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박헌영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조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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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朴憲永, 1900년 5월 28일)
충청남도 예산 ~ 1956년 12월 5일)은 한국의 독립운동가, 언론인·노동운동가·혁명가·정치가이자 대한민
국의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정국에서는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의 당수
로 활동하였고, 좌우합작운동에는 반대하였으나 남북협상에 참여했다. 1948년 월북 이후에는 조선민주
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공산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이자 반기독교 운동가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몰락 양반 가
문 출신 지주 박현주(朴鉉柱)의 서자(庶子)로 태어나 일제 강점기에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활약하였으
며, 조선공산당의 지도자였다.
투옥과 출옥을 거듭하였으며 수감 중 한 번도 동료와 조직책을 누설하지 않았다.
1927년의 재판에서는 당의 조직과 당원을 진술하라는 가혹한 고문과 폭행을 당하면서 광인이 되어 인
분을 먹고, 소리를 지르는 등 행동으로 정신이상자로 풀려나기도 했다.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 청년회의 주요 인사였고, 1930년대에도 계속 조선공산당의 창당, 조직 활동을
하다가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받았다.
1940년 이후 조선총독부의 탄압을 피해 광주의 벽돌·기와 공장의 노동자로 위장 취업하여 지하 활동을
통해 공산당 재건운동 조직을 지도하였다. 1945년 이후 해방 정국에는 조선공산당을 재건한 뒤 건국준
비위원회, 민족주의 민주전선 등에서 좌파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1948년에 월
북했으며, 같은 해 4월에 열린 남북협상에 참여하였으나 남한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후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수립 뒤에는 부수상 겸 외무장관 등을 지냈으나 한국전쟁의 책임을 이유
로 김일성에 의해 숙청, 희생되었다. 기독교를 침략 제국주의의 아편으로 보고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였
으며, 일제 강점기 때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항일 운동을 계속하였다.
일제에 의한 다섯 번에 걸친 조선공산당 탄압 이후 당이 해체되면서, 1927년 12월부터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의 지도자이자 한국인 공산주의자의 지도자로 활동하며[주해 4] 체포와 수배, 도피, 은신 중에도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추진, 1945년 8월 광복 직후 조선공산당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소련과 중화인민
공화국의 지원에 힘입은 김일성이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을 세우고[주해 5], 북조선분국을 중심으로
북조선로동당을 창건한 뒤, 당 대 당의 통합으로 조선로동당을 창건하면서 그가 조직한 공산당은 와해
되었다. 해방 정국에서 좌우 합작 운동을 무성의하고 무원칙한 야합으로 간주하여 반대하기도 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미친 짓을 해서라도 일찌감치 나오는 게 나은 듯도 싶네요.
그게 뭐... 욕먹을 짓이라고 그렇게 글을 쓰셨습니까?
댁들의 글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한심합니다.
백과사전에서 단편적으로 찾아 본 것으로는 박헌영에 대해 아직 잘모르겠고...
투옥과 출옥을 거듭하면서도 수감 중 한 번도 동료와 조직책을 누설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보고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누구(아마 3공화국의 박정희지요?)는 조직과 동료를 팔고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까지 섰는데 말입니다.
...
제가 댁들보다는 적게 살았지만,
삶의 진정성과
가치있게, 의미 있게 사는 법은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1-11-15 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