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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박원순이 박정희에게 배워야할 점은 !,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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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의 미래뉴스>미래학 석학들과 교류 경제개발계획 등 완성
미래기술예측 모르면 대통령 못돼 10~20년후의 비전을 제시해야
박영숙 유엔미래포럼대표 (2011.09.17 10:03:58)
      
요즘 새로 부상하는 안철수나 서울시장으로 부상하는 박원순, 그리고 대통령의 대망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은 미래학 또는 미래기술예측을 모르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오는 24일 지식경제부의 '융합기술 국제컨퍼런스'에 기조연설을 하러 방한하는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Millennium Project) 회장이 늘 강조하는 말이다. 글로벌 미래예측 싱크탱크인 유엔미래포럼의 창시자는 1970년대 최대 줏가를 올렸고 시나리오기법을 만든 허만 칸 박사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과 허먼 칸 미래석학 사이엔 비사가 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미국의 미래석학 허만 칸 등 미래학자들의 조언이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외국경험도 없고 세계화 글로벌화가 시작조차 않은 시점에 이미 외국의 미래석학을 자주 청와대로 불러 조언을 청하고 그들의 미래기술예측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행동하였다는 사실이다.

유엔미래포럼의 창시자인 세계적인 석학 허먼 칸 박사는 사회학자며 미래학 최고석학(1922~1983)으로 1947~1961년 랜드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 미 국방성 산하 미래연구기관) 연구원, 1961년 허드슨 연구소를 차려 회장을 맡는다. 그때부터 그의 비밀스런 한국방문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말 제롬 글렌 유엔미래포럼 회장이 당시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방한 서류 준비와 지원을 한 것을 최근 고백하였다.

박정희의 업적 중 큰 정책은 1970년 포항제철 착공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1971년 2월 9일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발표 및 그린벨트 지정, 1972년 10월 25일 정부 새마을운동계획 발표 등 수도 없이 많다. 박정희대통령이 허먼 칸을 처음만났을 때 그는 배고픈 백성에게 배불리 먹일수있는 쌀개량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허만 칸은 한국의 노동력이 금과 같아 이들에게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케하여 수출을 하여 돈을 벌어 거의 값이 나가지 않는 쌀을 사서 먹이는 것이 한 방법이라고 제시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환호하며 수출대국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고비 고비마다 허먼 칸이라는 미국의 미래석학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사가 사라질 뻔 하다가 최근 칸이 쓴 책자 <1979년이후의 세계경제>(World Economic Development 1979 and Beyond)를 찾아낸 것이다.

여기에 보면, 허만 칸이 미래성장동력을 예측해 준 것이 한국 경제개발계획의 산업선택의 주된 역할이었고, 특히 전태일 서울평화시장 노동운동 분신사태 직후에 방한한 허먼은 미래사회는 노동자들이 권익을 주장하고 똑똑한 개개인이 주권을 가지는 사회가 되지만, 한국은 농촌인구가 많아 농촌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고, 노동착취라는 말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운동을 ”그린 프로젝트“즉 환경운동이라고 하여 농촌 노동력을 우선 한가하게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 미래학 분야 석학인 허먼 칸 박사를 예방을 받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그래서 도랑치고 가재잡고 저탄소 에너지절약운동 환경운동을 벌이는 동시에 짚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흙집을 개량집으로 바꾸고 아낙네들이 물 길러가서 2시간 허비하던 시간을 부엌에 펌프를 설치 시간절약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하여 한가해진 농촌 노동력을 서서히 교육시켜 도시노동자로 변신시켰다. 이 '그린 프로젝트'는 나중에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1972년 10월 25일에 박정희에 의해 발표된다.

허먼 칸은 이 책에서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은 미국인들에 의해 외국 홍보용으로 우선 계획되었다. 한국 정부가 1962년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세계은행 등 원조금, 대외차관을 결정하는 미국인 자문위원들에게 우선 호감을 사기위해 결정되었다. 세계은행 등 외국투자전문가들이 개발 국가에 차관이나 금융지원을 하려면 자신의 정부에 한국개발청사진을 제시, 미래에 차관회수가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했다. 경제개발계획은 또 한국정부를 강하게 보여주고, 정권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국민들에게 몇 년 후 경제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비전을 제시, 국민지지 획득용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다보니, 계획이나 약속이 실현되고 그 성과에 정부 자체도 놀랄 만큼 초과 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국민들에게는 단순히 살기가 더 좋아진다는 말보다, 계획표나 수치를 보여주어 정부의 목표가 생기고, 목표달성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를 하여 목적초과달성에 국민통합까지 가능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허먼 칸이 한 조언의 예로, “한국 등 개발도상국은 정권유지를 위해서도 미래비전을 보여주고, 국민들에게 목표를 만들어주어, 그 목적이 달성되면 잘 산다는 미래비전, 미래계획(Images of Future)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 즉 5개년 개발계획은 아주 중요하다” 고 말했다.

또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1962~1966) 때는 한국이 ①자원도 없고 가난한 한국에서 경제발전계획이 쌀 생산 증가, 농업증진에 주력했지만 ②1964년에 계획 전면 수정, 수출주도 경제로 섬유수출 시작, 투자는 산업투자로 선회하였고, ③경제개발5개년 첫 번째 목표수정 가능한 것은, 유연한 경제 즉 flexibility를 강조하여 필요시 과감히 수정, 농산물에서 공산품으로 전환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분석하였다.

요약하면, 농업 생산력을 확대로 소득 증대, 전력·석탄의 에너지원을 확충, 유휴자원의 활용, 고용의 증대와 국토의 보전·개발, 수출을 증대하여 국제수지를 균형화, 기술예측을 통해 부상기술을 미리 파악하여 국가를 재건한 점이 장점이라고 분석하였다. 특히 제조업에서 수입대체산업과 수출산업 확충, 석유정제·비료·화학섬유·전기기계, 전력·수송·항만·창고의 확충을 조언하였다고 했다.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2) 말기에 ①수출위주 경제로 변환, 1차 계획에서 이미 2배로 초과달성에 고무. 미래학자 조언 따라 그 다음 사회 인프라 깔기, 도로, 철로, 항만, 통신시설 시설에 투자할 것을 조언하였고, ②인플레 등을 막기 위해 국영금융기관이 나서고, 20% 화폐평가절하 등을 과감히 밀고 가는 힘이 있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였고, ③국민들의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 즉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민통합이 가능한 문화(good culture), 개발을 선호하는 강한 국민의지, 대통령의 리더십(독재 또는 정치적 결정 혹은 특혜를 준다는 반대에 신경 쓸 필요 없음)은 역사가 판단한다고 조언하였다. 한국의 자유신경제학자 등장이 박정희를 지원하므로 박정희 정권은 성공할 것이라고 해외 만방에 강의를 하면서 천명하기도 하였다.

허먼 칸은 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7)을 세울 때는 ①노동인권 이슈 시작으로 도시 산업개발에서 새마을운동으로 전환, 농촌개발로 선회하라고 조언하였고, ②미래산업 예측 조언에 따라 중공업, 화학공업 투자를 시작하라고 조언하였고, ③정부가 은행 금융을 국영화시켜 조절 가능한 투자자본 보유, 중공업드라이브 정책이 중요하다고 조언하였다.

허먼 칸은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7~1982) 때 가장 많이 방한하였는데 이 때는 ①산업 중점이 전자, 기계, 조선 등으로 옮겨간 이유는 미래석학의 자문으로 외국자본, 차관 투여 없이 할 수 있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라고 조언하였고, ②한국은 노동단가가 높아지고 제조업이 동남아로 이전 시 미래전략은 인적자원개발(human)이 산업(business)보다 훨씬 중요한 시기를 맞으므로 교육에 집중투자를 조언. 특히 과학기술발전의 급속한 변화가 오므로 기술에 집중 투자할 것을 건의하였다.

박정희는 70년대 후반에 '80년대 고도성장을 위한 전략', '2000년대의 국토구상'이라는 미래예측 구상을 하여 정책을 수립하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사회면에서 '보릿고개'로 표현되는 기아선상에서 정신면에서는 패잔병과 같은 패배감과 절망감이 팽배하였다. 1964년에 우리나라는 천신만고 끝에 수출 1억불을 달성한 이래 매년 40%의 성장률을 유지하여 1970년도에는 10억 달러의 수출 성공은“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박정희의 지도력이었고 특히 70년대의 국가최고정책인 중화학공업화 정책, 대망의 수출100억불, 1인당 GNP 1,000불 달성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미래학자의 조언이 있었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올 후보는 반드시 급변하는 사회에서 미래기술예측을 통해, 10~20년후에 부상할 융합기술들이 무엇인지 파악을 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미래비전 작업을 하는 사람만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글/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

  • 강길형 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67~1972) 말기에 ①수출위주 경제로 변환, 1차 계획에서 이미 2배로 초과달성에 고무. 미래학자 조언 따라 그 다음 사회 인프라 깔기, 도로, 철로, 항만, 통신시설 시설에 투자할 것을 조언하였고, ②인플레 등을 막기 위해 국영금융기관이 나서고, 20% 화폐평가절하 등을 과감히 밀고 가는 힘이 있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하였고, ③국민들의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 즉 허리띠를 졸라매는 국민통합이 가능한 문화(good culture), 개발을 선호하는 강한 국민의지, 대통령의 리더십(독재 또는 정치적 결정 혹은 특혜를 준다는 반대에 신경 쓸 필요 없음)은 역사가 판단한다고 조언하였다. 한국의 자유신경제학자 등장이 박정희를 지원하므로 박정희 정권은 성공할 것이라고 해외 만방에 강의를 하면서 천명하기도 하였다. 2011-09-17 12:21 댓글삭제
  • 강길형 1970년대 박정희의 중요정책.
    -포항제철 착공및 중화학공업 정책추진
    -경부고속도로 착공
    -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발표
    -새마을운동 발표
    -수출대국 만들기 결심
    -80년대 고도성장 전략구상 발표.
    2011-09-17 22:14 댓글삭제
  • 강길형 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1962~1966) 때는 한국이 ①자원도 없고 가난한 한국에서 경제발전계획이 쌀 생산 증가, 농업증진에 주력했지만 ②1964년에 계획 전면 수정, 수출주도 경제로 섬유수출 시작, 투자는 산업투자로 선회하였고, ③경제개발5개년 첫 번째 목표수정 가능한 것은, 유연한 경제 즉 flexibility를 강조하여 필요시 과감히 수정, 농산물에서 공산품으로 전환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분석하였다. 2011-09-17 12:20 댓글삭제
  • 강길형 박정희는 70년대 후반에 '80년대 고도성장을 위한 전략', '2000년대의 국토구상'이라는 미래예측 구상을 하여 정책을 수립하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사회면에서 '보릿고개'로 표현되는 기아선상에서 정신면에서는 패잔병과 같은 패배감과 절망감이 팽배하였다. 1964년에 우리나라는 천신만고 끝에 수출 1억불을 달성한 이래 매년 40%의 성장률을 유지하여 1970년도에는 10억 달러의 수출 성공은“하면 된다,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박정희의 지도력이었고 특히 70년대의 국가최고정책인 중화학공업화 정책, 대망의 수출100억불, 1인당 GNP 1,000불 달성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데 미래학자의 조언이 있었다. 2011-09-17 12:22 댓글삭제
  • 강길형 허먼 칸은 4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7~1982) 때 가장 많이 방한하였는데 이 때는 ①산업 중점이 전자, 기계, 조선 등으로 옮겨간 이유는 미래석학의 자문으로 외국자본, 차관 투여 없이 할 수 있는 산업이었기 때문이라고 조언하였고, ②한국은 노동단가가 높아지고 제조업이 동남아로 이전 시 미래전략은 인적자원개발(human)이 산업(business)보다 훨씬 중요한 시기를 맞으므로 교육에 집중투자를 조언. 특히 과학기술발전의 급속한 변화가 오므로 기술에 집중 투자할 것을 건의하였다. 2011-09-17 12:21 댓글삭제
  • 강길형 허먼 칸은 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1972~1977)을 세울 때는 ①노동인권 이슈 시작으로 도시 산업개발에서 새마을운동으로 전환, 농촌개발로 선회하라고 조언하였고, ②미래산업 예측 조언에 따라 중공업, 화학공업 투자를 시작하라고 조언하였고, ③정부가 은행 금융을 국영화시켜 조절 가능한 투자자본 보유, 중공업드라이브 정책이 중요하다고 조언하였다. 2011-09-17 12:21 댓글삭제
  • 허태기 5.16혁명당시에는 참으로 살기가 힘든 세상이었지요. 밥만 먹여주면 아무런 보수도 없이 궂은 일을 마다않는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의 국민의 최대인권과제는 하루 세끼 굶지 않고 먹고 사는 일이었기도 했지요. 변변한 공장, 제대로 된 산업시설 하나 없는 무주공산에서 경제를 일궈내어 5천년 가난을 벗게 하고 오늘날 그 흔한 자가용에 외국을 마실 나들듯이 하게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박통의 경제개발 덕분이지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어려웠던 시절은 금방 잊어버리지요. 민족역사상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을 들라면 세종대왕과 박정희를 꼽을 수 있겠지요. 오늘날 전교조의 의식교육으로 나라가 온통 좌익으로 기운 마당에도 여론조사를 하면 일부 좌익극렬분자를 제외하고 여전히 박통은 가장 바람직한 대통령으로 항상 부동의1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2011-09-17 13:11 댓글삭제
  • 강길형 아름다운 가게로 포장한 구멍가게 출신 극좌파 머리에서 국가개조 Grand Master Plan이
    나올수 있을까 ?, 혹세무민 하지말고 구멍가게 계속 운영 하여 각종시위 자금 파이프라인
    역활 이나 하심이 좋을듯 하네요,
    2011-09-17 22:39 댓글삭제
  • 강길형 한때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신드롬'의 배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멘토로 알려졌던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전직 대통령들을 평가하면서 차기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17일 서울 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선정치아카데미’에 강연자로 나선 윤 전 장관은 “2013년 출범하는 새로운 국가지도자가 안고 있는 과제는 자유민주주의, 사회경제적 평등, 민주화 수호의 3가지 과제가 부딪힐 때 아주 균형 있게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며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한국적 통치술을 가진 지도자가 나와야된다”고 밝혔다.

    윤 전 장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건장한 사람이 병원 가서 검사해보니 심각한 결과가 나온 것처럼 지금 대한민국도 MRI를 찍어보면 성한 곳이 없을 것”이라며 “역대 정권이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이렇게 곪아터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근래 몇 년 사이에 만난 30~40대의 스트레스는 분노 수준까지 왔으며 히팅 포인트(hitting point)만 있으면 금방 폭발할 정도”라며 “국가가 안고 있는 이런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전 장관은 또한 “지금 언론에 나오는 대통령 후보 중에 이런 커다란 과제를 해결할만한 자질과 경험,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느냐”고 질문한 뒤 “요즘 대안이라는 말이 무수히 나오는데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지도자가 떨어지길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모두의 공동체인 만큼 그런 인물이 없는지 적극적으로 쳐다보는 것도 필요하다”며 “등잔 밑이 어두울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한국적 통치술의 자질에 대해 윤 전 장관은 ‘대통령직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가장 먼저 꼽았다.

    그는 “사회 모든 부문에 리더십이 있지만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는 그런 모든 것을 포함하고 존재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리더십은 다른 리더십과는 완전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에 대한 사유 의식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폐단이 많았다”면서 “지금 바람직한 대통령 리더십은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이 의사결정하는 과정을 책임지는 관리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관리자’라는 인식을 스스로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

    두 번째 자질로 그는 “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했는데 역대 대통령들이 과연 민주주의와 공화국을 철저하게 추구했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며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사람’을 꼽았다.

    윤 전 장관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나라 민주화의 화신이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후 국가를 운영하면서 권위주의적으로 변했다”며 “노무현 정권의 경우 권위주의를 타파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민주적인 권위 자체가 없어져서 국정운영이 힘들었고 결국 국민들이 응징투표를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서도 “민주주의라는 것은 정치과정,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되는데 생산성과 효율성을 우선 가치에 두는 CEO의 눈에는 시간 자원의 낭비로 보일 수 있다”면서 “민주주의 과정을 무시하거나 생략했기 때문에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다. 오히려 비효율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자질로 채찍과 당근을 이용한 ‘북한 관리 능력’을 들었다.

    윤 전 장관은 “과거 햇볕정책은 당근만 사용했고, 최근에는 채찍만 사용했는데 둘 다 실패했다”면서 “결국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는 협상의 일반원칙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통일의 마지막 과정에서는 북한 주민의 마음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인데 그들이 볼 때 한국사회가 살만한 사회라고 동경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 통일한국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핵심적인 과제이며, 내년에 등장하는 국가최고지도자가 이런 과제를 해낼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데일리안 = 조성완 기자]
    2011-09-18 04:55 댓글삭제
  • 강길형 식지 않는 '안철수 열풍'…2030 젊은층 열광 이유는?, 뉴시스 | 기사전송 2011/09/18 06:06


    【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한 번 불어닥친 '안철수 열풍'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추석 연휴 가족·친지들과의 대화에서도 '안철수'는
    당연히 최고의 화제였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의 뜻을 접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이제 본업인 학교로 돌아가 일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를 향한 시민들의 열기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것도 아닌 안 원장이 등장과 동시에 '박근혜 대세론'을 뒤흔들 만큼 정치권을 비롯한 우리사회, 특히 젊은 세대들을 열광케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했지만 일찌감치 안정적인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험난한 청년 창업에 도전, 컴퓨터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안철수 연구소'를 설립해 성공신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안 원장은 젊은 시절을 몸바쳐 개발한 컴퓨터 백신을 시민들에게는 무료로 공급하고 회사가 일정궤도에 오르자 CEO 자리를 과감히 내놓는 등 돈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20~30대 젊은 세대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롤 모델'의 모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안 원장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나 멘토를 묻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대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안풍(安風)' 역시 20~30대 젊은층을 주축으로 확대됐다는 분석이 많다. 전문가들은 안 원장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와 스토리가 젊은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불러 일으킨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청년유니온 조성주 정책기획팀장은 "안 원장은 청년들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항상 '멘토'를 자처하고 나섰다"며 "수평적 소통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에 청년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안 원장은 그동안 청춘콘서트 등 공식석상의 자리를 통해 청년 실업이나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한 발언을 공공연히 해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윤희웅 조사분석실장도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존경할 만 한 안 원장이 20·30 세대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나가면서 젊은층이 감동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업인 출신임에도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데에 젊은층이 희망을 갖게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원장의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혼탁한 정치판에 가면 (안 원장이) 물들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젊은층도 있다"며 "미디어의 관심이 떨어지더라도 안 원장은 잠재적인 (대선) 후보군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젊은층에서 안철수 신드롬이 일고 대선 주자로까지 부각되는 것은 멘토로 삼고 싶은 젊은층들의 동경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젊은층에 비친 안 원장은 대중문화에서의 아이돌 이미지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성 세대와 현 정치에 염증이 난 젊은 세대들에게 안 원장은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매력적인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 교수는 "우리 사회가 워낙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많고 새로운 인물을 갈구하다 보니 안 원장이 새롭게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장우영 교수도 "기성질서에 대한 실망이 크기 때문에 안철수라는 대항마가 떠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 교수는 "그러나 이 열풍을 계속 이어 나가려면 일정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중적 인기와 열망이라는 무형재만 있어서는 안되고 정치권 밖에서 불고 있는 열풍을 내부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제도적 기반과 토대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09-18 08:31 댓글삭제
  • 강길형 [김진의 시시각각] 안철수의 거품 바이러스,
    [중앙일보] 입력 2011.09.19 00:19 / 수정 2011.09.19 06:41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지금의 정치세력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안철수 교수에게 맹목적인 예찬을 헌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동체가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할 때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안 교수는 컴퓨터 과학·경영에서는 선구자다. 그러나 역사를 평가하고 공동체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고민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다. 고뇌와 지식·경험의 축적 없이 섣불리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위험한 장정(長征)에 나설 땐 무엇보다 자신의 행장(行裝)을 점검하고 논리와 증거로 무장해야 한다.

     안 교수는 지난 4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직후인 2008년 5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이다. 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브레인 29명이 국가 미래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2009년 11월부터 안 교수는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대통령의 가치·세계관에 동조하지 않으면 동참하기 어려운 곳이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안 교수는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대통령과 정권이 변했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안 교수는 일단 ‘대통령 직속’에서 나온 후 칼을 던졌어야 한다.

     안 교수는 인터뷰에서 “나는 1970년대를 경험했는데 (집권세력이 그 시절로) 거꾸로 갈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70년대를 ‘돌아가서는 안 될 음지의 역사’ 같은 뉘앙스로 말한 것이다. 안 교수는 2005년부터 6년간 포스코(과거 포항제철) 사외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현재는 포스코가 만든 포스텍의 이사를 맡고 있다. 포항제철은 70년대 개발의 시대가 이룩한 대표적인 성취다. 그리고 70~80년대 권위주의 독재시절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해 정보산업의 기반을 닦아놓았다. 그런 길이 없었더라면 ‘안철수연구소’는 제대로 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안 교수는 70년대가 모아놓은 벌꿀로 보양하면서 70년대라는 벌집에 침을 뱉고 있다.

     그는 ‘표현의 자유’ 같은 부분이 거꾸로 간다며 이명박 정권을 독재인 양 묘사했다. 2008년 촛불 난동 때 초등학생들이 광장에서 대통령에게 XX라는 욕을 썼다. 9개월 전 제1야당 최고위원은 거리에서 “정권을 확 죽여버려야 한다”고 했다. 어느 민주당 의원은 선거유세에서 대통령 부인을 사기꾼이라고 매도했다. 이런 세상인데 안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제약 받고 있다고 한다.

     안 교수는 인터뷰에서 오세훈 전 시장과 서울시를 심하게 공격했다. “완전히 하드웨어에만 매몰돼서 남에게 보이는 사업만 해왔다. 교통 막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관심도 없다.” 그러면서 그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시스템을 주장했다.

     올해 서울시 예산 20조 2000억원에서 교통 분야는 2조7000억원으로 13.4%나 된다. 소프트웨어 교통시스템인 토피스(TOPIS)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노력으로 대중교통 이용률은 계속 늘고 있다. 2000년부터 천연가스버스 8700여 대가 보급돼 서울의 미세먼지는 4분의 1이나 줄었다. 공기가 맑아진 것이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예산인 복지 분야는 4조3000억원으로 21%가 넘는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오세훈을 ‘하드웨어에만 매몰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한국 최고의 과학도다. 그런데 그는 근거 없이 감정만으로 구름 위에서 마구 돌을 던져댔다. 이 대통령은 하산(下山)하는 권력이요 오세훈은 떠나버린 권력이다. 안철수는 그런 흔들리는 권력에는 매섭다. 그런데 진보·좌파의 더욱 심각한 잘못에는 침묵한다. 천안함·광우병·대운하·곽노현 같은 미망(迷妄)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인격에 바이러스가 집중적으로 침투할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빠져 면역력이 저하되면 더욱 그러하다. 안 교수는 거품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2011-09-19 10:27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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