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자유게시판

生卽死한 곽노현, 死卽生한 강호동.

강길형

view : 1680

<칼럼>곽 ´선의의 긴급부조´ 변명으로 일관-강 ´내 불찰´ 승복
한사람은 구속되고 한사람은 여론 반전…누가 부활할지 명약관화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2011.09.14 12:01:4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싸이월드공감 프린트하기 데일리안을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기
◇ 곽노현 교육감(사진 왼쪽)과 방송인 강호동. ⓒ데일리안
이순신 장군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고자 하면죽고, 죽고자 하면 살리라)이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최근 곽노현 교육감과 연예인 강호동의 처신은 생즉사 사즉생의 의미가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곽 교육감은 억지로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죽어가고 있고 강호동은 장렬히 자신의 몸을 던짐으로써 다시 부활의 길을 가고 있다. 곽 교육감은 세상이 모두 비웃는데도 자기 책임을 아랫 실무자들에 미루며 끝까지 살려고 몸부림치지만 결국 구속되었다. 하지만 강호동은 법적으로 따지자면 아무런 하자가 없고 또 세무사에게 책임을 미룰 수 있음에도 자신이 모든 허물을 떠안고 잠정은퇴 발표를 했다.

곽 교육감은 누가 보더라도 단일화 댓가로 2억을 주었다. 관련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댓가성을 부인하고 “선의”의 긴급부조였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는 “후보직을 매수하려 한 적이 없다. 동서지간인 실무자들 사이의 약속 같지 않은 구두약속에 대해서는 10월말까지 전혀 몰랐다”며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또 2억을 현금으로 준 것에 대해서도 공개되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가 빚어질 것이기에 평생 처음, 조심스런 마음으로 남 몰래” 준 것이라고 강변한다. 마치 한번 거짓말을 하니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격이다.

그러나 영장전담판사의 생각은 달랐다. 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돈의 액수와 돈의 조성과 전달방식과 박교수 측이나 주변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증언을 종합하면 대가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곽노현이 계속 대가성을 부인하며 선의의 긴급부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인물과 말을 맞추며 증거인멸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이런 곽노현 사건과 비교해 볼 때 강호동 건은 정말 억울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먼저 강호동은 탈세를 한 것이 아니다. 탈세란 자신의 수입을 줄이기 위해 장부를 허위로 작성한다던지 아니면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등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다. 강호동이 이랬다면 당연히 검찰이 조사하고 기소 여부를 판단했을 것이다.

강호동의 문제는 본인 수입에 있어서 비용 산정 문제를 두고 세무사와 국세청 사이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강호동 같이 연 수십억 이상의 수입을 올리프리랜서는 세무사를 둘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수입을 정리해서 모두 자진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의 경우는 법인보다 비용 산정 문제가 복잡하다. 가령 법인은 저녁 회식하고 법인 카드로 계산하면 비용에 포함된다. 세금을 낼 때는 이런 비용을 제외한 순수입을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강호동같이 프리랜서의 경우는 이런 회식이 비용에 포함되는지 안되는지 세무사와 국세청 간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강호동 같은 고소득 프리랜서들은 돈을 쓰는 순간 마다 이런 문제에 부딪친다. 아울러 세무사 입장에서는 가능한 비용을 많이 잡아서 세금을 적게 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 역할이다.

이건 비단 세무사만의 역할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렇게 한다. 가령 월급쟁이들도 연말정산할 때 세금 돌려받을 액수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비용을 합산해 넣는다. 애매한 부분은 가능한 비용으로 처리한다. 이 중에 인정되는 것도 있고 인정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럼 연말에 세금을 좀 적게 낼수도 있고 좀 더 많이 낼수도 있다. 세무행정이 이런 것이다.

더군다나 강호동은 국세청의 추징금 부과에 대해 곽교육감처럼 따지지도 않았다. 바로 추가 산정된 세금을 “충실히 내겠다” 고 답했다. 여론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곽 교육감도 여론의 압력을 받는 것은 동일하다.

결국 강호동은 "세금 문제는 그 이유를 막론하고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내 불찰이고 내 잘못"이라며, "자숙의 시간 동안 세금 문제뿐 아니라 그동안 놓치고 살아온 것은 없는지, 초심을 잃고 인기에 취해 오만해진 것은 아닌지 찬찬히 저 자신을 돌아보겠다"며 전격적인 잠정은퇴 선언을 했다. 곽교육감이 지저분하게 사는 길을 택했다면 강호동은 깔끔한 죽음의 길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강호동은 죽지 않았다. 사퇴 기자회견이 있자마자 여론이 반전되고 있다. 강호동은 조금 시간이 지나면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곽노현은 어떨까? 그도 재기할 수 있을까? 구속된 곽교육감은 이순신 장군이 말한 생즉사, 사즉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글/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 강길형 헌법학자인 곽노현은 평생 쌓아온 지식을 가지고 요리조리 살아볼려고 하나 살길이 멀어보이고,
    스포츠맨인 강호동은 보스답게 모든것은 내책임이다 하고 은퇴하고보니 살길이 보이는듯하다.
    2011-09-14 18:36 댓글삭제
  • 강길형 국세청 "강호동, 고발대상 아니다"
    스타뉴스 | 기사전송 2011/09/14 15:19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문완식 기자]

    강호동이 지난 9일 오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잠정 은퇴를 밝힌 뒤 눈물 짓고 있다. ⓒ사진=임성균 기자


    방송인 강호동의 세금 논란 관련 일부에서 '탈세'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애초 국세청의 고발 대상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세청측에 따르면 강호동은 이번 세무 조사 대상인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추징 세액이 매년 5억 미만이다. 이에따라 추징금이 5억원 이상자에 한해 검찰 고발 등이 이뤄진다. 따라서 검찰 고발 대상 자체가 아니다.

    즉, 한 시민이 강호동을 탈세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하지만, 애초 고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는 힘들다.

    앞서 국세청은 강호동에 대해 5개월간의 세무조사를 실시, 소득 신고 내역 중 세금이 과소 납부됐다며 수억원의 추징금을 부과해 파장이 일었다.

    강호동은 이에 지난 5일 소속사를 통해 공식 사과하고 추징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겠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 절차에 따라 성실히 국민의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강호동이 '탈세'를 했다며 방송 퇴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강호동은 지난 9일 오후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한편 강호동의 잠정적 은퇴 선언 직후 네티즌들은 은퇴반대 성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는 '강호동 은퇴 반대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1만 명을 목표로 진행 중인 이 서명 운동은 14일 오전 9000명에 육박했다.

    [ 사실앞에 겸손한 정통 뉴스통신 뉴스1 ]
    2011-09-14 17:05 댓글삭제
  • 허태기 1996년 9월 18일 강릉 앞바다의 잠수함 출현으로 시작된 북한 무장공비 소탕작전은 장장 49일간 전개됐다. 1968년 울진 무장공비 소탕작전의 58일에 이어 두 번째로 긴 기록을 남긴 작전이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사건 때는 9일, 1978년 충남 광천의 3인조 무장공비 사건 때는 38일이었다. 작전에서 군경은 26명의 무장공비 중 사살 13명, 생포 1명, 사살에 의한 집단 자살 11명 등 25명을 소탕했고, 1명은 월북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도 아군 11명과 경찰·예비군 각 1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되는 인명피해를 당했다.

    당시 침투한 무장공비 중 생포돼 유일한 생존자로 기록된 이광수(42)씨.

    ▲ 잠수함 침투사건 1년 뒤 인터뷰 당시의 이광수씨.5월 14일 오전 진해 충무공 리더십센터에서 어렵사리 이광수씨를 만났다. ‘무장공비’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우악스런 인상을 예상했는데 직접 만나 보니 전혀 달랐다. 170㎝ 가량의 작달막한 키에 탄탄한 체격, 곱슬머리에 까무잡잡한 얼굴을 한 동네 아저씨 인상의 40대였다. 악수를 건네는 그의 손은 크고 억셌다. 동료 부대원들과 체력 검정 활동을 마친 뒤 바로 샤워를 하고 와 붉게 상기된 얼굴이었다. “저를 만나러 오셨다고요. 어렵다고 말씀드렸는데….” 앞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가족들의 안부가 걱정된다”며 한사코 고사했었다. 지난 5월 11일 부대를 찾았을 때 그는 육군 모 부대에 정훈 강연을 나가고 자리에 없었다. 3박4일의 출장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역시 “어렵다. 미안하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계속했다.

    ▲ 침투 무장공비들이 남긴 유류품들.침투 당시 잠수함 조타수였던 이씨는 동해안 침투사건 이후 전향 의사와 함께 해군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도주하다 산을 넘으면서 강릉시의 모습을 봤다. 번화하고 자동차도 많은 모습은 북에서 듣던 것과는 달랐다. 체포된 뒤에는 서울 남산과 백화점 등을 구경했다. 서울 어느 가정집을 방문했는데 생활 수준이 무척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한의 생활상을 두루 보고 난 뒤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박재규 총장의 권유로 경남대에 입학한 것이 1999년 3월이었다. 당시 학교 측은 북한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씨의 학력을 감안, 3학년 편입을 권유했으나 이씨는 남한 사회의 젊은이들과 캠퍼스 생활을 더 체험하고 싶다며 1학년으로 입학했다고 한다. 낮에는 교관으로, 밤에는 학생으로 주경야독 끝에 2003년 2월 법행정학부에서 학사모를 썼다. 곧바로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2005년 8월에는 안보정책학을 전공,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지금도 해군 정신교육 교관으로 북한군의 편제와 실상 등을 가르치고 있다.
    남한에서의 학교생활에 대해 그는 만족스러워 했다. 그는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외로운 마음에 여러 차례 방황하기도 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됐다”면서 “요즘은 탈북자들을 만나면 학교에 가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부담스러워했다. 그는 1999년에 임모씨와 만나 결혼식을 올리고 두 딸을 두고 있는 상태. “나는 괜찮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좀 그렇잖습니까….” 이씨는 난감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두 딸이 자꾸 마음에 걸리는 표정이다.

    앞서 그의 강연록 일부를 입수했다. 강연록에는 북한의 경제난, 햇볕정책, 전향에 대한 생각, 북한의 남침 가능성, 통일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등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햇볕정책 이후 본격적으로 보내지는 구호물자들은 어떻게 사용되냐는 질문에, 그는 “현재 북한으로 수송되는 구호품이나 식량은 북측의 요구로 인해 해상으로 운반되고 있다. 육로로 수송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에 빼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이들 물자는 전쟁 물자로 우선 비축된다”고 했다.

    탈북자 가운데 고위급 간부가 눈에 띄게 적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만의 카리스마가 없습니다. 김정일은 아랫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평양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차종이 벤츠라는 것, 세계 주류와 담배 수입량에서 북한이 상위에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고위급 간부라는 이들의 호화로운 생활은 우리나라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들이 이런 생활을 포기하고 남한으로 넘어올 이유가 당장 있겠습니까.” 그는 “김일성은 본인의 우상화·신격화로 독재체제를 굳힐 수 있었지만 김정일은 달랐다”면서 “김정일은 피비린내 나는 정치 싸움 끝에 1인자가 됐고, 오직 군사적 억압에 의해 통치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전향 이후 다른 간첩을 만난 적이 있는가 같은 다소 민감한 질문에는 “말할 수 없다”면서 “현재 일어나는 반미 시위나 각종 데모 현장의 일선에서 활동 중인 이들은 대개 수상한 인물이다. 각 사회단체나 정치권에는 공작원 또는 이들에게 포섭된 인물이 상당수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이들의 활동은 성공적”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밖에 나가서 우리의 적은 누구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미국이나 일본이라고 말한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전향한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전향한 이들 중 100이면 99는 북한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실상을 알고 난 이후에는 김정일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서라도 북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이다.

    그는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실제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날 체력 검정도 사실 대상자는 아니었지만, 참석해 땀이 흠뻑 날 때까지 뛰었다고 한다. 그는 술도 많이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향은 신의주. 북에 남겨둔 가족들 생각과 이곳에서 어렵사리 꾸린 가족의 신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두주불사를 부르는 것 아닌가 주변 사람들은 걱정과 안타까움을 함께 전했다.

    그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김정일이 죽는 순간이 북한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김정일의 서열 아래로는 서로 간의 견제가 너무 심해서 누구 하나 위로 올라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김정일 사후에는 정쟁으로 자멸할 공산이 큽니다. 김정일 생전에 그의 주도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근본이 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011-09-14 21:53 댓글삭제
  • 허태기 착실한 불자인 강호동은 그래도 양심과 자존심이 있지만.. 노현은 글세.. 노현은 아마도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말재간을 지닌 막강한 변호사를 고용하고 좌익판사만 만나면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날 것이 뻔하지만.. 이미 드러난 그의 비리를 국민까지 기만하지는 못할 것이다. 2011-09-15 11:35 댓글삭제

자동입력방지 스팸방지를 위해 위쪽에 보이는 보안코드를 입력해주세요.

먼저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주세요.

창닫기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