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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간화선 지침-화두의 주작(做作)은 죽은 선(禪)이다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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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화두의 주작(做作)은 죽은 선(禪)이다

“참선(參禪)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觀)을 꿰뚫어야 하는 것이고, 묘(妙)하게 깨치는 것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하나니, 조사관을 뚫지 못하고 동시에 마음길이 끊어지지 않으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도깨비일 따름이다.”

화두에 의심이 끊이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참의심’ 이니 만약 의심을 한 번 잠깐 하고 또 의심함이 없으면 진정으로 의심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주작(做作)에 속하느니라.

이런 연고(緣故)로 혼침과 잡념이 모두 마음에 들어오게 되느니라.

공부를 시작할 때 망상과 함께 들어가야 한다.

자기 마음과 싸우면서 공부에 들어가면 안 된다.

자기 마음과 싸워서 ‘화두’를 해 본들 주작 밖에는 안 된다.

꾸며서 하는 의심이기에 그러하다.

요즈음에는 화두참선이 범람해서 사람을 앉혀 놓고 공부시키지만 많은 경우에 병이 들어서 몸을 버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마음의 변화도 안 온다.

이러한 현상에서 조금 지나치게 되면 선문답(禪問答)의 의리선(義理禪)이 발달되어서 이것이 오히려 공부의 길을 방해하는 문제로 대두된다.

이것이 처음부터 잘못된 공부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가르침은 스승에게 꼭 배워서 해야 한다.

간화선이나 참선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기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마음을 믿고 의지해서 화두를 해야 한다.

내 마음을 떠나서 화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마음이 짜증나고 번거롭고 다투고 경계(境界)에 붙들려서 혼란하고 이렇게 되면 참선의 의미가 하나도 없다.

현대인들을 위한 참선의 필요성은 현실적인 문명의 발달과 극심한 생존경쟁의 충격을 완화해주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렇게 급변하고 있는 세상에 붙들림을 당하지 않고 잘 활용해서 쓰면서도 거기에 구애받지 않기 위해서 참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흔들리면서 참선할 필요가 있겠는가?

참선공부를 바르게 하려면 첫째, 자기 마음이 편해져야 하고, 내가 기뻐야 하고, 가까운 사람들과는 경계가 무너져야 하고, 현실의 문제에 초연함으로서 현상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사람을 묶어 놓는 공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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