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일기(이영미술관 관람소감)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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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6일/흐림(금)
잔뜩 흐린 날씨에 오후 늦게 비가 올 것이라고 한다.
아침 8시 반경 집을 나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건대입구에 내려 다시 2호선을 타고 강남역에
내려 3번 출구로 가니 먼저 온 고향문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약속한 10시 정각
이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늦게 도착한 사람과 함께 수원행 버스(5006번)를 타고 수원시 흥덕
지구 잔다리 마을 이영미술관 근처에 하차하여 18명의 재경고성문학회원들과 함께 미술관 정
문으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대략 40분이 걸렸다.
미술관 경내에는 자태가 우아한 소나무와 조각가 한용진의 '막돌 다섯' 등의 작품이 주위 환
경과 조화롭게 어루러져 찾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준다. 다섯 개의 돌로 포개진 작품의
높이가 대략 7미터 정도 되어 보였다. 보인 이의 개성과 마음에 따라 여러가지 형상으로 다가
서는데 내 눈에는 달마조사가 돌기둥 위에 앉아 있는 형상으로 비쳤다.
우리일행을 영접한 김이환관장이 미술관 3층에서부터 1층으로 안내하면서 주요작품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영미술관은 故박생광, 故전혁림, 정상화 등 대가들의 작품을 관람
할 수 있는 곳으로 2천여점의 작품이 소장된 경기미술의 중심지로써, 특히 민족혼의 화가인
故박생광 화백 작품의 국내 최대 소장처이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 는 말처럼 작품에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나서야 비로소
작품에 대한 안목이 트이고 뭉클한 감동이 저려왔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중 전혁림 화백의 작
품인 '만다라' 그림은 백년생 금강송으로 만든 가로세로 20센치의 나무판자에 부처님의 세계
를 그린 그림으로 천개의 각각 다른 그림조각들을 모아 놓은 길이가 7미터에 이르는 대작으로
작품가격이 천억을 호가한다고 한다. 돈으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작품인 것이다.
특히 박생광 화백의 작품인 일본 낭인에 의해 명성황후가 무참하게 시해되는 과정과 시해된
황후가 내생에 소박한 성자의 모습으로 환생하는 것을 묘사한 작품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슴에
밀려드는 잔잔한 슬픔과 약소민족의 애환이 담긴 지난 역사가 상기되어 가슴을 여미게 하였다.
전혁림 화백의 작품들은 스페인의 바로셀로나에 전시되어 그곳 관람객으로 부터 '피카소' 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동양의 피카소 작품이라고 격찬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 미술관을 방문한
외국의 유수한 예술가들이 박생광의 민화와 불화 등 작품을 보고, 한동안 넋을 잃고는 '샤갈'에
대비되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하면서 감탄을 자아냈다고 한다.
故박생광 화백은 경남 진주가 고향으로 1904년에 태어나 1985년에 작고하였다고 하며,
故전혁림 화백은 경남 통영출신으로 96세를 일기로 작년에 작고하였다고 한다. 한사람의 원력
과 인간의 내면세계로부터 발산되는 정신력의 위대함을 절감하게하는 작품들이었다.
이외에도 각 층별로 전시된 다양한 그림들을 감상하고는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야외에 마련된
나무 식탁에 둘러앉아 송주(松酒)와 막걸리에 삶은 돼지고기와 곰취나물, 묵은 김치 등을 안주
삼아 술과 음식을 들면서 즐거운 만찬시간을 가졌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영미술관의 개관과
그동안의 전시회 행사등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였다.
이영미술관은 9천평 대지에 2001년 6월 미술관으로 등록, 2001년 11월 이영미술관 개관전을
가진 이래 '제1회 경기 미술제' 를 비롯, 특별기획전과 기념전시회 등 많은 행사를 치룬바 있고
노무현대통령 재직시에는 번거러움을 피해 버스편으로 직접 이곳까지 와서 김이환관장의 손을
잡고 일일이 설명을 들으면서 대단히 흡족한 마음으로 관람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관람도중 특
히 전혁림 화백이 그린 통영만의 그림앞에서 한동안 바라보더니 이와같은 그림을 청와대에도
걸어두고 외국사람들에게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보게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김이
환관장이 그림을 청와대에 기증하려 했으나 규격이 맞지 않아 전혁림 화백에게 부탁하여 같은
그림을 규격을 줄여서 그리게하여 청와대에 기증하였는데, 그 그림이 영빈관에 걸렸다고 했다.
'이영'미술관의 명칭은 김이환 관장부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고 한다.
이곳 관장을 잘아는 동향인의 얘기에 의하면 김이환 관장은 경남 고성이 고향으로 부산법대를
졸업하고 부산시청공무원으로 재직시 당시 부산시장이던 김현옥시장에게 발탁되어 서울시 공
무원을 거쳐 국무총리실의 경제기획실장까지 지낸 입지적인 인물로 근면과 성실성, 그리고 남
다른 안목을 통한 이재(利財)와 예술인을 아끼는 뛰어난 예지로 오늘날의 이영미술관을 일구어
낸 분이었다. 그 분의 말씀 가운데 '호수 위의 한가롭게 보이는 아름다운 백조도 실은 물속에서
끊임없이 갈퀴를 젓고있다' 고 하는 말씀에서 느끼듯이 오늘날의 이런 훌륭한 미술관이 되기까
지는 수많은 노고가 어렸음을 짐작케 하였다. 작품을 기증한 작가들을 살아생전에 지극정성으
로 보살피고 도움을 주는 등 눈물겨운 정성이 오늘날의 광영을 가져온 것이었다.
비디오 시청이 끝나고 그자리에서 재경동향문인들의 시와 수필을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순간 만큼은 모두가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감정으로 자신들의 감성을 글과 소
리로서 표현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행사를 마치고 일행과 함께 밖으로 나와 잘 생긴 소나무
숲길을 따라 관내를 둘러보고는 정문을 나섰다. 이런 훌륭한 미술관을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
향의 선배님이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사실이 새삼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매우 뜻 깊고 유익한 순간을 누린 하루였다. - 계속 -
한편 부럽기도 하고, 아름다운 글 잘읽고 감니다. 2011-05-10 0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