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 자락에 있는 구(舊) 안기부 건물 근처 지하벙커. 창문도 없는 이 벙커 종합방재센터 상황실에서는 매일 늘어나는 자살 관련 긴급 구조 전화를 받느라 전화 교환원들이 몸살을 앓는다. 긴급 전화가 걸려온 곳의 자세한 위치 정보를 나타내는 대형 스크린에서 불빛이 쉴 새 없이 깜빡이는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로 자살 관련 긴급 전화가 걸려왔다.”
영국 BBC 방송은 최근 서울시 종합방재센터 상황실을 취재한 뒤, ‘자살 공화국’이란 오명을 듣는 한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심층 분석해 8일 보도했다. 이 방송은 “(한국) 상황실 안내원들 사이에선 자살 충동자의 전화 응대 매뉴얼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 방송에 따르면, 소방방재센터 전화 안내원들은 점점 “자살하고 싶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목격했다” 등과 같은 전화를 응대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한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매일 40명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어 이런 현상은 그리 놀라울 게 아니라고 이 방송은 전했다.
“한 사람이 빌딩에서 뛰어내리려고 해요! 손에는 칼까지 쥐고 있어요.”
BBC 방송 취재진이 취재하는 동안에도, 이 같이 자살을 하려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의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소방방재센터 관계자는 BBC에 “이 같은 긴급 전화에 공식적인 대응 매뉴얼이 딱히 있는 건 아니다”면서 “안내원들끼리 대처 요령(tip)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미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전화로 자신이 죽은 뒤 시신이 발견돼 처리되길 문의하기도 하지요. 또 어떤 이들은 전화해서 가장 좋은 자살 방법을 묻기도 합니다.” 소방방재센터 관계자는 BBC에 이 같이 말했다.
이 방송은 서울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우모(21)씨와도 인터뷰를 했다. 우씨는 “심지어 제가 몇 번이나 자살을 하려고 시도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며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데, 이로 인해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심하게 질책을 받는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할 때마다 내가 너무 마음이 너무 여려서 그렇다고 지적한다”며 “나는 진심으로 (이 사회에) 절망감을 느끼고 살며, 이는 내 책임은 아닌 것 같다”고 BBC에 말했다.
BBC는 세계 12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에서 이 같이 자살률이 높아지는 원인을 ‘돈과 성공에 목매는 끝없는 압박’에 있을 수 있다고 국내 심리학자 등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방송은 한국은 지하철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고, 살사 클럽에서 밤새도록 춤출 수 있고, 출근길에는 맛있는 카푸치노를 살 수 있는 나라일 정도로 부유해졌지만, 사람들은 한국전쟁 직후의 어려웠던 시절보다도 덜 행복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아동 심리학자인 홍강희 박사는 이 방송에 “지난 40년 동안 한국 부모들은 ‘돈과 성공’이라는 단 한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전통적인 가치를 버렸다”며 “어릴 때부터 돈과 성공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부모들은 학교 성적이나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인생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 박사는 “한국 부모들이 자녀가 더 좋은 학교 성적을 얻게 하려는 의도에서 ‘집중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DHD)’를 심리치료 상담을 받으러 온다”며 “이는 ‘잘못된 동기’에서 의사들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BBC 방송은 “한국 국회도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정부에게 자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며 “하지만 자살 문제는 이미 한국 전역으로 급속히 번진 뿌리깊은 문제이며, 농촌 지역에서도 매우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성모 기자 sungm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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