를 사용한 고급가구에는 호화로운 부조와 환조 장식이 유행했다. 17세기 베네치아에서 활약한 목조가 A. 브루스톨론의 의자나 화분받침 등에는 가구라기보다는 조각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들이 있다.
 ② 녹로가공:녹로가공으로 만든 제품은 이미 수메르인이나 바빌로니아인의 의자나 테이블 다리에 사용되었고, 유럽에서는 고대 로마 때부터 중세를 지나 현대에 계승되었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대부분의 의자는 녹로로 만든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왕조의 보빈체어(bobbin chair)와 18세기의 윈저체어(windsor chair) 등에 녹로기술의 특성이 살려져 있다.
③ 쪽매붙임:이 기법도 오래된 것이며, 이집트에서는 가구 장식에 채용되었다. 유럽에서는 15세기부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 등지에서 <타르시아(tarsia)>라는 이름의 쪽매붙임 기법이 카소네(혼례용 함)나 옷장 장식에 사용되었다. 얕게 구멍을 판 뒤에 색깔이 다른 나뭇조각을 끼워서 모양을 내는 기법으로, 유럽에서는 바로크시대와 로코코시대 사이에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쪽매붙임의 인기가 높았다. 이 무렵의 쪽매세공은 색깔이 다른 나무조각들을 짜맞추어 한 장의 패널로 만든 정교한 것이었는데, 영국에서는 윌리엄 3세 때에 꽃무늬, 바닷말무늬, 당초무늬 등의 정교한 쪽매세공이 장롱이나 화장롱 장식에 사용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퐁파두르부인 시대부터 마리 앙투아네트 시대까지 화려한 꽃무늬 쪽매붙임이 상류부인의 가구에 즐겨 사용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궁정가구사 J.H. 리즈너의 쪽매세공은 18세기 최고의 기술수준이었다.
④ 상감:놋쇠·대모갑·상아·대리석·금·은 등의 작은 조각을 바탕판에 끼워 넣는 기법이다. 루이 14세의 궁정가구사 A.C. 불은 흑단의 베니어판에 놋쇠·대모갑·상아 등을 짜 넣은 <불 상감>을 완성시켰다.
⑤ 베니어단장:이 기술은 17세기에 호두나무 가구가 유행했던 시대에 시작되었다. 너도밤나무 목재를 바탕으로 한 가구에 얇게 벤호두나무 단장판을 접착시켜 장식효과를 높이는 기법이다. 얇게 절단하거나 단장판을 가구에 접착시키는 기술은 상당한 숙련을 필요로 했다. 흑단·마호가니·새틴우드·로즈우드 등의 단장판은 18∼19세기에 유행했다.
⑥ 도장:예로부터 있던 장식기법의 하나이나, 특히 17세기 전기에는 중국으로부터 칠예(漆藝)와 금니화(金泥畵) 기법이 도입되었다.
시누아즈리(중국취미)라고 하여 애호되었던 가구에는 옻칠과 금니화 기법이 사용되었다.
⑦ 금박기법:옛날 이집트의 가구에서 볼 수 있는데, 중세기에 수성법과 유성법이 완성되었다. 수성법은 목재의 평활한 표면에 석회반죽을 칠하고 그 위에 찬물이 배어들어가게 한 다음 금박을 붙이고 인두로 금박을 고정시키는 기법이다. 유성법은 목재 표면에 석회반죽으로 기초를 만들고, 유성접착제를 그 위에 칠하고 금박을 붙여 마른 헝겊으로 문지르는 기법이다.
〔한국〕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각종 건물과 가재도구의 대부분을 만드는 데 나무를 사용하였으므로 목재 다루는 솜씨는 일찍이 발달하였다. 목재 다루는 기술자를 목수 또는 목장이라 했고, 그들이 맡은 일의 종류에 따라 대목(大木)과 소목(小木)으로 구분하였다. 대목은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와 서까래를 얹는 등 건축상의 큰 뼈대를 다루었고, 소목은 창문과 같은 잔손질이 많이 가는 부재나 가구를 다루었다. 한국에서는 풍토의 제약으로 인하여 목재로 활용되는 수종(樹種)은 그다지 풍족하지 않으며 느티나무·느릅나무·가래나무·은행나무·참죽나무 등이 목공예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한국의 목공품은 건축에서와 마찬가지로 못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숨겨진 내부의 결구를 튼튼하게 짜는 데 특징이 있다.
한국 목공예를 시대적으로 개관하면,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자료가 거의 없으므로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는 고분벽화 등을 통해 어렴풋이 엿볼수 있다. 5세기에서 7세기 사이의 풍속적인 내용이 많이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수레와 평상 등의 목제품이 보이며, 무용총과 각저총(角抵塚)에는 음식상이 보인다. 백제 초기의 석촌동(石村洞) 고분에서는 대형의 원형칠기가 출토되었다.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에 이르는 통일신라시대 문물을 대표하는 경주 안압지 출토품 중에는 특히 많은 칠기가 나왔는데, 이들은 이전의 칠기가 나무에 직접 칠을 입힌 것과는 달리 나무를 종잇장처럼 떠내어 여러 번 겹겹이 돌려 붙이고, 안팍으로 삼베를 바른 다음 옷칠을 했다. 고려시대의 목공예는 출토품이 없고 사서(史書)의 기록 또한 단편적이나, 다만 전세품(傳世品)으로 유존하는 나전칠기가 10여 점 있어서 목공품의 외장기법을 알 수 있고, 팔만대장경의 조판을 통하여 나무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목공예는 왕실과 귀족 같은 특권층을 위한 것이었고, 현존하는 나전칠기는 경함(經函)·염주합(念珠盒)·불자(拂子) 등 불교문화재로 집약된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사찰 수공예는 대폭 위축하나, 목제품의 도장에는 옻칠이 필수적인데, 옻칠이 모두 관수용(官需用)으로 통제되었기 때문에 유칠(油漆)·채화(彩畵)·전지(剪紙)바르기 등으로 대체되었고, 나아가서는 화각(華角)붙임이라는 독자적인 기법이 개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경공장(京工匠)의 존재가 유명무실화되는 반면 목공예 자체가 대중사회 속에 확산되어 과거와는 비할 수 없는 양산체제로 들어가 질적으로는 쇠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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