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간화선 지침-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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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
홀연히 마음길이 끊어지면 부처가 경험(經驗)한 것이 자꾸 마음에서 일어나므로 기뻐지고 번뇌와 불안한 마음 등등이 모두 사라지므로 조사들의 생각을 그대로 갖게 된다.
이와 같이 진리는 시간의 고금(古今)에 관계없고, 공간의 영향도 안 받는다.
불법(佛法)은 항상 살아 움직이면서 자신의 안에 이미 있다.
마음 길이 끊어지면 곧 중생심이 끊어지게 되는데 없어질 이 중생심을 붙들고 ‘이 뭣고?’ 를 하니까, 영원히 화두의 길과는 연결이 안 된다.
화두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보아야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보면서 그 마음이 구름처럼 변해 버리는 것에 붙들리지 말라.
성품(性品)을 드러내는 일은 구름을 벗기는 일이다.
이 일은 의도적 조작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성품은 스스로 구름 벗기는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성품에 자기 스스로 구름을 덮어 놓고 있으므로 중생심이 치성하게 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
스스로가 성품에 망상의 구름을 덮었다는 것을 자각하기만 하면 그 구름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면 형상(形相)으로부터 자유인이 된다.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故得阿縟多羅三藐三菩提 故知般若波羅密多” 와 같이...
위와 같은 안목(眼目)을 구비한다면 모두가 그대로 교학(敎學)을 넘어서, 선학(禪學)으로 멋진 반야심경(般若心經)의 노래가 펼쳐질 수 있겠다.
이렇듯이 끊어지면 문득 큰 깨달음이 있으리니, 깨달아 마치고 나선 후에 다시 깨달은 뒤의 일을 물을지어다.
그때 바로 탁마(琢磨)를 하고 보임(保任)을 하는 것이다.
또한 법거량(法擧量)을 하는 것이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꿰뚫어야 하는 것이고, 묘(妙)하게 깨치는 것은 마음 길이 끊어져야 하나니, 그렇지 않으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도깨비일 따름이다.
이러게 몽산스님께서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무(無)’, ‘이 뭣고?’ 등의 화두는 그 글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안의 뜻에 내용이 있다.
말하자면, 중생생각으로 화두를 지녀서는 안 된다.
언어에 붙들려서 자신의 중생생각으로 자각도 없이 화두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즉, 마조스님이 ‘마음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라고 한 말을 중생생각으로 지어 가져와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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