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간화선 지침-내가 없다(無我)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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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태기 진리의 군상에서 보면 무아가 성립한다. 현상세계에서는 순간순간 작용하는 아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지금 느끼고 체험하는 순간순간이 곧 아의 실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리에 치우치면 구름 밟는 삶을 살게 되고 현실에 치우치면 집착하는 삶을 살게 된다. 멀리 보기위해서는 높이 나르고 자세히 보기위해서는 낮게 날라야 하듯 진리와 현상세계의 조화로 지혜로운 삶을 살기위해서는 이 또한 중도의 삶을 취해야 한다고 여긴다. 조주의 무는 어디에 있고 언제부터 생겼는가는 일차적으로 책이나 글 또는 말을 통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느끼고 보고 깨닫는 것에 조주의 무가 붙을 뿐이다. 조주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사람에게 조주의 무는 돌덩이보다 더 무의미 한 것이다. 이러한 무의미를 의미로 만드는 작용을 천착하는 것이 자기의 성품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좋은 글 주시는 님께 감사드리며. 2011-02-21 11:57
- 허태기 무아란 그저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무아란 고정된 나, 영원불변하는 나란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부처님의 삼법인의 작용일 뿐이다. 우리는 순간순간 찰라찰라의 성실한 아의 삶을 살아가고자 공부하는 것이다. 진정한 아(眞我)라는 것이 없다면 부처도 진리도 없는 것이다. 왜냐면 부처나 진리는 나를 떠나서 성립될 수 없는 것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진아(眞我)니 가아(假我)니 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 또한 사고의 틀속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다. 2011-02-22 09:29
- 권중서 무아란 철저히 내가 있음을 말한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내가 없음을 말할 수 있다. 나의 존재는 영원 불멸한 생명력인 것이다. 단순히 육체적인 나로 고정된 실체를 의미한다면 무아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다. 무아란 나를 포함하여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생명력인 관계로 나라는 '아'의 존재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므로 무아이다 2011-02-24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