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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간화선 지침-불성(佛性)을 경험하다.

김창엽

view : 1909

20. 불성(佛性)을 경험하다.

중생 생각으로 ‘알고, 모르고’를 한다면 이것은 양변(兩邊) 속에 구속되어서 중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다.

즉, 경계(境界)를 만나면 꼼짝 못하고 숨이 죽어 버린다.

구속을 당하여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곳이 지옥이고 벗어나면 천당이다.

이것을 머리로 알려고 하지 말고, 생각이 끊어져서 경험(經驗)하기만 하면 된다.

이 공부는 체험으로 막 들어가는 공부이다.

남의 말로써 경험하지 말고, 각자 자신 안에 있는 부처를 경험하기만 하면 된다.

중생의 습(習)이 많기 때문에 ‘마음이 아니다.’ 라고 하니까, 또 다른 곳에서 마음을 찾으려고 하는 상대적(相對的)인 대상 속에 구속된다.

또한 ‘중생도 아니다.’ 라고 한다.

‘깨쳤느니, 못 깨쳤느니’ 하는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부정(否定)하는 것인가? 라고 물을 수 있다.

이러한 부정이란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가지고 있는 중생 생각이 끊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성질이 우리 중생 생각으로 ‘그렇다, 아니다.’ 라고 함이 아닌 것일 뿐 그냥 아무 것도 없는 부정(否定)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니다.’ 라고 할 때 그 아닌 뒤에는 부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 중생 생각으로 부정(否定)하는 그러한 ‘아니다’ 가 아니란 뜻이다.

이것은 또한 양무제와 보리달마 사이의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요?”에서 “불식(不識)”이라고 한 것을 의미한다.

이 “불식(不識)”은 중생 생각으로 모른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길이 끊어졌기에 이름이 없다.

즉 ‘안다, 모른다’ 의 개념으로 모른다는 것이 아니고 심절로(心路截)로서 불식인 것이다.

다만, 중생이 쓰는 말로써는 ‘모른다.’ 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뿐이다.

그러니까, "모르면서 다 안다" 는 이치와도 같다.

마치 연필로 글을 쓸 때에 자신이 연필(色)을 쥐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空) 오로지 글을 쓰는 무념(無念)의 조사선의 도리를 일러 색즉시공이라 하며,

글을 쓰기위해서는 아무런 조작적인 생각없이(空) 연필(色)을 쥐게 되는 무심(無心)의 간화선의 도리를 일러 공즉시색이라 하겠다.

작용(作用)하니까, 작용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모르면서도 다 아는 것이다.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것과 같다.

알면서 아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으로 잡되 손에 구애가 없고, 죽음이 있되 죽음에 구애가 없고, 깨끗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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