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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패를 전달하면서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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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하는 대대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지난 11월 27일 송추부근에 있는 백호대대 군법당 일요법회시에 참석한 50여명의 병사들을 대상으로

법회를 하고 있는 도중 대대장이 법당으로 왔다.

오늘 간식은 봉사하는 보살님들이 지난 달 병사들의 희망에 따라 시루떡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법회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대대장과 같이 음식을 들면서 대화하는 도중 오는 12월 21일 25개월의 임무를 마치

고 이임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내게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여 금강심보살님과 대대장의 차에

동승하여 부대 인근에 있는 도토리 식당으로 갔다.

 

식당안으로 들어서니 이외로 실내가 깔끔하였다.

도토리묵탕을 비롯한 여러가지 맛갈스러운 음식대접을 잘 받았다. 대대장이 부임한 것이 엊그제 같았

는데 벌써 만 2년이 지난 것이다. 내가 근 8년간 같은 군법당에서 법회를 계속해왔지만 박00 대대장

처럼 내가 법회를 하는 날에 자주 들린 대대장은 박중령이 처음이었다. 천주교신자인 그는 법회에 가끔

참석하여 신부나 목사님의 얘기보다도 내가 하는 얘기가 듣기에 마음 편하다고 하면서 법당에 애로사

항이 있으면 자기에게 말해달라고 하면서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일부

러 내게 감사패까지 만들어 준 지휘관이었다.

그러한 대대장의 호의를 잊을 수가 없어 오늘 이취임식을 맞이하여 미리 마련해놓은 감사패(법당봉사

자일동명의)를 챙겨서 부대로 찾아 가기로 한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진눈깨비를 뚫고 부대로 가기위해 도봉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면서 운전사 아저씨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갔다.

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택시 운전경력이 22년이 조금 지났는데 운전이 생활화 되다보니 "자기가 차를

몰고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차가 자기를 몰고 간다"고 했다. 즉 "자신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일이

자신을 끌고 간다"고 했다. 이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차와 운전기사가 하나가 되면 기사가 차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차가 자신을 태우고 목적지로 간다

는 의미였다. 이런 일이 어찌 운전하는 일에만 국한되겠는가. 불교를 믿고 포교행위를 하는 포교사인

나에게 무언의 교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지. 나는 오늘 경지에 오른 큰 스승의 말씀을 듣는 느낌이었

다. 기사와의 대화 중에 이런 얘기도 나왔다.

 

택시를 오랫동안 몰다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으로 정이 많고 흥겹고 선량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의 정치판과 언론에 나는 여러가지의 사건들을 보면서 사회를 무척 부정적으로 보았는데

운전기사의 말에 정말 이외였다. 그래서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택시안에서의 손님과

기사간에 이뤄지는 대화는 내리면 타인이고 그뿐이라는 인식 탓인지 승객의 별에 별얘기가 차내에서

부담없이 이뤄진다고 한다. 움직이는 작은 공간에서 세상사가 모두 드러난다는 것이다. 손님 가운데

더러는 남편 이야기, 아내 이야기, 결혼이나 연애이야기, 사업이야기, 정치이야기, 종교이야기, 생활고

이야기 등등 온갖 세상 이야기가 오간다고 했다.

그런 얘기들 가운데 그래도 한국사람만큼 정이 많고 흥이 넘치고 착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외국처럼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도 본적만척 하지 않고 반드시 살펴보고 도움을 주는 국민이 한국사람이라고 했

다. 택시를 몰고 오랜동안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보고 느낀 결과라고 했다. 이런 얘기들이 내게는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다.   

 

손님 가운데는 도적놈도 사기꾼도 있고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있는데, 묘한 것은 도적놈이나 사

기꾼 같은 사람이 내리면 곧 이어 경찰이 타는 경우도 있고, 학생이 타서 내리고나면 이번에는 선생

님이 탄다고 한다. 택시안의 작은 공간에서 세상사가 돌고 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택시를 몰

고 다니다보니 이제는 얼굴만 보아도 손님의 신분과 성격을 담박에 파악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의

인상은 어떠했느냐고 물었더니 손님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고집을 꺾지 않는 외골수적인 성격으로 

반듯한 사고를 지닌 사람으로 이를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무척 편안함을 주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

에게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로 상대방을 피곤하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

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심 뜨끔했다. 표현은 완곡하지만 나의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보인다는 것이

아닌가. 상대방에게 이러한 이미지를 주는 것은 대인관계에 좋을게 없는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나의 성격을 너무나 정확하게 짚어낸 것 같았기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두가지면에 있어 좀체로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이 있다. 첫째는 국가관이다. 국가

안보문제에 대해서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도 나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종교이다. 불교를 비방하거나 불교교리의 잘 못된 이해로 불교를 그릇되게 왜곡하는 사람들

에게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의 성격을 꿰뚫어 보는 택시기

사의 얘기에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그런 느낌을 받았느냐고 물으니 택시를 잡기위해

다가오는 모습과 차안에서 한두마디 주고받는 말에서 담박 알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

다. 자기 일에 오랜동안 성실히 일하다보면 자연히 이런 경지까지 오르는 것인가하고 생각하니 내

자신을 새삼 되돌아 보게 된다.

 

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가끔 손님중에 돈이 모자라 요금을 다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에도

손님과 시비하지 않고 주는대로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다른 손님을 태우고 내릴 때 돈을

요금보다 더 주고 내린다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기사님의 나이가 얼

마인지 궁금하여 물어 보았더니 올해 58세라고 한다. 20여년전에 은행에서 퇴직하고 한 5년동안 등

산을 다니면서 마음을 달래다가 택시운전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택시를 운전하고 있

는데 이제는 개인택시를 몰고다니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고 하면서 운전하는 것을  하나의 낙으로

삼아 즐기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지금까지 한번도 승차를 거부하거나 손님들과 다투어 본 적이 없다

 한다. 가히 도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 같아보였다. 이 얼마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인가.

이런 마음이 그로 하여금 최상의 인생을 살게하는 것 같았다.

 

군부대에 도착하여 택시기사에게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거스름돈 오백원은

받지 않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행사 예행연습을 하고있는 연병장을 둘러서 대대본부로 찾아 갔다. 휴게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2시

부터 시작하는 대대장 이취임식 광경을 살펴보았다. 지난 좌익정권 때와는 달리 병사들의 열병하여

있는  모습이 아저씨 군대에서 탈피하여 제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군악대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여군

장교인 것이 시선을 끌었다.

연대장의 훈시와 전,후임대대장의 이임사와 취임사, 짚차에 탑승한 열병 및 도열식을 마치고 공식행

사를 하는데 30분이 걸렸다. 군대답게 지루하지 않고 적절한 행사였다.

 

이취임식 행사가 끝나자 다과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과일과 떡, 국수, 호박죽, 포도주를 비롯한 건배용 음료수가 마련된 가운데 전후임 대대장들의 덕담

과 건배가 오가는 분위기 속에서 행사담당 장교의 소개로 이임대대장인 박중령에게 감사패를 증정

했다. 감사패에 새긴 내용을 마이크로 또박또박 읽어주었다. 이 자리에서 감사패를 증정하는 것은 나

뿐인 것 같았다. 이어서 인연있는 사람들의 꽃다발 증정이 있었다. 전임 대대장이 떠나는 것을 보고

신임대대장에게 간단한 축하의 인사를 하고는 부대정문을 나섰다.

모처럼 군부대 지휘관의 이취임식 광경을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군부대의 지휘관 생활! 이는

남자라면 한번 해볼만한 멋진 생의 갈피였다.

 

2011. 12. 21. 청강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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