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불교계에 쓴소리--중생에 답 제시해야--,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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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답을 찾아 헤매는 중생들에게 스님들은 친절하면서도 진중한 답을 말해줄 수 있어야 이 시대 불교문화가 일어납니다. 그래야 다시 중흥합니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불교문화 유산 보존과 불교 진흥을 위한 고언(苦言)을 쏟아냈다. 유 교수는 31일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의 주최로 열리는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8월 대토론회'를 앞두고 30일 발표한 발제문에서 "이제 우리는 문화능력에 맞는 불교문화유산을 창출해내야 한다"면서 "지금 같아서는 100년, 200년 뒤 한국불교 미술사를 말할 때 과연 20세기, 21세기의 불교 미술을 어떻게 말할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1700년 불교문화유산, 어떻게 보전 활용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법당, 불상, 석탑, 석등, 불화 등이 당대적 예술역량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상투적으로, 그래서 조악한 매너리즘을 답습하고 있을 뿐인 듯하다"면서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화가, 건축가, 조각가들이 이 시대 불교문화 창출에 등장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손실"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교문화를 이끌어가고 그 현장에 살면서 지키고 있는 스님들의 안목"이라면서 스님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불교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불교 문화재 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실적 문제에 대해 불교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유형적 문화재인 법당과 탑의 복원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인문학으로서의 불교를 대중적 언어로 말하는 것"이라면서 "포교는 부처님 말씀을 전파하는 것만으로 그 임무를 다할 수 없으며 현실적인 고뇌를 불교적 사고로 풀어갈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박경철의 '동행'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가, 그 속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독자들은 거기에 매달린다"면서 "예전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있었는데 그 이후 그런 결과물이 불교계에선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템플스테이는 불교문화유산 활용에서 획기적인 성과인데 이런 불교문화 콘텐츠 개발을 어디서 하든, 누가 하든 불교계가 적극 지원해줬으면 한다"며 "불교계가 안 하면 제가 몇 해 뒤 정년퇴직하고 나서 해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8월 대토론회'는 31일 오후 2시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리며, 조계종 홈페이지(http://www.buddhism.or.kr)와 미디어붓다(http://www.mediabuddha. net)를 통해 생중계된다. yunzhen@yna.co.kr |
화재의 일차적 책임을 통감해야 하지않을까요, 참회부터 하고 쓴소리 하시길..., 2011-08-31 17:23
스포츠서울닷컴ㅣ
심재걸 기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재직 당시 잿더미로 변한 숭례문 방화 사건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털어놨다.
현재 명지대학교 강단에 서고 있는 유홍준 교수는 8월 31일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서 "숭례문 방화 사건은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아픔을 씻을 수 없을 것"이라고 표현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은 지난 2008년 2월 방화범에 의해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모두 붕괴됐다. 600년 역사가 재로 사라져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던 사건이다.
유 교수는 "그 때 나는 파리에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한국어 서비스 개통식 때문이었는데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에 불길 없이 연기만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당시 상황을 힘겹게 꺼냈다.
이어 "목조 건축물은 지붕에 불이 났을 때 기왓장을 끌어내는 작업이 먼저다. 그런데 문화재는 소방관이 부수질 못한다. 자칫하면 과잉 진화 혐의로 조사를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내가 있었다면 기왓장을 부숴서라도 지켰을텐데, 당시 현장엔 그것을 지시할 사람이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연기만 폴폴 나는 상황에서 쉽게 부시라고 말했을지는 의문"이라고 착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유 교수는 숭례문 방화 사건으로 문화재청장 직에서 물러났다. "숭례문과 나의 운명이 오버랩됐다. 서로 비극적인 운명이다. 앞으로 문화재를 더 많이 사랑하고 보존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이자 미술사학자로 유명하다. 2004년부터 2008년 2월까지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바 있다.
shim@media.sportsseoul.com 2011-09-01 13:16
유홍준 前문화재청장 불교중흥 대토론회서 주장
정리=어현경 기자 | eonaldo@ibulgyo.com 2011.08.31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8월 대토론회가 오늘(8월31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대토론회에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발제자로 나서 ‘1700년 불교문화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봤다.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성보문화재연구원장 범하스님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김영애 다할미디어 대표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다음은 유홍준 전 청장과 토론자가 발표한 내용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먼 안목에서 깊이있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불교문화유산을 얘기하는데 가끔 잊어버리는 얘기가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불교문화유산이 문화유산인지 삶인지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이데올로기 대 전환이 일어나면서
파국을 맞는다.
우리 문화유산의 비극이 그 때 시작된 것이다. 파불을 보면 처연한 풍광들이다. 답사 다니다 보면 추풍령 넘어가다
가학루라는 정자가 예뻐서 가보니 절터였고, 안동 법흥사터는 양반집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사라져버린
우리 문화유산은 다시 돌아올 길도 없고, 폐사지로 조차 남아 있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 불교가 돌아온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불교가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불사들이 일어난다.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법주사 팔상전, 무량사 극락전을 지금 지으려면 100 억원은 들어간다.
그것이 영조 숙조 재임에 나온다. 국가가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백성들의 마음속에 불교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억불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했고 스님들은 도성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초의스님이 김정희와
친해도 조문을 가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들어가면서, 만해스님이 주도해 조선불교를 일으키는 데 기초를 마련했다.
조선시대까지, 일제강점기 초까지는 분파도 없었다. 31본사체제로 운영되는 과정에 불교분파도 이뤄졌다.
총독부에서 부동산을 일괄등록할 때, 지금 산사의 자산이 됐다. 그 때 그것을 안했으면 제 때 등록을 안해서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구산선문 이래 산사의 전통을 이어오던 것이, 우리가 복원하고 아름다움을 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불교가 우리에게 크게 다가오지 못하던 것이, 체험적으로 문화유산답사를 하면서 봤을 때 1980년 대 초반까지
불교 재정사정은 정말 빈약했다. 화순 쌍봉사 대웅전이 마지막 목탑형식의 불탑이었는데 1985년 불에 탔다.
그 때 비구니 스님이 2명 계셨는데, 당시 두 스님은 화순군 극빈자로 등록됐었다. 초파일 시주받으러 나갔다가
초가 넘어져서 대웅전이 탄 사정이었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퇴락한 사찰의 모습, 특히 전라도 사찰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1980년대 넘어서면서 중창불사가 일어났다. 이 때부터 한국사찰이 망가지기 시작하는데
오늘날까지 망가지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것만이 불교문화유산이 아니다. 현재 가꿔가고 있는 모습은 100년 후 문화재가 되고,
현재의 문화능력을 보여준다. 쉽게 얘기해 우리 나라 산사는 비탈길에 지으면서 레벨의 층고를 이용해 아기자기했는데,
요즘에는 포크레인으로 연병장처럼 만들어 일렬로 만들어놓는게 허다하다.
강진 무위사를 소담한 절이라고 했는데,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렸다. 수덕사를 보고 통탄했던 것 또한 나
자산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1960년대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당시 초가집 없어지고 슬레이트 지붕올린 것 못지 않게, 산사의 고즈넉한
맛은 없애고 어떻게 하면 화려하고 부티나게 하는 지 강조하는 게 우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안목있는 스님들이 나서 고쳐나가야 한다.
개중에는 선암사처럼 간직하고 있는 곳, 내소사처럼 그대로 유지하는 곳도 있고 미황사처럼 새로 조성한 곳도 있다.
우리 산사의 사찰들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좋은 모범으로 남아야 한다. 새로운 집을 지을 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룰에 대해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새마을 운동할 때 표준주택을 잘못제시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로운 사찰을 지을 때 불사준칙은
갖고 있어야 한다. 불교 사찰건축에 대해 예찬을 보내는 건축사가들이 있다. 김봉열 교수가 달성 유가사 진입로가
아름답다고 얘기했는데, 어느날 그 길이 없어졌다.
우리가 기술이 없는 게 아니다. 문제가 시작되는 것은 그 절을 지을 때 문화재청이 개입하고 예산을 투입해 입찰에
의해 건설사를 잡으면, 그 다음은 건설업자의 몫이다. 성스러운 공간을 짓는다는 생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집을 짓는 정성이 다르니까 나오는 결과가 다르다.
결정적인 것은 재료의 문제다. 목조건축으로 지을 때 금강송이라는 육송을 많이 쓴다. 이게 없다. 우리가 춘향목이라
부르는 금강송을 그동안 키워온 것을 150년 300년 된 것을 써야 하는데, 없다. 광화문 숭례문 복원하는데 대들보가
없어서 캐나다에서 사왔다. 100년 후 후손들이 쓸 수 있는 육림은 지금 우리가 마음을 써야 한다.
그 다음이 기와의 문제다. 옛날 기와는 텍스쳐가 있다. 지금 기와는 곧장 찍어내서 플라스틱 같다. 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과에서 시도해 기와를 사이즈가 abc, 색깔별로 6종류를 만들었다. 그런데 대들보 기둥에 관계 없이
표준기와를 써서 불사를 하니까 그 맛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사찰에서 건물을 지을 때 케이스 기와를 갔다 놓고
기와불사비를 받는다. 스님들이 기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옛날에는 기와 누수율이 적은 게 좋은 줄 알았다. 빗물이 하나도 안스미는 게 좋다고 했는데, 전통 기와들은
10%흡수를 한다. 그게 비과학적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누수율이 100%니까 결루가 생긴다. 기와는 안 망가지는데
석가래가 썩는다. 우리 조상의 선택이 더 과학적이었던 것이다.
단청 문제는 더 심각하다. 단청도 단청을 하는게 아니라 뺑기칠을 한 것이다. 잘 지어놨는데 단청만 하면 어색해지는 데
그게 재료의 문제다. 단청이 옛말을 나게 해주는 고색단청이 있다. 그러면 예산이 50%가 더들어간다.
예산 배정을 할 때, 입찰할 때 그것을 인정안해주니까 따라갈 방법이 없다.
더 심각한 건 불상의 개금이다. 도피안사 하대신라 철불과 도림사 철불이 에폭시가 씌워져 있었다. 청장되면서
원대복구 명령을 내렸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이 가톨릭 신자인데, 도피안사 철불을 보고 절대자를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진실성이 전해지는 것은 금빛은 아니었다.
불국사에 있는 비로자나불상과 아미타여래상은 훌륭한 불상인데 미술사 책에 안나온다. 개금불사가 잘못되서
얼굴표정이 석굴암 본존불에서 나오는 표정이 아니다. 개금은 문화재청에서 개입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불상을 모신 스님들의 안목이 거룩하게 만들 수도 그렇지 않게도 한다.
조경 문제도 심각하다. 우리나라 조경은 원래 힘들다. 일본 저택, 서원, 사찰은 룰이 있다. 룰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자연지세에 맞춰 거기에 잘 자라는 나무 식생에 맞춰 해놨다. 근데 우리나라 많은 정원들이 제대로 살아 남지 못하고, 심지어 창덕궁도 옛모습으로 가지 못한다.
어느 절집 정원이 우리 가슴에 다가왔는지 생각하면서 친숙하게 해야 한다. 선암사 얘기를 한 것도, 80종의 나무들은
원래 심었는지 아닌지 의식할 수 없지만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놨다. 잔디밭을 심고 향나무, 외래종을
심어 꽃밭을 만드는 게 사찰의 깊은 맛을 죽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스님의 안목이 중요하다. 거기 어떤 꽃이 예쁜지 사계절에 맞춰 꽃을 심는 지는 주인의 마음이다.
모를 때는 조경학자에게 문의하면 된다.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방법이 전통적인 것과 맞아야 한다. 사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잔디밭은
9시 뉴스 때마다 나오는데 그게 어디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의 정원인가, 부잣집 정원일 뿐이다.
중국, 일본, 유럽의 궁들이 보여주는 정원, 창덕궁이 보여주는 정원의 아름다움은 어느 절집이고 다 할 수 있는데
이유없이 잔디 심어 놓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것만 남았다. 그런 점에서 서산 개심사를 좋아하고 권했던 것도
옛 사람이 했던 말은 틀린 게 없다. "노목이 있고 노 스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말해준다.
폐사지 문제도 언급하겠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폐사지조차 없어진 곳이 많다. 우리의 경우에는 셀 수 없는
폐사지를 갖고 있다. 그것이 폐사가 됐다는 역사성, 우리시대 문화능력으로는 폐사지로 놔 둠으로써 깊은 모습을
전해주는 곳도 있다. 영암사터, 성주사터 복원하자고 하면 하기 어렵다.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역사성과 불심을
심어주고, 그것보다 더 잘할 자신도 없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부여 정림사다. 부여 정림사는 복원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주 불국사가 없다면
얼마나 썰렁했을까. 왜 부여가 쓸쓸하고 백제의 이미지가 처량한가 하면 정림사의 쓸쓸함 때문이다.
백제역사재현단지면 정림사 두 채도 짓는다. 테마파크 지을 돈 있으면 정림사지 복원하는 게 맞다.
백제역사재현단지는 짓고 난 이후 스님이 상주하도록 했다. 절 복원하고 관리인이 하는 것과 스님이 관리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다. 부여 정림사가 복원되서 백제의 전통을 잇는 스님이 있다고 했을 때 이 것이 갖고 있는
가치는 가슴 뿌듯한 일이다.
폐사지 문제에 있어서는 합천 영암사, 보령 성주사터는 폐사지로 지켜야 하는 것이고 도심에 있던 사찰은
능력이 있으면 복원해야 한다. 고달사터의 경우 새 절이 옆에 들어서 있는데, 차라리 고달사터는 놔두고 그
옆에 새로운 절로 지어 폐사지의 고즈넉함과 새로운 절이 같이 어울리는 방법, 양양 진전사터를 남기고 새 절을
짓는게 나을 수도 있다. 선별적으로 얘기해야지 폐사지 복원이 옳고 그르냐를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어려웠던 점 또 하나가 지구 온난화와 산성비로 오는 화강암 문화재의 피해현황이었다. 화강암으로 지은 비석,
거북뒷받침, 탑이 전해내려오고 있는데, 훼손된다. 거돈사터에 갔는데 돌거북 껍데기가 싹 벗겨졌다.
무생물은 중간에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다 망가진 후에 드러날 뿐이다. 원각사탑의 경우 아크릴지붕을 해놨다.
그렇게 할바에는 복제본을 놓고 원본은 박물관으로 이전하는 게 맞다.
골굴암 복원할 때 앞에 아크릴 판을 세웠다. 고령에 있는 암각화도 아크릴로 지붕을 얹었다.
지금 현재 화강암 가운데 치명적인 것은 보호각일 수 있다. 열선과 빛선, 자외선이 적당히 비추고 통풍이 되고
비를 적당히 맞아야 돌이 오래간다. 통풍 안되고 빛이 들어오지 않았을 때는 이끼가 낀다.
대표적인 게 서산 마애불, 태안 마애불이었다. 서산 마애불은 큰 집을 짓고 태안 마애불은 보호각을 없앴다.
이것은 방치가 아니다. 어느 순간 우리 석조문화재가 수명을 다할 수 있다. 화강암이 석영, 운모가 합쳐졌는데 끝나면
돌이 된다. 이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보박물관이 생겨서 문화재 도난을 막는데 획기적이 방안이었다. 통도사성보박물관은 모범적인 운영사례이기도 하다.
성보박물관 활동은 일반 사설박물관을 능가하고, 괘불을 6개월마다 교체전시하고, 일반 박물관에서 할 수 없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직지사성보박물관에서 탁본, 진영전도 성보박물관이 훌륭하게 해낸 일이다.
그런데 그 이후로 만들어진 성보박물관은 정말 문제가 많다. 지금은 죄다 성보박물관 지었는데 30채 중 절반도
운영을 못한다. 성보가 성보답게 빛나야 하는데, 한 두점 진품에 나머지는 복제본을 갔다 놓았는데 그것은
교육관도 아니고 박물관도 아니다. 박물관은 유물 건물 사람 돈 네 가지로 구성된다.
통도사, 직지사 박물관 큐레이터, 학예연구사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맞먹는 사람을 써야 한다. 건물 짓고
간판다는 것으로 끝나는 성보박물관은 간판 떼고 잘 하는 절에 줘야 한다. 본인이 하지 않았어도 조계종 사찰에서
하면 우리가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보다 다른 집이 더 잘 한다고 했을 때 갖다주는 게 맞는데, 성보박물관
지원받아서 지어놓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종단이 이걸 조절해줘야 한다.
무형문화재에 대해서도 얘기하겠다. 불교계 큰 성과가 템플스테이다. 자유형, 수도형 등 획기적인 우리 문화의 변화였다. 현대사회로 넘어가면서 현대인이 원하는 것을 사찰이 적극적으로 받아준 것이다. 제주도 올레길 붐이 이니까
전 지자체에 둘레길 운동이 일었다.
지리산 둘레길 등 별의별 길이 다있다. 경주랑 관광공사가 원효대사의 길을 만든다고 했다. 경주에서 당진까지
가는 길이었다. 이게 스페인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면, 불교계가 지금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게 있다.
제주 올레길은 걷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충족시켜줬다. 제주 풍광도 아름답고. 하지만 산티아고로 가는 길과 다르다.
역사의 정취나, 유배자의 고통, 현지인의 삶이 녹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정신이 텅 빈다. 일본에 있는 구마모토,
교토에 옛 스님이 헤이안 시대부터 걸었던 그 길을 스님들이 찾아서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전라도 구산선문 중 네개의 사문이 있는데 어디서 부터 시작되던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태안사
송광사 선암사 운주사 쌍봉사 보림사 등으로 오는 길을 조계종 스님이 되려면 그 길을 10번 갔다 와야 한다고 한다면
그 길을 우리가 따라서 걸으면 된다.
법납 10년 차 20년 차 되면 그 길을 한달동안 보름동안 걷는다 같은 콘텐츠를 갖고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길속에는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널려 있고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다 보여준다.
이것은 불교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하고 만들어갈 것인지 보여준다. 100년 후 후손들이 우리 선조들이 이것
하나는 잘해놨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야 한다. 이게 인문정신을 펼 수 있는 불교가 되기 위해서,
스님들은 이런 것을 전념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고 시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좋은 스님, 연구자 하나를
키우는 게 중창불사를 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을 하고 싶다.
범하스님
유홍준 교수의 발제 잘 들었다. 유홍준 교수의 발제문에서 불교문화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문제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이 종교적 관점과 문화재적 관점이 있다고 얘기했는데 참 좋은 표현이다.
불교문화유산 즉 성보를 소장하고 있는 종단이나 소속 사찰은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중창불사를
전통적으로 해서 내려오는 방식이 있다. 행정당국에서는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만 감독을 하고 공사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불교계와 마찰을 빚는다. 성보는 만들어질 때 스님들의 수행과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예불의 대상으로 만들어졌다. 어떤 역사적 예술적 미적 가치를 초월해서 만들어진 게 성보다. 성보가 만들어질 때 현재에 우리가 평가하고
있는 문화재 차원이 아니라 신앙의 위주로 만들어져 성보는 불교계의 입장이 우선돼야 한다.
성보가 불교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문화유산이다. 선사들이 남긴 훌륭한 불교문화유산을 편리한
데로만 주장하지 말고 원형대로 잘 보존해서 전해지는 게 우리의 책임이다. 일선에서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스님이나 불자들이 성보를 이해하는 안목을 높여야 한다.
황평우 소장
한국전통문화에 대해서는 유홍준 같은 연출자와 기획자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에서 선암사 얘기를
하니 즉각 반응이 온다. 길 때문에 왠지 난리가 날 것 같다. 근데 그 길을 걸으면 우리 전통길은 다 사라지고 없다.
새 도로명 도입하면 무슨 우리 전통문화가 생각날 것인가. 새 도로명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전통문화 사랑하고
불교 사랑하는 사람들은 안 되게끔 고민해야 한다.
오늘 주제가 1700년 불교문화 어떻게 보전 활용할 것인가이다. 보전이란말과 활용이라는 말은 일맥상통한다.
정치적인 관점과 제도적 관점이 있다. 가장 스님적인 관점과 세속적인 관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불교문화 진흥과
보전은 불가능하다.
중창불사 부분에 대해서, 스님들도 건축문화재 관련해 공부하고 우리나라 건축문화재가 부실공사가 되는 이유를
고민해야 한다. 유홍준 선생이 말씀한 중창불사가 굉장히 문제가 되는데, 폐사지마다 사안을 달리하겠지만.
자연공원법 개정돼도 걱정이다.
전통적인 경관을 생각해야 한다. 중창불사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선암사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전통경관은 보전하고 그 주변에 새로운 걸 조성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
절집은 스님들이 지어야 한다. 중앙승가대학에 이과, 공과를 개설해 스님들이 목수교육을 받고 공예교육을 받아야 한다.
고려 때처럼. 미켈란젤로가 아무리 성당을 꾸며도 수사, 수녀님이 하는 작은 행동만큼 감동을 주지 못한다.
우리 건축학과가 전통건축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통건축을 공부하는 학과가 없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전통교육을
하겠나. 중앙승가대학이 이과 공과 예과를 신설해 스님이 직접 사찰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길 바란다.
김영애 다할미디어 대표
우수한 인재의 양성을 통해 안목이 높은 스님들을 배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교문화의 보급 및 활용을 통해
일반인들 모두에게 불교문화의 격조있음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불교문화유산은 너무 어렵다.
우리는 왜 탑을 돌아야 하는지, 부처님 손 자세가 왜 이렇게 다양한지, 부처님과 그 뒤의 탱화를 봐도 잘 모른다.
웅장한 불화도 디지털 방법을 이용해 전시한다면 일반인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 복원도 가능하다. 쌍봉사에 가서 스마트폰을 갖다대는 순간 이저의 쌍봉사 전경이 보인다면, 현재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보고, 미래의 모습도보게 할 수 있다. 불교문화도 콘텐츠 시대에 맞게, 스토리텔링시대에
맞게 보존하고 활용하지 않는다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사라진다. 좀더 재미있게 불교문화콘텐츠를 재가공할
방법론을 간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1-09-07 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