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모녀의 슬픈 이야기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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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덕수용소에 갇힌 통영의 딸들… 1991년 윤이상이 마지막으로 오길남씨에게 전해준 신숙자씨와 두 딸의 사진.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은 이 사진 속 배경이 요덕수용소라고 말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서경석목사입니다. 제가 우리나라에 대해 걱정하다가 한 주일에 한 두 번씩 글을 써서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글을 보내드리는 것이 번거로우시면 받지 않겠다고 답신해 주시면 즉시 중단하겠습니다. 그러나 동의하시면 주위의 많은 분들께 이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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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는 신숙자씨 구명운동에 관한 한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메일을 눈물을 흘리며 읽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오길남 박사는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아내 신숙자씨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1985년 겨울 오길남 박사는 북한에서 좋은 교수직과 아픈 아내에게 최상의 진료를 보장하겠다는 북한요원의 말을 믿고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월북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도착하자 오씨 가족은 외부와 차단된 채 세뇌교육을 받았고 대남방송요원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1년 후 오길남씨는 독일에서 유학하는 학생 두 명을 데려오라는 지령을 받고 독일로 가던 중 고펜하겐에서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혜원(11세), 규원(9세)자매와 아내 신숙자씨는 1987년 말 요덕수용소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오길남 박사가 북한을 떠나기 전, 아내 신숙자씨는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누구나 서 있는 자리보다 더 높은 곳을 모색하고 지향하는 한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어요. 나는 당신이 우리를 이곳으로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온 과오에 대해, 어떤 백치도 어떤 눈먼 장님도 저지르지 않을 잘못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가 있어요. 그것은 당신이 내 남편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내 사랑하는 딸들이 짐승처럼 박해 받을망정, 파렴치하고 가증스럽고 저열한 범죄 공모자의 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청순한 사람들을 음모의 희생물로 만드는 역할을 맡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돼요.
자주니 평화니 민족 대단결이니 그럴싸한 간판을 내걸고 사람의 피와 살이 되어야 마땅한 값진 것들로 전쟁 준비를 하느라 탕진하여 이곳 주민들은 허기져 있고 모두들 지쳐있어요. 사회주의라는 것도 아무런 내용물 없는 빈 껍데기나 베 쪼가리처럼 바람에 찢겨 펄럭거리는 허깨비에 불과해요. 무상 교육제도, 무상 의료제도 나발을 요란하게 불어대지만 모두가 다 빈 깡통이에요. 의약품도 없는데 무슨 의료제도예요, 당신, 인민들에게 나눠줄 볼펜 하나 변변한거 본 적이 있어요?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 있다고 선전해대지만 치사(致死) 노동에 시달리다가 정년퇴직하면 한 달에 20원씩 받아요. 필터가 달린 담배 한 갑 값이죠. 이런 땅이 지구촌에서 몇이나 되겠어요.
이렇게 살려면 차라리 애들과 함께 죽겠어요. 당신 하나만이라도 빠져 나갈 수 있다면 우리 몫을 살아 줘요. 나는 애들에게 아버지는 바보스러웠지만 훌륭한 아버지였다고 말하겠어요. 혜원아빠, 당신 떳떳한 인간으로 살다가 죽어야 해요. 올가미에 씌워서 이리저리 끌려 다녀서는 한이 없어요.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나가서 석 달 안에 우리를 이곳에서 빼내 주세요. 그렇게 안될 때 우리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잊도록 하세요.
더럽게 살아가는 생명은 존귀하지 않아요. 제발 술 많이 드시지 말고 못난 사람처럼 눈물 흘리지 말아요. 나와 혜원이 규원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세요. 우리의 몸은 이곳에서 죽겠지만 마음은 살아서 당신의 심장 속에 있겠어요. 백번 거짓말하다 보면 한번은 속아 넘어 간다고 보는 대남사업 방송기구의 앵무새 방송원 노릇하려고 반평생을 밤잠 설쳐 가며 공부했어요? 아니잖아요. 청순한 젊은이들이 당신으로 인해 이곳으로 유인돼와 치욕스러운 방송원 노릇을 강요당한다면 당신은 죄를 짓는 거예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예요. 그 범죄 공모에 절대로 가담해서는 안 돼요.
도망치세요. 우리야 무슨 죄가 있어요. 그래도 죽인다면 죽으면 그만이죠. 하지만 우리를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만약 우리를 죽인다면 자기들의 체제가 병약하다는 걸 알리는 거예요.....다시 한 번 부탁해요. 정의를 사랑하는 순결무구한 젊은이들이 대남 공작기구의 제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혜원 아빠, 이 말 명심하세요‥‥‥나가세요.’
노길남 가족이 월북하도록 부추긴 사람은 윤이상, 송두율씨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숙자씨와 윤이상씨는 같은 통영출신이었습니다. 더욱이 윤이상씨는 독일로 탈출해온 오길남씨에게 북한에 다시 돌아갈 것을 수차례 종용했습니다.
87년 말에 요덕수용소에 갇힌 신숙자씨는 목매어 자살을 기도했고 방에 불을 질러 가족이 같이 자살하려고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고 강철환씨는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을 폭로하면서 보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혜원, 규원이의 소식을 더 이상 전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연히 신숙자씨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된 통영의 기독교인들이 지난 6월 통영에서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그런데 통영의 딸이 그곳에 있습니다”를 개최하였습니다. 북한에는 5~6개 정치범수용소가 있어서 20여만 이상이 죽음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분들은 정치범수용소 전시회의 컨셉을 신숙자 모녀에게 맞추었습니다.
수많은 통영시민들이 남녀노소의 구분없이 전시회를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회를 보고 여러 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시작된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에는 1만명이 서명했습니다. 윤이상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윤이상씨가 지구상에서 가장 악한 정권을 찬양한 것도 옳지 않은데, 같은 동향사람을 북한정권에 협조하지 않는다고 수용소에 갇히게 하여 한 가정을 파탄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통영의 대표음악가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전시장에는 오길남씨가 쓴 저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아내와 두딸을 사지에 남겨두고 자신만 탈출한 못난 남자 오길남씨는 지금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오길남씨의 고통이 어떨까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입니다.
나는 기회만 있으면 신숙자씨의 슬픈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나눌 때마다 눈물을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 눈물을 참지 못하는 것은 나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이 나서서 “혜원규원구출UN청원운동”을 시작했고 이 단체는 얼마 전에 음악회도 가졌습니다. 저도 그 음악회에 가서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이라는 책을 사서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읽었습니다. 신숙자씨의 슬픈 이야기는 북한인권에 대해 침묵하면서 오로지 남북평화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인가를 적나라하게 폭로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오길남씨, 당신은 더 이상 못난 남자가 아닙니다. 오길남씨와 신숙자씨는 정말로 옳은 행동을 하셨습니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가 우리를 분노케 하고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필코 아무런 죄 없이 십대에 정치범수용소에 갇힌 수많은 혜원이 규원이들을 살려내기 위해 혜원규원구출운동을 크게 키워내야 합니다.”
2011년 8월 2일
서 경 석 목사
요즘 이러한 사실이 통영시민에 전해지면서 통영은 술렁이고 있다고 한다. 오길남이라는 한 개인에 입장에서 본다면 책임은 자신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요덕수용소에 갇혀있다는 것은 또 다를 차원의 문제다.
▲ 행사에 참여하여 시민들 사이에 앉아있는 오길남 박사.
무상배급의 천국, 보편적 복지의 천국 북한의 실상을 보라! 2011-10-24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