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의 원불교 미주 총부를 찾은 미국인 원불교도 루산 프라이 피츠패트릭(52)이 원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일원상(一圓相) 조각 안에서 좌선을 하고 있다. 그 뒤로 원다르마센터 건물이 보인다.
“시대가 지나면 우리 법을 가져가기 위해서 코 큰 놈들이 소쿠리(비행기)를 타고 와서 너희를 싣고 간다.”
1916년 원불교를 열었던 소태산(少太山) 대종사(본명 박중빈·1891~1943)의 말이다. 제3대 종법사(원불교 최고지도자)인 대산(大山) 김대거(1914~98) 종사는 이미 70년대에 “정치에는 유엔이 있는데 종교에는 유엔이 없다. 세계 종교를 하나로 통합한 유엔(종교연합)이 필요하다”며 원불교유엔종교사무소를 뉴욕에 설치했다. 당시만 해도 원불교 교무들은 대산 종사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며 ‘대포’라고 불렀다.
원불교가 생긴 지 96년이 됐다. 4년 후(2015년)면 100년을 맞는다. 돌아보면 소태산 대종사와 대산 종사의 예견은 어긋나지 않았다. 바둑으로 치면 ‘큰 수’를 둔 셈이다.
2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콜롬비아 카운티 클래버랙타운에서 원불교 미주총부법인 원다르마센터 개원식이 열렸다. 국내 자생 종교로선 처음으로 미국에 총부를 세웠다. 뉴욕시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30분을 달렸다. 풍광이 아름다웠다. 도로 양 옆의 숲은 풍성하고, 슬쩍 단풍도 들었다. 172만㎡ 부지에 지은 원다르마센터에 들어섰다. 자연친화적인 목조 건축은 푸근하고 모던했다. 사람과 자연, 명상과 영성을 고려한 수행공간이다.
개원식에는 1200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미국인도 약 300명 됐다. 원불교 교전의 영어번역 작업에 참여했던 로버트 버스웰(미국불교협회장·UCLA대학 불교학과) 석좌교수는 축사에서 “원다르마센터가 미국인에게 많은 것을 주고 이 시대, 이 세상에서 깊은 종교적 통찰을 하게 하는 주요한 보루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희사자 가족 대표 축사에서 “역사학자 토인비는 ‘지난 100년간 지구에서 일어난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 뭔가’라는 질문을 받고 ‘불법(佛法)의 유럽 전래’라고 답했다. 19세기에는 니체·키에르 케고르·쇼펜하우어 등의 철학자가, 20세기에는 선불교와 티베트불교·일본불교가, 요즘 세대에는 기성종교의 틀을 흔드는 새로운 흐름이 대세다. 이런 시대에 원불교와 원다르마센터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경산(耕山·71) 장응철 종법사는 법문을 하며 주장자로 바닥을 ‘꽝!’ 내리쳤다.
“정신을 개벽해야 평화로운 세계를 만든다. 정신이 뭔가. ‘쿵’하는 이 소리를 듣는 이가 누구인가. 그 주체가 누구인가. 그 소리를 듣는 이가 바로 여러분의 정신이다. 순수하고 물들지 않는 부처님의 마음이다. 그게 여러분의 조물주다. 그 조물주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정신이 개벽 될 수도 있고, 정신이 피폐해질 수도 있다. 물질문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정신개벽을 이루어 평화세계를 이루는데 원불교가 앞장서고자 한다.”
1일 좌산(左山) 이광정 상사(上師·제4대 종법사)는 원다르마센터 선(禪)실 테이프 커팅 행사에서 “앉으나 서나 영육쌍전(靈肉雙全·마음과 몸을 모두 온전하게 챙김)으로/가고 또 가면 트이는 길이라/세상의 희망이 예서 열리는도다”라는 법문으로 미국 교화를 격려했다. 이어 좌산 상사는 원다르마센터의 부지와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희사한 신타원(信陀圓·88) 종사를 비롯해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홍석현 회장 등을 치하했다. 신타원 종사는 52년 원불교에 입교해 91년에 종사 법훈을 받았다.
73년 교단에서 처음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38년째 해외교화를 하고 있는 백상원(70·원다르마센터 이사장) 교무는 “초기에는 식료품점에서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교화를 했다. 시작은 했지만 막막했다. 당시 이민자와 똑같은 생활을 하며 교법을 전했다”며 “처음에는 영어만 잘하면 교화가 절로 될 줄 알았다. 그게 아니더라. 결국 수행자의 깨달음과 영성이 교화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콜롬비아 카운티(미국)=글·사진 백성호 기자
◆원불교(圓佛敎)=소태산 박중빈이 1916년 창시한 한국의 새로운 종교. 불교의 생활화·대중화·시대화를 추구한다. 우주의 근본 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의 모양)의 진리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다. 현재 세계 20개 국에 진출했다.
◆원다르마센터(wondharmacenter.org)=원불교 미주총부법인. 2010년 종교·영성 방면의 건축디자인상을 수상한 토머스 한라한(프랫 인스티튜트 건축학과 학장) 교수가 설계했다. 조경은 호암미술관, 영종도 신공항 등을 디자인한 ㈜서안 정영선 대표가 맡았다다. 선(禪)실과 직원 숙소, 행정동, 게스트하우스 등 5개 동으로 구성됐다. 태양열·지열 등 그린에너지로 모든 전기를 공급한다. 다르마(Dharma·法)는 진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왼쪽부터 원불교 미주 동부교구장 양상덕 교무, 경산 장응철 종법사, 좌산 이광정 상사,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신타원 김혜성 종사, 홍라희 리움미술관장.
“현대인에게 왜 자주적 결정력이 없나? 영성이 메말랐기 때문이다.”
2일(현지시간) 원불교 미주 총부 원다르마센터의에서 경산(耕山) 장응철(71) 종법사를 만났다. “물질문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정신개벽을 이루자”는 종법사에게 ‘물질’과 ‘정신’을 물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해도 현대인의 마음은 불편하다. 왜 그런가.
“TV를 보면 다들 경제만 걱정한다. 영성을 걱정하는 이야기는 없다. 사람들은 물질만 걱정한다. 정신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현대인의 마음이 불편하다.”
-마음이 불편하면 무엇을 놓치게 되나.
“자주적 결정력을 잃게 된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자주력(自主力)이 있어야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럴 때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물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
장응철 종법사-물질은 선(善)인가, 악(惡)인가.
“물질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물질이 나쁜 것이 아니라, 물질을 잘못 쓰는 것이 나쁜 거다. 물질이 좋은 게 아니라 물질을 잘 쓰는 것이 좋은 거다.”
-사람들은 왜 물질을 잘못 쓰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란 노래가 있다. 우리는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감각이나 가치에 애착을 갖는다. 가령 클래식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클래식을 듣다가 갑자기 뽕짝이 나오면 화가 벌컥 나기도 한다. 그런 거다. 감각락과 가치락을 즐기는 것도 괴로움의 씨가 된다.”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텅 비어서 온전한 마음을 찾아야 한다. 그 마음으로 일을 하면 된다. 그게 정신적 자주력을 회복하는 거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이다. 과거에는 고요하게 앉아있는 걸 선(禪)이라고 여겼다. 그런 방식은 일이 없을 때는 괜찮다. 그러나 일이 생기면 마음이 확 엉클어진다. 생활 속에서 일을 하면서도 엉클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선(禪)이다.”
-미국에서 일하는 여성 교무들의 두발과 복장을 바꿀 계획은 없나.
“가령 미국에서 흑인 여성이 교무가 되면 어떤 교무복이 어울릴까. 당장 그건 눈 앞의 문제다. 거기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복장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급히 바꿀 사안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콜롬비아 카운티=백성호 기자 2011-10-04 1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