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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 - 두고두고 보세요.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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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자료    

 

◐ 이자료는 구하기 힘든 자료이니 잘 보관 하시고 보세요 ◑

체크-선택보기 번호 제목 이름   등록날짜 조회
 

 

286  

Text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다큐(3) ybk    2009/07/09  67 
 

 

285  

Text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다큐(2) ybk    2009/07/09  27 

 

 

283   Text   박정희 정부의 경제성장 다큐(1) ybk    2009/07/09  41 
  281   Text   (대한뉴스)불국사 복원(1973) ybk    2009/05/03  83 
 

 

280  

Text   (대한뉴스)포항종합제철준공식(1973) ybk    2009/05/03  73 
  279   Text   (동영상특강)겨레의 오늘을 걱정하면서-김동길 ybk    2009/05/02  94 
  278   Text   (동영상강연)한국민주주의와 박정희시대 ybk    2008/10/30  389 
  277   Text   (동영상)하의도에서 오슬로까지: 김대중 대통령 ybk    2008/10/05  275 
  276   Text   (동영상)김대중 대통령 선거운동과 취임식 ybk    2008/10/05  228 
 

 

275  

Text   (동영상)김대중 대통령 당선 일대기 ybk    2008/10/05  201 
 

 

274  

Text   (동영상)1962년 시정연설 ybk    2008/04/28  796 
 

 

273  

Text   (육성)제7대 대통령 취임사 육성 ybk    2008/04/28  632 
 

 

272  

Text   박정희 전역식 영상 ybk    2008/04/28  738 
 

 

271  

Text   6.3사태에 즈음한 박대통령 특별담화 ybk    2008/02/25  1073 
 

 

270  

Text   파월장병 환영식(1973) ybk    2007/11/11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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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형 김정일-김대중의 '주한美軍 중립화' 密約


    강도 피해자가 강도를 찾아가 자기 집 경비원을 무장해제시키겠다고 약속한 셈이다.
    趙甲濟


    심층취재/김정일-김대중의 ‘주한미군 中立化’ 密約의 전모



    -평양에서 두 사람이 합의한 내용은 駐韓미군의 역할을 평화유지군으로 둔갑시켜 對北억지력을 제거하는 것이었음이 비로소 확인되었다. 이런 발상은 김대중이 임동원을 통하여 먼저 제안한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동맹군을 無力化시키는 密約을 敵將과 한 셈이다.



    趙甲濟(조갑제닷컴 대표)







    적중한 김일성 예언



    1977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東獨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에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통일 후 입수한 회담록에서 옮긴다.

    "남한에서 朴正熙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反共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에서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민주화되면 반공주의자가 집권해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활동이 자유로워지므로 對南공작에 유리하고, 특히 남한사람들 손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1980년대 金泳三 같은 민주투사들은 "좌익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로 생긴 것이므로 민주화만 되면 사라질 것이다"고 했었는데, 김일성의 전략판단이 적중하고, 金泳三의 막연한 낙관론은 빗나갔다.

    黃長燁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남한 정권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떼버리면 양쪽의 갓끈이 떨어진 갓 모양으로 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주한미군 철수와 韓美동맹 와해를 가장 중요한 對南적화공작 목표로 설정, 끈질기게 추진해온 이유는 한국과 1 대 1로 대결하면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지위 변경’이란 속임수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對南적화전략을 위장하기 위한 전술이다. 연방제는 두 개의 체제와 이념을 그냥 두고 중앙정부를 만들어 통일한 것으로 하자는 뻔한 사기이지만, 이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연방제의 뒷면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이기 때문이다. 연방제는 주한미군 철수用이라고 보면 된다.

    이 전략을 간파한 韓美 두 나라는 駐韓미군 문제를 남북간에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주한미군이 존재하게 된 것은 김일성의 6·25 南侵(남침)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1949년 6월에 철수하였다. 김일성의 南侵은 주한미군 철수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나간 주한미군을 불러들인 게 김일성이다.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을 몰아내려는 책동을 60년간 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나가면 再남침으로 통일하려는 속셈이다. 강도가 경비원을 몰아내고 부잣집을 털려고 하는 것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를 북한정권과 논의하는 것은, 한번 털린 적이 있는 부잣집 주인이 그 강도를 상대로 경비원의 철수를 의논하는 것과 같다.

    韓美 두 나라의 완강한 자세를 피해가기 위하여 북한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한미군의 역할 및 지위 변경'이란 속임수를 꺼낸다. 2002년 7월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남북한 실질적 통합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 연구'란 책(허문영, 조민, 홍관희, 김수암)은 북한의 속셈을 잘 정리하였다.





    김대중의 ‘外軍철수 주장’





    김일성이 남한에서 정권을 잡아주기를 바랐던 ‘민주인사’ 중 1번은 김대중씨였을 것이다. 남한의 유력한 정치인 중 유일하게 북한정권이 내세운 연방제안에 동조한 이가 그였다.

    1980년 5
    2011-03-23 09:24 댓글삭제
  • 강길형 주한미군 지위 변경’이란 속임수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은 통일정책이 아니라 對南적화전략을 위장하기 위한 전술이다. 연방제는 두 개의 체제와 이념을 그냥 두고 중앙정부를 만들어 통일한 것으로 하자는 뻔한 사기이지만, 이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연방제의 뒷면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이기 때문이다. 연방제는 주한미군 철수用이라고 보면 된다.

    이 전략을 간파한 韓美 두 나라는 駐韓미군 문제를 남북간에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해왔다. 주한미군이 존재하게 된 것은 김일성의 6·25 南侵(남침)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1949년 6월에 철수하였다. 김일성의 南侵은 주한미군 철수가 없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나간 주한미군을 불러들인 게 김일성이다. 북한정권이 주한미군을 몰아내려는 책동을 60년간 하고 있는 것은 미군이 나가면 再남침으로 통일하려는 속셈이다. 강도가 경비원을 몰아내고 부잣집을 털려고 하는 것과 같다. 주한미군 문제를 북한정권과 논의하는 것은, 한번 털린 적이 있는 부잣집 주인이 그 강도를 상대로 경비원의 철수를 의논하는 것과 같다.

    韓美 두 나라의 완강한 자세를 피해가기 위하여 북한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한미군의 역할 및 지위 변경'이란 속임수를 꺼낸다. 2002년 7월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남북한 실질적 통합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위상과 역할 연구'란 책(허문영, 조민, 홍관희, 김수암)은 북한의 속셈을 잘 정리하였다.









    1980년 5
    2011-03-23 09:41 댓글삭제
  • 강길형 김일성이 남한에서 정권을 잡아주기를 바랐던 ‘민주인사’ 중 1번은 김대중씨였을 것이다. 남한의 유력한 정치인 중 유일하게 북한정권이 내세운 연방제안에 동조한 이가 그였다.

    1980년 5
    2011-03-23 11:55 댓글삭제
  • 허태기 일제시대 김대중은 일본상인의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호의호식하였고 당시의 창씨개명은 도요다 다이쥬우 였다. 해방이 되자 재빠르게 공산당의 앞잡이로 변신 목표인민부의원장으로 사실상 골수 빨갱이 노릇을 했으면서도 박정희와 다른 점은 같은 빨갱이라도 박정희는 뉘우치고 빨갱이의 발본색원에 힘썼고 김대중이는 한번도 반성하거나 공산 빨갱이에 대한 비난이나 성토를 한적이 없고 교묘하게 공산당을 두둔해 온 것이 차이점이다. 결국 북한특수부대의 은밀한 지원하에 광주사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세월이 지나 시류변화에 따른 여론의 변화를 교묘하게 이용, 대통령이 되자 북한에 뒷돈을 대주고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하고 제3국인을 이용, 노벨평화상수상에 올인하여 개인의 야망을 달성하였다. 노벨평화상을 타면 국격이 갑자기 높아지고 한국이 세계에 크게 유명해질 것이라고 온통 난리를 피웠던 시대가 있었다. 지나고보면 모두가 김대중 개인의 명예를 위한 쇼에 지나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시 역사상 전례가 없이 서로 총뿌리를 마주하는 국가간에 단둘이 그것도 배석자 한사람없이 근 1시간 동안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김정일과 무슨 대화를 나눴지는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회색분자요 미스테리 투성이의 인간이 바로 김대중이다. 그의 행적으로보아 죽어서는 당연히 망월동묘지에 뭍혀야 마당함에도 국가예산을 들여 국장을 치루고 공산주의자와 싸우다 못다핀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로 간 것이다. 김대중 그는 육이오 전쟁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있을 때 24살의 청년으로 군의 징집을 기피하고도 용케도 애국자 행세를 한 카멜레온 같은 뛰어난 변신자였다. 일설에는 김일성 궁전에 그의 기념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남북이 통일되는 날 그 진위가 밝혀질 것이다. 2011-03-24 00:50 댓글삭제
  • 강길형 1980년 5 2011-03-24 05:11 댓글삭제
  • 강길형 1980년 5 2011-03-24 05:13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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