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반면 북한의 세계기록은 음지의 기록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가장 강력한 무기(핵폭탄)를 만들었다. 더 충격적인건 장기독재다. 1인으로는 김일성과 카스트로가 똑같이 49년으로 최장기다. 하지만 세습으로 치면 북한이 66년이다. 이를 깰 만한 이는 카다피였다. 하지만 그는 42년 만에 국민에게 처단됐다. 길이도 그러하지만 가혹과 공포에서도 북한 독재는 세계기록이다.
11년 전인 2000년 10월 하순 저녁 나는 평양 능라도 5·1(노동절) 경기장에 앉아 있었다. ‘조선노동당 창건 55돐 경축 10만 명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이 열렸다. 30m쯤 앞에 김정일 위원장이 있었다. 경호군관 2명이 그의 등뒤에 서 있었다. 눈매가 독사처럼 매서웠다. 김정일 옆에는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방문단이 앉았다.
천둥소리 같은 함성으로 매스게임이 시작됐다. 원색의 옷과 깃발, 로봇처럼 움직이는 어린이·학생·일반인·군인 수천 명, 수만이 하나가 되는 핵·미사일 카드 섹션….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군인 수백 명이 대검 꽂은 총을 들고 총검술과 집단격파를 연출했다. 군인들은 “와” 함성을 지르며 주빈석으로 돌진해 왔다. 그 순간, 카드섹션은 이렇게 적었다. “우리를 건드리는 자, 이 행성 위에서 살아남을 자 없다.”
외신기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외쳤다.“Incredible!(믿을 수 없다)” “Unimaginable!(상상할 수 없다)” “Shocking!(충격적이다)”…. 어느 기자는 “레닌도, 스탈린도, 차우셰스쿠도, 카스트로도, 마오쩌둥도 못 했던 일이다.
아니 앞으로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치도, 파시즘도, 가미카제도, 홍위병도, 후세인·카다피도 그런 공연은 못 했다. 인간을 그렇게 로봇처럼 움직였던 독재자는 김정일밖에 없다.
1945년 해방 때 한국 남자의 평균 신장은 166㎝였다. 66년 만에 남한은 173㎝로 7㎝가 늘었다. 반면 북한은 지금 160㎝다. 6㎝가 줄어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3대 추축국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이다. 지금 한국 청소년의 평균 신장은 독일보다 조금 작고 이탈리아와 같으며 일본보다 크다.
이 나라 종북(從北) 세력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실상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이다. 종북 인사들은 나라를 키워놓은 박정희는 매도한다. 그리고 북한인의 체격을 줄여놓은 김일성·김정일에게는 관대하다.
테러리스트 독재자 김정일은 병으로 사망했다. 후세인이나 무바라크처럼 법정에 서지도 않았고 차우셰스쿠나 카다피 같은 비극적인 일을 당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저승으로 가는 김정일의 여정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어느 길목에서 그는 46인을 마주칠 것이다. 그들이 부르는 대한민국 해군가를 들으며 그는 한주호 준위가 건네주는 서해 바닷물을 마셔야 한다. 물에서는 여전히 화약냄새가 날 것이다. 어느 모퉁이에서 그는 아웅산의 영령들을 볼 것이다. 모퉁이를 돌면 그의 제국이 그렇게 찬양했던 ‘노동자 인민’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은 중동에서 고향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바다에 수장(水葬)됐다.
인류는 김정일을 떠나보내고 있다. 이제 세상은 정말 조금은 살기 좋아졌을까. 김정은은 아버지의 죄업을 얼마나 씻을 것인가.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