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침에 너무 천착하지 말자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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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깨침의 종교일까? 사랑의 종교일까?
아니면 깨침과 사랑을 함께 갖춘 종교일까?
부처님은 무엇을 깨친 분일까? 깨친 다음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런 문제를 궁구한다면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신행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잘 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를 일이다.
부처님의 깨침은 우리의 삶이 더불어 사는데 있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연기의 발견과 가치기준의 평등화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깨침이후에 너와 내가 둘이아니라는 이치를 알아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전도와 함께 자비의 발길을 돌아가실 때 까지 멈추지 않으셨던 것이다.
대부분의 불자들은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두다, 선이다 하는 이 모든 것은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왜 화두를 들며 무엇 때문에 하루 종일 다리를 틀고 앉아 있는가? 자기 자신의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신통한 도력을 얻어 맑은 얼굴로 오래오래 살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대접받으면서 보다 고상한 삶을 살기 위해선가? 부처님도 그런 삶을 누렸던가? 깊이 통찰해 볼일이다. 대다수의 종교지도자들이 성직(聖職)이란 계급아닌 계급에 자기를 가두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무엇을 더 깨치겠다고 하루종일 앉아만 있는가?
영겁의 세월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바위가 되고자 그런 것인가?
우리가 알고자 하는 진리, 깨침의 궁극은 이미 부처님께서 다 설파하셨고 다 보여주셨다.
무엇이 더 궁금한가? 다만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절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모두가 기인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진정한 나의 행복이나 인류의 행복은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배려하며 고통받는 사람을 어루만져주고 나누는 끝없는 사랑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임을 손수 言과 行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부처님 당시의 여러갈래의 종교가 있었겠지만 주류는 브라흐만 신앙이었다. 수백년 동안 뿌리를 내려온 브라흐만 신앙이 어떻게 부처님 세대에 그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가만히 정사에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법문을 잘 들려주신 결과일까? 그렇지가 않음은 부처님의 생애가 생생하게 드러내어 주지 않던가.
길에서 태어나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6년간의 고행결과 진정한 깨달음은 고행도 쾌락추구도 아닌 중도라는 도리로서 요동하는 마음을 쉬게 하고 자기 뜻대로 마음을 조율하고 다스림으로써 행복에도 불행에도 함몰되지 않은 평상심으로 여여하게 살아가는 지고의 중도상에 우뚝서신 분이 아니셨던가. 오늘 날 우리불교가 왜 타종교에게 그렇게 밀리면서 수모를 당하는가를 생각하면 우리불교가 대중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에 기인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사랑이 없는 종교, 자비가 없는 종교, 베품이 없는 종교는 아무리 교리가 좋아도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의 수행자는 어디까지나 수행자이지 성직자가 아니다. 수행자가 성직자 노릇을 할려니 자기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타 종교의 꽁무니만 따라가는 꼴이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굳이 성직자(聖職者)를 들라면 그러한 부류는 당연히 재가자인 포교사가 되어야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왜 수행자가 성직자 노릇에 집착하는가? 성직자의 역할을 재가자인 포교사에 위임하는 것이 수행자의 수행과 위상제고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임은 너무나 명백하다. 아울러 포교사 또한 성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그에 걸맞는 인격수양과 불법공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칫 립써비스 만으로 성직자를 흉내내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
수행자가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으면 수행과는 십만팔천리로 어긋나는 것이다.
한국불교가 제대로 서려면 각자가 자기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에 충실할 때 제대로 바로 서는 것이다.
지나친 공리공론은 대중을 식상하게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중생이 곧 부처라고 하면서 부처와 중생을 둘로보는 풍토와 신도들을 철저하게 중생으로 보는 오늘의 현실에서 눈밝은 각자가 탄생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진정한 각자는 중생을 부처로 보고 부처로 대할 때 비로소 부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 지우합장.
- 서용칠 깨친분들의 삶은 바람처럼 소리없이 물처럼 낮은곳으로 살지요 2010-11-08 09:56
- 한애경 훌륭하신 말씀입니다 나무석가모니불 2010-11-10 12:43
- 허태기 패러독서가 내포된 글인데.... 오해 없었으면 하네요. 성불하세요. 2010-11-21 19:48
- 허태기 감사합니다. 불보살님의 가피로 평안을..... _()_ 2010-11-21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