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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간화선 지침-경계(境界)와 불법(佛法)에 헐떡이며, 아는 소리를 해 보아야 이미 어긋난다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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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경계(境界)와 불법(佛法)에 헐떡이다.

승(僧)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무(無)’라고 하니,

다만, 이 ‘무(無)’자는 종문(宗門)(산 꼭대기의 최고봉에서 평등 통하는 의미)의 한 관문이니, 유심(有心)으로도 무심(無心)으로도 도무지 뚫을 수 없으니, 중생심으로는 접근이 안 된다.

조주 ‘무(無)’자는 조주가 깨달은 부처의 성품을 뜻한다.

‘무(無)’자 화두는 ‘유, 무’에 붙들린 중생생각의 견해를 바로 자각했을 때 살아난다.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 중생심이 떨어져 나감으로서 바로 뒤집어 조주를 옭아매거든 내게 화두를 가져오너라. ‘무(無)’를 일러라.

즉, “깨치거든 그 소식을 바로 보여라!”

예) 구산스님께서 “조주 ‘무(無)’자는 불이 활활 타고 있는 덤불인데, 그 옆에 얼굴을 대면 타 버리는데 이것이 무슨 뜻인가?” 라고 물었다.

승(僧)이 대답하시길 일체 경계가 불타는 덤불인데 어디를 또 뛰어 들어가라고 이르라 하십니까?

그랬더니 또, 조주 ‘무(無)’자를 이르라 하시기에 “이제부터 나는 머물지 아니하고 내 공부만 하겠습니다.”

조주 ‘무(無)’자에 번뇌를 가져오면 번뇌가 사라져 버린다.

알고 모르고의 생각에 관계없이 조주 ‘무(無)’자에서는 모두 사라진다.

머리로 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냥 중생 생각으로 ‘무(無)’라고 하고 있는데, 이럴 때에는 ‘무(無)’하지 말고 자신이 ‘중생 생각으로 “무(無)”하려고 하는 구나!’ 라고 자각해야 한다.

많은 수행자들이 자신이 중생생각으로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무(無)’ 또는 ‘이 뭣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조주 ‘무(無)’와 ‘이 뭣고?’ 등의 화두에 자신을 집중시켜 놓으니까, 평생 동안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엉터리 화두공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생생각에 묶여서 집중해 놓는데 무슨 공부가 있겠는가?

이것이 크게 잘못된 공부임을 자각해야 한다.

경계(境界)에 헐떡이고 법(法)에 헐떡이면 이미 어긋난다.

아는 소리를 해 보아야 소용없다.

있는 마음으로도 안 되고, 없는 마음으로도 안 된다.

상식적으로는 위와 같은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멍하고 있을 때에도 자신이 멍하고 있는 줄을 안다.

배고플 때에도 자신이 배고파 있는 줄을 안다.

공부가 안 될 때에도 공부가 안 되고 있는 줄을 안다.

스스로 ‘내가 안 되고 있는 줄도 아네!’ 라고 하면 된다.

이렇게 간단히 해 버리면 정신(精神)이 시원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위와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위와 같이 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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