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에 대한 비기독교인의 의견]
이스라엘의 야사를 인류역사로 믿으며, 야훼를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샬롬’이라는 단어로 인사를 대신하며 ‘평화를 뜻하는 기독교의 인사말’이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몇자 적어 본다.
먼저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칼데아신화에서는 태양신과의 싸움에서 진 계명성이 땅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계명성(금성, 샛별, 샤헬)이 바로 루시퍼이며 동시에 ‘샬롬’이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이사야 14:12의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라는 구절에서 신화의 내용과 바이블의 내용이 정확히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으며, 기독교라는 종교는 고대 여러 민족의 신화와 설화를 차용하여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http://www.antichrist.or.kr/bbs/tb.php/anti_study/99 참조.
그러나 대다수 기독인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은 채 ‘샬롬=평화’라고 주장할 것이기에 ‘기독교의 평화’가 과연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평화’와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 것인지 살펴 보자.
먼저 고대 이스라엘민족은 주변의 비옥한 땅을 모두 타민족에게 내주고 여기저기를 떠돌며 목축과 약탈로 연명하던 부족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즉, 사막의 유랑민족이었다.
타부족에 대한 약탈전투를 끝내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부락의 용맹한 전사로 돌아간 비적들과 그 가족들은 전투후의 약탈품을 보며 평화로움을 만끽했을 것이다.
그 때의 인사가 바로 ‘샬롬’이었으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평화는 바로 이때의 평화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생활터전을 짓밟히고 생명과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과연 외관상 평화로워 보이는 이스라엘의 부족을 보면서 평화를 연상할 수 있었을까?
아직도 동의하지 못할 기독교인들을 위해 바이블에서는 ‘평화’라는 단어를 어떤 경우에 사용했는지 살펴보면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을 맺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예로 삼아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을 맺을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부치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신명기 20장 10 ~ 14 (공동번역)
‘평화’에 동의하는 사람은 노예로 삼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모두 죽이며, 재물은 약탈해서 나눠 가지는 것이 바로 바이블이 가르쳐 주는 평화의 의미이다.
[사무엘상 16 :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가로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위의 구절에서 베들레헴의 장로들이 공포에 떨면서 평강을 물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스라엘에 굴복하고 야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약탈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에 베들레헴의 장로들이 굴복한 것이다.
위 구절의 ‘평강’은 ‘만민의 평강’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이스라엘민족만의 평강’이며 야훼를 믿고 따르는 자들 사이에서의 ‘평강’임을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야훼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에게 무자비한 학살과 약탈을 예고하는 선전포고를 바이블은 ‘평화’라고 말하고 있다.
- 우리에게 굴복하고 우리 방식대로의 평화에 따르겠느냐 - 는 선전포고 !
지금 기독인들이 하는 ‘샬롬’이라는 인사는 기독인들사이에서는 평화를 상징할 수도 있지만
비기독인들에게는 ‘야훼를 믿고 따르라 그러지 아니하면 야훼의 뜻에 따라 심판하겠다’는 저주의 소리이며, 기독교만의 독선과 배타성이 내포되어 있는 단어이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