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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의 이해]10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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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란

일체의 고액[고통과 액난, 괴로움]을 건너,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이란 오온이 모두 공(空함)을
비추어 봄으로써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일체의 고액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경전에 나오는 세 가지 괴로움, 그리고 사고(四苦)와 팔고(八苦)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이 사리불에게 물었다.

“사리불이여,
고(苦),괴로움 이라고 하는데,어떤 것을 고(苦)라고 합니까?”
“벗이여, 이와 같은 세 가지가 고(苦)이다.
그것은 고고(苦苦) 행고(行苦) 괴고(壞苦)이다.
벗이여, 이 세 가지가 고이다.“

첫째 고고(苦苦)란
괴로움의 괴로움이란 의미로서, 인간의 감각적인 괴로움을 의미한다.

즉, 육체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 육체가 직접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맞아서 아프다던가,

병으로 몸이 아프다던가, 배고파서 겪는 육신의 괴로움,

그리고 추워서 느끼는 괴로움 등을 말한다.

둘째로 행고(行苦)란
행의 괴로움이란 의미로서, 변하기 때문에 겪는 괴로움이다.
삼법인 중 제행무상의 진리 때문에 오는 괴로움으로,

모든 것이 항상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의미한다.
이 괴로움이 바로 불교의 고성제에서 말하는 괴로움과 가장 가까운 괴로움이라 할 수

있다.

즉, 불교에서 괴로움이라고 하면,
육체적 괴로움이나 혹은 다른 어떤 괴로움을 의미하기보다는, 일체 만유는 항상하지 않고

반드시 변화한다는 진리에 따른 괴로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며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괴로움이며,
늙고 병들어 예전처럼 한 십 년 정도 젊어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괴로움 등이 모두 행고에 해당된다. 또한 사랑하던 이와의 사랑이 늘 계속되길

바라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짐에서 오는 괴로움,
돈이 항상 할 것 같고, 명예가 항상할 것 같고 권력이며, 지위, 계급, 사랑이 항상할 것 같고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 항상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변화하게 마련이라는 데서 오는 괴로움 등이

모두 행고이다.

우리가 흔히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생, 노, 병, 사의 인생 사고(四苦)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로 괴고(壞苦)는

부서짐의 괴로움이라는 의미로서, 항상하기를 바라지만 일체의 법은 항상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부서지게 되는,인간으로 말하면 죽음의 괴로움이다.

자연은 성(成), 주(住), 괴(壞), 공(空)하여 반드시 변하여 부서지게 되고,

인간은 생, 노, 병, 사,하여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재에는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없어졌을 때 느끼는 괴로움도 괴고에 속하는데,

이는 우리가 재물, 지위, 혹은 명예 등을 상실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다.

말하자면, 돈이나 나의 소유물 등이 인(因)과 연(緣)이 다해 나에게서 멀어질 때 느끼는

괴로움도 바로 이 괴고에 속한다. 이러한 괴로움 등은 괴고이면서 동시에 행고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항상하지 않고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경전에서는 괴로움의 성격상 세 가지로 나누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불교에서 말하는

대표적인 고(苦)가 바로 사고(四苦)와 팔고(八苦)의 교설이다.

경전에는,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늙는 것은 괴로움이다.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며, 죽어야 하는 것 또한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다.

원한이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것 또한 고통스럽다.
구하나 얻어지지 않는 것도 고통스러움이니,

요컨대 번뇌의 수풀 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내 몸이 존재하는 것이 고통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진리이다. 라고 설함으로써 여덟 가지의 괴로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생(生)은 태어나는 괴로움이며, 노(老)는 늙는 괴로움,

병(病)은 병드는 괴로움, 사(死)는 죽는 괴로움으로 이상 네 가지를 사고(四苦)라고 한다.
여기에 다시 네 가지 괴로움을 더해 팔고(八苦)라 하는데 그 네 가지란
원증회고(怨憎會苦)로 미워하는 대상과 만나는 괴로움,

애별리고(愛別離苦)로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구부득고(求不得苦)로 원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고,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오음이 치성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오음이란 오온(五蘊)을 말하는 것으로 오음성고란 ‘나다’라고 아상(我相)을 내세우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몸과 마음의 괴로움으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생노병사 네 가지 괴로움은 몸의 괴로움이며 원증회고, 애별리고, 구부득고의 세 가지는

마음의 괴로움이고, 마지막 오음성고는 오온이 치성함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몸[色]과 마음[受想行識]의 괴로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팔고`의 시발점은 생고(生苦)에 있으며, 

나머지 일곱 가지의 괴로움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생기는 부수적인 괴로움인 것이다.

태어나는 것이 무슨 고(苦)인가 하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팔고(八苦) 중 가장 큰 괴로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괴로움이라기보다는 가장 근본이 되는 괴로움이라 할 수 있겠다.
만일 태어나지 않았다면 늙고 병들고 죽는 등의 괴로움이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누구나 괴로움이라고 인정하겠지만,

혹 어떤 사람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 말고, 그와 반대의 개념 즉, 젊고, 건강하고, 살아있다는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할 것이다.

젊고 건강하고 살아있다는 즐거움도 있는데
왜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인생은 고(一切皆苦)다’ 라고만 하는 것인가.

이것은 한 두 가지의 편협한 경우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이 나온 것인데,

사성제의 고성제는 인생 전체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결코 어느 한 단면만을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단면만을 본다면, 젊은 것, 건강한 것,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것, 원하는 지위, 재물, 명예 등을 얻어서 즐거운 것들을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생 전체를 보면 우리는 결국에 가서 ‘늙음과 죽음’이라는

궁극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즐거움의 바탕에는 늙음과 죽음이라는 괴로움이 깔려 있고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병들어야 하는 괴로움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누구도, 살아가면서 병 때문에 한번쯤 괴로워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지만 막상 병이 육신을 엄습해 오면, 그 괴로움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끼기 힘들 것이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으면 모두를 잃은 것이다.'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건강할 때 항상 감사하며 살 일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생, 노, 병, 사의 사고(四苦) 말고도,
네 가지 괴로움이 더 있으니, 이를 합쳐 팔고(八苦)라고 한다 하였다.

그 첫째가 사랑하는 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이다.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물건 등은 영원히 나의 것으로 할수 없고 언젠가는 나와 멀어지게

마련이다.

한창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던 두 남녀가 언젠가 그 중 한 명이 죽는다던가,

다른 이성과 눈이 맞아 헤어지려 한다면 이 괴로움은 그야말로 죽는 괴로움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
그러니 이런 연유로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부모, 형제, 친지,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괴로움도 `애별리고`이다.
또한, 사람과의 일이 아닌, 물건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이다.
어떠한 물건에 집착이 많을수록, 그 물건이 없어졌을 때 우리의 괴로움은 큰 것이다.

`원증회고(怨憎會苦)`는 원망스럽고 싫은 것과 만나야 하는 괴로움을 말한다.
보기 싫은 사람, 얼굴만 보아도 화가 나고 답답하고 혹은 두려운 사람들과 항상 만나야 한다면

그보다 괴로운 일은 없다. 

군생활 중에 보기 싫고 두렵기까지 한 선임병 때문에 너무 괴로운 나머지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군에서 자살하는 경우를 보면
첫째가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에서 오는 괴로움 때문이고,

둘째가 미워하는 이와의 만남에서 오는 괴로움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구부득고(求不得苦)`는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이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과연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심지어 축생들조차 많든 적든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얻으려고 하는데 비해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쉽게 마냥 얻을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구해지지 않으면 속상해 하고 괴로워한다.
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원하고, 수행하는 이들은 깨달음을 얻으려 하고,

사업가는 사업이 번창하기를 원하며, 정치가는 최고의 권좌에 오르길 원한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주위에서 보면
돈이며 명예, 지위 등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며 부러워하겠지만,

그 입장이 되어 보면 보다나은 그 무언가를 계속해서 얻으려 하고, 얻지 못해 괴로워하게 마련이다.

이렇듯, 우리들이 얻고자 하는 욕구에 비해서 그 모두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 모습과 환경 일체에 마냥 만족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바라는 마음이 끝이 없고, 그것이 모두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괴로워한다.

마지막으로 `오음성고(五陰盛苦)`는

오온(五蘊)이라는 인간의 구성요소에서 오는 괴로움으로 색, 수, 상, 행, 식의 오온이 치성하는 데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다시 말해 오온, 즉 ‘나다’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으로,
‘나다, 내 것이다, 내가 옳다, 내 마음대로 한다’ 하는 상(相)을 가지기 때문에 그만큼 괴로움이

오는 것이다. 이 오음성고는 앞의 일곱 가지 괴로움을 포괄하고 있는 괴로움이기도 하다.

오온, 즉 ‘나다’ 하는 데에서 모든 괴로움이 오는 것이지, 나다’ 하고 고정지을 것이 없다면

괴로움이 붙을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온, 즉 ‘나다’ 하는 데에서 모든 괴로움이 오는 것으로 괴로움의 주체는 바로 ‘나’ 인 것이다.

‘나다’ 하는 데에서 모든 괴로움이 오는 것이지 내가 없는 마당에 누가 괴로울 것인가.

‘나’ 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안다면 괴로움이 붙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색욕과 더불어 육신을 좀 더 편안하게 하려는 욕심으로, 

항상 부지런히 일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
좋은 느낌만을 가지고 싶지만 주위의 인(因)과 연(緣)의 경계 따라 싫은 느낌을 받는데서 오는

괴로움 등 육체와 정신에서 오는 괴로움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나다’ 라는 상을 여의면 사라지는 괴로움인 것이다.

 

오음성고의 괴로움 타파는 아상(我相)이 타파되고,

그렇기에 괴로움을 여의고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오온이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공(空)하다는 사실을 올바로 조견(照見)할 때

이 괴로움은 소멸되는 것이다. 오음성고의 괴로움이 소멸되면 일체 모든 괴로움이 소멸된다.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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