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이해]4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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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이다.
천수경(千手經)에서의 관세음보살이 반야심경에서는 바로 관자재보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도 한다.
이는 범어 ‘아바로키테 스바라 보디사트바’ 를 번역한 것이다.
이것이 4세기를 전후하여 중국에 들어와 번역되면서 처음에는 관세음보살로 불리었으나, 현장스님이 관자재보살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원어인 ‘아바’는 지킨다는 뜻이고 ‘로키테’는 본다, 관조한다는 의미로 이는 ‘지켜본다’는 의미가 된다.
‘스바라"는‘자재하다,자유롭다"는 의미로서 '아바로키테스바라'는 ‘자유자재하게 지켜본다’는 뜻이다.
이것은 ‘중생들의 온갖 괴로움과 액난에 대해 자유자재하게 지켜보고 살펴서 그들의 괴로움을 소멸시켜 주신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마치 부모님가 자식을 가만히 따뜻하고 자비한 마음으로 지켜보듯이 그렇게 중생들을 지켜
보시는 분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어원에 담긴 뜻인 ‘세간의 음성을 관한다(관세음)’는 의미는 사바세계의 중생이 괴로움에 처해
신음하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이 그 중생의 신음소리와 함께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부르는 소리를 듣고 구제하여
주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자재보살은 전지전능으로 일체를 알아서 자재롭게 지켜본다. 또는 법의 실상이 공함을 모두 꿰뚫어 본다는 뜻이다.
관세음이나 관자재는 같은 의미로서 내면에 있는 나[我]라는 주관과 객관인 일체의 경계를 온전히 바로 관(觀)함을
말하며, ‘보살’이라고 함은 우리 내면의 본래자리, 깨달음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관세음보살’이라 부르게 된 연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 하십니까?”
부처님께서는 무진의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무량백천만억 중생들이 여러 가지 괴로움을 받게 될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하고,
모두 괴로움에서 해탈케 하시느니라.”
우리가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을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를 비롯한 일체 세간의 음성,
다시 말해 온갖 경계를 바로 관하고 그러한 모든 경계를 녹이고자 온전히 자기내면의 보살자리인,
"참나" 본래자리에 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밝은 방편 수행인 것이다.
세간의 음성, 즉 온전히 자신과 바깥 경계를 관하고 녹여 보살,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염불을 해 나가는 것이다.
여기서 염불(念佛)이라고 할 때,
염(念)이란,
우리네 마음 속에서 경계따라 일어나는 갖가지 생각, 마음의 조각들을 말하며
불(佛)이란,
우리네 마음 속에 저마다 갖추고 있는 본래자리, 근본성품,참나 주인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염불은 우리의 마음인 ‘염’과 부처님의 마음인 ‘불’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하는 밝은 수행인 것이다.
이러한 관세음보살 염불수행의 공덕을 살펴보기 위해,
『관음경』[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자.
관세음보살님은 우리의 온갖 괴로움에
마땅히 몸을 나투어 안락을 주신다고 한다.
굳은 믿음으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지극 정성으로 염불하면
어떠한 일도 모두 성취할 수 있다고 관음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의 가피가 어떠한지 관음경의 구절을 잠깐 살펴보겠다.
큰물에 떠내려가더라도
그 이름을 염하면 곧 얕은 곳을 얻게 되며,
또, 도적으로부터 해를 입게 되었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그들이 가진 칼과 무기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이 수갑과 고랑과 칼과 사슬이
그 몸을 속박하더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염하면
모두 부서지고 끊어져서 벗어나게 되느니라.
어떤 중생이 음욕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음욕을 여의게 되고,
만일 성내는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성내는 마음이 없어지며,
만일 어리석은 마음이 많더라도
항상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공경하면
문득 어리석음을 여의게 되느니라.
형상을 가진 관세음보살님께서 하얀 선녀복을 입고 나타나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에게 원하는바를 주고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그런 형상을 가진 분으로써의 관세음보살님을 불러서는 안 된다.
관세음보살이란
앞에서 말했듯이 내면에 있는 ‘참나’를 의미한다.
다만 가만히 내면 깊은 곳에 숨어만 있는 참나 주인공이 아닌
적극적으로 세간의 음성을 관하여 온갖 경계를 밝게 녹여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본래면목 참성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을 염불한다 함은
내 스스로 세간의 음성, 온갖 경계를 관하여 내면의 본래면목 보살자리를
밝게 닦아가겠다는 자기 수행에의 철저한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며,
내 안의 관세음보살님을 굳게 믿어 내면의 참나를 밝게 세우겠다는 철저한 대장부의 정진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방하착 염불수행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참자성’을 향한 일심염불이다.
괴로움(苦)의 원인인 일체의 모든 끄달림, 애욕과 집착(執)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비워버려(道)
해탈(滅)로 안내하는 사성제의 실천행인 것이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은 참으로 많다.
중생에게 일체의 두려움이 없는 무외심을 베푼다고 하여
‘시무외자(施無畏者)’라 하기도 하고,
대자대비를 근본 서원으로 하는 보살이라 하여
‘대비성자(大悲聖者)’라고 하며,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구제하므로 '구세대사(救世大士)' 라고도 한다.
또한 이 보살은 세상을 교화함에 중생의 근기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를 ‘보문시현(普門示現)’ 이라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법화경』 보문품(法華經 普門品)에서는 삼십삼화신(化神)이라고 표현하였으며,
『능엄경』(楞嚴經)에서는 삼십이응신(應身)이라고 한다.
이는 모두 관세음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변화신(變化身) 이다.
이러한 변화신에는 부처님, 성문, 연각 등을 비롯하여
범천, 제석, 장자, 거사, 스님, 신도, 동자, 아수라 등이 포함되어 있으니,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모습으로도 우리 곁에 기꺼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많은 이들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방편따라, 중생들의 각기 처한 입장에 따라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대상으로 마땅히 몸을 바꾸어 응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부처님을 출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모든 부처님의 어머니[불모(佛母)]’라고도 알려져 있다.
관세음보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자비’를 그 근본행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비의 화신이라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慈)라는 것은 ‘베푼다’는 뜻으로 중생에게 즐거움을 베풀어주는 것을 말하며,
비(悲)는 본래 ‘슬프다’는 뜻인데, 불법 문중(門中)에서는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비의 실천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아무리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이 모두는 너와 내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둘이 아닌 연기(緣起)의 관계 속에서 나온 즐거움이므로
마땅히 나 혼자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에게 함께 베풀어주려는 마음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를 알기 때문에,
베풀어주었지만 베풀었다는 상(相)을 내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이라면 자연히 자비를 실천하게 마련인 것이다.
이렇게 연기의 이치를 깨달아
'지혜'롭고 '자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는
따로 관세음보살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 마음이 바로 관세음보살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내신김에 바쁘고 힘드시더라도 계속
올려주시면 포교사들에게 청량제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삶에 힘이 되는 시를 통해서, 불자인 포교사에게 꼭 필요한 이러한 글을 통해서 계속해서 지우님을
만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_()_ 2012-02-07 15:02
군부대 사찰에 좋은 책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성불하세요_()_ 2012-02-07 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