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장례 방식은 중요하지 않아…
변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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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1/27/2012012701577.html?news_Head1
세속의 술사들은 좋은 땅에 묻어야 후손이 번창한다지만,
화장이든 심지어 미라든 氣만 통하면 돼
이 시대의 대표적 학승(學僧)으로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지관 스님 이야기이다. 스님의 고향은 포항시 청하면 유계리이다. 스님의 부모는 원래 유계리 678번지에 살았다. 그러나 이곳에서 아홉 살의 맏아들이 죽자 큰 시름에 잠기었다. 그때 "옥녀직조(玉女織造)형의 명당으로 집터를 옮기면 후손이 융성하리라"고 어느 풍수가 조언을 하였다. 그 말을 따라 유계리 107번지로 옮긴다. 집터를 옮긴 지 3년 만에 지관 스님이 태어난다. 어느 명풍수 였을까, 그 터를 잡아 준 사람은? 이후 출가한 스님은 고향을 찾지 않았다. 이승에서의 인연이 다하고 있음을 안 스님은 2010년 출가한 지 60년 만에 고향을 찾는다. 생가터는 남의 논이 되어 벼가 자라고 있었다. 스님은 이곳을 구입하여 보은탑(報恩塔)을 세우고 조부모와 부모님의 4기 묘를 화장하여 보은탑 밑에 모셨다. 조부모 및 부모 유골까지 화장하여 함께 극락왕생하고자 하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 1월 초 지관 스님은 입적하였다.
요 두어 달 사이 남북한의 큰 지도자들이 연달아 별세하였다. 그런데 그 지도자들의 주검 처리 방식이 각각 달랐다. 지관 스님은 당연히 다비(불교식 화장)되었다. 지난번 글에 소개한 박태준 회장은 2001년 미국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 '죽으면 화장하여 뼛가루를 포항제철이 보이는 곳에 묻어달라'고 하였다고 하나 현충원에 매장되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미라로 안장되었다. 어찌 한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장례를 치를까?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가치관의 충돌은 아닐까? 물론 중국 고대 사상가 열자(列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별것 아닐지 모른다. 열자는 말한다:
"나 죽으면 그만이오.(…) 화장을 해도 좋고, 수장을 해도 좋고, 매장을 해도 좋고, 들판에 내던져도 좋고(…) 그저 그때 형편대로 하면 그만 아니오?"
그러나 죽어서 "개처럼 땅에 묻히기를 바라지 않는 것"(앙드레 베르제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이다. 매장이든 화장이든 또는 미라든 저마다 '영생(永生)을 담보해준다'는 확고한 생사관에 근거한다. 유가적 관점에서 "돌아가신 부모를 화장하는 것은 당신들을 곧 하나의 물질처럼 취급하는 잔인함"(김기현 전북대 교수)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반면 육신을 화장함으로써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왕생을 할 수 있다고 보는 불가의 관점에서 보면 한갓 지수화풍(地水火風)에 지나지 않는 육신을 길지에 매장하려는 행위 그 자체가 헛된 일이다. 그러나 죽어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는 유가나 불가나 별 차이가 없다. 우리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미라로 처리되는 상황이다. 영원히 사는 것도 영원히 죽는 것도 아닌 채 구천을 떠도는 '중음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미라처럼 김정일 위원장도 영원히 살아 자기 인민들을 지켜준다고 믿을 것이다.
풍수지리의 핵심이론은 조상의 기운과 후손의 기운이 서로 감응한다는 '동기감응(同氣感應)'설이다. 흔히 이것을 좋은 땅에만 조상을 묻으면 그 좋은 기운이 후손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세속의 술사들은 풀이한다. 그럴 경우 풍수는 매장을 고집하는 사람들에게만 수용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조상과 후손 간의 상호감응은 그들이 공유하는 같은 기(同氣)에서 나온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북한 인민의 '어버이'가 되는 순간 북한 인민과는 동기가 형성된다. 돌아가신 조상에게 혼이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후손의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한 '확실한 믿음'은 '동기감응의 과정'을 거쳐 '명당발복의 결과'로 나타난다. 예수가 약 없이 병자를 고칠 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느니라"고 함과 같다. 나라가 더욱 흥하려면 그 나라 국민의 조상 혼령들도 편안해야 한다. 우리가 죽음의 세계를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이다.
- 허태기 돌아가신 조상에게 혼이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후손의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한 '확실한 믿음'은 '동기감응의 과정'을 거쳐 '명당발복의 결과'로 나타난다. 예수가 약 없이 병자를 고칠 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느니라"고 함과 같다..... 一切唯心造!! 2012-01-30 0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