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스님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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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법문/고우스님
사과밭 사이를 돌고돌자 문수산 중턱의 금봉암(金鳳庵)이 나타났다. 그곳에 고우(古愚.70.사진) 스님이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이었지만 금봉암에는 연등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고우 스님은 "형식을 통해 본질을 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바로 본질로 들라'고 말하는 쪽이다"고 했다. 그래서 금봉암에는 제사도, 기도 불공도, 연등 접수도 받지 않는다. 차를 건넨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법문이 따로 있나. 이게 법문이지." 스님은 상좌의 시봉도 받지 않는다. 그렇게 형식과 권위를 거부한다. 고우 스님은 한국 불교가 손가락에 꼽는 대표적 '선(禪)지식'이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고 말이죠. '마음'도, '부처'도, '무아'도 이름일 뿐이죠. 그 너머에 '부처'가 있습니다." 깨닫기 전에는 결코 오신 것이 아닙니다. 석가모니께서도 깨닫기 전에는 고뇌하는 인간이었을 뿐이죠. 그러나 깨달은 후에는 달라집니다. 자유자재한 존재, 그 자체로 있는 거죠." 형상과 본질을 함께 봐야 비로소 '부처'입니다." "당시 중국의 수도는 낙양이었죠." 낙양의 '영녕사(永寧寺)'란 절에 거대한 목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목탑이 벼락을 맞았다. 얼마나 목탑이 컸던지 타는 데만 꼬박 1년이 걸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럴 정도로 당시 중국에는 절을 크게 짓고, 탑을 높이 쌓는 '형식 불교'가 성행했다고 한다. "내 공덕이 얼마나 되오?" 달마대사는 "무공덕(無功德)"이라고 잘라 말했다. 고우 스님은 "기록에는 '무공덕'이라고 돼 있지만, 요즘 말로 하면 '공덕은 지랄 공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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