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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예하 도림법전 대종사 기축년 동안거 결제법어

변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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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건봉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은 오직 하나의 길로써 열반의 경지를 체득하였다고 하는데, 도대체 그 열반의 경지를 체득한 하나의 길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에 건봉선사는 주장자를 집어 들고는 공중에 선 한 줄을  긋고는 말했습니다.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납자는 건봉선사에게 열반의 경지를 향한 길에 대한 해답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운문선사를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똑같은 질문을 또 던집니다.

그때 마침 운문선사는 들고 있던 부채를 위로 올리며 말했습니다.

“이 부채는 뛰어오르면 33천의 천상까지 올라가 제석천의 콧구멍에 붙고, 동해에 있는 잉어를 한방 치면 곧바로 뛰어올라 갑자기 그릇에 담긴 물을 뒤엎은 것처럼 비를 쏟아 붓는다.”

사실 민물에 사는 잉어가 바다에 있을 까닭이 없는 것처럼 열반의 한 길을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원융무애한 시방세계 부처님의 열반 경지를 체득하는 길은 사량분별로 접근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건봉선사는 주장자로서 허공에 하나의 선을 긋고서 그러한 경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열반의 길에서 주장자를 수 백 번 든다고 해도 캄캄한 납자는 여전히 그렇게 수 백 번 같은 길을 깜깜하게 걸어갈 것입니다. 선지식의 이런 고준한 법문이 푸른 하늘의 밝은 해와 같으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어렵다거나 혹은 쉽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망상을 지으니 비록 이진겁을 지나더라도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입니다.   

산승에게 만약 열반문의 그 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장 방망이로 등줄기를 때려줄 것입니다. 또 길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무섭게 그리고 산이 떠나갈 듯한 할을 해서 내쫓을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건봉과 운문의 지나친 자비가 결국 그 어리석은 납자의 눈을 더욱 가리게 했으니 두 종장의 허물이 참으로 적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결제대중들은 두 선지식의 뜻만 궁구할지언정 두 노인네의 말끝을  따라가서는 절대로 안 될 것입니다. 각자가 자기 발 밑에서 열반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열반길은 화두를 열심히 제대로 참구할 때만이 그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득의즉반정도이귀가(得意則返正道而歸家)하고

심언즉탕사도이전원(尋言則蕩邪途而轉遠)이니라

뜻을 얻으면 바른 길을 얻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말을 찾으면 삿된 길로 흘러 더욱 멀어지느니라

 

2553(2009)년 동안거 결제일에

불교방송 달리는 큰법당 운전인 포교사 변용구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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