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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간화선 지침- ‘무(無)’자는 부처의 골수(骨髓)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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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무(無)’자는 부처의 골수(骨髓)

마조스님의 제자가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그러면 아무 것도 안 가져 왔을 때에는 어찌하나요?’ 라고 묻기에 ‘도로 가져가게’

즉, 아무 것도 안 가져 왔다는 것을 가져온 것이니, 그것을 도로 가져가라고 한 말이다.

이렇듯이 ‘무(無)’자 화두에서도 지금 공부가 안 되고 있다면  ‘무(無)’자가 안 되는 그것을 도로 가져가서 ‘공부가 안 되는 줄도 아네!’ 라고 자각해야한다.

안 되는 ‘무(無)’자를 안 된다는 자각도 없이 중생생각으로 붙들고 있으면 이것은 평생 동안 허송세월로 헛것에 매달려 있는 어리석은 공부만 하는 것이다.

즉, ‘공부 안 되는 줄도 아네!’ 라고 자각할 때 부처의 성품에 대한 믿음의 확신(確信)이 서게 된다.

‘아무 것도 안 가져 왔을 때에는 어떻게 하나요?’라고 하는 것은 대상을 설정해 놓고 있는 일이기에 중생생각으로 ‘무(無)’하는 것과 같이 된다.

따라서 이렇게 하는 공부는 이미 멀리 어긋나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안 가져 왔을 때에는 어찌 하나요?’ 라고 하는 말은 분명히 대상을 설정해 놓고 사량분별(思量分別)을 하는 중생생각이다.

이에 대하여 ‘도로 가져가게’ 라는 말은 중생생각을 자각(自覺)하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중생생각에 붙들려서 자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미 어긋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즉, 중생생각으로 ‘무(無)’ 해보아야 자각 없이 ‘유, 무’에 붙들려 있으므로 이 공부와는 반대로 어긋나 버린다.

이 공부는 의심 없이는 절대로 안 되므로 얼른 믿음으로 ‘내가 멍하고 있네!’ 그런데 ‘멍하고 있는 줄도 아네!’ 라고 돌이켜야 한다.

이렇듯이 멍하고 있는 줄도 아는 부처는 멍하고 있는 중생을 떠나서 따로 있지 않고 함께 있다.

단지, 자신이 멍하게 아무런 자각 없이 있게 되면 무기(無記)로서 부처가 있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있는 그런 번뇌망상(煩惱妄想)이 있을 때에도 그것이 번뇌망상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역시 부처가 있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부처가 있기에 자각이 일어나서 알게 되는 것이다.

물맛도 알고, 잠잘 줄도 알고 하듯이 모든 것을 안다.

이렇듯이 부처는 우리 성품(性品)을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이 바로 견문각지(見門覺知)로서 전체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뭣고?’ 가 견문각지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접근되어야 마음이 일어났다가 꺼짐을 알게 된다.

마음이 일어났다가 꺼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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