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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간화선 지침-믿음으로써 상(相)을 소멸하다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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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믿음으로서 상(相)을 소멸하다.

복잡하고 무수히 많은 경전을 함축해 놓은 어록(語錄) 몇 마디만 듣고 부처의 마음이 믿어지기만 하면 나중에 한 귀가 뚫어져서 화두나 조사관이 타파되여 일체의 모든 경전이 회통(會通)되기도 한다.

간화선은 화두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자성불(自性佛)의 믿음이 없는 사람이 현대 사회의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옛 사람들이 한 공부가 영향이 있을까? 라고 하는 의심 때문에 간화선을 어렵게 짐작해 간다.

따라서 이렇게 ‘옛과 지금이 다르다.’ 라고 하는 짐작을 부수어 버리는 일이 중요하다.

금강경의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에 대한 불가득(不可得)’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증명해 준다.

중도법(中道法)은 위와 같이 삼심(三心)을 얻을 수 없다.

바로 이 한 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현재심도 의지 하지 않을 때 부처가 작용한다.

하물며 과거심과 미래심의 망상(妄想) 속에서는 부처가 작용할 수가 없다.

현재가 있다고 하면 과거와 미래가 생긴다.

현재심에 의지하지 않고 얻을 수 없는 이 마음을 터득하면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三世)가 비어버린다.

그러면 거기에는 진리(眞理)만 남게 되고 옛 부처와 지금의 부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조사관(祖師關)인 것이다.

조주 ‘무(無)’ 자는 위와 같이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공부이기 때문에 옛과 지금의 사람에게 다르지 않다.

믿음(信)은 간화선에서는 첫 번째의 절대적(絶對的)명제이다.

이러한 믿음은 삶 전체에 고루 퍼져 있다.

불법(佛法)에서의 믿음뿐만 아니라, 처처사사(處處事事)에서도 믿음이 절대 필요하다.

선지식(善知識)을 향한 철저한 믿음은 자신을 비워 놓고 의지하는 것이므로 자신의 생각이 섞이지 않아서 자신의 마음이 쉬어지고 고요하게 된다.

그 때에 자신의 중생심이 적어지므로 화두를 들어 공부하다가 은사 스님의 가르침과 자신이 계합(契合)되면서 불성(佛性)이 연결되니까 단번에 돌이켜진다.

명상(冥想)을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믿어져서 자신의 생각이 안 섞어져서 중생심이 쉬어지므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에게 있는 부처가 드러난다.

이렇게 부처의 싹이 돋아나면 공부가 성취되는 것이다.

이때에는 석가(釋迦)와 조사(祖師)가 다 보이고, 석가와 조사가 자신의 안에서 걸어 나오는 일이 성취된다.

즉, 중생 속에 부처가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보살행(菩薩行)이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비로소 깨달음의 보살이 된 것이다.

즉, 믿어져야 모든 일이 원만하게 성취되는 것이다.

염불(念佛)도 이와 같이 자신을 믿어가면서 그 경지(境地)에서 소원이 성취되고 팔자가 고쳐지는 것이다.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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