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간화선 지침-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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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다.
대승(大乘)과 소승(小乘)공부는 다르다.
소승공부는 단계가 있고, 대승공부는 단계가 없다.
석가가 깨치기 전에 했던 공부는 소승(小乘)공부이고 깨친 뒤에는 석가는 심법(心法)으로서 대승법(大乘法)을 가르쳤다.
무언가 참선을 잘 해야겠다든가, 또는 알아야겠다는 등등의 생각이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이러한 것들을 놓아 버리고, 스스로를 믿고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기운이 내려가서 허리가 세워지면서 정신이 맑아지므로 몸을 단정하게 만들 수 있다.
앉아서만 참선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러한 생각에 구속되지 말아야 한다.
앉아서만 하는 공부를 고집하지 말고, 그냥 앉아서 하면 좋고 빠르니까 앉아서 한다고 해야 한다.
즉, 앉아서만 화두 들어야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수행임을 알아야 한다.
앉는 것을 즐기되, 앉아야만 참선이 된다고 고집하여서는 안 된다.
고집하면 조작하게 되어 졸음과 다리의 저림이 빨리 온다.
좌선의 자세는 공부가 되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무언지도 모르고, 자세에만 집착하는 것은 조작이기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
마음은 뒷전에 두고 자세를 지키기에만 급급하게 되면 공부의 길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그러면 왜 앉는 것이 필요한가?
사람은 척추를 기준으로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다. 오장이 편하고 오덕이 갖추어져야 한다.
앉음에 단정을 요한다.
참선을 공부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고, 공(功)을 들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마다 개개인 안에는 부처가 모셔져 있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사람 사람마다 부처님에게 예불(禮佛)하듯이 대하면서 사람을 존중하게 된다.
사람들을 피하려고 하면서 나쁜 점만 보려고 하면 자기 자신에게 갇히게 된다.
사람에게는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습(習)이 잘못 되어 가려져서 나쁜 점이 나타나는 것 일뿐이지, 본래 부처인데 나쁜 점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사람처럼 위험한 것도 없다.
그러하더라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겸손해지고 아만(我慢)이 물러가고 좋은 도반(道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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