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패가망신이 눈앞에
곽노현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다. 그와 라이벌이었던 박명기 교수가 너무 딱해 2억원을
주었다고 실토한 것이다. 박명기 교수는 서울교대 교수로 충분한 연봉을 받고 있는 사람
이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2억원이라는 돈을 딱한 사람에게 주는 일은 이건희에게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2010년 7월, 그의 총 재산은 마이너스 6억 8,076만원이었다. 자기 발등의 불도
끄지 못하는 이런 마이너스 재산을 가진 사람이 잘사는 교수가 불쌍하다며 2억원을 주
었다? 자기 어머니나 형제에게도 이렇게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2억원은 박명기가
후보를 양보하는 대가로 곽노현으로부터 받았을 것임은 삼척동자의 눈에도 명확할 것이
다.
보도에 의하면 만일 곽노현의 죄가 성립하면 곽노현은 정치적으로만 매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지옥이 그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다. 선거비용 명목
으로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받은 돈 35억여 원을 국가에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패가망신인 것이다.
이 지옥의 벌률은 2004년 오세훈이 한나라당 의원이었을 때 제정했다고 한다.
‘오세훈 선거법’이다.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이 확정된 사람은 선관위로부터 받은
돈을 반환해야 한다.”
세옹지마의 지혜[1]
옛날 중국에서 북방 이민족의 잦은 침략에 대비하여
외몽고와 중국 국경 사이에 걸쳐 요새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새재라고 하였다.
거기서는 몽고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몽고군이 쳐들어오면 얼른 집어타고 도망갈 수 있는 말이
많을수록 부자로 통하였다
어느 날 한 노인이 애지중지 하던 말을 잃어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서 노인을 위로하였다.
그런데 노인은 오히려 덤덤한 어조로
“내가 이 세상을 격어 보니 언짢은 일 뒤에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디다.
그러니 좋은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소.”하고 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잃어 버렸던 말이
다른 말까지 하나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집에 말이 한필 더 생겼으니 경사가 났다며
치하해 주었다. 노인은 이번에도 덤덤한 어조로
“글쎄 좋은 일 뒤에는 혹 언짢은 일이 따를 수 있으니
기다려 봐야지요.” 하고 말하였다.
노인의 둘째 아들이 말이 한필 늘어서 좋아라고 타고
돌아다니다가 그만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노인을 위로 하였다.
노인은 또 “글쎄, 좀 기다려 봐야 되겠소.”하였고.
어느 날 몽고군이 쳐들어왔다.
곧 마을 젊은이들이 군대로 징발 되었다.
그러나 노인의 둘째아들은 군대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다리가 부러졌으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닥치거나
당장 일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위의 이야기 속의 노인처럼 자신에게 닥친 일을 잘 들여다보고
또 멀리 내다보면 지혜를 얻는 수가 있을 것입니다.
변방 노인 이야기에 부처님 말씀은 없지만
그 지혜로운 생각의 근원을 인연법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스스로 지어 놓은 대로
돌려받는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입니다.
중 아함경에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사람도 화를 만난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의 열매가 익었을 때 악한 사람은 화를 만난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경에는 선업의 과보를 당장은 잘 보이지 않지만
점점 커지는 초생 달에 비유하고,
악업의 과보를 보름달이 우선은 밝지만 점점 작아져서
그믐에 이르러 어두워지는데 비유 하였습니다.
이러한 도리를 알고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좀더 지혜롭고 밝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연법은 현실에 가장 필요하고
또 적용하기 쉬운 밝은 지혜입니다.
모든 일을 인연법에 입각해서 생각 하십시오.
무상을 아는 사람은 정진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진리에 어두운 사람에게는 끝없는 어리석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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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옹지마의 지혜[2]
당나귀가 빈 우물에 빠졌다.
농부는 슬프게 울부짖는 당나귀를
구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 당나귀도 늙었고 쓸모 없는 우물도
파묻으려고 했던 터라 농부는 당나귀를
단념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물을 파묻기 위해
제각기 삽을 가져와서는
흙을 파 우물을 메워갔다.
당나귀는 더욱 더 울부짖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웬일인지
당나귀가 잠잠해졌다.
동네 사람들이 궁금해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귀는 위에서 떨어지는 흙더미를
털고 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래서 발 밑에 흙이 쌓이게 되고,
당나귀는 그 흙더미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당나귀는 자기를 묻으려는
흙을 이용해 무사히 그 우물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정말 그렇다.
사람들이 자신을 매장하기 위해 던진
비방과 모함과 굴욕의 흙이
오히려 자신을 살린다.
남이 진흙을 던질 때 그것을 털어버려
자신이 더 성장하고 높아질 수 있는
영혼의 발판으로 만든다.
그래서 어느날 그 곤경의 우물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을 맞게 된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塞翁之馬)의 변화가 있다.
우물속 같이 절망의 극한 속에서
불행을 이용하여 행운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전의 기회가 있다.
우물에 빠진 당나귀처럼 남들이 나를
해칠지라도 두려워 말 일이다.
인생사, 새옹지마 라 했지요..
어떤 상황에서건 낙심치 마시고
불행을 행으로 바꾸시는
승리하는 고운님이 되시길을 기원합니다.
[ 좋은글 중에서 ] 2011-08-29 20:40
한국의 진보세력은 민주화와 노동·인권·복지운동에 중요한 기여를 해 왔다. 오랜 노력의 결과 진보의 두 지도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10년 집권’을 달성했다. 그러나 화려한 집권의 뒷골목에서는 진보 가치를 위협하는 곰팡이가 자라기도 했다. 위기는 국정 능력, 공동체 책임감, 도덕성의 세 줄기였다. 위기의 1차 폭발이 2007년 대선 참패였다. 531만 표 차는 바닥에 떨어진 진보 신뢰도의 증거였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도 진보는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논리·책임·도덕에서 우왕좌왕했다. 미신에 가까운 광우병 파동으로 공동체의 법과 질서를 유린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인하면서 일부는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 어뢰의 잔해에서 동해에서만 사는 ‘붉은 멍게’가 발견됐다는 희한한 주장까지 폈다. 진보 이론가 유시민은 천안함 외부 폭발은 “소설”이라고 했다. 진보진영은 4대 강 사업을 대운하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진보에 가장 아픈 건 도덕성의 위기다. 도덕성이야말로 보수에 비해 우월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에서는 각종 게이트와 대통령 아들 비리가 드러났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는 대통령 가족이 부패에 연루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진보가 위기의 급류에서 탈출하려는 계기가 지난해 6·2 지방선거였다. 승리는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민심 이반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보진영도 나름대로 후보 단일화와 복지 확대 정책 등 탈출구를 모색한 결과이기도 했다. 진보세력은 지난 24일 서울시 주민투표에서 한나라당과 오세훈 시장을 압박했다. 이런 결과로 위기 탈출의 동력이 강화되는 듯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대선에 대한 전망도 한층 밝아진 듯했다.
그러나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사건은 그런 흐름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반(反)부패 법치주의 개혁가로 자신을 부각시켜 왔다. 부패로 낙마한 보수파 공정택 전 교육감과 비교돼 이러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대중적 지지를 얻은 게 사실이다. 이는 규제 완화, 학생인권, 복지 확대 같은 곽노현 정책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위선이 드러났다. 곽노현의 도덕적 기반이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후보 매수 행위의 성격, 진보진영의 추악한 거래, 정치보복으로 몰고 갔던 위선, 국민을 우롱하는 해명으로 진보 전체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정치판이 아니라 교육가의 세계에서 벌어져 더욱 충격적이다.
흔히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의 생명은 도덕성이라고 한다. 이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민주당과 진보세력 스스로 잘 아는 것 같다. ‘진보의 위기’라는 말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진보는 한국 공동체의 중요한 한 축이다. 한국을 위해서라도 진보 대(大)각성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2011-08-30 13:34
조선시대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 ‘마장전’에서 사대부의 위선을 풍자했다. 말거간꾼(마장)의 입을 빌려 말 흥정처럼 진심을 숨기고 술수를 쓰는 게 사대부의 사귐이라고 비꼬았다. “물을 건널 때 부유한 자가 갖신에 덧신을 껴 신는 것은 진흙이 묻을까 염려해서다. 신 바닥도 아끼거든 하물며 제 몸이냐 오죽하겠느냐”라고 일갈했다. “벗 사귐에 있어 충(忠)이니 의(義)니 하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는 일상적이지만 부귀한 이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라는 게 끝맺음이다.
진정한 사귐은 선의(善意)에서 출발한다. 선(善)은 양(羊)처럼 온순하게 말하는 입(口)이다. 밀고 당기는 거래가 끼어들 틈이 없다. 거래는 거짓의 사귐이다. 악의(惡意)가 깔려 있다. 머릿속에 주판알 튕기면서 적당히 타협한다. 정치적 거래에선 대의·정의·명분 등 거대담론을 등장시킨다. 돈과 명예, 권력이 거래의 목적임을 숨기기 위한 치장일 뿐이다. 의도에 따라 사귐은 약(藥)인 동시에 독(毒)을 의미하는 파르마콘(pharmakon)이 된다. 연암은 이를 갈파한 것이다.
법률용어로서 선의는 어떤 사실을 모르는 것이며, 악의는 아는 것을 말한다. 윤리적으로 좋고 나쁘다는 뜻과는 무관하다. 우리 민법·상법에서는 거래가 선의 또는 악의로 이뤄졌느냐에 따라 보호 여부를 판단한다. 거래의 법칙은 상생이지만 틀어지고 어긋나면 공멸한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법학자다. 법에 정통하다. 교육감 선거 후보 단일화에 양보한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준 2억원을 ‘선의’라고 했다. 법률적으로 선의는 결백을 의미한다. 선의의 돈이기에 죄가 없다는 기발한 궤변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포도가 너무 높이 있어 못 따먹으니까 “어차피 시어서 먹지도 못할 거야”라고 했다. 위선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다. 곽 교육감은 선의를 프로이트가 말한 자기방어기제로 들고 나왔다. 자기합리화를 위한 억지다. 선의는 지난해 논란이 됐던 ‘기교사법’과 흡사한 법공학적 산물이다.
삶에서 때로 악취를 피할 수 없다. 심한 악취에 빈번하게 노출되면 코는 마비된다. 무상급식 투표 때 재미를 본 ‘착한 거부, 나쁜 투표’를 패러디해 ‘착한 뇌물, 나쁜 수사’로 덧칠하려는 세력이 있다. 악의의 뒷거래라는 본질을 호도하는 발상이다. 대가성이 의심되는 구린 돈을 선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교육자에게 뭘 배울 수 있을까.
고대훈 논설위원 2011-08-30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