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美 청년회)출신 전향우파 강길모씨 증언--지금 대한민국은 赤化 9부 능선을 넘어가는중.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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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反美)청년회> 출신 전향우파 강길모氏 증언-2 |
정리/金泌材 |
강길모 프리존뉴스(現뉴스라이브) 대표는 2007년 5월23일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초청 강연(주제: 한국좌파세력의 실체와 우리의 대응)의 연사로 나서 자신으로부터 직접 주체사상 교육을 받고 북한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운동권 출신 권력자들을 거명하며 “대한민국이 지금 적화의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래는 당시 강연의 요약이다.<주>
▲80년대 대학가의 상황: 1980년대는 양적 성장의 7-8부 능선에 서게 되면서, 질적 변화에의 열망이 커졌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민감한 시기에 ‘변화에 대한 갈망’을 채워준 것은 엉뚱하게도 사회주의 혁명에의 시대착오적 기대감이었고, 1980년대 중반에는 주체사상이란 것이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져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너서클에서 밀려난 지식인들이 좌파이념을 확산시키는데 두드러진 활력을 보여줬고, 그들의 화려한 화술에 많은 젊은이들이 ‘얼치기 좌파’로 전락해갔다. 그러한 시대적 흐름이 당시 대학가에서 친구들, 선배 후배들하고 어울리던 평범한 젊은이들을 사회주의 혁명가로 몰아갔고, 그 연장선상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체사상조차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1980년대 대한민국 대학사회는 ‘하다보니까 사회주의자가 되고, 하다보니까 김일성주의자가 되는 그런 구조’였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주장은 본인이 역사적 범죄자가 된 배경을 시대와 구조 탓으로 돌리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장악한 좌파권력의 실체를 냉정하게 따져보면서 그들이 더 이상 대한민국을 좀먹게 놔두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되돌아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주사파의 권력장악 실태: 본인은 주체사상 학생운동 지도조직인 ‘반미청년회’의 일원으로 연대에서 교육책 임무를 수행했다. 연대 85학번, 86학번의 운동권 출신이라면 거의 전부가 본인의 주체사상 교육 대상이었다. 연대 12개 단과대학의 싹수 있는 활동가들을 선발해 주체사상 강좌를 열어 교양했다. 보안을 위해 새벽 3시 전후를 강의 시간으로 활용했다. 교육장소는 연대가 100주년 기념으로 복원했던 ‘광혜원’ 건물을 자주 이용했다.
연대와 고대 총학생회 팀을 합동으로 묶어 한두 번 교양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고대 85학번 운동권출신들도 잘 알게 됐다. 반미청년회를 통해 키워진 주사파 학생운동 출신들 중에서 이름을 알만한 집권세력 인사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표적으로 노 대통령 측근이라는 안희정을 들 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수김동)를 외치던 그가 최근 대통령 대북밀사 역할을 했다고 하니 참 기막힌 일이다.
안희정 말고도 노 대통령 주변에는 이른바 386참모들이 득실득실하고,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주사파 출신들’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제1부속실장과 제2부속실장, 청와대 대변인과 부대변인, 국가 주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핵심부서 청와대 행정관들이 모두 과거에 주사파 출신들이었다. 얼마 전까지 여당이었던 열린당에는 반미청년회가 직접 양성했던 사람들이 실세 국회의원으로 행세하고 있다.
반미청년회가 학생운동을 다른 주사파 조직에 물려준 이후, 그쪽에서 교육받았던 친구들까지 합치면 열린당에는 확실한 주사파 출신 국회의원만 20여명에 달한다. 이들이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과거 주사파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정부의 요직에 대거 진출했으며, 한나라당에도 주사파 출신들 상당수가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권력의 핵심과 정치권·정부 전반에 걸쳐 주사파 출신들의 진출은 가히 놀라운 상황이다. 386주사파 출신들이 맹활약하고 있는 곳은 여기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중심 권력으로 성장한 시민단체 권력은 사실상 주사파 잔당들의 소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당초 주사파 출신들이 ‘사회운동 차원’에서 기획하고 만들었다.
언론권력도 예외가 아니다. 정통 주사파 출신은 아니더라도 주사파적 역사인식과 가치관에 물든 사람들이 대한민국 방송과 언론의 중추적 실무그룹에 포진해 있다. 권력교체가 이뤄져 방송사 사장을 바꾼다 해도 대한민국 방송의 ‘얼치기 친북좌파 근성’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법조계도 예외가 아니다. 일심회 간첩사건에 떼거리로 몰려드는 변호인들이나 민주 어쩌고저쩌고 하는 법조단체에는 반드시 주파사들이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인터넷 권력을 송두리째 장악하고 있는 주요 포털 사이트 까지도 얼치기 친북좌파 집단의 세력권내에 있다고 보면 정확하다. 이처럼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청와대와 정치권, 시민 권력과 언론권력, 그리고 법조계를 비롯, 각계각층에 이른바 ‘주사파적 인식론’을 떨치지 못한 사람들이 폭넓게 포진했다는 것은 내용적으로 대한민국의 중심 권력이 사실상 ‘적화’(赤化)됐다는 것과 별로 차이가 없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적화의 현재적 의미: 좌파에서 우파로 변신한 안병직 교수는 남북한 권력이 ‘사상적 혈연관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결국 남북한 권력의 사상과 이념이 같다는 얘기고, 대한민국이 주체사상으로 적화됐다는 내용을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이와 함께 열혈 우파 기자인 김성욱 기자는 ‘대한민국 적화보고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적화됐다는 말이 내용적으로 그다지 틀린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노무현 권력은 386운동권 권력이요, 곧 ‘주사파 권력’이라고 등치시킨다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386 주사파 출신들이 권력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데, 그 권력을 주사파 권력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대한민국 적화의 현재적 의미는 현 권력집단이 세계사에 빛나는 성공적인 대한민국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던 핵심기반들을 와해시킴으로써, 김정일 권력의 일차적 이해관계에 직·간접적으로 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한미동맹은 대한민국 발전의 가장 중요한 토대였지만, 저들이 깨지 못해 가장 안달하는 것이 한미동맹이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엉뚱하게 친일청산이니 과거사 청산이니 하는 어젠다(agenda)들을 국가 주요 어젠다로 끌어들이는 것도 적화된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망치기’와 ‘김정일 권력 얼굴세우기 작업’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좌파 권력의 실체와 대응: 대한민국 얼치기 좌파 권력의 정점에는 386 정통 주사파 출신들이 있다. 이들은 학생운동권 시절부터 가져온 조직적 집단성을 20여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전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상당기간 백수로 고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권력집단의 중추’로 자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북한 김일성-김정일 부자권력에 의해 양성된 일종의 프리메이슨들이다.
정통 주사파 출신은 아니지만 주사파적 인식론에 상당부분 공감하면서 과거 자신들이 핵심 주사파 운동가로 활동하지 못했음을 ‘부채’로 생각하는 386들이 있다. 순진하지만 무식한 열성분자들이 나라 망치는 주범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가 바로 이 집단에 해당된다.
대체로 자신들의 ‘먹고사니즘’에 매여 있지만 반미와 친김정일 정서,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학사관 등의 문제에 노출되면 열성적인 행동파가 되기도 한다. 이들의 사상 이념적 특성은 △경향적 반미 △감상적 민족주의와 대북 화해주의 △부의 불평등에 대한 피해 의식과 반기업 정서 △대한민국 과거사에 대한 전면 부정 등으로 표출되고 있으나, 본질은 ‘권력 추구’라고 보여 진다.
정통 주사파들이야 일심회 사건에서 노출됐듯이 아직도 김정일 권력에 맹종하고 있지만, 주변부 얼치기들은 아무래도 권력이 우선인 듯한 양상이다. 그러나 순서가 어떻게 되든지 간에 관계없이 대한민국 말아먹기에는 똑같은 결과를 빚어내는 집단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얼치기 친북좌파권력의 실체와 속성을 정확히 파악했으면, 이제는 대한민국을 건설해 온 대한민국파들이 떨쳐 일어서 그들과 사상적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좌우파 이념논쟁은 시대착오적인 것이요, 지금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좌파라도 안아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파들이 중심을 잡고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얘기들이다.
좌우파 이념논쟁을 하기 싫어도 얼치기 좌파적 사고와 행동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데 이념논쟁은 시대착오적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좌파들의 나라 망치기를 방조하자는 말과 똑같은 주장이다. 특히 이런 식의 주장이 요즘 한나라당에서 차기 대선이 유망하다는 사람들이나 소장파라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실천하는 애국운동의 중요성: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기쁜 소식은 얼치기 좌파권력의 실패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각성시켰다는 점이다.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기정사실화될 정도로 국가적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침묵하던 대한민국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다. 대한민국의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조짐들이 도처에서 솟아나고 있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 있다. 대한민국파들이 현실적으로 권력교체의 전위대로 써먹어야 할 한나라당이란 집단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얼치기 친북좌파들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핵심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주사파들은 그들의 하나님 아버지인 김정일 권력이 대한민국 권력의 향배에 몸소 나서주실 것을 간언하고 있다. 저들은 최악의 경우 형식적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내용적으로는 더욱 대한민국을 말아먹겠다는 전의를 다지고 있다.
대선 결과 보다 대선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기쁜 쪽으로 갈지, 나쁜 쪽으로 갈지 그 열쇠는 바로 대한민국파가 쥐고 있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 걱정도 사치다. 얼치기 좌파집단과 사생결단의 전면전에 투신할 마당에 걱정하고 있을 겨를조차 없다.
적화의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과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설했던 주역들이 노병의 관록과 내공을 앞세워 또 다시 나서야 할 때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구국의 프리메이슨이 되는 날, 대한민국은 결코 얼치기좌파들의 무대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제2의 한강의 기적을 향해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
반미청년회를 통해 키워진 주사파 학생운동 출신들 중에서 이름을 알만한 집권세력 인사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표적으로 노 대통령 측근이라는 안희정을 들 수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위수김동)를 외치던 그가 최근 대통령 대북밀사 역할을 했다고 하니 참 기막힌 일이다. 2011-09-09 15:34
좌우파 이념논쟁을 하기 싫어도 얼치기 좌파적 사고와 행동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데 이념논쟁은 시대착오적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좌파들의 나라 망치기를 방조하자는 말과 똑같은 주장이다. 2011-09-09 18:11
최종편집 2011.09.09 09:45:50 최성재
김정일을 딱 잘라 반대하면 살고, 김정일을 반의반만 신뢰해도 죽는다. 최성재
2004년 3월 12일 정치깡패가 신성한 국회를 장악하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를 유린했다.
김근태, 정동영, 유시민 등은 기관총 협박과 화염방사기 패악으로 국회의원 3분의 2라는 꿈의 다수를 단숨에 쥐구멍에 몰아넣었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여야 국회의원은 어사또 출도에 혼비백산한 탐관오리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국민의 눈과 귀 방송이 죄다 정치깡패의 국회 쿠데타를 역사적 민주혁명이라 찬양하며 12시간 연속으로 현장 중계했다. 이성과 토론과 다수결이 사라진 국회에서 천사가 악마되고, 악마가 천사되는 것은 그처럼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군인이 탱크로 국회의 문을 가로막는 것보다 고약한 일이 벌어졌다. 군인이 헌정을 중단하면 방송은 마지못해 주어진 원고를 읽느라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지만, 정치깡패와 한 패거리인 방송은 진심으로 그에 동조했기 때문에 온갖 감정이 다 실렸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조에서 의 멜로물을 거쳐 평양방송의 엽기적 발악에 이르기까지!
정치깡패에 의한 국회와 방송의 완벽한 장악은 그 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까지 계속되었다. 북에서는 인민이 가장 행복한 태양절이라고 난리였고, 남에서는 신생 깽판 정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넘었다고, 위대한 국민이 승리한 날이라고 법석이었다. 그들이 호언장담한 3분의 2는 한참 못 미쳤다.
홀연히 나타난 박 다르크 때문이었다. 박 다르크는 국민의 눈과 귀가 온전히 장악된 상황에서 호화당사도 숫제 나라에 기부해 버리고 화장실도 수도도 없는 천막에 기거하면서 무기라곤 오직 하나 하얀 붕대를 손에 감고 일제시대처럼 말과 글을 빼앗긴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손을 꼭 잡고 어깨를 꼭 끌어안고 눈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에겐 말이 필요 없었다. 얼과 얼이 바로 통했다.
“민주주의를 살립시다. 자유민주를 살립시다.”
“나라를 되찾읍시다.”
정치깡패들은 방송과 인터넷과 신문을 총동원하고 자발적 홍위병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공포 분위기 선거를 통해 국회를 장악하고 동시에 사법부에 무차별 협박을 가하여 한 달 후 연금된 꼭두각시 장군도 구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완전히 짓밟을 수는 없었다. 갖은 협박과 저열한 선전선동에 굴하지 않고 국민이 3분의 1이 넘는 자리를 박 다르크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박 다르크는 그 후에도 크고 작은 전투에서 전승을 거두었다. 40전 40승! 그러나 결정적 순간에 밀려났다. 적은 가까운 데 있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뻐꾸기에게 둥지를 고스란히 빼앗겼다. 그 후 박 다르크는 더 이상 박 다르크가 아니었다. 인민재판 화형을 간신히 면하더니, 선문답이나 일삼는 제3자로 전락했다.
광화문이 100일 동안 무법천지로 변할 때도 숨어 있었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조롱당할 때도 숨어 있었고, 적화공작(赤化工作)이 민주항쟁으로 뒤바뀔 때도 숨어 있었고,
두 번 세 번 김정일이 서해로 어뢰와 대포를 쏘아 무고한 생명을 오락하듯이 살상할 때도 숨어 있었고,
부산의 영도에 절망분뇨차 때문에 악취가 하늘을 찌를 때도 숨어 있었고,
제주의 강정마을이 친북친중 사대주의의 소굴로 변할 때도 숨어 있었고,
천막당에서 아방궁당으로 바뀐 여당에서 유아 무상복지와 대학등록금 반액을 내세워도 아리송한 복지를 내세우며 숨어 있었고,
무상복지를 반대하는 깃발을 들고 정치 생명을 거는 사람이 나와도 알 듯 말 듯 미소를 띠며 숨어 있다가
그가 장렬히 전사하자 조문은커녕, 의분을 느끼기는커녕 도리어 삐쭉 핀잔을 주었다.
이따금 구름 밖으로 얼굴을 반쯤 내밀고 압도적 1위의 인기곡선을 흘낏 쳐다보고 멀리서 차가운 손을 흔들 뿐이었다. 그러다가 이제 그 동안 정치색을 안 띠고 인기관리만 하던 사람이 저쪽에 포섭되어 고작 6일간 정치판을 흔들자, 약 180주 연속 1위의 인기가 순식간에 흔들리자, 자기도 모르게 표독스러운 말을 내던지며 어리둥절 눈을 끔벅이고 있다.
박근혜가 사는 길은 하나다.
악의 괴수 김정일을 딱 잘라 반대하고 이전처럼 탈북자 모임에 가끔 얼굴을 내미는 게 아니라 전 세계를 대변하는 UN의 인권위원회처럼 북한인권을 대놓고 외치면 된다.
김정일을 미워하고 북한주민을 사랑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긍지를 느낄 수밖에 없고 자유민주를 애오라지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대한민국의 헌법을 능멸하는 6.15선언은 한 마디 말할 필요도 없이 폐기하지 않을 수 없고, 망국적 복지는 언감생심 추진할 수 없고, 대기업과 공기업의 초과이익을 독점하면서 입으로만 온갖 거룩한 소리를 내뱉는 귀족노조는 편들 수 없고, 인구 3천만 이상 국가에서 세계 10대 선진부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능멸하는 불법 난장판 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
어차피 386운동권에 세뇌된 30%는 어떤 미소와 손짓에도 넘어오지 않는다. 손을 내밀어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국민 50여 명이 바다에서 일시에 순국해도 악의 괴수를 옹호하려고 별의별 궤변을 다 늘어놓는다. 그들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말고 정통우파의 길을 뚜벅뚜벅 가면, 정치에 신물이 난 사람들도 우르르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돌아섰던 일당백 정통우파 우군을 되찾게 된다.
박근혜가 죽는 길도 하나다. 악의 괴수 김정일을 신뢰하는 것이다.
반의반만 신뢰해도 김정일에게 머잖아 코가 꿰인다. 그 전에 바야흐로 둥지를 떠나기 직전인 뻐꾸기처럼 ‘장군 만세’ 참새떼에게 철저히 농락당한다. 2011-09-09 23:40
뉴시스 | 기사전송 2011/09/10 04:05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스크랩 메일 인쇄 【빈=AP 로이터/뉴시스】정진탄 기자 =
지난해 북한 핵시설을 방문했던 미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은 9일 "북한은 미사일 핵탄두 개발을 위해 3차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헤커 소장은 이날 빈에서 외교관 세미나에 참석해 "2009년 2차 핵실험은 2006년 1차 핵실험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필요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한이 작고 기술적으로 선진화한 미사일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면 한 번 더 핵실험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핵전문가들은 북한이 최대 10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으나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 소형화는 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헤커 소장은 "북한이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기초적인 플루토늄 폭탄을 제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도 "이전 핵실험을 토대로 미사일 핵탄두 소형화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 핵분열물질의 이용 제한과 중국을 포함한 외부세계의 대응이 북한으로 하여금 추가 핵실험 실시를 재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헤커 소장은 "북한 핵 프그램에 대한 나의 결론은 분명히 북한은 폭탄을 갖고 있으나 온전한 핵무기라고 할 수 없다"며 "북한이 이를 실제 사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헤커 소장은 그보다 "북한에 의한 핵확산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 기술 수출을 많이 했음을 세계가 알고 있다"며 "이제 북한은 핵 수출 비즈니스에 돌입했고 이것이 가장 즉각적인 위협이며 당장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헤커 소장 또 "북한과 이란이 핵 거래를 했는지 여부는 모른다"고 했으나 "양국의 핵기술은 서로 보완적이어서 관련 기술 교류는 가장 큰 우려사항"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의 농축시설이 이란의 그것보다 더 선진화했고 일년에 핵무기 2개를 제조할 수 있는 핵분열물질 생산을 위해 개량될 수 있다"고 말했다.
2004년 이래 7차례 북한을 방문한 헤커 소장은 지난해 11월2일부터 4일간 북한 초청으로 방문했으며, 북한이 그동안 부인했던 현대화한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둘러봤다.
헤커 소장은 당시 "북한의 정교하고 현대화한 우라늄 농축시설에 깜짝 놀랐다"며 "북한 관계자는 이미 2000여개의 원심분리기가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chchtan7982@newsis.com 2011-09-10 10:56
시장은 거의 386 친북.종북 좌파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고 대한민국의 핵심도시
수도 서울시장 마저 좌파세력으로 넘어가면 과연 대한민국호는 어디로 향할것인가 ?, 2011-09-10 15:06
유코피아 | 기사전송 2011/09/10 12:49
호주는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한 통속'으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맥아더에 작전권을 넘긴 최초의 나라가 바로 호주다. 6·25 때 한국 정부가 미국에 작전권을 이양한 것도 호주의 선례를 따른 조치였다.
아시아에선 대만이 '51번째 주'로 분류된다. 최근 한 연구소가 18~22세 사이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대만의 장래에 대한 여론조사를 해봤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중국으로의 귀속을 주장한 응답자는 전체의 36%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주가 되면 좋겠다는 여론이 무려 55%나 됐다.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마르코스의 장기독재로 경제가 피폐해지자 차라리 '그 때'가 좋았다며 '원상복귀'를 요구하는 캠페인이 일어났었다.
패전 후 6년이나 미국의 군사통치를 받았는데도 일본은 여전히 '친미 코드'에 사로잡혀 있다. 엊그제 AP통신이 실시한 국가별 선호도 조사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1위로 나왔다. 정치 지도자 호감도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거의 50%에 육박해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다.
미국을 '제국'이라고 비아냥대는 진보성향 학자들은 '51번째 주'가 전세계 36개국에 달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미국의 군사기지가 있는 나라들이다.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식민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양키 고 홈'을 외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미군기지 유치에 성공한 때문인지 동유럽의 폴란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미국에 바짝 다가서 있다.
제국의 힘은 항공모함 전단을 앞세운 '하드 파워'가 아니라 문화·첨단기술의 '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는 견해를 밝힌 학자들도 꽤 된다. 레이디 가가를 비롯한 팝 가수들과 할리우드, 스티브 잡스(애플)와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와 같은 천재들이 소프트 파워의 중심축을 형성해 세계인들의 신경 세포조직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아메리카 제국'이 9·11 사태 이후 그 위상이 흔들리는 모양새다. 몰락의 전주곡이라는 성급한 진단도 나오고 있다.
제국이 없는 세계는 과연 평화공존이 가능할까.
니알 퍼거슨은 제국의 필요성을 강조해 논란이 된 영국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미국이 제국의 역할을 포기하는 순간 세계는 혼돈의 상태로 빠져들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큰 형님'이 사라진 세계는 곳곳에서 전쟁의 참화가 발생해 정글로 변모하게 된다고 지적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퍼거슨에 비쳐진 미국은 '착한 제국(benevolent empire)'이다. 미국이 더욱 분발해 줄 것을 주문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어쩌면 제국의 힘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은 모두 내게로 오라'며 횃불을 치켜들고 이민자들을 포용한 상징물이다. 고향에선 루저(loser) 곧 패배자의 삶을 살았지만 이민자들은 이 땅에서 땀과 열정으로 오늘의 '제국'을 일궈냈다.
미국이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제국은 금세 원기를 회복할 것만 같다.
["미국이 보인다." 미국전문 정보/뉴스 포탈사이트] 2011-09-10 18:01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이래, 6.25, 북의 발광적인 남침을 당한 뒤 60여년 만에 최대의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의 새 나라를 세워보려고 일제의 혹독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독립투사들, 해방 뒤의 혼란 속에서도, 동족상잔의 비극의 와중에서도, 군사 독재의 횡포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오로지 대한민국과 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선배‧후배들을 대할 낯이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대통령 이명박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 어쩌다 대한민국의 육‧해‧공군 총사령관이 되어, 우리에게 물려준 잘못된 유산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 청산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길은 없지만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대한민국이 되어가는 꼴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띄우고 있을 인간 아닌 인간이 꼭 한 사람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정일입니다. 중풍으로 쓰러졌던 그 몸이지만 아마도 매일 그는 대한민국을 넘보며 춤을 추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분명히 일러둡니다. “어디 두고 보자”고. 두고 보자는 놈이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konas)
김동길(www.kimdonggill.com) 2011-09-11 13:55
우리 국민과 언론은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김성만
최근 주한미군 철수가능성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과 언론은 관심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다만 주한미군 기지(경북 칠곡군 ‘캠프 캐럴’ 등)의 고엽제 매몰에 대해서는 몇 개월째 자세히 보도되고 있다. 고엽제도 중요하지만 국가안보에서는 주한미군의 철수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가치, 철수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한미군의 규모는?
주둔 병력은 총 28,500명이다. 아프간/이라크를 제외하면 독일(7만 여명)과 일본(4만 여명) 주둔 다음으로 많다. 주요 보유 장비(2010국방백서, 2010.12기준)는 전투기 90여대, 공격헬기 20여대, 전차 50여대, 장갑차 110여대, ATACMS 40여기, 패트리어트 60여기다. 미2사단(동두천, 의정부 등)과 미7공군(오산, 군산)이 주력이다. 해군, 해병대와 특전사는 일부 참모요원만 와있다. 한국주둔 해군·해병대 전력은 없다.
주한미군은 규모에 비해 전투력이 탁월하다. 병력과 장비가 모두 우수하다. 장교들은 거의 100%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1년 이상 주둔하면서 극한의 전쟁 상황을 경험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최신형으로 개량된 M2A3 브래들리 장갑차, M1A2 SEP 에이브람스 전차와 AH-64D 아파치 롱보우를 한국에 배치했다. 공군기와 정찰기도 그렇다.
주한미군의 가치?
미국의 한국방위에 대한 가장 확실한 약속이자 징표(徵表)다. 실제 주한미군은 한국전쟁 이후 50여 년간 전쟁억제력 역할을 다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1954년 발효)에는 한국전 재발 시 미군의 자동개입조항이 없다. 그래서 북한이 남침공격 시 주한미군이 전투를 즉각 재개하기 위해 美2사단을 인계철선(Trip wire)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서울 북방의 北남침로상에 분산 배치해놓고 있다. 그리고 북한이 지상(DMZ)과 공중에서는 무력도발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주한미군 전력의 보완으로 여기서는 한국군이 오래 전부터 대북우세(對北優勢)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은?
가능성이 증대되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군사전문가는 한미연합군사령부가 해체(2015.12.1 전작권 전환)가 가장 큰 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브루스 벡톨 교수(美 해병참모대학)는 2009년 7월1일 한국해병대사령부 주최 국제심포지엄(7.2, 서울)에 앞서 배포한‘전작권 전환에 따른 한국 해병대의 도전과 과제’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전작권 전환은 한국군이 북한과의 대규모 전투를 성공적이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잘못된 인식’을 형성할 수 있다”며“이로 인해 대규모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한 美 의회와 여론의 지지가 줄고 최악의 경우 미군의 전면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재임 중(2008.6~2011.7) 여러 차례 “주한미군은 해군·공군 위주의 지원체제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력부대인 美2사단의 철수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이다.
그리고 미국의 국방비 삭감이 문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4월 향후 12년에 걸쳐 국방예산 4000억 달러 감축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2012년 국방 예산으로 5530억 달러(이라크/아프간 전쟁비용 1180억 달러 제외)를 요청했다. 국방비 감축이 전쟁비용 감소뿐 아니라 미군의 해외전략 변화로까지 이어져 주한미군 기지재편이나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등으로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토드 해리슨 전략예산평가센터(CSBA) 연구원은 이에 대해“국방비 감축은 미국의 국방전략 전반, 나아가 전 세계 주둔 미군의 규모와 주둔비용 문제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이 부담키로 한 美2사단 평택기지로의 이전 비용이 6조8000억 원이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론 폴(텍사스) 하원의원은 2011년 7월22일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철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이날 미국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집권하면 어떻게 재정적자를 감축할지를 묻는 질문에 “해외에서의 미군 작전부터 (감축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우리는 수천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면서“왜 우리가 한국과 일본에 군대를 두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 외에도 우리 정부의 요구로 미국은 주한미군의 전·평시 한반도방어 10대 필수임무기능을 2004년~2008년에 한국군에 모두 인계했다. 이에 따라 임무가 축소된 주한미군 약 1만 명이 2005년~2007년에 철수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주한미군에 대한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이 2006년 1월19일 워싱턴에서 韓美간 합의됨에 따라 주한미군은 한국과 협의 없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한미군의 추가철수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주둔미군이 철수한 자유월남은 北월맹에 의해 공산화되었고, 필리핀은 중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최근에 북한의 전술핵무기 개발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안보상황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주한미군의 전면철수를 방지하는 최선의 방안은 한미연합사 해체(전작권 전환) 계획을 폐기하는 길이다. 우리 국민이 이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 1천만 명이 2010년 5월에 한미연합사 해체반대 서명을 달성했다. 서명달성과 北천안함 폭침(2010.3.26)으로 인해 한미정상회담(2010.6.26)에서 한미연합사 해체시기를 2012년 4월에서 2015년 12월로 연기한 것이다. 이후 북한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2010.11.23)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미군사동맹 강화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연평도포격에 대한 사과 가능성도 거의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 정부는 한미연합사 해체계획 폐기를 서둘러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한미동맹을 중요시하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우리 국민도 이번 기회에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konas)
김성만(예비역 해군중장, 성우회/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전 해군작전사령관) 2011-09-11 14:12
적화통일로 사라질것이고 일본은 핵무장 하고 항공모함을 건조하여 방위선을 더욱 견고히 할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 일본이 항복하므로 대한민국은 독립하였고 그동안 미국이 세계최대 시장을 내주었기
때문에 가난했던 한국이 경제대국을 이루었는데도 고마워할줄 모르는 민족은 마땅히 망하는 길로 갈것이다. 2011-09-11 14:32
[머니투데이 양영권기자][한명숙 출마 여부 따라 달라지는 야권 단일 후보 시나리오]
2002년 10월 서울 안국동에 재활용품 전문매장 '아름다운 가게' 1호점이 들어섰다. 박원순 변호사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 두고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의 일환이었다.
박 변호사는 아름다운 가게의 총괄 상임이사를 맡고 공동대표에는 홍명희 금강장학회 이사장, 연극인 손숙 씨와 함께 시민운동 선배인 박성준 성공회대 비정부기구(NGO)대학원 겸임교수를 모셨다. 박 변호사와 박 교수는 2008년 2월 제2기 이사진이 구성될 때까지 아름다운가게를 함께 운영했다.
박 교수는 바로 민주당 내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이다.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사회 진영을 대표하는 서울시장 후보로 거의 확정적이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출마를 결심할 경우 아직 당내 경선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야권 단일화 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남편의 동업자와 만날 가능성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서울시장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주자 가운데 1위를 달리고 있다. 친노(노무현) 진영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강하게 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민주당내 중진 의원들까지 한 전 총리의 출마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다음달 초 이뤄지는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선고 공판 일정 등을 감안해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총리가 출마해 당 경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될 경우 박 변호사와의 단일화는 쉽게 풀릴 것으로 점쳐진다. 박 변호사는 '남편의 동업자'일뿐 아니라 한 전 총리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문재인 이사장의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하다. 한 전 총리와 박 변호사, 문 이사장은 지난 6일 모임을 갖고 야권 단일후보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반면 한 전 총리가 불출마할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당내 경선부터 기존에 출마선언을 한 천정배 최고위원, 신계륜 전 의원과, 한 전 총리의 불출마를 전제로 출마를 고려 중인 원혜영·박영선 의원 등의 대결로 훨씬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여기에 민주당 후보가 결정된 뒤에는 야권 단일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 룰을 마련하기 위한 협상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 야권 관계자는 "민주당 후보는 조직력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시민참여경선 방식을, 시민사회 진영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09-11 18:18
2007 대선, 「從金」 對 「대한민국」 구도로
金成昱
소위 汎여권의 친북성향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는 고건, 정운찬씨의 중도하차 이후 汎여권 大選주자로 떠오른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김근태, 한명숙씨 모두 김정일 독재에 대한 공조언동을 계속해온 인물들이라는 데 기인한다. 이로써 2007년 대통령 선거 구도는 左右, 즉 「從金(김정일 굴종)세력 對 대한민국 세력」으로 좁혀지고 있다.
김근태, 이적단체장에 『언제나 마음을 함께 할 것』
김근태 前열린당 의장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탄압한 악법 중의 악법』으로 비난하며 2001년 11월28일 「국보법폐지법률」 서명을 주도하는 등 국회 안팎에서 국보법폐지를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그는 △2003년 4월18일 金正日의 전위대 노릇을 해 온 한총련의 『합법화 및 수배자 해제』를 주장했고, △같은 해 10월6일 對南공작원으로 판시된 송두율에 대해 『그에 대한 공격은 구시대적 매카시즘』이라고 주장하는 한편, △2005년 1월7일 「金日成 수령영생」 등을 주장해 온 간첩출신 김남식에 대해 『원칙을 포기한 적 없는 지식인』으로 미화했고, △같은 해 6월17일 「金正日은 구국영웅」 등을 주장해 온 이적단체 범청학련 의장 윤기진에 대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언제나 마음을 함께 하겠다』고 격려했다.
월간조선이 2004년 3월 보도한 과거 정부의 「김근태 신원 및 배후사상관계」 파일에 따르면, △金 前의장의 큰형은 6·25당시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한 후 월북했고, △둘째 형 역시 월북 후 북한 고등중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셋째 형도 의용군으로 월북해 통일전선부 對南공작원으로 선발됐고, △숙부는 월북 후 북한 노동성 부국장을 역임했다.
정동영, 기계화사단 8개 만들 25조 對北송전 발표
정동영 前 통일부장관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선언(2월10일)을 한 이후인 2005년 7월12일 『북한이 核폐기에 합의하면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200만kw의 전력을 송전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200만Kw의 對北송전에는 최소 25조원이 드는데, 이는 최신예탱크 5600대나 최신예전투기(F-15)250대를 살 수 있고, 8개 기계화사단을 만들 수 있는 액수이다.
그는 2005년 8월11일, 23일, 25일 등 『북한의 평화적(?)核이용권을 마땅히 가져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미국의 생각이 다르다』며 북한의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비호해왔고,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4일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鄭 前장관은 △2005년 8월15일 북한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시킴으로써 유사시 북한군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해줬고, △같은 해 10월17일 강정구 파동 당시에는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강정구를 비호했고, △같은 해 12월 제주장관급회담에서는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단 채 북한 대표단을 『동지』라고 호칭했다.
그는 장관 재임 중 이적단체인 범민련, 한총련 인사들의 방북을 허용, 이들이 금강산 등지에서 북한과 反韓행사를 벌이는 것을 방관했다.
이해찬, 8·15에 태극기사용, 「대~한민국」도 금지
이해찬 前 총리는 2005년 8월15일 8·15남북공동행사를 앞두고 소위 「보수단체들의 시위계획 보고」를 받고 『(인공기 등을) 훼손·소각하는 행위를 정부가 관대하게 대할 때는 지났으니 단호하게 조치하라』고 경찰에 지시했다. 이로써 8월14일 서울 상암동 남북통일축구대회에서는 태극기사용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도 금지됐고, 태극기를 배포하던 시민단체 회원들은 좌익들에게 폭행당하고, 경찰에 억류돼는 봉변을 겪기도 했다.
李 前총리는 2004년 9월5일 원로들의 국가보안법폐지반대 시국선언이 발표되자 『쿠데타 선봉에 섰던 분들이 여러분 포함됐던데 그런 분이 폐지해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다. 국보법은 전형적인 악법이고 잘못된 법이므로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해 10월5일 20여 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 시청 앞에 모여 국가보안법사수 국민대회를 개최하자, 『허위사실 유포나 헌정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단호히 대처하라』고 지시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국민대회 실무자들이 대거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다.
한명숙, 조선로동당 지하당 통혁당 입당
한명숙 前 총리는 2004년 11월17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의 핵개발도 일리 있다』는 LA발언을 지지한 데 이어, 2005년 6월27일 국회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북한 나름대로 국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옹호하면서 『미국에게 對北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요청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녀는 『국가보안법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이끌고자 하는 양심세력을 무참히 잘라냈다(2004년 9월6일)』며 2004년 10월 국보법 폐지안을 공동 발의했고, 2006년 3월24일 총리 지명 후에도 『국보법 폐지 당론에 찬성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와 남편 박성준씨는 1968년, 중앙당(中央黨)인 북한 조선로동당의 남한 내 지하당(地下黨)인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에 각각 黨소조(小組)와 黨소조책(小組策)으로 입당, 각각 징역1년 집유 1년과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손학규, 수령독재와 『이데올로기 융합』
손학규 前지사는 최근 김정일 수령독재와의 『이데올로기 융합』 등을 내세우는 등 친북노선을 노골화하고 있다.
그는 4월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자신의 지지모임인 「선진평화포럼」을 출범시킨 자리에서 『이념, 지역, 남북이 융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삼융(三融)의 시대로 나가야 한다』 『理念대결의 시대는 갔다. 南北대결의 시대를 청산해야 한다』 『이데올로기의 융합은 이미 선진사회의 이념적 기초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미 2005년 9월29일 통일뉴스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당(黨)은 달리하지만 찬성했다』『6.15공동선언은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선을 긋는 커다란 역사적인 업적이었다』『과거 냉전체제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을 갖고는 새로운 6.15 이후의 상황에 적극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孫 前지사는 좌파운동권 출신으로서 대학재학 중 1년 넘게 수감됐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노동판, 철공소 등에서 좌파운동을 계속했었고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 박사학위를 받아왔다. 2011-09-11 18:29
한명숙 前 총리는 2004년 11월17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의 핵개발도 일리 있다』는 LA발언을 지지한 데 이어, 2005년 6월27일 국회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에 대해 『북한 나름대로 국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옹호하면서 『미국에게 對北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요청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그녀는 『국가보안법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역사를 바로 이끌고자 하는 양심세력을 무참히 잘라냈다(2004년 9월6일)』며 2004년 10월 국보법 폐지안을 공동 발의했고, 2006년 3월24일 총리 지명 후에도 『국보법 폐지 당론에 찬성하는 데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와 남편 박성준씨는 1968년, 중앙당(中央黨)인 북한 조선로동당의 남한 내 지하당(地下黨)인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에 각각 黨소조(小組)와 黨소조책(小組策)으로 입당, 각각 징역1년 집유 1년과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1-09-11 18:34
정동영 前 통일부장관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선언(2월10일)을 한 이후인 2005년 7월12일 『북한이 核폐기에 합의하면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200만kw의 전력을 송전방식으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200만Kw의 對北송전에는 최소 25조원이 드는데, 이는 최신예탱크 5600대나 최신예전투기(F-15)250대를 살 수 있고, 8개 기계화사단을 만들 수 있는 액수이다.
그는 2005년 8월11일, 23일, 25일 등 『북한의 평화적(?)核이용권을 마땅히 가져야 한다. 이 부분에서 한국과 미국의 생각이 다르다』며 북한의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비호해왔고,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4일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鄭 前장관은 △2005년 8월15일 북한선박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시킴으로써 유사시 북한군의 전략적 거점을 마련해줬고, △같은 해 10월17일 강정구 파동 당시에는 『국가보안법의 망령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강정구를 비호했고, △같은 해 12월 제주장관급회담에서는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단 채 북한 대표단을 『동지』라고 호칭했다.
그는 장관 재임 중 이적단체인 범민련, 한총련 인사들의 방북을 허용, 이들이 금강산 등지에서 북한과 反韓행사를 벌이는 것을 방관했다. 2011-09-11 18:39
'지하드는 미국이 아랍에 가한 폭력 비해 약소(弱小)'
'9`11...내가 만난 사람들은 통쾌하다는 반응'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의 국무총리 지명으로 그의 동지적(同志的) 반려자로 불려온 남편 박성준씨의 사상(思想)과 이념(理念)성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성준씨는 1940년 경남 통영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 자신의 妻 한명숙, 박경호, 김국주 등을 포섭한 혐의 등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朴씨는 1981년 출소 당시 해방 후 당시까지 가장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최장기수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출소 후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神學)을 공부한 박성준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맑스주의자”“평화주의자”“퀘이커”등으로 소개해왔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존 언론에 보도된 관련내용을 가감 없이 게재해본다.
“...朴 선생(박성준氏) 순서가 돌아오자 자신은 지나온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고 있다며 『기독교인, 맑시스트, 퀘이커, 불교에 막 눈을 뜬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그 살아온 내력으로 사람들과 소곤소곤한 만남을 갖고 싶어 마이크를 쓰는 모임, 인터뷰, 텔레비전 출연은 가급적 사양한다.(週刊기독교 2003년 11월 1509호 인터뷰기사 中)”
朴씨는 季刊 ‘새길이야기’2001년 겨울(3호) 인터뷰에서도 ‘출소 후 신학(神學)수업의 이유’에 대해 “맑시스트 크리스천으로서 자신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해보자.
“94년 처음으로 여권이 나온 후 3년 간 일본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크리스천을 찾아서’라는 글을 연재하면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참다운 크리스천을 만나고 다닌 것이 준비단계였던 것 같습니다. ‘맑시스트크리스천’으로서 저를 보완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했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처음에 일주일 코스로 펜들 힐 영성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朴씨는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수업을 받은 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戰*이라크戰*북한제재 등에 반대(反對)하는 소위 반전평화(反戰平和)운동을 벌여왔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전은 “군수산업의 이익을 도모하고, 석유이권과 중동패권을 노려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제물로 삼는 전쟁이 아닌 침략(侵掠)(2003년 3월25일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으로, 아프가니스탄전은 “최첨단 신무기를 대거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몰고 그 나라의 자연을 마구 짓밟고 완전초토화하는 것(2002년 3월21일 著‘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등)”으로, 91년 걸프전은 “수십만의 젊은 이라크 병사들이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사막에서 살육되고, 미국이 이라크 사회의 인프라 구조를 파괴해버렸고 생필품의 수입마저 막는 경제제재를 지금도 풀지 않아서 백만 이상의 이라크 어린아이들이 영양실조 등 병으로 죽어갔다(‘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등)”며 反美논리를 전개해왔다.
그는 특히 미국의 대북(對北)제재가 한반도에 전쟁을 부른다며 김정일 정권의 不法행위를 어떠한 형태로도 제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2002년 경 쓴‘연두빛 평화의 물결로 한반도를 감싸자’는 글을 일부 인용해보자.
“설마 설마 하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남북한 민중(民衆)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경각심을 드높여 예의 주시하자. 부시 대통령과 미국정부에게 화해와 평화를 향한 우리 겨레의 역사적 행보를 방해하지 말라고 단호히 경고하자...만에 하나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덮쳐온다면 우리는 휴전선 일대에 평화의 천막을 치고 평화를 호소하는 갖가지 이벤트를 벌인다. 평화음악회, 평화단식*농성 등 행사를 벌이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발산하자”
그는 같은 글에서“우리의 평화와 우리의 안전을 남의 손, 외세*강대국 미국에 맡겨놓고 안전을 보장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며 “미국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맞서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며 미국의 한반도 전쟁책동을 막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를 내 건 박성준씨의 반미(反美)주의는 인류보편의 범죄로 규정되고 있는 ‘테러리즘’에 대한 우호적(?) 판단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이슬람의 지하드[소위 ‘성전(聖戰)]는 “미국이 아랍세계에 가해온 폭력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통제된 폭력”이라며 심지어 9*11테러에 대해“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미국이 당해 싸다, 통쾌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편이었다(以上 ‘폭력의 골짜기를 넘어 평화의 너른 들녘으로’논문 中)”고 말했다.
같은 글에서 일부를 인용해보자.
“한반도는 위험을 안고 있는 불안한 지역입니다. 그 중심에 언제나 미국이 있지요. 우리가 이번의 사태(9*11사태)를 보면서 ‘오만한 미국의 콧대를 꺾었다!’‘미국도 당해봐야 한다’는 정서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미국이 무슨 짓을 했기에 테러리스트들이 그토록 처참한 보복을 생각해내게 되었는지, 그들의 사무친 한과 절망과 증오의 뿌리가 무엇인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게 합시다.”
박성준씨의 반미(反美)주의는 반전론(反戰論) 또는 평화론(平和論)의 외양을 띄고 있지만 테러행위나 김정일*후세인 등 독재자에 대한 비판은 찾기 어렵다.
김성욱기자 2011-09-12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