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교사와 법문(法文)
허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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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文)에 대한 정의를 보면 아래와 같다.
*국어사전 ; 불경의 글.
* 불교학 대사전(홍법원) ; 불교의 교리를 담은 문장. 곧 경전 등의 글.
법문의 사전적 의미는 위와 같다.
그르므로 법문이란 부처님의 말씀을 적은 경전상의 글을 인용하거나 부처님이 설한 교리문장을
말이나 글 또는 그림으로 대중들에게 전하는 일을 법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문을 하는데 반드시 정해진 사람이 있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실적에는 부처님이 말씀하셨고 부처님이 몸이 불편하신 경우나 현지에 없을 경우에는 사리불이 대신 부처님의 말씀을 설하기도 했다. 이를 부처님이 들으시고 당신의 법에 맞으면 옳다 옳다하고 긍정하고 칭찬하셨다.
부처님 사후에는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구술하고 함께한 모든 대중스님들이 그 내용의 사실과 증감여부를 점검하고 대중의 합의하에 교리를 통일하였던 것이 제1차 결집이다.
오늘날 스님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법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반드시 스님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야만 법문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스님의 손이라고 해서 달이 되고, 문둥이가 가리키는 손이라고 해서 달의 실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달을 가르켜야 하는데 별이나 구름을 가르켜서는 않된다는 데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의 본질인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일예로 유마거사의 진리에 대한 가르침은 스님이 아니기에 법문이 아닌 것인가.
그럼 왜 유마경이라는 경전이 나왔는가?
법이란 광의의 의미에서는 자연과 우주의 진리에 대한 바른 견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포교사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을 포교사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곧 법문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법문은 스님만이 하는 것이고 포교사가 법문을 하면 무슨 큰 일이나 나는 것처럼
인식하는 불교인이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스님과 포교사의 종자가 다르다는 인식이다.
화엄경에도 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고 했는데 이런 경전의 말씀이 특정한 사람들의 아상과 편의에 의해 마음대로 재단되는 경우를 종종본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고 스님과 포교사 다르다면 어떻게 스님이나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이는 마치 개나 고양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신분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체득을 얼마나 자기화하고 일체화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내가 불교를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것은 기독교처럼 고정된 사고나 계급의식이 없기때문이다.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평등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포교사 가운데는 스스로를 중생으로 못박아 놓고, 스님과 중생을 구분하고 편을 가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성불은 계급이나 신분이나 직위에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부처님은 고구정녕 말씀하여 오신 것이다.
불교가 보다 도약하고 발전하려면 이런 좁은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안주하고자하는 사고의 틀부터 깨트려버려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언행의 일치와 여법한 포교와 수행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지 신자와 포교사, 포교사와 스님, 스님과 부처를 갈라놓는 계급아닌 계급속성에서 하루 빨리 탈피하여야 할 것이다. 殺佛殺祖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이 새겨보았으면 한다.
경직되면 관료화하고 관료화되면 반드시 퇴보하고 부패한다.
- 3월 23일 지우 허태기 합장 -
- 김영만 공감의 글 감사드립니다. _()_ 2012-03-24 12:00
- 허태기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_()_ 2012-03-25 00:55
- 이창영 지우 포교사님의 좋은 글에 동감합니다. 2012-03-29 02:20
- 허태기 감사합니다. 성불하세요. _()_ 2012-03-29 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