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전법 할 것인가?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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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전법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문제삼아야할 것은 우리의 포교사들이 진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은 남들을 만나는 순간부터 드러난다.
만남은 자기의 값을 매기는 자리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든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것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이 절을 찾아왔을 때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믿는 종교를 진심으로 존경하는 일이다.
추호라도 나의 종교가 당신들 종교보다 더 우수하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불교인이 불교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버리면 불교가 망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공(空)의 세계에서 어떻게 내 종교가 제일이고 남의 종교가 열등하다는
생각을 간직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
만남은 대화다.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가 먼저
말문을 열어야 한다. 대화의 전제조건은 겸손이다.
길가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은 지나가는 사람이 누구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자기를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하고 있든 상관하지 않는다. 칭찬이든 욕심이든 관심이 없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비결은
'겸손' 밖에 없다. 오만은 독약이다. 그것은 나도 죽이고 너도 죽이는 독약
이다. 우리들이 명심해야할 것은 철두철미한 겸손이다.
추호라도 불교가 다른 종교보다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알지도 못하면서 유교보다는 불교가 더 위고, 기독교보다는 불교가
더 월등한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모두가 무명의 소치이다.
종교를 그런 식으로 믿고 있는 이상, 그런 사람은 아직 종교가 무엇인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누구하고 대화를 하든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걸 모르면 아직도 도토리 키 재기나 다름없는 천한 종교를 믿고 있는
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천주교의 신부님이 관세음보살이고 개신교의
목사님이 관세음보살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불교다.
아프리카 ‘수단’의 가난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일생을 바치다 가신 이태석 신부 이야기.
나병환자를 돕기 위해 소록도에 갔다가
나병환자들의 병균을 몸에 발라 스스로 나병환자가 되어
그들과 거리감을 좁혀 도울 수 있었던 목사님들,
43년간 그들을 돕고 함께 지내다 그들을 도울 기력이 모자라
밤에 아무도 모르게 떠난 ‘마리안’, ‘마가레트’ 두 수녀님,
이들이야말로 보살행을 실천한 위대한 분들이 틀림없다하겠다.
그런데, 생활고에 시달려 절을 찾아갔다가 실망한 사람들....
절에 갔으나 3배나 받아먹으려고 버티고 앉아있는 스님들....
그 꼴 보기 싫어서 절에 가기 싫다는 사람들....
이 쓴 소리에 답변하는 스님들
왈: 신도의 3배는 스님이 받는 것이 아니라 3보가 받는 것,
신도들이 하심 하여 복 짓게 하려고
그래서 3배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스님과 신도 서로가 맞절 해야하는'1)
본래 절집안의 예절을 모르나 봐.
정말 길게 얘기하고 싶지가 않다. 기가 차는 현실이다.
삶의 고(苦)에 부닥치는 그들을 어떻게 교화 할 것인가?
그 많은 다문화 가정들의 어려움, 자비행은 어디에도 없는가?
그렇게도 많은 보살은 어찌 볼 수가 없는지?
수능 고득점에만 붐비고,
49재만 복받는것이 우리들의 사찰인가?
자신을 위한 선정(禪定)만이 제일인가?
자비 실천은 언제 해야 하는가?
그렇게 깨달은 인물 다들 뭘 하는가? 이웃을 위해..
미국의 어느 한국 절에서 더욱 용맹정진하기 위해서
신도들의 힘을 하나로 묶는 봉사조직을 만들었다.
이 모임이 기대이상으로 잘되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그 절 스님이 이것을 시기하여 해체해 버렸다는 것이다.
오늘날 왜 스님들이 사람위에 군림하게 되었는가?
스님들만 '승가'라고 알고 있지나 않은지?
스님만 '승가'가 아니라 4부대중이 무두 승가(僧伽))라는
기초상식도 모르는가?
그리고 외국에서 불교포교가 안 되는 건
우리나라의 경우, 스님들이 우선 말(言語)이 안 되니
무었을 전달 할 것인가?
보다 더 시급한 것은, 포교하고자 하는 사람의 자질인 것 같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스님들의 자질이
포교의 첫째 조건에 해당한다.
달마대사는 중국에 기존 종교와 다툼없이 불법을 전수하지 않았나.
말보다 더 급박한 것은 포교의 사명감과
전법자들의 인격적 자질이 더욱 크다 하겠다.
1)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교재 발췌
불교신문 2555년 1월 1일(토) 제2685호 신년특집
뉴욕주립대학 박성배 교수 글 내용 편집
국제포교 말이 통해야 합니까...'세계일화'에오셔서 숭산스님을 알아보시고, 하버드학 출신의 현각스님, 항가리 원각사 청안스님 등의 국제포교활동이 이루어진 현실을 한번 연구해보세요. 답이 보일겁니다. 성월 2011-01-09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