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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간화선 지침-정(定)에 탐(貪)하지 말라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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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정(定)에 탐(貪)하지 말라

정(定)에 들게 되면 정(定)에 탐(貪)하여 화두를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정에 탐한 것이 자성(自性)을 가려 버리기 때문에 머무르게 된다.

이것이 ‘응무소주 이생기심’ 과는 상반되는 결과가 된다.

만약 화두를 잊으면 공(空)에 떨어져서 ‘없다, 비었다.’ 라고 하면서 정해진 곳에 마음이 접근하여 이것이 성품을 가려버린다.

그리하여 새로운 싹이 안 나오기 때문에 복(福)된 지혜와는 상관없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중생생각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며, 한편으로는 중생생각에 붙들림이 없을 때 복(福)된 소리가 나오게 된다.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거나 한결 같아야 하며, 혼침과 잡념이 모두 끊어져도 기쁜 마음을 내지 말지니라.

기독교에서도 믿음으로 시작하여 스스로의 복(福)됨을 인도하기 위해서 신앙을 매우 중시 여긴다.

이렇듯이 기쁜 마음을 좇아가면 감정이 생멸(生滅)하는 상황에 직면하므로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기쁜 마음에 따라가지 말고 그냥 가만히 놓아두고 보면, 그 기쁜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안개 걷히듯이 자신의 내면으로 그 기쁜 마음이 스며들면서 고요히 오래오래 지속된다.

그러하다가 스스로 자족(自足)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나 그 기쁜 마음을 따라가서 붙들려 있게 되면 그 다음에는 허전할뿐더러 다시는 그 기쁜 마음이 오지 않게 되며, 또한 기대심과 속효심(速效心)때문에 공부의 길에 혼란이 올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여성들이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과 같다.

위와 같이 허전하게 되면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따라서 자족함이 없어지고 붙들리는 현상이 일어난다.


문득 조주의 관문을 투과하여 날마다 바르게 맞이하여 화살과 화살의 촉이 맞부딪치듯이 하면 조주의 사람에게 미움 받은 곳을 간파하여 법마다 원만히 통달하여 차별한 기운을 낱낱이 밝게 요달(了達)할 것이니, 정히 반드시 깨달은 뒤의 생애를 구해야 하리라.

이 때에 바로 제대로 거듭나는 변화를 갖게 된다.

바로 이 때에 이르러서 보살행이 진정으로 시작된다.

삶 자체가 보살의 삶으로 저절로 행해지게 된다.

깨달음의 세계는 누구에게나 역사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떠나도 항상 같은 것인데, 중생 속에서 중생들이 바꾸어서 스스로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의 종교가 생긴 것이지, 본래는 한 뿌리이다.

기독교의 각종 구술(口述)행위는 불교적 측면에서 보면 하나의 염불(念佛)행위로 보아서 가려진 마음을 보기 위한 망상(妄想)의 자각(自覺)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교의 화두법은 인류 구제의 대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定)이 바로 깨달음 뒤의 세계를 구하느니라.

여기서부터 보림수행(保任修行)이 시작된다.

모든 생각들이 익어지면서 고르게 되며, 공부길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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