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2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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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 ㅡ 섹스 폰 부는 사나이
아침하늘에 회색 운무가 짙은 것이 오늘도 몹씨 더울 것 같다.
정오가 되니 운무가 사라진 대신 따가운 햇살이 내리쬔다. 무척 더운 날씨다.
오늘 기온이 섭씨 30도를 넘는다고 하니 금년 들어 제일 더운 날씨 같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사무소에 들려 주민등록증을 제출하고
노인우대용 전철카드를 발급 받았다. 앞으로 전철은 이 카드 한 장으로 무료로
타고 다니는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는 일정 노동력을 상실했다는 서글
픈 의미가 되기도 한다. 집에 들어서니 마침 딸애가 에어컨을 켜놓았다.
시원한 에어컨 밑에 앉아 인터넷을 보다가 6시 무렵 가까운 도봉산 능선 하단
부에 자리 잡은 배드민턴장이 있는 묘지 옆에서 양말을 벗고 가부좌를 틀고 앉
았다. 내게는 이런 자세가 때로는 편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앉아있는데 가까운 벤치 쪽에서 섹스 폰을 부는 남자가 아는 척 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알고 보니 십오년전 도봉산 산책로로 개 3마리씩을 데리고 다
니던 유달리 개를 좋아하던 사람이다. 소설을 쓴다는 사람인데 소설쓰기가 힘들
어 피아노를 10여년 배우다가 이제는 섹스 폰을 배운다고 한다. 10여년 전에
그를 보았을 때는 어딘가 모난 성격에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으로 별로
좋은 인상이 아니었는데 오늘 보니 몰라볼 정도로 사람이 달라보였다. 오랜동안
예술방면으로 훈습한 탓인지 어두운 모습의 외모도 많이 바뀌어져 있었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이 들어서도 모습이 달라
지는 모양이다. 올해 육십둘이라고 하면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자체가 저주
라고 하는 말이 무척 인상 깊게 들렸다. 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사람으로 태어
남으로써 살아가기 위해 생명을 함부로 죽일 뿐 아니라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불가에서 무생의 도를 구하는 것도
그와 상통하는 면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언듯 머리를 스쳤다.
나에게 있어 가끔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도 아니고 멀리
따로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순간순간 가까이 있는 사람
의 말 한마디를 소홀히 하지 않고 새겨듣는 것 또한 선지식의 가르침인 것이다.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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