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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간화선 지침-비어서 없다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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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비어서 없다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성품(性品)이 옛과 지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은 깨달음 속에 있을 때이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꿰뚫어야 하는 것이고, 묘(妙)하게 깨치려면 마음길이 끊어져야 한다.

조사관을 뚫지 못하고 마음길이 끊어지지 못하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 도깨비와 같다.

승(僧)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니 조주가 이르되 ‘무(無)’라 하니, 다만 이 ‘무(無)’ 자는 종문의 한 관문이니 유심(有心)으로도 뚫을 수가 없고 무심(無心)으로 뚫을 수가 없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 바로 뒤집어서 조주를 옳아 매어 잡거든 내게 화두를 도로 가져와라.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유(有)와 무(無)’에 걸리면 문 밖에 있느니라.

각원 상인은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

묘(妙)한 깨달음이 원만히 밝을 진댄 마땅히 조주는 이 무슨 면목(面目)인지를 알아야 하리라.

이 ‘무(無)’자를 이른 뜻은 무엇인고?

움직이는 것은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는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가?

필경에는 이 ‘무(無)’ 자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본각(本覺)을 밝히지 못하였으면 낱낱이 의심(疑心)이 있으리니 크게 의심하면 곧 큰 깨달음이 있으리라.

문득, 마음을 내어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며, 또 뜻으로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며, ‘유(有)와 무(無)’의 알음알이를 짓지 말라.

비어서 없다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라.

‘쇠로 만든 빗자루.’ 또는 ‘나귀를 매어 놓은 말뚝.’ 이라고 생각하지 말지니라.

의단(疑團)으로 하여금 낱낱이 치성케 하여, 밀밀(密密)히 심광(心光)을 돌이켜 스스로 볼지니라.

보아 오고 보아 가되, 의심해 오고 의심해 가되, 도무지 재미없는 때에 재미가 있으리니, 문득 번뇌심을 내지 말지니라.

의심이 깊어지면 화두를 들지 아니해도 자연히 현전(現前)하니 문득 환희심을 내지 말거니와 잘 되든지, 안 되든지 관계하지 말고 내버려두고 ‘무(無)’ 자를 참구(參究)해라.

만약 앉은 가운데 미묘한 정(定)으로 도움을 얻었거든 바로 잘 받아드리라.

다만 억지로 만용(蠻勇)을 쓰지 않음이 묘(妙)함이니 만약, 만용(蠻勇)을 내서 화두를 들게 되면 정(定)의 경계(境界)가 흩어지느니라.

부처님 당시 석가가 미혹의 중생과 같이 업식(業識)속에 묻혀 있을 때, 아무도 사람 안에 부처가 있는 줄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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