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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영국사양산팔경풍광 天台山寧國寺陽山八景風光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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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台山寧國寺陽山八景風光


碧樹雲霧鎖天台(벽수운무쇄천태) 푸른숲 운무 섞여 천태산에 잠겼는데


奇岩如畵俺九折(기암여화엄구절) 기암절벽 그림같아 구비구비 휘감겼네


泰山俊領走競馬(태산준령주경마) 태산위의 준봉들은 말달리듯 경주하고


銀杏蓮燈繞寧國(은행영국요영국) 천년 은행나무 초파일연등 영국사를감싸안네


鳳凰降仙舞松湖(봉황강선무송호) 강선대의 봉황들은 송호에서 춤추고


龍失如意陽山歌((용실여의양산가) 여의주 잃은 청룡 양산가를 부르짓는구나


薄醉飜思境靜對(박취번사경정대) 양간 취해 생각날려 고요한 경계 대하니


五行到此便宣體(오행도차편선체) 이내몸이 도취되어 떠나갈 줄 모르겠네


내고향 忠北永同 양산팔경을 漢詩로 노래함.
道宣 강길형 合掌

  • 허태기 고향의 풍광을 멋진 한시로 절묘하게 표현하셨네요. 한시를 엮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2012-04-06 07:59 댓글삭제
  • 강길형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陽山面) 천태산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창건시기 신라 문무왕 8년
    창건자 원각국사
    소재지 충북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
    ↑ 영국사 만세루 /

    본문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8년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제32대 효소왕(孝昭王)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려 제23대 고종(高宗) 때 감역(監役) 안종필(安鍾弼)이 왕명으로 탑 ·부도 ·금당(金堂)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고 하였다. 영국사로 부르게 된 것은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에 원(元)나라의 홍건적(紅巾賊)이 개성까지 쳐들어와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몽진(蒙塵)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였다. 마침내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무찌르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게 되자 왕이 기뻐하며 부처에게 감사드리고 떠나면서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었다.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洗師國師)가 산명을 지륵, 절 이름을 영국이라 명명하였다고도 전한다.

    주요문화재로는 보물 제532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533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534호인 원각국사비, 보물 제535호인 망탑봉 3층석탑(望塔峯三層石塔)이 있다.
    [출처] 영국사 [寧國寺 ] | 네이버 백과사전
    2012-04-06 08:11 댓글삭제
  • 강길형 감사합니다,고향을 사랑하는 詩 사향思鄕도 즐거웠습니다. 2012-04-06 08:57 댓글삭제
  • 강길형 영국사는 고려 공민왕 이전에는 국청사였으며 현재 中國 折江省 천태산 國淸寺는
    隋나라때 천태지의 대사가 주석하면서 교상판석을 집필한 유서깊은 사찰이며
    현재 우리나라 천태종 중흥조 상월원각 조사상도 이곳 국청사에 봉안된 사찰이다.
    2012-04-07 05:11 댓글삭제
  • 김혜숙 한시로 엮으신 "천태산영국사양산팔경풍광" 가본듯 절경입니다.
    여러번 반복하여 감동으로 읽습니다._()_
    2012-04-07 20:47 댓글삭제
  • 강길형 감동을 더하여 여러번 읽으신다니 감사하고
    또한 좋은 詩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도선_()_
    2012-04-08 21:01 댓글삭제
  • 강길형 문무왕(文武王) 신라 제30대 왕(재위 661-681). 이름은 법민(法敏)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맏아들 어머니는 김유신(金庾信)의 누이인 문명왕후(文明王后) 김씨 비(妃)는 파진찬(波珍찬) 선품(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이다 법민은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智略)이 많은 사람으로 655년에 태자로 책봉되었고 661년 무열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하였다 662년(문무왕 2)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쳤으나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실패하였고 그 후 복신(福信). 도침(道琛)등의 백제 부흥 운동을 저지 하였다.
    668년(문무왕 8)에 재차 나. 당 연합군을 형성하여 고구려를 쳤는데 왕제
    (王弟) 인문(仁問)은 당나라의 이적(李勣)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677년(문무왕 17)그 세력을 몰아내고 대동강(大同江). 원산만(元山灣)
    이남의 땅을 차지하는 삼국통일(三國統一)의 대업(大業)을 완수 하였다
    681년(문무왕 21)에 왕이 죽자 유언에 따라 화장한후 지금의 경상북도 월성군(月城郡)양북면(陽北面) 용당리(龍堂里) 감은사지(感恩寺址)앞 바다에 있는 동해 대왕암에 안장 하였다.
    자료출처 : 대한민국5000년사 역대왕조실록
    2012-04-09 08:30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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