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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寂明)스님 친견기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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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연이 되어 불교인재원에서 실시하는 성지순례에 동참하게 되었다.

1월 22일 아침 7시 40분에 조계사앞에서 버스로 출발, 문경 봉암사로 간다는 통지를 받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여행준비를 끝내고 6시 반경 아파트를 나서는데 흰눈이 펄펄 날린다.

이러다간 오늘 성지순례하는데 지장이 많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조계사 앞에 도착하니 눈발

은 이미 그쳤다.

 

인원점검이 끝나고 42명의 불자를 태우고 8시 10분경에 버스가 출발, 11시 15분에 봉암사

앞까지 도착했다. 3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것이다. 요즘은 교통이

좋아서 그렇다고 한다. 문경새재하면 임꺽정이 나올 법한 그런 오지가 아니던가? 참으로

격세지감이 들었다. 봉암사는 일년내내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는 곳이라한다. 이

곳은 구산선문의 하나인 선종의 산실로 에너지 덩어리 같은 통바위 산인 희양산 아래 자리

잡은 선찰로 수행자의 시퍼런 선기가 계곡을 메우는 한국불교의 진주와도 같은 곳으로 나

는 그동안 연이 닿지 않아서 인지 지금까지 한번도 이곳에 다녀온 적이 없었다.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모두가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수좌스님인 적명스님

이 계시는 방으로 갔다. 처음 대면하는 스님의 인상이 한눈에 수행하는 선승의 기운이 풍겨

나왔다. 적명스님은 이곳 봉암사의 조실스님격이지만 당신께서 굳이 수좌라고 불러라해서

수좌스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문을 들었다. 이런 기회는 재가자에

게는 거의 없는 일이라고 한다. 선승으로서 스님들에게만 가끔 수행검정식의 법문을 하지만

재가자를 위해 법문을 일부러 하는 일은 없으며 매스컴을 타는 일은 더더욱 없다고 한다.

이 시대에 이런 스님이 계시다는 것은 불교와 불자들을 위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스님의 법문은 주로 당신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살아있는 선 법문이었다.

스님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세에 출가하여 24세까지는 스님의 생각에 따라 주로

관상(觀想)을 하셨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저녁무렵에 지는 노을 해를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각인하여 방안에 앉아서도 석양의 노을을 그대로 현현시키는 수행법 같았다. 그런 수행을

일심으로 하다보니 일주일만에 석양이 갑자기 환한 빛 덩어리가 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체험하셨다고 하면서 그러한 것은 누구나 일념으로하면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셨

다. 기간송정학두홍(幾看松亭鶴頭紅)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다.

  

스님께서 화두에대한 공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경전을 공부하는 가운데 이제는

화두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26세 때부터 화두를 들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스님께

서는 일념으로 화두공부를 하다가 산에서 물고기가 노닐고 물속에서 꽃이피는 불이(不二)의

경지를 증득하는 체험을 하신 것 같았다.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화두공부는 3단계가 있는데

첫째가 동정일여(動靜一如)로 가나 오나, 움직이나 멈추나 오로지 화두만 성성한 단계와

두번째 단계는 몽중일여(夢中一如)로 꿈을 꾸는 가운데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는 경지와

세번째 단계는 숙면일여(宿眠一如)로 숙면상태 즉 의식이 잠자고 있는 무의식의 상태에서

도 화두가 성성한 3단계가 있다고 하시면서 이는 수행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단계를 거치게 되면 색계의 4선에 오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무색계의 최정상인

비상비비상천의 단계에도 오를 수 있다고 하신다. 물론 궁극의 경지는 부처님이 성취하신

멸진정이지만 우리들이 화두수행만 잘 하면 이런 경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

는 것이다. 불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이런 점이라고 하시며 많은 불자가 불교의 요지

를 직접 체험하고 전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시는 스님의 말씀이 깊히 가슴에 와 박혔다.

스님의 법문이 스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씀이라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살아있는 법문

이었다.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어떤 보살님이 여여(如如)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스님께서 여여는 파도가 멈춘 상태, 즉 어떤 변화도 드러내지 않는 물 그대로의 상태라고

비유하여 말씀하셨다. 물이 없는 무의 상태에서 여여한 것이 아닌, 물이 존재하는 가운데서

파도가 일지 않은 상태, 즉 작용이전의 상태로 환원된 것을 여여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무의 상태가 아닌 비무(非無), 즉 진공묘유의 상태를 여여(如如)라고 하셨다.

 

스님의 여러가지 좋은 말씀을 세세히 기억하지 못하고 내가 생각나는 것만을 우선 옮겨 본

것이다. 한시간에 걸친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공양을 하려가는 시간을 틈다 도중에 내가

스님에게 평소에 궁금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던 것을 개인적으로 질문을 드렸다. 흔히 불가

에서 얘기하는 윤회문제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많은 스님들이 윤회는 방편

이지 진리적인 것이 아니라는 글을 올리기도 하고 또 많은 불교계의 전문학자인 교수들의

글에서도 윤회에 대한 부정적인 글을 올린 것을 많이 보아 온 탓도 있겠지만 사람이 어떻게

짐승이나 더구나 유전체계가 전혀 상이한 파충류인 뱀으로 윤회가 되는지 나의 상식으로서

는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에게는 주로 인간으로의 윤회에 대해 질문을

드린 것이다.

 

스님은 여러가지 비유로 윤회에 대한 타당성을 말씀하셨다.

한 예로서 내일이라는 것은 존재하거나 실재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내일은 존재한다든지,

과거 현재 미래가 실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문제, 그리고 나 자신의 성장과정에 비추어

유년시절과 청년, 장년시절을 경험한 것과 같이 사후의 문제도 죽음으로서 단멸되는 것이

아닌 인(因)과 연(緣)에 의해 끊임없이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반복되는 것이 생명체의

윤회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러한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 열반이고 해탈이라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열반이나 해탈은 죽음 후의 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현재 겪는 고통

이나 번뇌 또한 윤회의 한 모습이며 이러한 고통과 번뇌가 열반의 또다른 모습임을 증득한

다면 고통이나 번뇌가 결코 고통이나 번뇌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스님의 말씀을 공감

하면서도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내가 직접 증득하여 체화되지 않은 관계로 이는

내게 있어 단지 건해(乾解)로 밖에 다가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스님에게 다시 여쭈었다.

스님은 정말 추호도 의심없이 윤회를 믿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 그 어떤 사람도 전생을 기억

하거나 알아서 이를 증명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확고하게 자신의 전생을 아는

사람이 없는데 그래도 스님은 윤회를 인정하시느냐고 질문드린 것이다.  스님의 대답은 한결

같이 윤회를 인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적명스님에게 굳이 이런 질문을 드린 것은 오랜

수행을 통해 깊은 경지에 이르신 스님은 과연 윤회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지가 궁금

하고 또 스님의 말씀을 통하여 윤회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여러가지 참고가 되었지만 솔직한 심정은 그래도 아직 윤회에 대한 확신

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아마도 내 자신이 직접 증득할 때에만 의심이 완연히 걷히

리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를 화두삼아 깊이 참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이 무신론자나 무종교인과 대화하다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고나면 내세도 천국도

지옥도 그 아무 것도 없는 것인데 무슨 소리냐고 핀찬을 주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만일 사

후에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어쩌면 유물론적인 사상이 되기도 하고 또한

고통의 단멸이 되기도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떤 면으로 굳이 불교라는 종교가 필

요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사후에 이러한 것을 설사 원한다해

도 업의 작용이라는 것이 있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고통과 번뇌도 계속

되어 삶이 결국은 고(苦)의 연속이 되고 만다는 논리가 불교교리의 일면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언젠가 한국을 방문한 티벳의 법왕이신 '둑첸까뀨' 스님에게 비

슷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고 그 때 스님의 답변 내용에서 크게 깨달은 바 있기도 했지만 중생

의 습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원숭이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의 나의 모습이다. 내 언젠가는 반드시 허공에 도장 찍는 그날을 기약하며 스스로 수행하여 증

득하는 길만이 지금의 번뇌에서 나를 구제하는 길이라 생각하여 이런 글을 써 본다. 봉암사에

서 2시 조금지나 출발하여 6시경 서울에 도착하였다. 오늘 하루도 참 좋은 인연이었다.

 

2011년 1월 22일 지우합장.

  • 서용칠 관광은 있고 여행은 없는시대에 좋은 순례하였습니다 , 6근으로 판정이 어려운 의식의 세계에서 보편타당성이 부족한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깊이들어갈 필요는 없습니다 2011-01-25 10:12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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