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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1세기 통일된 대한민국은 좌청룡(일본), 우백호(중국) 을 거느리고 세계를 지배한다.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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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길형 ***대한민국 건국***
    1945년 12월19일 저녁 7시30분 이승만(李承晩)은 서울중앙방송국(KBS)를 통하여 ‘공산당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연설을 하였다. 그때 이(李) 박사는 모든 정당과 政派(정파)를 통합한 범국민(汎國民) 조직으로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李 박사는 이 일을 방해하는, 박헌영(朴憲永)이 이끄는 공산당을 지목, 결별 선언을 한 것이다.

    당시 공산당은 대중 조직이 가장 강하였다. 30여년 만에 귀국한 李承晩은 카리스마는 있었으나 直系(직계) 조직은 없었다. 하지 사령관의 미군정(美軍政) 당국도 공산당을 건국(建國) 과정에 참여시키려고 하였다. 트루먼 행정부도 아직은 對蘇(대소) 봉쇄정책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소련과 공산주의의 인기는 세계적으로 절정이었다. 소련군은 2차대전중 나치 독일군을 상대로 영웅적으로 싸웠다. 특히 1943년 초 소련군이 스탈린그라드 결전에서 독일군을 역공(逆攻), 섬멸한 것은 전세(戰勢)를 역전시킨 쾌거로서 세계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였다. 소련은 2차 대전으로 인구의 10%인 2,000만 명이 죽었다.
    미국 국무부, 재무부 요직(要職)엔 자발적으로 소련의 첩자가 된 고관(高官)들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이승만(李承晩)은 이날의 역사적 연설을 통하여 공산당 극렬분자들을 반역자요 파괴자라고 정확히 규정하였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반역세력이고 파괴자들이므로, 국가 건설과정에서 함께 갈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 연설은 건국(建國) 지도자에 의하여 이뤄진, 2차 대전 이후 공산당에 대한 세계 최초의 정면 대결 선언일 것이다. 대소(對蘇) 대결 노선을 천명한 트루먼 독트린은, 그 2년 후였다.

    할아버지 이(李) 박사가 무슨 배짱으로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이토록 격렬한 직격탄을 날렸을까, 경이롭기만 하다. 더구나 이 연설엔 종북(從北)세력을 쳐부술 때 쓸 수 있는 비밀 폭탄들이 숨어 있다.

    “(공산당 극렬분자들은) 제 나라를 파괴시키고 타국(他國)의 권리범위 내에 두어서 독립권을 영영 말살시키기로 爲主(위주)하는 자”

    “양의 무리에 이리가 섞여서 공산(共産) 명목을 빙자하고 국권(國權)을 없이하야 나라와 동족을 팔아 사리(私利)와 영광을 위하여 부언낭설로 인민(人民)을 속이며, 徒黨(도당)을 지어 동족을 위협하며 軍器(군기)를 사용하야 재산을 약탈하며, 소위 공화국이라는 名詞(명사)를 조작하야 국민 전체의 분열상태를 세인(世人)에게 선전하기에 이르렀더니, 요즈음은 민중이 차차 깨어나서 공산에 대한 반동이 일어나매, 奸計(간계)를 써서 각처에 선전하기를 저희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요 민주주의자라 하야 민심을 현혹시키나니, 이 극렬분자들의 목적은 우리 독립국을 없이해서 남의 노예를 만들고 저희 私慾(사욕)을 채우려는 것을 누구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李) 박사는 공산주의자들을 사대주의자-민족반역자-거짓말장이로 못 박았다.

    독재를 공화국이란 말로, 공산주의를 민주주의란 말로 위장하는 저들의 숫법을 폭로한다.

    이승만(李承晩)은 선전 선동 부분에서도 공산당에 결코 밀리지 않는 전략(戰略)과 기술을 가진 분이었다.
    그는 공산당이 소련을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라고 찬양하는 것을 약점으로 잡고 재차 직격탄을 날렸다.

    “이 분자들이 러시아를 저희 조국이라 부른다니,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요구하는 바는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떠나서 저희 조국에 들어가서 저희 나라를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고 싶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찾아서 완전히 우리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잘하나 못하나 우리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가지고 살려는 것을 이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形容(형용)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가 저희 조국에 갖다 붙이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허락지 않는 것이니, 우리 삼천만 남녀가 다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다.”

    이(李) 박사는 박헌영 김일성이 이끌던 남북한 공산주의 세력의 본질을 정확히 간파,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이다.

    이 자들이 스탈린의 졸개로서 소련을 위하여 봉사하는 賣國奴(매국노)들이란 점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폭로한 정치인은 해방공간에서 오로지 이승만(李承晩) 한 분뿐이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한국 사람의 형용(形容)을 하고 와서 우리 것을 빼앗아 가” 소련에 갖다 바치려는 민족반역자로 묘사하였다.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소련을 위하여 복무하는 간첩들이란 지적이었다.

    공산주의가 세계적으로 得勢(득세)하던 시절에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표현인데, 적중한 예언이기도 하다.

    66년이 흐른 지금도 유효한 분석이다. 남한의 공산주의자들, 즉 從北(종북)세력은 민주투사나 한국인의 형용(形容)을 하고 있으나, 매국노(賣國奴) 김정일을 위하여 복무하는 간첩세력인 것이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법도 제시하였다.

    “먼저 그 사람들을 誨諭(회유)해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 다니는 무리를 권유하여 돌아서게만 되면, 함께 나아갈 것이오…”

    거짓선동엔 진실의 햇볕을 비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변할 수 없는 공산주의 골수분자들이 아니라 附和雷同(부화뇌동)하는 무리들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았다.

    李承晩(이승만)은 교정이 되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은 ‘親父兄(친부형) 親子姪(친자질)이라도 원수로 대우해야 한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愛憎(애증)과 親疎(친소)를 돌아볼 수 없는 것이다’고 비장하게 못 박았다.

    공산당을 정상적인 인간집단으로 봐선 안 되다는 경고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어서 공산주의자들을 파괴자, 민족주의자들을 건설자로 규정하였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건설자와 파괴자는 협동이 못되는 법이다. 건설자가 변경되든지 파괴자가 회개하든지 해서 같은 목적을 가지기 전에는 완전한 합동은 못된다.”

    나중에 이(李) 박사는 "공산주의자들은 호열자(콜레라)와 같다. 인간은 호열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문명(文明) 건설자인 대한민국 세력과 문명(文明) 파괴자인 공산당은 절대로 한 덩어리가 될 수 없다.

    김대중-노무현 종북세력은 공산당과 대한민국이 서로 화해하고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다고 사기를 쳤지만, 李 박사 눈엔 진실이 보인 것이다.

    李 박사는 끝으로 이렇게 호소하였다.

    “이 큰 문제를 우리 손으로 해결치 못하면 종시는 다른 해방국들과 같이 나라가 두 절분(切分)으로 나뉘어져서 동족상쟁의 禍(화)를 면치 못하고, 따라서 우리가 결국은 다시 남의 노예 노릇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경향 각처에 모든 애국애족하는 동포의 합심 합력으로 단순한 민주정체화(民主政體下)에서 국가를 건설하야 만년무궁한 자유복락의 기초를 세우기로 결심하자.”

    이 연설은 70세 老鬪士(노투사)의 위대한 선제(先制) 공격이었다.

    급소를 얻어맞은 조선공산당 박헌영은 중앙위원회 대표 명의로 ‘세계민주주의전선의 분열을 책동하는 파시스트 이승만 박사의 성명을 반박함’이라는 장문(長文)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표현은 극렬했지만 守勢的(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다.

    박헌영 등 공산세력이 주도한 좌익의 통일전선체인 조선인민공화국은 이승만(李承晩)이 귀국하기 전에 그를 주석(主席)으로 추대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래 놓고 그를 파시스트라고 공격하니 국민들에겐 잘 먹히지 않았다.

    대중의 이승만(李承晩)에 대한 신뢰는 공산당의 선전 선동이 무너뜨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뿌리를 박고 있었다.

    이승만(李承晩)이 공산당을 매국(賣國)세력으로 규정한 지 1주일이 지난 12월2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美), 영(英), 소(蘇) 3국(國) 외상(外相) 회담은 남북한에 대한 5년 기한의 신탁 통치안을 발표하였다.

    김구(金九), 이승만(李承晩)이 주도한 반탁(反託)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박헌영(朴憲永)의 조선공산당은 熱火(열화)와 같은 민심에 동요하여 贊反(찬반)을 정하지 못했다. 지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헌영은 서울 주재 소련영사관을 찾아가 지침을 받으려 했으나, 영사관측은 본국으로부터 훈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했다. 박헌영은 12월28일 밤 비밀리에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갔다.

    그는 김일성 등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간부들에게 신탁통치에 대한 남한의 민심이 반대쪽이라고 설명하였다. 김일성도 어쩔 줄 몰라 하였다. 모스크바에 갔던 북한주둔 소련군 민정(民政)사령관 로마넨코가 평양으로 돌아온 다음날, 박헌영(朴憲永)에게 지침을 하달하였다. 신탁통치를 결의한 모스크바 협정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朴憲永은 1946년 1월1일 밤 평양을 출발, 2일 새벽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김일성과 보조를 맞추어 조선공산당 이름으로 모스크바 협정, 즉 신탁통치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승만(李承晩)의 1주일 전 예언대로 극렬공산주의자들은 민심(民心)을 거스르고, 소련의 지령에 충직하게 복무함으로써 민족반역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었다.

    그들은 회복이 불가능한 敗着(패착)을 두었다. 좌익은 매국(賣國)세력, 우익은 민족(民族)진영이 된 것이다. 右翼(우익) 주도의 반탁(反託), 좌익 주도의 贊託(찬탁) 정국(政局)은 김구의 臨政(임정)세력을 오른쪽으로 몰았다. 그 뒤 한 동안 이승만(李承晩)-김구(金九) 연합전선이 형성되면서 좌익은 더욱 고립된다.

    이승만(李承晩)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선제(先制)공격으로 역사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가 2010년 한국 대통령이었다면 연평도 도발 직후 평양의 금수산 기념궁전을 폭격하도록 명령하여 김일성의 屍身(시신)을 날려버리고 김정일-김정은을 昏絶(혼절) 시켰을 것이다.

    이승만(李承晩)의 공산주의자 배격 연설은 한반도 정세를 매국자(賣國者)와 애국자(愛國者), 파괴자와 건설자, 적(敵)과 동지, 선(善)과 악(惡)으로 가른 역사의 分水嶺(분수령)이었다.

    오늘의 한반도 정세는 그 연설의 결과물이다. 공산당엔 공세적으로 나가야 이긴다.
    2011-07-27 09:00 댓글삭제
  • 허태기 유익한 글 잘 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승만을 폄하하고 김일성을 칭송하고 그를 찬양하는 사람이 참다운 지식인이요, 시대를 앞선 사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불교인들은 이승만이 기독교 장로이고 불교를 말살하는 정책을 썼다는 괴상한 논리로 그를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신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불교인에 대한 홀대와 소외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록 그가 불교계에는 불리한 인물이었더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그의 공과를 평가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가 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마음대로 정부와 정부수반을 비판할 수 있는 환경도 알고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한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와 대치하는 북한인민이 선택한 공산주의국가와 대조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2011-07-27 10:05 댓글삭제
  • 허태기 *김정일을 칭송한 어느 전직 대통령의 업적*

    1. 부임후 국정원으로 달려가 대한민국 대북전문가 581명 전원 일거에 숙청후 전라도 특채를 만들어
    전라도인만 무시험으로 국정원에 넣어두었다.정권동안 간첩1명도 안잡음. 그당시 국정원 수뇌부였던
    김기삼씨는 북한에 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김대중 정권에 살해위협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갔다.

    2, 1998년 한일어협협정으로 우리땅을 일본과 공동관리하자며 독도의 주권을 일본에게 내주었다.

    3. 당시 동유럽시장 40%까지 점유한 세계신화를 써가던 대우를 북한에 협조안한다는 이유로
    한국최고기업을 제거했다. 북한에 협조잘하는 현대에게는 거뜬히 지원후 후일 이익을위해서
    현대에게도 뒤통수를쳐 정몽헌을 고인으로 만들었다.

    4.. 핵볕정책으로 쌀과 소를 주는척하면서 엄청난 금액의 비밀자금을 은밀히 대북송금 하였다. 공식적으로 밝혀진것만 5억불 수준이고 뒤에 감춰진 못밝힌 금액은 측정불가수준.

    5. 경부고속도로 공사당시 차도없는 국가에 고속도로가 왠말이냐며 홍어들처럼 배부터 채우자며
    옥수수 수입하자고 고속도로에 들어눕는 무식함을 보여주었다.

    6. 현재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기업중하나인 포항제철을 건설당시 철도 안나는 국가에서 왠 제철소냐며
    옥수수나 사서 배나채우자고 매일같이 공사현장을 방해함.복지와 사업간 차이의 개념을 상실한 무식함을 보여줌.

    7.북괴도발 큰사건중 하나인 서해교전당시 남한측이 승리하자 승리를 이끈 해군제독을 불러다가 영웅취급해도
    모잘할판에 김정일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며 해임 시켜버렸다. 서해교전당시 사망한 군인들 장례식에는
    김대중정권소속인간들 단한명도 참가하지않았다. 그리고 김대중은 한일월드컵 결승보러 일본에떠났다.

    8. 전라도를 발전시켜야한다면서 계획도없이 공항을 조단위로 들여가며 마구지어대어 결국 연평균
    이용객 0명인 공항들이 탄생하였다.

    9. 묻지마 신용카드 정책을 퍼트려 400만국민을 신용불량자로만들었다.

    10. 부동산활성화 대책으로 가계부채 수백조원을 만들었다.

    11. 벤처활성화 시킨다며 코스닥 시장을 투기장으로 만들어 개미때들이 수백조원의 손해를 입게만들었다.

    12. 기업 지배구조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외국자본 투기꾼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여 무수히 많은 한국기업들이 외국에 팔려나가게 만들었다. 그덕에 살인적인 실업율이 증가하였다.

    13. 자신은 목포해상방위대에서 북괴 함선들을 학익진으로 격퇴시킨 사령관이었다고 했지만 해군문의결과
    목포해상방위대라는 군부대자체가 역사상 존재안한걸로 판명. 고로 자가선박으로 혼자서 지휘하고 혼자서
    총쏘고 혼자서 운전하고 혼자서 대포쏜걸로 판명.

    14. 노벨평화상을 로비 수상후 상금을 기부한다고 하고 나중에 다시 몰래 빼돌렸다. 김정일과 함께 노벨상을
    공동수상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 속내가 아직도 미스테리이다.

    15. IMF금모으기 캠페인으로 IMF를 극복하여 김영삼이 싸놓은 똥을 치우는데 공을 세웠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을 외국에 헐값으로 팔아치웠고 모은 금을 북한에 조공하였다.

    16.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무기현대화 및 강성대국 건설을 위한 자금지원에 음양으로 기여하였다.

    17. 햇빛정책을 한다면서 남한의 대북경계심과 안보의식에 대한 정신무장 갑옷을 완전히 벗겨버렸다.

    출처 :진시미
    2011-07-27 10:53 댓글삭제
  • 강길형 누가

    우리를 절대 빈곤, 보리 고개에서

    건지었는가?

    세종 대왕도 하지 못한 일을

    박정희가 했다

    우리를

    절대 빈곤, 보리 고개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 보다 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

    또 어디에 있는가?



    박정희의 일념은 오직 하나

    우리 나라를

    잘사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고

    그는 이를 성취하였고

    우리 국민들은

    뼈아픈 절대 빈곤, 보리 고개를 겪은

    우리 국민들은 모두가 이를

    뼈 속 깊이 알고 있고

    그래서 박정희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것은 우리 뿐이 아니고

    세계가 다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다



    이의를 제기하는 자가 있다면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긁는 좌파들

    인민은 굶어죽고 목숨 걸고 탈출하고

    여자들은 이리 저리 팔려다니는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한 나라를 만들고

    어처구니 없게도 막대한 돈을 들여

    미사일이나 쏘고 핵무기나 만들며

    천암함이나 침몰시키고 연평도를 포격하며

    3대 세습이나 하는 자를

    위대한 지도자로 따르는

    더더욱 제정신 아닌 자들

    아주 아주 비정상적인자들

    ugly korean, mad korean들 이다



    (이들은 소는 멀쩡한데

    사람들이 미쳐 날 뛰는 자들이고

    대통령의 자살은 국가적인 큰 수치인데

    이를 국민적 수치로 만드는 자들이며

    미국은 우리를

    일제의 혹독한 식민 압제로 부터

    해방시키고

    6,25 북한의 남침시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려 막아주고

    지금도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으로 부터

    우리를 지켜 주고 있는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나라 미국을

    북한과 함께 철천지 원수로 아는 자들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자들

    과연 이들이 이 나라의 정상적인 국민인가?

    이런 자들의 말에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런 자들의 말에 귀를 귀우릴 필요가 있는가?)



    독재 독재하지만

    유신체제도

    이렇게 잘살기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같이 OOO발광하는 몇몇 놈들에나 해당하는 것이지

    일반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고

    그가 우리를

    절대 빈곤, 보리고개에서

    건지었기에

    그것때문에 그랬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었기에

    충분히 이해를 하고 인정한다

    ( 그 누가 말하지 안했는가?

    박 정희는 3천명을 어렵게 했지만

    다른 놈들은 3천만명을 못 살게 했다고)





    최악의 구테타도

    최선이 되는 나라

    까불지 말고 웃기지 말라



    굶어 죽는 나라,

    목숨 걸고 탈출하는 나라를 만든 자는

    위대한 지도자이고

    절대 빈곤, 보리 고개에서 건진

    박 정희는 독재자란 말이냐?

    지금 어디에서 누구에게

    입을 벌리고 있는가?
    2011-07-27 13:11 댓글삭제
  • 강길형 -YS, DJ의 영원한 亞類(아류)에서 벗어나야-

    法徹(bubchul@hotmail.com)

    14대 대통령을 역임한 소위 YS가 치매와 실성기를 보이는 것인가? 평소 자존망대(自尊妄大)하고 자화자찬(自畵自讚)으로 전국적으로 냉소를 받는 YS가 2011년 7월 6일, 또다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망언을 뱉어 일부 보수우익이 격분하여 YS의 집 앞으로 몰려가 연일 규탄대회가 벌어지고 있다.

    원숭이도 한 번 실수 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YS는 만성중독이듯이, 습관적으로 기회만 있으면 전직 선배 대통령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들을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인양 비난해온다.


    비난의 결론은 구렁이 제몸추듯 자신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비난은 부지기수(不知其數)여서 지면관계상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의 예를 들면, 지난 1월에도 YS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명하며 "군사독재의 원흉"이라며 맹비난했다. YS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발전의 공(功)에 대해서는 전연 인정하지 않는다.
    일부 보수우익 진영에서는 YS가 앞서의 전직 대통령들을 비난할 때마다 YS의 집앞으로 몰려가 규탄하여 각성을 맹촉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 입구에서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라이트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방한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 입구에서 규탄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라이트뉴스 YS의 각성을 맹촉하는 전문 보수우익은 ‘라이트 코리아’, ‘고엽제전우회’ 등이다. 그들은 1월 25일부터 규탄의 사자후를 토했고, 26일에는 ‘박정희 바로 알리기 모임’ 등의 단체 회원들이, 27일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지부) 등의 단체들이 세모(歲暮)의 엄동설한(嚴冬雪寒)에도 불구하고 연속해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보수우익들은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YS를 부르며, 한국전 이후 “좌익의 원흉“이라고 맹렬히 규탄했다.

    치매와 실성기가 없는 YS라면, 자신이 또 전직 대통령들을 맹비난하면, 또 보수우익인사들이 자신의 집앞으로 들이 닥친다는 것을 예견하고, 망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YS는 지난 7월 6일, 또다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이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킨 놈” 등의 막말로 맹비난에 나섰다. 비난의 배경에는 YS 자신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들보다 존경받을 대통령이라는 자화자찬인 것이다.

    YS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하여 욕설로 매도한 자리에는 YS가 대통령 재임 때, 소통령(小統領) 소리를 들었던 아들 김현철과 신임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씨가 배석했다고 전한다.
    홍준표는 당대표는 인사차 방문하여 YS에게 큰절 올리고 아부성 발언을 했다. “저는 각하께만 큰 절을 올립니다”, “저희들은 각하의 KIDS(YS의 귀여운 자녀들)”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YS는 고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언론에 공개된 대화록을 독자제현을 위해 아래에 소개한다.

    무대는 2011년 7월 6일, 상도동 김영삼 자택의 접견실이다.

    홍준표: “김영삼 대통령 각하 제가 당대표에 당선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사차 방문했습니다.”

    김영삼: “박정희는 쿠데타해서 대통령되어 외국정상한테 인기가 없었는데 내가 대통령되니까 외국정상들이 내 만나려고 줄을 서데...”

    홍준표: “요즘 건강하시지요.. 아주 혈색이 좋아 보입니다.”

    김영삼: “박정희보다 내가 더 건강했지...나는 역대 대통령중 가장 장수할거야...”

    홍준표: “제가 큰절 올리는 사람은 각하 밖에 없습니다.”

    김영삼: “박정희놈은 독재의 원흉이요... 그리고 내가 당신 국회의원 공천 주었지? 노무현 이인제도 내가 발탁했지 흐흐흐...”

    홍준표: “각하 앞으로 한나라당을 잘 이끌겠습니다...건강하십시오.”

    김영삼: “박정희는 나쁜사람이요.. 수고하시오.”

    홍준표의 아부성 인사말에 YS는 동문서답(東問西答)식 대꾸를 하며 박정희만 맹비난한다.

    이날 홍준표와 김현철은 YS의 박정희 대통령의 비난성에 동조한다는 것인지, 만류한 흔적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홍준표는 “저희들은...” YS의 KIDS라고 잔뜩 아부를 했다. “저희들은...”, 자신이 통솔하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의미하는 것인가? 과연 홍준표의 말대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YS의 자녀들인가?

    보수우익 인사들은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만부득히 YS의 집앞에 도열하여 현수막을 내걸고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고,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YS를 또다시 규탄하는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규탄사를 하는 일부 보수 우익인사들은 YS가 치매가 와서 지난 1월말에 혼줄이 난 것을 망각했거나, 실성한 것이 아닌가,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실성한 것 같다는 이유는, 첫째, 또다시 집앞에서 보수우익인사들이 규탄사를 초래하는 망언을 했고, 둘째, 내년 총선에 국회의원을 만들려고 공(功)을 드리는 아들 김현철과 홍준표를 배석시키고 박정희를 매도했으니, 전국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대다수 국민들이 YS는 물론, 홍준표, 김현철까지 공범처럼 인식되어 급기야는 집중포화(集中砲火)적인 비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는 대선, 총선의 선거판에서 등을 돌리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YS가 협조를 아끼지 않는 자들은 있다. 김일성, 김정일이다. YS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들은 맹비난하면서 오매불망 김일성을 찾아가 알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노력했었다. 예컨대 카터를 중개인으로 삼아 김일성을 만나려고 노력한 것이 증명한다. 그러나 김일성은 1994년 5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공습폭격’ 계획을 카터에게 전해듣고 경악하여 삼혼칠백(三魂七魄)이 흩어져 버렸다. 82세의 김일성은 두둑한 선물을 들고 찾아 뵈려는 YS를 접견하기도 전, 그해 7월 8일, 묘향산 산장에서 저승차사의 오랏줄을 받아야 했다.

    1994년 5월 18일,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북핵을 소멸시키기 위해 결심했다. 국방부 장관 윌리엄 페리에게 전투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합동참모본부 의장 존 섈리캐슈빌리, 주한미군사령관 게리 럭 이하 4성 장군 이상의 군 수뇌부 전원을 펜타곤에 소집하고 작전회의를 열었다.

    이날 작전회의에서는 제2 한국전쟁에 대비하여 작성된 ‘작전계획(5027)’에 의거하여 미군 57만, 5척의 항공모함, 전함 200척, 항공기 1,200기를 동원하는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미군이 이러한 회의의 결과는 한반도 통일의 서광이었다. 그런데 YS는 클린턴의 계획에 “국군 1명도 동원할 수 없다”고 언명하며 결사적으로 클린턴의 계획에 반대했다.

    북진통일을 호령호령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라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이승만은 맥아더의 협조를 받아 한반도를 통일하려 했듯이, 클린턴의 협조를 받아 한반도를 대한민국으로 통일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YS는 결정적인 순간에 정체를 드러냈다.

    YS의 종북행각 절정은, ‘5,18 단체’의 고소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을,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5,18특별법’을 만들었다.
    첫째, 광주의 진압군인 국군을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YS가 대한민국을 위한다면 광주의 진압군과 시민군이 모두 서로 얼싸안고 화해하고 함께 승리하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장을 만들어 주었어야 했다. YS의 특별법은 해방이후 빨치산, 좌익 반란군은 민족통일을 위한 영웅의 반열에 오르는 효시(嚆矢)가 되었지만, 반대로 김일성을 위한 무장폭도를 진압한 대한민국에 충성한 군경(軍警)은 역사의 죄인으로 돌변하는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YS는 DJ에게 어떤 역할의 사람이었을까? 다분히 아류(亞類) 인사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적 예화는 다음과 같다.
    2007년 11월 22일, 서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극동포럼 초청 특강에서 YS는 “내가 대통령 재임중 김대중씨의 1천3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정축재 자금문제가 터져나왔다. 검찰이 그 문제를 수사하게 되면 김씨 구속이 불가피할 것이고 대선을 치를 수 없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 판단, 검찰총장을 불러 직접 수사유보를 지시했다”며 자화자찬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평양 통일거리에 건립된 이인모의 반신동상.ⓒ YS의 공로는 또 있다. YS는 전(前) 대통령 시절 해임 시켰던 전교조 교사들을 복직시켜 전교조 합법화의 기반을 만들어 주었다. 불변의 빨갱이 이인모를 소원대로 김일성에게 환송하며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꽃다발 증정과 거수 경례를 하게 했다.
    YS가 재임중 IMF 사태를 일으켜 국민들을 도탄(塗炭)에 빠져 고통받게 하면서 아들이 인사전횡을 하고 부정뇌물을 악어처럼 삼켰다는 것은 천하가 통탄하는 바이다.

    YS의 진면목은 또 있다. 최근, YS는 친자 확인소송에 패소를 당하면서도 친자를 부정하는 천륜을 어기는 짓을 서슴치 않았다. 일본에는 숨겨 놓은 여식도 있다는 보도까지 있었다. YS는 김일성의 위기를 비호하고, 여성들과 야합하여 자식을 두면서 모르쇠로 일관하니 무명의 필부만도 못한 처신을 하는 것이 아닌가?

    YS는 언제까지 국민들을 ‘졸(卒)’로 보고 자신만이 제일이고, 진짜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경제번영한 전직 대통령들에게 비난과 욕설을 퍼부을 것인가?


    석양과 같은 나이의 YS는, 이제라도 전직 대통령들을 맹비난한데 대하여 전직 대통령들과 국민에게 반드시 사과하기를 바란다. 또한 '5,18 특별법‘으로 고통속에 사는 그날의 국군들에게 진솔하게 사죄할 것을 맹촉한다.

    法徹 /스님 (bubchul@hotmail.com)
    2011-07-27 13:15 댓글삭제
  • 강길형 ***YS가 뿌려 놓은 아이들 & 손자 아이들,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위원은 오늘아침 '김창균 칼럼'에서 'YS의 아이들' 그 이후 라는 제하의 글에서 YS가 대통령 재임시 영입한 정치인들의 활약에대한 촌평을했기에 몇마디 하고자한다


    YS는 누구나 다 아는바와 같이 DJ와 더불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 민주화 투쟁의 양대 巨木으로 인정되어 왔으나, 그들은 집권과 동시에 한사람은 자신의 종북좌파로서의 본색을 들어낸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무력강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국내적으로는 이나라를 이끌어오던 보수우익 성향의 정체성에 찬물을 뿌리며 좌파들 득세의 세상의 원조가 되었고,

    다른 한사람은 민주투사로서의 자긍심에 도취한 나머지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을 매도 하므로서 자신의 민주화 업적 부각에 전력을 기울여 이나라 정치계의 지각변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다.


    YS는 대통령 재임중에 금융실명제등 긍정적인 업적도 있으나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전임 대통령으로서의 평가를 받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군부의 정치참여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하나회를 척결한 것 쯤은 긍정적으로 봐 줄 수 있겠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쳐 이 나라의 군부를 마치 惡의 집단 으로 인식 시킬 정도로 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악화 시킨 것은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대 실책 이었다.

    또한 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정도의 환란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통령에게만 지울수는 없겠지만 그의 재임중에 국가위기상황이 발생했었으니 그 책임에서 벗어 날 수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YS의 최대 부정적인 재임중 치적중의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이나라를 50여년동안 이끌어오던 보수우익 성향의 정체성을 허물어뜨리고 좌익 발호의 문을 열어준 宿主 로서의 책임 일 것이다.

    자신의 민주화 투쟁의 업적에 마무리를 짓겠다는 의욕에서 집권 하자마자 단행한 과거의 운동권 출신들을 무차별적으로 영입 하므로서 자유대한민국號의 前道에 거대한 지각변동의 빌미를 제공 한것은 두고 두고 국민들의 원망을 면치 못 할 것이다.


    우선 소위 인권변호사를 자처하며 정권에 저항하던 빨치산의 사위이자 빨치산의 아들이었던 노무현의 민주화투쟁(?)을 과대 평가하여 정계에 입문 시킨 사실을 최악으로 꼽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이되어 재임중에 이나라 국민들의 정체성을 허물고 종북 행각으로 적국인 북한의 戰力 강화에 이바지 한 것 뿐만 아니라 그의 死去後 그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세력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므로 YS는 자신의 KIDS (노무현)뿐만 아니라 손자들에 대를 이어가며 이나라의 기둥뿌리를 흔드는 세력을 잉태시킨 책임을 면 할 수 없을것이다.

    그의 손자들 KIDS은 이미 지방자치 단체의 장인 충남/강원/경남 도지사를 석권하고 있고 수 많은 정치인들이 재 집권의 꿈을 향해 질주 하고 있어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있다.


    법조인 이인제를 영입하고 도와주므로서 이회창의 집권에의 길을 방해하여 DJ의 집권을 간접 도와주어 이나라의 좌파정권 탄생의 문을 열어준것도 원초적으로 YS의 책임이고,

    좌익 운동가였던 손학규를 영입 하므로서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게 된것도 역시 YS의 책임으로 볼 수 밖에 없을것이며,

    운동권 출신인 이재오를 영입 한 것은 그가 비록 이명박 정부의 중신 이라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李/朴 계파정치 붕당정치의 주역으로 활동 하므로서 한나라당 쇄락의 책임을 면치 못 할 것이다.

    YS가 모래시계 검사로서 촉망받던 홍준표를 영입 한것이 결과적으로 이나라 정치 판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한나라당 당 대표로 선출되어 지도부들과 티격태격 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결코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내기는 어려울것 이라는 우려도 없지않다.

    YS!

    그가 뿌려놓은 KIDS 뿐만 아니라 지금 미래를 향해 칼을 갈고있는 손자세대 KIDS 들(노무현의 후계자들)이 이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 갈려 놓을지 두려움이 앞선다.
    2011-07-28 00:38 댓글삭제
  • 강길형 -2012년 애국자 대통령 출현을 기대하면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지금 내년 총선밖엔 관심이 없다. 그들에겐 대선은 나중 문제다. 자기들이 금배지를 계속 다느냐 못 다느냐가 사활문제이지, 정권이 다른 데로 가도 ‘저 끗발좋은’ 야당 국회의원 하면 그만 아니냐는 속셈이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대한민국 진영엔 총선보다는 역시 대선이 더 절박한 관심사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지면 설령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국정을 운영하기 어렵게 된다는 걱정도 물론 있다. 그러나 절대다수에 육박하는 현재의 의석을 가지고도 한나라당은 리더십 발휘는커녕 남의 뒷북이나 치는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이런 게 있은들 뭣에다 쓰고, 없은들 무에 그리 아쉬울 것인가? 해서, 대한민국 진영은 지금부터 대선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 진영의 대선 전략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진다는-이기더라도 아주 간발(間髮)의 차로 이긴다는 전제하에서 수립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배수의 진(配水陣)을 친 장렬한 선거 전략을 짜야 한다. 장렬한 선거란 어떤 것인가? 극적인 선거전이다. 경선과 본선 게임을 한 편의 다아나믹한 드라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단조롭고 안일한 일직선만으로는 드라마가 될 수 없다. 짜릿한 긴장, 끓어오르는 흥분, 영화보다 더한 재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함이 있는 카타르시스의 폭발이어야 한다. 보다도 못한 밋밋한 것으로 손님을 어떻게 끄나? 그런 식으론 박근혜 대세론도 관객으로 하여금 채널을 고정시키게끔 꽉 붙들어 놓기가 쉽지 않다.

    이점에서 박근혜 선수가 후보로 당선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 과정만은 치열한 경쟁과 기상천외한 게임이 춤추는 한 판 흐드러진 굿마당으로 장식하는 게 박근혜 선수의 본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유익할 성 싶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다. 김문수 선수와 오세훈 선수의 연대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여하튼 그 두 사람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박근혜 대세론이라는 단선적(單線的)이고 결정론(決定論)적인 ‘뻔할 뻔자’ 각본을 일약 용쟁호투(龍爭虎鬪)의 불꽃 튀는 현장 토너먼트로 극화(劇化) 시킬 수만 있다면 한나라당의 대선 경쟁력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선거는 KBS, SBS, MBC의 시청률 경쟁하고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정치 시청자들을 자기네 상품(드라마)에 붙들어 두려는 경쟁-이게 선거다. 박근혜, 김문수, 오세훈 선수, 그리고 한나라당 선거전략 지휘부와 대의원들과 당원들,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진영 모두의 비범한 전략적 기획력을 기대한다.
    2011-07-28 06:07 댓글삭제
  • 강길형 ***김일성.박헌영이 모택동 에게 중공군 참전 요청 서한***
    1950년 10월1일 國軍은 38선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했다. 9.28 서울 수복 이후 미국과 UN이 전쟁 확대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李承晩 대통령은 國軍 단독으로 38선 돌파를 명령했다.



    6.25 전쟁 이후 계속 인민군에게 밀렸던 國軍이 ‘남한사수’에서 ‘北進自由統一’(북진자유통일)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다. 10월1일 ‘국군의 날’은 여기서 유래한다.



    당시 김일성은 戰況(전황)이 불리해지자 毛澤東에게 中共軍(중공군)의 ‘직접 출병’을 요청하는 긴급 서한을 전달했다.



    이 서한의 원본은 현재 중국 당안관(檔案館·문서기록보존소)에 보관되어 있으며, 사본은 丹東(단동)의 抗美援朝(항미원조)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박헌영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A4 용지 두 장 분량)의 제목은 ‘존경하는 모택동 동지 앞’으로 시작된다.



    이 서한에서 김일성은 “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전에는 우리 형편이 좋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적들이 패전을 거듭해 남조선 최남부 협소한 지역에 몰리어 최후 결전에서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이 커졌고 미국의 군사적 위신은 여지없이 추락되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그러나 “적들이 우리의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이용,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침공한다면 우리 자체의 힘으로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자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당신(모택동)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적군이 38선을 침공하면 ‘약속했던 대로’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필요하다”면서 중국 공산당에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의 군사지원 요청을 받은 毛澤東은 “참전의 이익은 매우 크며 참전하지 않으면 손해가 클 것”이라며 같은 해 10월 19일 3만 명의 中共軍을 보내 自由統一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반도를 不法(불법)침략했다. )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자료] 위 사진은 김일성이 親筆(친필)로 작성해 毛澤東에게 보낸 '출병 요청 서한'의 마지막 부분이다. 여기에서만 총 5차례에 걸쳐 誤字(오자)가 발견된다. ‘평양시’을 ‘평야시’라고 적기도 했다. 서한의 全文(전문) 내내 誤字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발견된다. 김일성은 서한에서 자신의 이름을 제외하고 漢字를 사용하지 않았다.

    [원문] "친애하는 모(모택동) 동지시여...(중략) 적들이 금일 우리가 처하여 있는 엄중하고 위급한 형편을 리용하여 우리에게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진공하여 38도선을 침공하게 되을 때에는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 새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갓치 중국 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이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이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림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 金日成
    박헌영 朴憲永


    1950년 10월1일
    2011-07-28 13:53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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