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실천연대는 기독교 신앙의 여러 면 중에서 오해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고 바로잡아 나가고자, '교회 개혁 Q&A'를 연재합니다. | | 질문 : 이웃 종교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나요?
최근 일부 기독교 단체들이 불교 사찰에서 땅 밟기 한 것 때문에 사회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처사임에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단체나 목회자들이 침묵하고 있는 현상은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웃 종교에 대해 정확한 행동 지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종교 다원화 사회에 사는 기독인들은 이웃 종교에 대한 자세를 정립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웃 종교라면 많은 종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면상 그중에 대표적 종교인 불교를 대상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불교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입장을 정리하고 기독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는 방식으로 답을 전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배타적인 입장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종교나 문화를 진멸해야 했던 것처럼, 할 수만 있다면 이 땅의 불교라는 종교와 그 문화를 일소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땅 밟기도 이런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에서도 밝혔지만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긴다는 이유로 가나안의 일곱 부족을 진멸하라고 명하셨다는 것과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전략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약 시대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나안의 이방 신들을 진멸하고 여리고 성을 땅 밟기 한 것을 신약적으로 해석한다면, 가나안 거민과 우상보다 훨씬 더 사악하고 음란한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애와 자기중심성을 진멸하고 밟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입장은 동등한 것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중생을 개도하고 죽음을 넘어 완전한 세계로 인도해야 하는 차원에서 보면, 궁극적으로 같은 목적을 지향하기 때문에 하나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와 불교는 중생을 개도하고 자기를 넘어 영원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방향은 같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은 판이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이해합니다. 잘못된 환경이나 상황으로 인해 인간의 선함이 상실되고 왜곡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도나 고행을 통해서 얼마든지 인간의 본연의 순수함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인간을 죄인이라고 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로 절대로 선해질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런 인간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인간의 대한 이해부터가 다른데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다원주의적인 입장은 모순입니다.
세 번째 입장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겸손하게 대화하는 자세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다르고 지고지선을 향하는 과정이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땅 백성들을 섬기자는 각자 종교가 표방한 목적을 향해 선의의 경쟁이 아닌 경주를 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종교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먼저는 신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누가 더 타자와 역사를 위해 유익한 결과를 내는지, 겸손하게 서로를 격려해 가면서 경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얼마든지 만나고 대화할 수 있습니다. 배타적이거나 공격적인 것은 기독교의 사랑 정신에 위배됩니다. 오히려 불교를 비롯한 이 땅의 모든 종교에 대해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섬김의 정신을 실천해야 합니다. 타 종교를 신봉하는 이웃들 모두 우리가 섬겨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지식적으로 정리한다고 해서 타 종교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존재론적으로 변화된 자아를 경험해야 합니다. 타 종교의 다름을 인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보다 낮은 자리에서 그들을 섬김으로, 종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산 위에 동네처럼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부활,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자신이 죽고 오직 그리스도가 사시는 존재론적인 인식과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와 타자를 위해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자아를 가져야 합니다(고후 5:14~17).
오늘 한국교회가 타 종교를 무시하고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뀐 것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 이는 힘이 있는 만큼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가 기독교와 타 종교 간의 갈등을 염려하는 수준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구원을 잘못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자기애적으로만 구원을 가르친 결과입니다. 이제라도 죄를 용서받고 천당 가는 것과 만사형통만을 가르치는 설교를 중단해야 합니다.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해 살던 옛사람이 죽고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산상 보훈의 삶을 살면서 이 땅에 천국을 이루며, 장차 주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기업 천국에서 왕 노릇 하게 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열심으로 이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기독교와 타 종교와의 갈등은 사라지고, 허다한 사람이 기독교 안에 참된 자유와 평강이 있음을 발견하고 나아오게 되는 역사가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오세택 /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두레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