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은 정말 이념적으로 안전한 국가인가? (2)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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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 수양딸 “父 10년간 감시속 생활”
"어느 정권도 탈북자 조직화 바라지 않았다"
"北 3대세습 보고 충격받아"…"日 대북정책에 조언"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씨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 김숙향(69.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씨가 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황 전 비서가 국민의 정부 시절 미국 재망명과 북한 임시정부 수립을 모색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고(故)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수양딸인 김숙향 황장엽민주주의건설위원회 대표는 6일 연합뉴스와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이 말을 유난히 강조하면서 "어른(황장엽 전 비서)을 통일과 북한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활동한 분으로 생각해선 안된다"고 거듭 당부했다.
김씨는 황 전 비서가 1997년 탈북했을 때부터 지난해 별세할 때까지 13년 동안 고인의 곁을 지키며 뒷바라지를 한 유일한 법적가족이자 최측근이다.
하지만 그는 국내외에 아직 황 전 비서와 관련된 인사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달라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김씨는 "어른은 10년 가까이 사실상 감시 속에 살았다. 국민의 정부 때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되자 제3국인 미국으로 재망명을 모색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어른은 북한체제는 안된다고 생각해 국내 보수층 일각의 권유로 임시정부 수립도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며 "나중에 임시정부가 불발되더라도 탈북자들을 계몽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 일문일답.
--한때 고인이 미국으로 재망명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문민정부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어른은 10년 가까이 사실상 감시 속에 살았다. 국민의 정부 때 활동에 제약을 받게되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른은 자신의 뜻을 당시 정부에서 달성하지 못하니까 망명을 모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때는 미국, 일본측 인사들이 어른을 초청해도 갈 수가 없었다. 연세도 있어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 안되겠구나'하고 생각한 것이다.
--재망명 계획이 무산된 이유는.
▲당시 어른의 신변을 보호하던 관계당국에 망명계획이 알려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망명계획이 발각된 이후 정부당국은 어른에게 순수학술 분야만 몰두하라는 입장을 보였다.
--고인이 북한 임시정부도 구상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돈 적 있다.
▲사실이다. 임시정부 수립은 미국 망명과 별개로 생각한 것이다. 국내 일부 보수측 인사들이 권유했고 어른도 임시정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 있다. 당시 북한체제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어른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3대 세습까지는 안 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임시정부 구성을 위한 초안은 준비돼 있었나.
▲어른은 통일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임시정부를 확실히 구상하고 있었다. 외부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임시정부 구성에 대한 생각이 정립돼 있었다. 어른은 나중에 임시정부가 불발되더라도 탈북자들을 계몽할 수 있는 당을 만들고 싶어했다. 탈북자들을 북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역군으로 육성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탈북자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임시정부 추진, 재망명 시도에 대한 미국측 반응이 궁금한데.
▲미국 측에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몇몇 미정부의 인사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 아직 현직에서 활동 중인 인사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로선 자세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고인의 평가는.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한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인도적 지원은 하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문제는 국제적으로 공론화해야 된다는 게 어른의 생각이었다. 평양의 주체사상탑 폭격 같은 방식은 북한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활동을 중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른은 북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해외역량 강화에 힘썼다. 특히 일본의 대북관계에 주목했다. 일본의 유수 정치인, 여러 언론과 많은 접촉을 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정책조언을 했다. 내가 수많은 심부름을 해서 잘 안다. 결국 조총련이 와해됐다. 일본의 대북정책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서울=연합뉴스)
--한때 고인이 미국으로 재망명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문민정부에서 정권이 바뀌면서 어른은 10년 가까이 사실상 감시 속에 살았다. 국민의 정부 때 활동에 제약을 받게되자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른은 자신의 뜻을 당시 정부에서 달성하지 못하니까 망명을 모색한 것이다. 국민의 정부 때는 미국, 일본측 인사들이 어른을 초청해도 갈 수가 없었다. 연세도 있어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 안되겠구나'하고 생각한 것이다.
--재망명 계획이 무산된 이유는.
▲당시 어른의 신변을 보호하던 관계당국에 망명계획이 알려지는 바람에 무산됐다. 망명계획이 발각된 이후 정부당국은 어른에게 순수학술 분야만 몰두하라는 입장을 보였다.
--고인이 북한 임시정부도 구상하고 있었다는 얘기도 나돈 적 있다.
▲사실이다. 임시정부 수립은 미국 망명과 별개로 생각한 것이다. 국내 일부 보수측 인사들이 권유했고 어른도 임시정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 있다. 당시 북한체제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어른은 북한의 3대 세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3대 세습까지는 안 갈 것으로 예상했었다.
--임시정부 구성을 위한 초안은 준비돼 있었나.
▲어른은 통일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임시정부를 확실히 구상하고 있었다. 외부에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임시정부 구성에 대한 생각이 정립돼 있었다. 어른은 나중에 임시정부가 불발되더라도 탈북자들을 계몽할 수 있는 당을 만들고 싶어했다. 탈북자들을 북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역군으로 육성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권도 탈북자들을 조직화하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임시정부 추진, 재망명 시도에 대한 미국측 반응이 궁금한데.
▲미국 측에서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몇몇 미정부의 인사가 이런 내용을 알고 있다. 아직 현직에서 활동 중인 인사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로선 자세한 설명을 하기 어렵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고인의 평가는.
▲6자회담 등을 통해 북한문제를 국제적으로 공론화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인도적 지원은 하려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문제는 국제적으로 공론화해야 된다는 게 어른의 생각이었다. 평양의 주체사상탑 폭격 같은 방식은 북한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 활동을 중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른은 북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해외역량 강화에 힘썼다. 특히 일본의 대북관계에 주목했다. 일본의 유수 정치인, 여러 언론과 많은 접촉을 하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정책조언을 했다. 내가 수많은 심부름을 해서 잘 안다. 결국 조총련이 와해됐다. 일본의 대북정책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서울=연합뉴스)
- 허태기 지난 10년간의 정부가 어떤 정부였는지 그 실체를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2011-10-07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