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간화선 지침-이 뭣고(是甚麽), 무(無), 사구게(四句偈)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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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 뭣고(是甚麽), 무(無), 사구게(四句偈)”
이렇게 화두를 하면 삶이 모두 꿰어져서 모든 일이 원만하게 성취되고 해결된다.
‘이 뭣고?’ 를 할 때 마음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또한 중생도 아니라는 화두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뭣고?’ 를 자신이 머리로 만드는 ‘이 뭣고?’ 로 하면 절대로 안 된다.
여기서 말하는 ‘이 뭣고?’ 는 마음의 손가락으로 인해서 상(相)이 상(相)이 아닌 달을 보는 것이다.
여기서 본다는 것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며, 상(相)이 없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결국에는 중생생각이 끊어져서 의심(疑心)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뭣고?’ 해 가지고 의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중생생각이 끊어져서 모르기 때문에 ‘이 뭣고?’ 해서 바로 화두(話頭)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이렇게 하여서 공부를 지어가면 펄펄 끓는 물에 찬물을 확 부어 버리면 한 순간에 식어버리는 것과 같이 즉시 변화가 다가온다.
그래서 중생의 번뇌가 번개처럼 스쳐 왔다가 사라지면서 지나가게 된다.
그리하면 떠도는 이 몸과 마음에서 석가와 똑 같은 언행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를 스승이라고 한다.
석가는 자신이 경험한 ‘자성(自性)’을 말하고 있다.
번뇌 망상은 지속적으로 생멸하고 윤회하기에 일일일야, 만사만생(一日一夜, 萬死萬生)이라고 한다.
이 속에서 부처의 싹이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라는 뜻은 위와 같이 어려운 일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곳에서 깨달음 하나 만난 것이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고통 속에서 힘들게 3천년 만에 한번 피는 ‘우담바라’ 꽃을 상징하고 있다.
수 많은 번뇌 망상에서 어쩌다가 3천년 만에 한번 피는 우담바라 꽃과 같이 석가가 3천년 만에 한번 나왔다는 뜻이다.
즉, 우담바라 꽃이 3천년 만에 한번 핀다는 것은 석가가 이렇듯이 만나기 어려운 분인데 나왔다는 뜻으로서 석가의 출현 말한다.
말하자면, 깨친 사람이 나왔다는 것을 우담바라가 폈다고 표현한 것이다.
복잡한 세상 속에 부처가 있으나, 그 복잡한 세상에 붙들려서 부처가 안 보이니까, 그냥 백천만겁이 지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어쩌다가 불법(佛法)을 만나서 보니까, 번뇌 망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헛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