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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의 이해]5

허태기

view : 1989

보살(菩薩)은 ‘보리살타’의 줄임말인데, 범어로 ‘보디사트바(Bodhisattva)’라고 한다.

‘보디사트바’는 깨달음을 나타내는 "보리"와, 중생을 뜻하는 "사트바"를 합한 단어로서,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수행자를 상징하는 말이다.
즉, 깨달음을 완성한 보살(관음, 지장, 문수, 보현 등)과

깨달음을 추구하고자 하는 보살(선혜보살-부처님의 전생)과 같은 

두 종류의 보살을 말하는데 우리가 흔히 여자신도를 보살이라고 칭하는 것은 후자에 속한다. 

 

대승 보살의 서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지향하는 것으로
위로(한편으로)는 깨달음 즉,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한편으로)는 중생을 제도, 교화하고자 하는 것이 모든 보살의 한결같은 서원인 것이다.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바로 깨달음에 이르려는 적극적인 행이며,
보리를 구함이 바로 일체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는
대비원력의 궁극적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의 행을 흔히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하는데,
이것은 스스로를 이익 되게 함이 곧
타인, 이웃을 이익 되게 함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로 볼 때,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인생을 정직하고 올곧게 살려고 부단히 정진하는 사람이며,
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 연기의 진리를 통한
희망의 메시지를 가슴속에 품고 깨달음이라는 크나큰 포부를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 사람이다.

동체대비심(同體大悲心)으로 이웃을 위해 부단히
희생하지만 희생한다는 상이 없으며, 부단히 궁극의 자기 향상을 꾀하는 사람이다.

잠시『대지도론』의 보살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자.

처음으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을 일으켰을 때,
그는 ‘나는 부처가 되어서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고 서원했다.
그는 이때부터 보리살타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초발심을 일으킨 자가 바로 보살이라는 말이다.
『의상조사법성게』를 보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란 말이 있듯이,
처음 발심한 이의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이 바로 보살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동안 보살의 개념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너무 멀게만 느끼던 우리들에게
나도 보살이라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서 지극한 마음을 내고 원을 세우면
바로 '보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대승불교의 활짝 열린 보살 사상이다.
우리 모두가 보살이 되는 세상이 바로
‘큰 탈것[大乘]이라는 대승불교가 꿈꾸는 이상적 세계인 것이다.

보살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라도 우리 이웃의 모습으로
나투어 우리를 이익 되게 해 준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분의 보살님이 계시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내 부모, 자식, 형제, 친척, 친구, 직장 동료에서부터,
어려운 이웃, 심지어 축생들에서부터 자연만물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보살 아닌 것이 없는 것이다.
일체는 ‘하나’라는 깨달음의 본질적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모두를 통틀어 이르는 단어가 바로 보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살은 중생구제(下化衆生)와 자신의 닦음(上求菩提),
포교(利他)와 수행(自利)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 존재이다.

그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
어떤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보완적이며,
결국은 하나의 길에 대한 두 가지 실천 방법인 것이다.

포교, 교화, 전법(傳法)에 대해서
불교인들은 타종교에 비해 소극적이다.
본인의 공부,수행은 열심히 하면서도
주위의 사람들에게 불법을 일러주고 포교하는 것에는 
안일하거나 무관심한 것이 불교의 현실이다.

포교가 곧 수행인 것이다. 
포교의 힘이 바로 수행력(修行力)이요,
정진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열매는 자비요, 자비는 진리의 공덕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포교는 현재, 바로 지금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남을 위해 한 마디라도 일러주는 그것이 바로 포교이지,
내가 깨닫지도 못했는데 무슨 포교냐고 한다면 

이는 깨달음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나를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을 이롭게하는

이타행(利他行)을 통한 교화와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이 보살의 사상이고,
대승불교의 실천관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똑같은 연기법을 설법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설법한 연기법과 한달 전 설법한 연기법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늘 같은 연기법을 강의하더라도
나에게 다가오는 연기의 세계는 나날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의를 할 때마다 내면의 실력은 늘어가는 것이며,
마음 공부도 그만큼 깊어 가는 것이고 

사유의 폭도 넓혀지는 것이다. 포교를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고

더욱 깊이 나를 닦아갈 수 있는 것이다. 포교가 곧 방편수행인 것이다.

 

 2,5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일생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진리의 길을 일러 주셨다.
부처님은 성도 후 열반까지의 전 생애 동안
철저히 포교와 교화, 전법으로 순일하게 일관하셨다.
스스로 이웃을 위하고 자신을 위한
정진의 삶, 보살의 삶을 보여주신 것이다.

상구보리하면서 하화중생하는
이처럼 숭고한 보살의 원력을 밝게 세우고 나면
그 때부터 보살이 되는 것이다.
생활이 수행이 되고 수행이 생활이 되는 그대로의 보살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생활수행자가 되어서
그 밝은 깨침의 세계, 사랑의 세계를 일구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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