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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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요즘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 조선시대와 비슷하다. 국가 안위가 걸린 문제에 있어서는 여야나 진보·보수가 있을 수 없다. 나라의 안보가 이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면 임진왜란을 앞두고 다투었던 동인·서인과 무엇이 다를까. 민주통합당이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인데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제주도가 전쟁의 위협에 휘말리게 된다는 논리다.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다. 말로 평화를 외친다고 평화가 지켜지는 것일까? 평화는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노무현 대통령도, 당시 총리였던 한명숙 야당 대표도 국가전략상 제주기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선거가 가까워 오자 바로 그 사람들이 말을 뒤집고 있다. 동남아 모든 나라가 중국의 해군력 팽창이 두려워 이에 대비하느라 야단인데 그들은 왜 이미 시작된 기지 건설까지도 중단하자는 것일까. 중국의 항공모함이 우리의 서해·남해를 휘젓고 다닐 날이 바로 코앞에 닥쳤는데도 그들 눈에만 그것이 보이지 않는 걸까? 안보를 튼튼히 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왜 언제나 쌍지팡이를 들고 반대하는 것일까?
한·미 FTA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비슷한 내용으로 EU와 FTA를 맺었을 때 그들은 문제 삼지 않았다. 유독 한·미 FTA만 반대한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사실은 특정조항이 아니다. 한·미 간의 협정 자체가 못마땅한 것이다. 보수가 친미라고 하니 진보는 반대로 나가야 하기 때문일까.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팽창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진정한 우리의 우방이 될 수 있느냐 여부의 판단은 안보상 매우 중요하다. 지금 중국의 행태를 미루어 보건대 그 전망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들은 국제협약을 무시하고 우리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탈북자를 강제송환시키고 있다. 이 같은 안하무인의 태도는 그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다. 우리로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카드를 만들어 놓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중국이 힘으로 나올 때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 미국을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런 국제정치 논리를 외면하고 진보는 왜 미국과의 관계를 무조건 허물려고만 할까.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국내 문제에서는 비록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나라 안위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조선말 고종 때처럼 친중·친미·친러·친일파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 먼저 국가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가 속한 집단이익보다 나라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복지를 더 확대하거나 줄이는 문제는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우리끼리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 문제만은 그럴 수 없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성을 쌓을 때가 있고, 쟁기를 들 때가 있는 것이다.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사태가 오기도 한다. 국방에는 경제력이 핵심이다. 안보의 눈으로 본다면 분에 넘치는 복지확대나 무조건적인 대기업 때리기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안보는 선거이슈로 부상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이미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천안함이 공격을 당해도 우리는 그 분노조차 집약시키지 못하는 나라로 변해 버렸다. 지금 모두의 관심은 복지에 쏠려 있다. 특히 야당은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안보 문제는 슬쩍슬쩍 건드리는 식이다. 선거에 유리하다 싶으면 더 나가고, 불리하면 거둬들이고 있다. 안보는 그렇게 치고 빠지는 대상이 아니다.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안보 문제에 대한 철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야당은 안보에 관한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 당당하게 밝혀야 하고, 여당 역시 이 문제를 더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이 나라 안보가 어떤 위기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지 아무도 모른다. “문제는 안보다, 이 바보야!”
[중앙일보] 입력 2012.02.28 03:00 / 수정 2012.02.28 09:36 중국 대사관 앞 일주일째 농성
국회, 탈북자 북송 중단 결의안중국 정부가 탈북자 강제북송을 반대하며 중국 대사관 앞에서 일주일째 단식 농성을 해온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의 중국 방문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 때문에 27일 2박3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하려던 박 의원은 출국하지 못했다. 박 의원은 베이징 의 한국대사관에서 탈북자 문제에 관한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비서관 등 2명과 함께 지난 13일 중국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었다.
중국은 과거에도 한국과 민감한 사안이 불거질 때 우리 국회의원에 대해 비자 발급을 수차례 거부했다. 하지만 담당 상임위(외교통상통일위원회) 국회의원이 재외공관의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신청한 비자를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의원은 이날 “정상적 절차를 거쳐 신청한 비자가 아무런 설명 없이 거부돼 이유를 파악하고 있다”며 “23일까지만 해도 외교통상부에서 ‘중국대사관을 설득하고 있다’고 해 안심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결과에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한편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재석의원 156명 가운데 찬성 154명, 기권 2명으로 가결됐다. 이 결의안은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북송을 규탄하고 난민지위협약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2-02-28 09:46
중국의 항공모함이 남해,서해상에서 세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국은 중국의 변방국으로 몰락해갈 것이고---, 2012-02-28 09:56
망해봐야 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가를 절감하는 둔한 국민이되어버렸다.
한 60년 전쟁없이 외세의 침략없이 잘 살았으니 그럴만도 하다.
설마 다시 이땅에 전쟁이 일어나랴라는 생각에 자기이익만 챙기는 세태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한국의 근대사와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는 선생들이 학교에서 실종된지 오래다.
전교조의 이념화되고 오도된 역사관의 교육이 이미 젊은 세대의 머리에 깊숙히 자리잡았다.
물질적인 지나친 풍요가 물질만능의 시대를 낳았다.
물질적인 여유가 사람의 인격을 평가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오직 나의 것, 나만의 행복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인이 되고
판검사가 되고 재벌이 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한번 뒤집어질 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차라리 중국의 속국이 되는 것이 편하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다.
좌익정부 십년간의 후유증이 서서히 망국의 길로 안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부정과 부조리로 얼룩진 정치권이 낳은 과보의 괴물인 것이다. 2012-02-28 10:30
더불어 공생할 수 있는 길인지?
언제 어떻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중에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세상으로 치닫지 않토록 모두 정신 차려야 할때입니다. 2012-02-28 18:22
일부는 여자들을 공출해가고,일부는 지배자 들의 씨를 뿌려야 식민정책을 확고히 할것이다,
이는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있다,병자호란때 끌려간후 돌아온 누님,언니들을 환향녀로,
일제 식민지때 끌려갔다 돌아온 누님,언니들을 정신대라고 부르지 않는가,
지금 경제적으로 먹고 살게 되었다고 흐느적 거릴때가 아니고 정신똑바로 차릴때라고 본다. 2012-02-28 20:35
설득을하여 달라이라마가 방한할수 있도록 근본대책은 하지않고 달라이라마가 일본방문한다고 하면,
또는 인도 달람살라에 온다고하면 우루루 달려가서 친견했다고하여 같이찍은 사진이 무슨 가보인양
한심한 작태는 이만 접어야 할때 라고본다. 2012-02-28 21:16
文弱하고 비겁했던 宋의 역사를 통해 보는 오늘의 대한민국, 그러나 희망은 있다
강철군화
중국의 역대 왕조 가운데 宋(송)나라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나라다. 宋에는 春秋戰國(춘추전국)이나 秦漢(진한), 唐(당)과 같은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가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宋이 ‘닫힌 나라’였기 때문일 것이다. 혹자는 중국 역사상 가장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성리학과 같은 새로운 사상이 등장했던 송이 ‘닫힌 사회’였다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宋은 분명 ‘닫힌 사회’ 내지 '포위된 사회'였다. 거란(遼), 여진(金), 탕구트(西夏), 몽골와 같은 변방민족들에게 대륙의 일부를 점령당하고, 그들의 군사적 위협 아래 신음했던 나라다. 夷狄(이적)의 압박 아래서 어렵게 싹이 튼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는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과장해서 강조하는 ‘닫힌 민족주의’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宋을 제대로 아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왕안석, 소동파, 수호지, 악비, 靖康(정강)의 變(변), 주자와 성리학, 남송, 도자기.... 이 정도 아닐까?
‘宋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鄭淳台 전 월간조선 편집위원이 쓴 은 바로 그 宋에 대한 이야기다. 後周(후주)의 軍閥(군벌) 조광윤이 휘하 장병들의 추대로 帝位(제위)에 오른 때부터, 南宋이 몽골의 침략으로 멸망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조광윤(송 태조), 조광의(송 태종). 거란-여진-서하-고려-몽골 등 주변국과의 관계, 왕안석의 신법을 둘러싼 政爭, ‘예술가 황제’ 휘종과 의 시대, 여진의 침략으로 北宋이 망한 靖康의 變, 간신 진회와 애국 名將(명장) 악비, 남송, 주자와 성리학, 남송의 멸망 등 ‘송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는 아니다. 저자가 宋의 역사 현장을 누비면서 쓴 답사기의 성격이 강하다. 宋代의 酒樓(주루)를 룸살롱으로, ‘예술가 황제’ 徽宗(휘종)을 ‘플레이보이’에 비견하는 등 재치 있는 표현들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宋을 통해 보는 오늘의 대한민국
이 책의 가장 큰 의미는 宋의 역사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을 바라본다는 데 있다.
사상 유례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文弱(문약)에 빠져 好戰的(호전적)인 이웃에게 뜯어 먹히는 허약한 존재, 이념과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는 저열한 당파 싸움, 실제 國政을 운영할 경륜은 없이 대의명분만을 내세우는 먹물들의 전횡, 싸울 줄 모르는 군대, 戰略的(전략적) 思考(사고)나 신의가 결여되어 있는 對外(대외)정책....
이런 점에서 宋나라와 대한민국은 무섭도록 닮아 있다. 특히 北宋이 여진(금)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南宋이 들어선 후 재상이 되어 金과의 화친을 추진했던 간신 진회의 이력과 정책은 김대중 정권 시절 외교안보수석-통일부장관-국정원장으로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모씨의 경우와 아주 흡사해 등골이 서늘해진다.
저자는 宋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아니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宋의 徽宗(휘종)과 김정일
저자는 “배부른 나라가 배고픈 나라에 졌다. 宋은 한국의 쇠망 모델이 아닐까?”라는 우울한 경고를 한다.
사실 그런 사례는 宋뿐이 아니다. 우리 세대에서도 그런 사례를 목격한 바 있다. 월맹(북베트남)에 패망한 월남(남베트남)의 사례가 그것이다. 1975년 초 티우 월남 대통령은 “월맹군은 하루 두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월맹의 빈궁한 사정을 비웃었다. 반면에 월남은 인근 바다에서 석유가 발견되는 등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후 월맹이 남침을 개시하자 월남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망했다.
때문에 저자의 경고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반드시 경청해야 할 값어치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오늘의 북한은 거란이나 여진, 몽골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거란, 여진, 몽골에는 건국 초기 野性(야성)의 건강함이 있었다. 특히 몽골의 경우는 ‘열린 세계’에 대한 나름의 비전이 있었고, 그것을 실천했다.
하지만 오늘의 북한은 ‘배고픈 나라’이기는 해도, ‘야성의 건강함’은 갖지 못한 체제다. 부패하고 불공정하며, 병들대로 병든 체제이다.
특히 얼마 전 죽은 독재자 김정일의 작태는 北宋을 파멸로 이끈 휘종의 작태와 똑 같다. 예술가 행세를 하면서 즉흥적인 통치행태를 보이고, 자신의 개인적 향락과 허영을 위해 국가자원을 낭비하고, 인민을 도탄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물론 송나라 휘종은 그림과 글씨로 인정받는 '진짜 예술가'였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宋은 군사력이 약했던 반면, 북한은 그렇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 군사력이라는 것 역시 宋의 경우처럼 정권유지를 위한 친위부대만 강한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고 분발하면, 宋이 흘렸던 눈물을 우리는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宋이 남겨 놓은 트라우마
을 읽으면서, 宋이 중국인들의 유전자 속에 아주 부정적인 유전자를 하나 박아 놓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중국인들의 ‘狹量(협량)’이다.
大陸(대륙)에 사는 大國(대국)사람들이 협량하다고?
하지만 중국 어선의 불법어로문제, 탈북자문제, 동북공정 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보는 중국, 중국정부, 중국인들의 행태는 '협량' 그 자체다. 겉으로 보기에는 大人, 大國의 풍모를 보이는 듯 하지만, 작은 이익에 연연하고, 强者(강자)에게 약하고 弱者(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인다. 흥할 때에는 너무 오만하고, 쇠했을 때에는 너무 비굴하다. 그게 인간 본성이기도 하겠지만, 중국, 중국인의 경우는 그게 참 심하다.
어쩌면 그것은 경제-문화적으로는 흥성했지만, 외세에게 시달리던 끝에 멸망한 宋나라 시절 형성된 트라우마일 지도 모른다. 中華(중화)사상이라는 것도 결국은 文弱했던 宋의 먹물들이 창조해 낸 ‘病(병)든 민족주의’ 아니던가? 이런 유전자는 몽골(元)과 만주족(淸)의 지배, 그리고 아편전쟁 이후 100여년 간의 ‘치욕의 세기’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됐을 것이다.
宋의 잘못된 국가운영은 단지 북송과 남송의 멸망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代代孫孫(대대손손) 중국인들의 유전자 속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겨놓은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宋이 중국인들에게 물려준 가장 큰 害惡(해악)일 것이다.
우리에게 생소한 중국 역사의 한 章(장)을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旭日昇天(욱일승천)의 기세로 성장하는 중국인들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적 단초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2012-03-02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