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를 앞두고 문상을 가지 말아야 하는가?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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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돌아가신지 25년 가량이 되었고 해마다 기일에 제사를 지내왔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1주일 앞두고 시댁 친척(이종 사촌)중의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자 제사를 주관하시는 큰형님이 " 예전부터 기일을 앞두고 남의 상갓집에 가는
것이 아니다"고 하시면서 장례식에 불참하셨습니다(큰형님과 둘째형님 내외 모두
불참)
형님들은 제사를 앞두고 남의 장례식에 참석하면 살아있는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으십니다. 그런데 저희 부부는 이번에 장례식에 참석하였고, 이에 큰형
님은 저희 부부를 이번 제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저희는 직장생활을 하는 관계로 이번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
게 된다면 남편이 상처받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형님을 포함한 저희 가족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기일을 앞두고 남의 상갓집에 가면 안 되는지요?
(가지 않는 것이 옳다면 기일을 얼마정도 남겨두고(1주일, 혹은 한달???) 가지 말
아야 하는지요? 불가에서는 이를 어떻게 보는지요?
(큰형님과 저희 부부 모두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지라 스님의 답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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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변]
안녕하십니까?
5일이 지나도 답변하시는 분이 없으니 한 말씀 올릴까 합니다.
유교와 불교는 다릅니다.
유교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죽어서 화장을 한다는 것은 불경
스러운 짓이고, 사람이 죽어도 살아있을 때처럼 매년 정성을 다해 음식을 대접하고
추모하는데 이것이 '제사(祭祀)'입니다.
반면에 불교는 이 몸뚱이는 부질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화장을 하고, 사람이 죽으면
부디 이 사바세계에 미련을 갖지 말고 극락왕생하라고(혹은 더 좋은 세상으로 가라
고) 축원을 해주는데 이것이 재(齋)입니다.
유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제사를 모시기 전에 보통 '산재(散齋) O일 치재(致齋) O일'
식으로 근신기간이 있어왔습니다.
산재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즉 평소에 하던 일들을 하면서 행동을 조심하고 근신하
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들면 초상집의 문상을 하지 말아야 하며, 술먹고 질펀하게
놀지말아야 하며, 싸우는 것에 휘말리거나 참여하지 말아야합니다.
치제란 집에서 목욕재계하고 제사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제(문중 시제 등 큰 제사)는 산재 4일 치재 3일, 중제(보통의 부모제사)는 산재
3일 치제 2일, 소제(자식 등 작은 제사)는 산재 2일 치재 1일입니다. (※국조오례의
등 참조)
그러나 불교에서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흥되어 중국과 우리나라를 거치면서 대체로 전통과 습합(習合)
되면서 정착해온 역사가 있는데 제사문제도 참 미묘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사라든가, 49재라든가 하는 문제도 불교와 전통의 습합문제인 것이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걸리지 마시고 문상을 가십시오.
다만 평소보다 경건하게 몸가짐을 하십시오.(예를 들어 술을 많이 드시거나, 밤새
고스톱을 치시거나 하는 것을 삼가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자칫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는 일 등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불교는 인습을 타파했던 개혁적인 종교였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여성출가가 허락되었고, 사성계급의 타파를 부르짖었던 분이 부처
님이지 않습니까. 제사예법도 점차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자가례 등 각종 예법도 그 시대의 산물이었습니다.
제사를 돌아가신 날짜에 지내는지, 그 전날 지내는지는 지방마다의 풍습이었고,
예전 농번기 때는 돌아가신 날이 든 달에 택일해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효라고 하는 것이 불교적으로 보면 '중선봉행(衆善奉行)'의 큰 범주에서 고찰할 수
있거니와 상가집의 문상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똑 같이 선한 행위입니다.)
불자는 궁극적으로는 '자정기의(自淨其意)'라는 마음 닦는 문제에서 바라보아야
하므로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을 믿는다면 걸리지 말고 선한 행위를 하십시오.
제사를 앞두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조문 가십시오.
[學 輪]
(※ 위의 글은 길상사 '맑고향기롭게' 이성학님의 답변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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