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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澈스님 칼럼]--夫唱婦隨로 과거 대한민국을 부정한 한면숙은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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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은 국민을 너무 우습게 보았다!
간첩 사건 前歷者가 대한민국에 감사하고 자중하였어야지!
이법철(스님)   
 웃지 못할 코메디에 기만당해선 안돼
 
 19대 총선은 이제 박근혜(전 대표)가 앞장 선 對국민 호소가 주효하여 정부 여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민주 통합당의 패인을 분석해보면, 온전히 박근혜의 공덕만은 아니다. 외부 북한정권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 탓도 있다. 하지만 거의 한명숙 대표가 스스로 자행한 自作自受(자작자수)같은 정치포석이 패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명숙 자신이 夫唱婦隨(부창부수)로 과거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종북하는 통혁당의 전력을 뼈속깊이 자성했다면, 이제 자신이 직접 정권을 거머쥐고 대한민국을 요리하려는 허황한 꿈을 펼쳐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 요리사에 기만당할 국민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韓明淑
 
 한명숙은 대한민국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할 幸運兒(행운아)같은 여성 정치인이다. 한명숙과 남편이 간첩사건으로 옥고를 치루고, 남편은 십수년이라는 감옥에서 인과의 수형생활을 한 전력이 있지만, 부부는 아직까지 자신들의 대한민국 반역에 대해 ‘전향서’를 국민에게 진솔하게 보여주지 않았다. 남편은 대한민국 반역의 초심을 고집해서인지, 팽택 미군기지 반대 등 도처에서 직간접으로 대한민국을 향해 도끼질을 쉬지 않고 있다. 그의 반역은 현재 진행형이어서, 죽어야 종지부를 찍을 것 같다. 한명숙이 색깔이 동패같은 노무현으로부터 국무총리까지 선택되어 활동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닌가?
 
 속담에 “말을 타면 경마를 하고 싶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딱 맞는 정치인이 있으니 한명숙이다. 그녀는 첫째, 떳떳하게 과거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는 전향서를 국민을 향해 밝히고, 둘째, 속죄의 마음으로 누구보다 대한민국 번영을 위해 헌신하는 충의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총리까지 했으니, 조금 노력하여-부군의 대한민국 도끼질을 보호해주고-대통령까지 꿈꾸었다면, 그것은 첫째,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한 길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바쳐오는 무명의 애국자들의 면상에 가래침을 뱉는 것과 진배 없고, 둘째,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충의를 다 바치는 국민들에게 웃지 못할 코메디를 보여주며 기만책을 쓰는 것과 하등 다를게 없다.
 
 민주 통합당의 총선 승리를 진심으로 바랐다면, 한명숙은 정신나간 자들이 추천하고 권고해도 민주통합당의 대표직을 고사했어야 현명했다. 민주 통합당 안에는 일부 종북주의자가 없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을 조국으로 굳게 믿고 실천하는 애국지사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종북주의자들이 목소리가 커서인가, 선택한 대표가 한명숙이다. 그가 국립묘지안에 황금색 곤룡포를 입고 누워있는 DJ의 무덤앞에 신통력을 부르는 애소를 해도, DJ의 詐欺力(사기력)이 두 번 다시 국민을 기만할 수는 없다. 간첩 사건 前歷의 소유자가 총리도 되고 정권을 잡으려고 “국민 승리”를 외치며 무탈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한명숙은 죽기 전에 감사의 인사를 할 수 있는 통 큰 여성이 되기를 바란다.
 
 천하의 잡배를 공천한 것이 패인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 후보를 “십만 選良(선량)”이라는 말을 써왔다. 10만 명 가운데 가장 좋은 선량이라는 뜻이다. 한명숙은 유명세를 탄다는 이유로 천하에 둘도 없을 잡배중의 하나를 19대 총선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 그것이 패인의 하나이다. 시중의 대중 좌석에는 음당패설로 좌중을 웃기는 자가 있다. 사람들은 그 음담패설에 배를 안고 웃음을 터트리지만, 도가 지나치면 음담패설가를 순식간에 상종해서는 안될 잡배로 치부해버린다. 그들이 웃고 환호하고 박수치는 것은 대리 심리만족일 뿐 존경해서가 아니다.
 
 김용민을 보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조계종에 한 때 승려생활을 한 ‘걸레 重光(중광)’이다. 그는 한 때 선수행을 하는 납자였지만, 어느 날 돌변하여 사찰의 불상, 탱화, 등 불교문화재를 속인들에게 팔아넘기는 웃지 못할 자로 돌변해버렸고, 그는 그 인과로 중징계를 받아 조계종을 떠나야 했다. 그후 그는 여성복장을 하고 입술에 붉은 연지를 바르고 다녔고, 말, 염소, 개, 닭까지 성교를 해봤노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전직 승려가 獸姦(수간) 체험을 보고하니 국민이 박장대소 하는 것은 물론이다. 금방 스타 아닌 스타가 되었다.
 
 중광은 자신의 남근에다 붓을 달고 화선지에 ‘佛字(불자))’를 썼다. 그런 가운데 미국의 랭카스트 교수가 “동양의 피카소”라고 추켜세웠다. 그것은 다분히 조롱이었다. 그런데도 중광은 불세출의 예술가로 돌변해버렸다. 그가 남근으로 쓴 佛字는 값이 천정부지였다. 불임여성이 그 불자를 소지하면 대통령, 대장감이 나온다는 유언비어도 나돌았다. 참된 예술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뼈를 깎는 난행고행이 있는 것이다. 그는 만년에 정신이상이 와서 헤매다가 죽었는데, 인제군에서는 거액의 국민 혈세를 들여 기념관을 지어 선전하고 있다. 그 기념관에는 남근에 붓을 단 중광의 사진도 전시하고 있다. 중광은 온 국민을 마음껏 조롱하며 웃지 못할 코메디를 벌이고 죽었다.
 
 김용민에게도 랭카스트 같은 교수가 있으니, 서울대 법학전문대 모 교수이다. 교수라면 남보다 학업과 수양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지구촌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자를 추켜세우니, 누가 그 교수를 師道(사도)를 걷는 자라 하겠는가? 동패일 것이다. 한명숙이 김용민을 교체하지 않은 것은 국민을 보노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패인의 하나이다. 그러나, 김용민은 나이가 있으니 희망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회개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고, 불교에서는 한 생각 돌이키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막말로 유명세를 얻는 것이 아닌 진지함과 함께 대한민국을 사랑하여 민심을 얻는 다면, 그가 국회의원은 물론, 대통령까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김정은의 로켓발사도 패인
 
 19대 총선에서 북한정권은 북한정권에 호의적인 민주 통합당, 기타 종북 정당들이 선전을 하는 데, 뜻박에 원치 않는 북풍을 일으켰다. 선거 투표일을 앞 두고 미사일 발사를 한다는 강행 예고였다. 그것은 종북주의자들에게는 전국적으로 지지표가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효과를 만들었다. 돈주고, 쌀주고 개성 공단 등에 지원을 해도 언제 도움이 있었나? 하는 안면몰수로 대한민국을 향해 기습 학살을 해오는 환상이 보이는 추잡한 작태였고, 국민은 분노하여 종북정당을 외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결과는 어떤가? 1조가 넘는 돈을 허공에 날렸고, 국제사회에 더욱 고립을 자초했으며, 기아로 고통받는 북한인민들의 김정은에 대한 타도 원성은 충천해졌다.
 
 북한정권은 대한민국에서 국제적 축제행사가 있을 때면, 핵실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분풀이를 표시했다. 똥싸는 놈 주저 앉히기, 호박에 말뚝 박기, 등 온갖 못된 짓을 했다는 놀부의 심사처럼 그동안 잊을 만 하면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하듯 하고, 오리발을 내밀어 온 북정권의 공작사는 이제 대한민국 兒童走卒(아동주졸)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김정일이 사망했으면 그 못된 짓이 끝나고 남북이 평화속에 공존하리라 전망했지만, 이번에 김정은도 아비의 前轍(전철)을 따라 미사일 발사로 1조원의 돈을 낭비했다. 결과적으로 김정은은 총선에 종북정당을 엿먹였다. 북한정권은 미사일발사가 총선에 아군이 이로운 것인지, 적군이 이로운 것인지 분석의 식별력이 전무한 것같다.
 
 이제 대한민국은 YS, DJ, 노무현, 잃어버린 15년사에서 대통령의 권력으로 대한민국은 돌변해버렸다. 대한민국을 향한 반역질 한 자들은 민주화의 유공자가 되어 국민혈세로 고액지원을 받는 세상이요, 예컨대 ‘6,25 전쟁’때 대한민국을 수호한 국군은 추억의 훈장과 모멸감속에 설렁탕 한 그릇 값도 안되는 5000원의 보상금을 받아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종북주의자들이 좌익의 본색을 숨기고, 더욱 민주화를 외치며,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 각종 문화행사로 군중폭동이 예상된다.
 
 끝으로, 19대 총선도 前生事(전생사)가 되어 버렸다. 一分一秒(일분일초) 전도 전생사이기 때문이다. 19대 총선에서 누구보다 수훈甲은 대한민국을 걱정하면서 투표한 애국남녀들이다. 기립박수로서 경의를 표한다. 우리는 결코 웃지 못할 좌파의 코메디에 기만당하지 말고, 대한민국 수호자가 대선에서도 승리할 수 있도록 단결해야 할 것이다.◆
 
 
 
 

  • 허태기 오늘날과 같은 시국에 대한민국에 무슨 빨갱이가 있고 좌익이 있느냐고 그들의 실체를 감싸는 교묘한 좌익분자나 여기에 덩달아 춤추는 얼뻥한 국민들에게 칼날같은 예리한 지적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생계문제로 좌익분자들의 실체에 무관심하고 알려주는 정보도 그다지 없는 마당에 강길형 포교사님의 글은 참으로 국가안녕과 체제수호를 위한 자명고와 같은 정론을 펼쳐주심에 새삼 감사를 드립니다. 오줌 똥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저같은 얼뻥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는 정보입니다. 2012-04-15 17:22 댓글삭제
  • 허태기 이런 정보는 내가 살고있는 이 나라를 지키기위한 국가안위를 위해서라도 제가 아는 카페에 퍼 나르도록 하겠습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사실은 알려야 할 것입니다. 위의 글들은 종북좌익 추종자들에게는 비수와 같은 내용이라 아주 싫어할 것입니다. 그 자들이 제일 먼저하는 소리가 친일정부 운운하면서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국가에서 베푸는 의료보험을 비롯 온갖 혜택을 다 누리면서 나라가 뒤집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반역도배들에게는 껄끄럽기 짝이 없는 사실들인 것입니다. 2012-04-15 16:55 댓글삭제
  • 강길형 지우 포교사님 감사합니다,DJ, 김정일,놈현이 깔아놓은 좌파그물에 걸려든
    안철수교수가 문제입니다, 박원순 시장을 앞세워 끈질기게 유혹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한나라당을 반대했던 2030
    세력들도 그들이 요구하는 정책들로 세력을 흡수하겠다고 하였으니까요!,
    좌빨세력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목숨걸고 막는 이유는 우리의
    종교신앙이 사라지기 때문이죠!,
    2012-04-15 19:22 댓글삭제
  • 강길형 선거전문가, "문성근 잡은 건 조영환의 殺身成仁"

    자신의 당선은 포기하고, 문성근의 반역적 종북성 폭로에 全力투구,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다./趙甲濟

    어제 선거-여론조사 전문가 李東昱씨(전 월간조선 기자, 한국 갤럽 간부)를 만났더니 '낙동강 벨트가 赤化되는 걸 막은 사람은 조영환씨(부산강서을, 자유선진당 후보)다'고 평가하였다. 논리와 거친 말솜씨를 겸한, 우파의 대표적인 거리 투사 조영환씨가 비록 3등을 했지만 문성근 후보 공격에 주력, 새누리당 김도읍씨의 당선과 文씨의 낙선에 결정적인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후보자 TV 토론을 봤다는 李씨는 '문성근씨는 조영환씨의 맹공에 압도당하여 기가 꺾이더라'고 했다. 조영환씨는 이 토론에서 文 후보의 이른바 '백만민란'이 지닌 종북적 반역성을 파고들어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 토론회가 현지에서 입소문으로 번진 것이 한때 앞서나가던 문성근씨가 득표율 45%로 패배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李씨는 여러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 당선자를 낸 전문가인데, '이념적 확신을 깔고서, 자신의 당선을 포기하고서라도, 主敵의 당선을 저지하는 데 올인한 조영환씨의 경우는 한국 선거사상 처음일 것이다. 보수대연합의 한 모델이 되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파 인터넷 신문 올인코리아 편집인 출신 조영환씨는 지난 1월18일 참깨방송 인터뷰를 통하여 '문성근 잡기 위해 부산 간다'고 선언하였다. 경북 울진이 고향이고 강릉에서 살고 있는 그는 무소속 출마를 결심, 일찍 부산 강서乙로 내려가 선거 사무소를 열었으나 무소속으로는 선거운동에 한계가 많다는 걸 절감, 자유선진당 공천을 받았다. 종북좌파 세력과 거리에서 결투해온 조영환씨는 동지적 결속력이 강한 10여 명을 데리고 내려가 오직 문성근 공격에 집중하였다. 배우 출신 문성근은 화려한 멘토단을 자랑하였으나, 文씨를 공동체의 敵으로 보는, 신념에 찬 조영환 부대를 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백만민란 선동꾼은 국회 아닌 감옥으로'라는 조영환 후보의 구호가 섬뜩하였을 것이다.

    조영환씨는 선거기간중 매일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운동상황을 전해주었다. 그의 고민은 '내가 너무 잘 나가면 우파분열로 문성근이 당선된다'는 것이었다. '유권자들에게 문성근의 정체, 특히 백만민란의 반역성을 폭로하는 데 선거운동을 집중하겠다'고 했다.

    조영환씨의 대중연설은 애국심과 정의감에서 우러나는 '고급 욕설'이 많지만 내용이 좋다. 미국 하버드, 예일, 버클리 등 유수한 대학에서 제대로 정치, 사회 분야를 공부한 바탕에다가 지난 10년간 치열하게 종북세력과 싸운 체험이 있다. 그의 屋外연설은 듣는 이들에게 통쾌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

    이런 실력이 문성근 잡는 데 동원되었다. 새누리당 김도읍 후보는 검사출신인데, 종북세력과 싸워본 경험이 없으니 조영환씨의 역할은 절묘한 보완이었다. 조영환씨는 선거기간중 김도읍측과는 일체 접촉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러 피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문성근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집중하였다. '문성근을 잡는다'는 목표와 大義에 충실하니 자연스럽게 보수연대가 이뤄진 것이다. 조영환씨의 활약상으로 문성근씨의 이념적 정체성이 드러나면서 앞서 나가던 그의 지지율이 떨어졌다. 보통 생활인들은 이념문제에 관심이 적다. 누군가는 쉬운 말로 설명해주어야 각성된다. 조영환씨가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문성근씨는 이런 사태를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노무현 진영의 스타(진짜 영화배우이기도 하다)는, 제대로 이념공세를 당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을 것인데, 너무나 버거운 상대를 만난 것이다. 李東昱씨는 '텔레비전 토론회 때 조영환씨에게 당하는 문성근씨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게임이 거기서 끝났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조영환 캠프 사람들은, 야간에 활동하는 문성근 지지자들까지 좇아다니면서 철저하게 기를 꺾는 싸움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지난 4월11일 오후 투표를 끝낸 조영환씨는 나에게 전화로 '김도읍 후보가 크게 이길 것이다'고 자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당선처럼 기뻐하였다.

    '11일 밤 바로 곁에 있는 김도읍 당선자의 사무실에 가서 당선을 축하를 해줬습니다. 많은 김도읍씨 운동원들이 KBS, YTN 등 방송 카메라들이 있는 가운데 '조영환'을 연호하더군요.'

    이틀 뒤 조영환씨는 조용히 현장에서 철수, 자신의 거주지인 강릉으로 돌아갔다.

    조영환씨의 殺身成仁이 없었더라면 문성근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언론은 문재인-문성근이 낙동강 전선을 확보하였다고 추켜주어 親盧세력의 得勢를 도왔을 것이며 4.11 총선을 자신들의 승리라고 해석하였을 것이다.

    조영환씨는 전략적 선거구에서 결정적 역할로 낙동강 戰線을 지켜낸 셈이다. 인간이 私心을 버리고 애국심과 正義感을 따르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기분좋게 증명하였다.
    그에게 전화로 '선거비용은 어떻게 되었나'라고 물었더니 '선진당이 고맙게도 등록비용을 대주었고, 결산하니 3000만 원 정도 빚을 졌다. 집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유쾌하게 말하였다. 자기 돈 써 가면서 애국하고 빚을 지고도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게 애국세력의 저력이다.

    전략과 이념과 大義에 충실하면 저절로 大同團結, 白衣從軍, 分進合擊이 이뤄진다는 것을 실증한 희귀한 사례였다.

    조영환씨는 당선이 아니라 문성근 낙선을 목표로 삼고 여기에 충실하였으므로 성공한 것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YOUTUBE.COM'에서 분투중인 참깨방송(김종환 대표)이 선거기간중 조영환씨의 활동상을 충실하게 보도한 점이다.
    진실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언론의 큰 역할이었다. 조영환씨의 표현대로 참깨방송은 '낙동강戰線의 종군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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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근 잡으러 갔던 조영환의 戰勝報(전승보)


    내 평생에 이렇게 머리를 많이 짜내고 힘을 모은 싸움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조영환

    2개월 동안 낙동강 전선을 지키면서


    여러 분들의 성원과 후원으로 백만民亂세력은 진압되고, 내 구역 낙동강전선은 잘 지켜졌습니다.
    조영환이 달려든 북강서乙은 지켜졌는데, 이웃 사상구 손수조는 공천이 잘못되어서 무너졌습니다.
    11일 밤 바로 곁에 있는 김도읍 당선자의 사무실에 가서 당선을 깊이 축하를 해줬습니다.
    많은 김도읍씨 운동원들이 KBS, YTN 등 방송 카메라들이 있는 가운데 '조영환'을 연호했습니다.
    나는 '김도읍은 스타다'라고 축하했습다.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봐 선거기간 내내 일체 접촉하지 않은 김도읍 후보를 축하해줬습니다.
    김도읍 당선자는 꼼수를 모르는 검사 출신의 官運이 매우 좋은 착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머리를 많이 짜내고 힘을 모은 싸움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온갖 변수들을 고려한 두 달 간의 전쟁은 사무실에 전기장판을 깔고 침낭에서 자면서 이뤄졌습니다.
    정식 방에서 거의 두 달이나 자지 못한 야전생활이었죠.
    서울에서 내려운 아스팔트 동지들이 1당 100으로 상대 운동원들과 싸워줬습니다.
    김명기, 신길승, 권신웅, 배성관, 류인근 등 아스팔트 우파들은 좌익과의 싸움에는 범들이었습니다.

    한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서 낙동강전선 死守의 중요성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좌익선동세력의 제압에 지혜와 역량을 모았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한 아스팔트 애국동지들은 역시 탁월한 판단력, 행동력, 전투력을 가지고 나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라 줬습니다.
    하늘의 군대도 아마 저의 동지들보다 더 잘 싸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백만民亂세력은 우리의 출현 때문에 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서,
    낙동강 허물기 전투에 큰 차질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선거 중에 정재학이 부산선관위에 나의 학력이 허위가 아니냐는 이의제기를 해서, 하버드와 예일의 라틴어 졸업장을 다시 번역하고 하버드와 예일에서 온 편지봉투까지 24만원을 들여서 공증받아 부산선관위에 내기도 했습니다. 스토커 때문에 이중으로 지불한 돈이 무척 아까워서 선관위에 짜증을 내기도 했죠.

    내가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 데에 매우 유익하다는 판단이 현지에서 내려졌는데, 개뿔도 모르는 자칭 우파활동가들이 나보고 사퇴하라고 닦달하는 것을 보고, 몽상한 애국팔이들의 허구성을 뼈저리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우리 아스팔트 동지들은 오늘 기쁨에 잠을 자지 못하고 무용담을 즐기다가 밤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차차 망국귀신과 싸우면서 낙동강전선 지킨 싸움을 자세히 적고 싶습니다.
    후원금을 내어주신 여러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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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성근 잡기 위해 부산 간다


    4월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결심한 조영환 前 올인코리아 대표가 1월18일 오후 과 가진 긴급 인터뷰 동영상
    조갑제닷컴/참깨방송


    조영환 前올인코리아 대표
    美國의 國父이자 뛰어난 政治家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일시적 안전을 얻기 위해 본질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자유도 안전도 누릴 자격이 없다”고 했다. 記者라는 직업의 특성상 다양한 부류(직업, 성격, 나이)의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從北세력이 이렇게 날뛰니 올해 총선-대선은 물 건너갔다”는 장탄식이다.

    이들 중에는 愛國인사, 愛國단체의 활동에 대해 인색한 자칭 保守인사들도 적지 않다. 아스팔트에서 從北세력과 온몸으로 맞서 싸워온 사람들을 ‘꼴통’으로 치부하는 묘한 정서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運이 좋아 정부 관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中道인사가 되거나 아예 保守진영과의 관계를 끊기도 한다는 것이다. 개중에는 김정일이 사망하자 電光石火처럼 시류에 편승해 “정부 차원의 弔問은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문성근, 낙동강 방어선을 무너뜨리려 부산 출마

    이들이야말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일시적 안전을 위해 본질적인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希望은 어둠 속에서 시작되고, 일어나 옳은 일을 하려 할 때 새벽은 온다고 했던가? ‘從北킬러’ 조영환 前올인코리아 대표가 무소속으로 19대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趙 전 대표가 출마를 결심한 지역구는 이다. 이곳은 민통당(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자 ‘백만 민란’ 선동가인 배우 문성근이 출마를 준비 중인 곳이다.

    從北세력은 이번 총선에서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 최후의 ‘마지노선’이었던 낙동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겠다는 戰略으로 부산 공략에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민통당 지도부는 18일 취임 후 첫 지역 방문지로 부산을 택해 부산에서 불게 될 민통당의 바람을 三國志 ‘적벽대전’의 동남풍에 비유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문성근은 “내가 출마하게 될 북강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0년에 서울 종로구 당선이 확실한데도 마지막으로 도전했던 지역구라 인연이 깊다. 연고도 없고 태어난 곳도 아니지만 정말 정책으로 접근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겠다”고 했다.

    마음은 늘 北에 있고 몸만 南에 있는 從北세력

    민통당 원내대표 김진표는 三國志를 예로 들면서 “한나라당에 백 만 대군이 있다면 민주통합당에는 지혜롭고 용맹한 문성길, 문재인, 김정길, 조경태, 김영춘 장군이 있다. 4월 총선 승리로 부산이 정권교체 이루는 적벽대전 동남풍의 진원지가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지혜롭고 용맹하다’는 민통당 장군들의 그동안 행태를 보면 하나같이 주한미군철수, 국보법폐지, 연방제통일로 압축된다. 대한민국의 국체를 수호하겠다는 장수는 한 명도 없다. 특히 문성근의 경우 ‘남북국가연합’을 하겠다는 인물이다. 머릿속에는 ‘위수김동’과 ‘친지김동’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 하다. 마음은 늘 北에 있고 몸만 南에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北으로 올라가 ‘김정은 애숭이 장군’ 밑에서 인민군 군복을 입고 있어야 어울리는 정치인이다.

    이처럼 다급한 현실을 직시한 趙 전 대표는 그동안 운영해온 인터넷 매체 대표에서 물러났다. ‘낙동강 전선’ 사수에 ‘올인’(All-in) 한 것이다. 趙 전 대표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돈키호테’ 정도로 여긴다. 그러나 지금 趙 전 대표는 누구보다도 진지하다.

    조영환 前대표가 부산 출마를 결심한 계기

    과 은 18일 서울 모처에서 趙 전 대표를 만나 총선 출마의 변과 함께 그를 출마하게 만든 시국상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원래 연고지가 강원도 울진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고 많은 지역구 가운데 경남 부산을, 그것도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의사를 수렴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선거다. 그동안 우리 愛國 右派 단체들이 수많은 집회와 광고를 해왔는데, 직접적인 선거를 통해 정치권에 진입하지는 못했다. 나의 꿈은 원래 全國정치를 하는 것이었으며, 지금 같은 대한민국의 위기가 없었다면 고향인 울진에서 출마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베트남 패망 직전과 같은 理念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左翼은 이념 지향적으로 집단이 통합-강화되고 있다. 반면에 左翼이 아닌 집단은 保守-右翼理念을 포기하고 中道의 이름으로, 또는 中道도 모자라 左傾化 하고 있는 상황이다. 理念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하면서 保守-右翼理念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이 모든 상황이 理念전쟁인 것이다.

    한쪽은 理念을 가지고 싸우는데 한쪽은 理念이 없다고 한다. 이 가운데 理念을 가지고 싸우겠다는 左翼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은 지역이 바로 ‘낙동강 전선’이다.

    지금 이 지역에서는 문성근-문재인-김정길을 위시한 親盧세력들, 理念的으로는 從北세력들이 6.25사변당시 김일성 군대가 허물지 못한 ‘낙동강 전선’을 60년이 지나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남쪽에서부터 左翼들이 부산을 중심으로 서울로 쳐들어 올라가겠다는 冷戰時代의 理念전쟁이 부산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를 막으려 부산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內戰的 상황을 일반국민, 그리고 右翼단체와 中道정당에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과 단체가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다고 해서 문성근-문재인-김정길과 같은 從北세력이 벌이는 理念전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싸움을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해결 방안은 하나뿐이다. 이들이 싸움을 걸어온 이상 싸우는 방법밖에 없다.

    부산은 6.25사변당시 김백일 장군과 같은 愛國者들이 공산군에 맞서 맨주먹으로 싸워 지켜낸 땅이다. 保守-右翼세력에게도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큰 곳이다. 낙동강 전선을 지켜냄으로써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 從北세력이 부산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배후를 치겠다고 하는데, 나라도 이들을 상대로 수류탄 한발이라도 던져야 겠다는 심정으로 출마하게 됐다.

    연고지는 경북 울진이지만 부산은 내 자신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부산 저축은행 비리사건이 ‘광주일고 출신들’에 의해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터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해왔고, 국민행동본부와 함께 직접 부산에 가서 이 같은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얼마 전 ‘희망버스’란 미명 하에 左翼들이 부산의 영도조선소에서 亂動을 부렸을 때 나는 부산으로 달려와 이들과 맞서 싸웠다. 그런데 부산에 연고도 없는 문성근이 부산을 점령해 대한민국에 보복하려 들고 있다. 左翼革命세력이 부산을 휩쓰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다.

    나 혼자라도 가서 從北세력의 부산점령을 저지할 것이다. 그러려면 ‘뱀의 머리를 쳐야겠다’고 생각했고 ‘백만 민란’ 선동꾼 문성근을 상대로 삼았다. 문성근과 같은 부잣집 망나니를 정신적으로 성숙한 어른이 가서 호통을 쳐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사는 재미이고 진정한 정치라고 생각한다. 선택은 부산시민들의 몫이다. 문성근이 주도하는 ‘깽판’이 좋고 ‘백만 민란’이 좋다면 그를 뽑아 업보(業報)를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성근이 反亂者이자 赤化통일의 앞잡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를 뽑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과오는 從北세력 척결실패

    趙 전 대표는 이어 ▲이명박 정부의 공과(功過), 그리고 ▲한나라당의 保守-右翼 이념 포기 문제 ▲現시국의 內亂的 속성 ▲愛國세력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5년의 功績에 대해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 경제가 破滅지경에 다다른 반면, 대한민국 경제는 무역규모가 1조 달러를 돌파해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한 것으로 예로 들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相生의 관계가 아니라 착취와 대립구조로 만들고 있는 左翼세력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趙 전 대표는 “민통당(민주통합당) 지도부가 최근 異口同聲으로 대기업을 비난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해 망할 X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과오(過誤)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을 저주하고 불평-불만 세력을 키운 從北세력을 척결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中道의 탈을 쓰고 中道의 이름으로 가장 해롭게 국정운영을 했다”고 지적했다.

    趙 전 대표는 “대한민국의 상당부분이 이미 左翼들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라며 現시국을 베트남 패망 직전의 內亂的 상황에 비유했다. 시국 상황이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역시 李대통령의 脫이념화를 지목하며 “대통령이 從北인사 한 사람이라도 지목해서 국민들 앞에서 공개 사과하라고 말 한마디만 했어도 상황이 이렇게 惡化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趙 전 대표는 최근 한나라당 비대위의 탈보수(脫保守) 움직임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그는 “지금 한나라당의 소위 쇄신파-소장파-비대위는 자유민주주의 理念을 약화시킨 사람들”이라고 지적한 뒤, 특히 이상돈-김종인 비대위원을 지목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 從北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나라당 비대위 핵심위원 누구인가! 이상돈 교수다. 천안함 폭침 사태가 발생했을 때 누구의 소행인지 분명히 말하지도 못했던 사람이다. 非정상적인 사람이다. 김종인 비대위원 누구인가! 한국 정치판의 대표적인 부패사범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나라당의 도덕성과 정체성을 바로잡겠다고 한다. 이들이야말로 나라를 망치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동안 언론을 통한 집필활동과 더불어 ‘아스팔트 愛國운동’을 지속해온 趙 전 대표는 愛國세력에 대한 애정, 그리고 愛國운동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말했다.

    그는 “右翼단체들이 左翼단체들의 10분의1 군중동원만 가능하면 국민은 우리 편이 될 것”이라며 “나라가 赤化統一 될 것 같다면서 말만 해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 從北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趙 전 대표는 “이를 위해 이번 총선에서 많은 右翼인사들이 출마를 해야 한다. 이들이 선명한 목소리를 낼 때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간판과 구호와 실체가 일치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면서 이날 인터뷰를 마쳤다
    2012-04-15 19:30 댓글삭제
  • 강길형 國會로 진출한 '社會主義 혁명가' 민통당 은수미
    남로당 이후 최대규모 非합법 사회주의 前衛(전위)조직 '사노맹' 출신
    金泌材

    4.11 총선에서 민통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殷秀美(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의 非(비)합법 사회주의 前衛(전위)조직이었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의 핵심인물로 검거됐던 인물이다. 은 씨는 서울대 사회학과 2학년이던 1983년 시위를 벌이다 제적된 후 구로공단에서 미싱사 보조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사노맹에서는 정책실장 겸 중앙위원으로 ‘조 실장’(假名 조명혜)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1992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강릉교도소에서 6년간 복역했다. 당시 독방에서 4년6개월을 지냈으며, 이때 걸린 결핵 때문에 장까지 균이 퍼져 장을 50cm 가량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출소 후 서울대로 돌아가 1998년 학부를 졸업, 1999년 석사, 2001년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2005년 라는 제목의 논문(지도교수: 송호근)을 발표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제의 논문은 노동 계급이 ‘민노당’을 통해 국회에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을 다룬 논문이다. 은 씨는 박사학위 취득 후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사회운동론’ 등을 강의하며 주로 비정규직 문제를 다뤄왔다.

    사노맹은 武裝蜂起(무장봉기)로 대한민국을 타도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밝혔고, 나아가 조직원들에게 군사훈련까지 시켰었다. 조직원 자격기준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궁극적 목표로 하여 武裝蜂起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있는가” 등을 제시했다.

    사노맹은 또 자금마련을 위한 보급투쟁을 했는데, 이를 위해 조직원간 위장결혼식으로 축의금 확보, 친지 가운데 반동적 가정의 재산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착취한 돈이므로 특공대를 투입해 强竊盜(강절도)할 것, 동창·친지·운동권 전력자들을 대상으로 한 후원회를 구성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은수미 민통당 비례대표 당선자
    사노맹은 1988년 12월~90년 8월간 1억1천8백4십만 원을 확보했고, 이 자금은 인쇄소 시설비, 유인물 제작비, 활동비, 아지트 운영비 등으로 사용했다. 사노맹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노맹은 무장봉기로써 대한민국 체제를 타도한 후 노동자 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함으로써 소위 민족민주혁명을 이루어 민중공화국을 수립한 뒤, 제2단계로 반동관료, 독점재벌 등을 숙청하고 토지 기타 생산수단을 몰수, 국유화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이루어 완전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자 계급의 전위정당임…(하략)” (대법원 92도256. 1994.4.24)

    4.11 총선에서 민통당은 은 씨를 이른바 ‘비정규직 문제 전문가’로 영입했다. 2012년 3월22일자 보도에 따르면 민통당 비례공심위 관계자는 “공심위 회의에서 노동문제 중 특별히 비정규직 문제를 다룰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은 후보의 이름이 나오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이어 “안병욱 위원장이 개별적인 루트로 인터뷰를 거쳤다”면서 “은 후보가 관련 정책 입안 능력도 탁월하다는 판단이었고 삼고초려 끝에 모셨다”고 했다.

    또 다른 민통당 관계자는 “사노맹 출신이긴 하지만 이미 사노맹은 그 주동 세력이 종말을 고하지 않았느냐”면서 “은 후보는 비정규직 분야 전문가로 민주당 주최 토론회에도 참석했었고, 黨 노동정책을 입안할 때도 참여해 인연을 맺었다”고 밝혔다.

    김필재(金泌材)/트위터: https://twitter.com/#!/Iron_Alchemist3

    [주] 90년대 중반 안기부는 국내 左翼(좌익)세력을 총 4만2천명으로 파악했다. 구체적으로 대학 등 학원가에 1만8천명, 노동계 1만 명, 재야·종교단체 5천5백 명, 교육·문화·언론계에 8천5백 명이었다. 이들 중 핵심세력은 1만2천명∼1만5천명, 적극 동조세력은 3만 명. 이념성향별로는 주사파 등 NL계는 2만7천명, 사노맹등 PD계는 1만5천명으로 보았다.

    [관련기사] 은수미 연루 '사노맹' 사건의 실체


    조직원만 3천5백 명에 달하는 '사회주의 전위조직'
    정리/金泌材

    ▲사노맹, 勞使현장에서 ‘공장의 혁명 요새화’ 주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은 조직원이 3천5백 명에 달하는 남로당 이후 최대 규모의 非(비)합법 사회주의 전위조직이다. 1989년 11월 결성된 사노맹은 발족 직후부터 유인물을 배포한 것이 단서가 되어 3년 동안 대대적인 수사발표만 2차례나 이뤄졌다.

    이 사건은 1989년 11월 서울시경이 성균관대의 서울민주주의학생총연맹(서민학련)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노맹 출범선언문을 배포하려던 학생을 적발한데서 단서가 잡혔다.

    경찰은 서민학련이 사노맹에 깊이 관련됐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 노동문학사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관련자들을 속속 체포했다. 안기부는 1990년 10월 1차 수사중간발표를 통해 사노맹 핵심조직원 40명을 구속하고 총책 白泰雄(백태웅, 서울대 법대 4년 제적)과 사노맹 중앙위원이자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본명 박기평)등을 수배했다.

    안기부에 의하면 백태웅과 박노해는 1989년 2월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할 노동자당을 결성키로 하고 민족민주혁명론(NDR)을 추종자들을 모은 뒤, 같은 해 11월 서울대에서 열린 전노협 주최 건국노동자대회에서 사노맹 결성을 공개 선언했다고 밝혔다.

    백태웅의 假名(가명) 이정로는 “이것이 정통정치노선이다”의 준말이고, 박기평의 假名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의 준말이다. 이들은 사회주의 혁명기반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훈련된 조직원을 각 사업장에 침투시켜 공장소조를 만들고, 세포분열식으로 조직을 확대하는 이른바 ‘공장의 혁명 요새화’를 꾀했다.

    ▲사노맹, 사회주의 혁명 달성 목표 삼아

    사노맹은 노사분규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배후에서 선동해 임금투쟁을 정치혁명투쟁으로 격화시켜 총파업으로 유도한 뒤, 결정적 시기에 봉기해 사회주의혁명 달성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한 1990년도 중점수행과제로 ‘사회주의혁명 선전 선동의 대중적 확산’, ‘노동자계급 주도 합법 민중정당 결성’, ‘전국 주요공장에 혁명적 사회주의자 공장소조 창출’, ‘학생운동의 노동자계급 동맹세력화’, ‘독점재벌 재산몰수 국유화’, ‘물가관리민중위언회 설치’, ‘농축산물 수입개방저지’ 등을 투쟁 슬로건으로 삼았다.

    사노맹은 또 레닌의 ‘黨(당)조직 건설원칙’을 모방해 중앙위원회를 최고지도부로 하고 그 밑에 조직위 ,편집위 각 市都(시도) 지방위를 두었다. 부설조직으로는 남한사회주의과학원, 노동해방연구소, 사회주의학생운동연구소, 민주주의학생연맹을 두었다, 조직원 파견그룹으로는 민중당, 전노협, 노동해방문학사 등을 두고 단위조직을 철저히 비밀 운영했다.

    실천지도부인 조직위는 조직관리와 재정을 전담하는 사무국과 조직수호, 면학, 유인물, 배포 등을 전담하는 연락국으로 구성되어있다. 연락국은 무장봉기를 위한 폭발물 개발, 무기탈취계획, 독극물 개발 등의 특수 임무를 맡았다. 지방조직으로는 서울을 비롯, 전국 9개 시도에 지방위원회를 두고 그 산하에 기획선전 담당부서 공장사업부 정파사업 담당부서를 설치해 정치-노동-종교계에 조직원 扶植(부식)을 꾀했다. 사노맹은 각 분야 ‘혁명인자’를 물색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게 한 뒤, 사상성 비밀활동 능력 등 50여 가지 기능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조직원으로 포섭했다. 이들은 1개월 내지 1년의 사상교육 체력훈련 등과 함께 ‘일상용어 음어화’, ‘철저한 안전관리’, ‘조직기밀유지’ 등 10대 조직보위수칙을 교육받았다.

    이들은 또 서울시내 오피스텔과 상가 등에 10여개의 安家(안가)를 확보해 놓고 수사기관의 수색에 대비해 가스총, 도검류, 쇠파이프, 염산 등을 비치해 두었으며, 검거 때 문서와 메모지를 즉시 소각 또는 삼키도록 하고 기밀유지를 위해 자살용 독극물 캡슐까지 개발했다.

    사노맹 조직원들은 조직자금 마련을 위해 1인당 3백만 원 내지 1천만 원씩 책임제로 모금하고, 친지 집을 상대로 强竊盜(강절도)를 하거나 위장결혼식으로 축의금을 받아 속셈학원, 비디오테이프 가게 등을 운영했다.

    사노맹은 혁명이념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합법적인 월간지 《노동해방문학》과 출판사 노동문학사를 설립, 1989년 4월~12월까지 15만여 부의 선전 책자를 발간했다. 백태웅은 이정로라는 가명으로 《노동해방문학》에 , 등 논문을 기고했다.

    박노해는 이 월간지에 , 등 시와 평론을 기고했다. 박노해는 1989년 4월 《박노해 시인의 긴급 호소》라는 유인물에 “현실적 통일방안을 가진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내용의 이라는 詩를 게재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다. 박노해의 부인인 金眞珠(김진주)는 한승호라는 假名으로 《노동해방문학》에 “노선 없는 실무가가 주도하는 노동조합운동의 경향성을 비판하다”등의 글을 기고했다. 사노맹은 非합법 지하기관지 《한걸음 더》, 《새벽바람》과 유인물 《긴급전술 결의》등 40여종 20만부 가량을 제작, 전국 대학과 노동현장에 뿌렸다.

    사노맹은 각 운동단체를 VDR(민족혁명) 노선으로 통일하기 위해 민중당, 인민노련, 전노협,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정파투쟁’을 전개하고 《노동자신문》,《말》지 대학신문 등의 기고문을 통해 NDR(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이념 전파 및 타 정파와의 사상투쟁을 벌여왔다. 또한 ‘공장의 혁명 요새화’ 원칙에 따라 무장봉기 때 방위사업체인 창원공단 내 (주)통일과 한국중공업을 무기탈취 대상으로 선정했다. 인천지방위원회에서는 사제폭탄 제조법, 총기제작법, 무기탈취방법 등을 연구하며 무장봉기 계획을 세웠다.

    ▲총책 백태웅, 중앙위원 박노해 검거로 와해

    사노맹 중앙위원 박노해는 1991년 3월, 중앙위원장인 백태웅은 1992년 4월에 다른 조직원 30여명과 함께 각각 검거됐다. 백태웅의 경우 검거되기 5일전인 24일, 박노해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박노해는 1991년 9월 1심 선거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그해 12월 2심 선거공판에서도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백태웅의 검거로 사노맹은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고 사건수사도 일단락됐다. 안기부는 백태웅을 검찰에 송치한 1992년 5월 사노맹이 전국의 공장과 대학에 훈련된 조직원들을 침투시켜 결정적 시기에 정부를 폭력으로 뒤엎고, 사회주의체제를 건설하려 한 지하혁명 조직으로 드러났다고 추가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사노맹은 고교생들까지 포섭,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등 남로당 이후 최대 조직으로 파악됐다는 것이었다.

    안기부는 또 사노맹이 1994년까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을 결성한다는 중간목표 아래 공장을 ‘혁명요새화’ 할 목적으로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16개 지역의 69개 공장에 조직원 3백여 명을 침투시켜 공장소조라는 비밀결사 조직을 만들어 폭력 파업투쟁과 정치투쟁을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사노맹은 조직의 안전을 위해 조직의 이름을 일반 회사식 이름으로 불렀다. 예컨대 사노맹 중앙위원회는 대우자동차, 수도권위원회는 제일물산, 영남위원회는 삼테크, 호남위원회는 한양교통 등으로 부르고, 조직원의 직책도 실장, 부장, 과장 등으로 불러 외부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사노맹 사건 관련자들 중 玄廷德(현정덕, 사노맹 연락책)은 징역 8년을, 박노해의 부인인 김진주는 징역 6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유죄판결을 박은 사노맹 관련자들은 김대중 정권이 출범시기인 1998년 8.15 특사 때 백태웅, 박노해, 남진현이 석방되어 전원이 자유의 몸이 됐다. 백태웅과 박노해는 2008년 12월22일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2012-04-15 16:00 댓글삭제
  • 강길형 고함 친 국민: "좌빨은 안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戰場으로 나가야 한다. 자유와 번영을 지켜내는 싸움은 멈출 수 없다.
    趙甲濟
    오늘 내가 만난 이들은 거의가 50세 이상이니 모두가 환한 얼굴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한숨 돌렸다'는 말이 이들의 감정을 집약한 것이리라.

    "이런 국민들은 당해 봐야 한다"고 말하던 이들도 오늘은 "우리 국민 역시 저력 있어"라고 했다. 민주국가에서 선거가 위험한 구석도 있지만 참 좋긴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 수준이 언론 등 소위 지식인 사회('배운 무식자들'이 많은 분야)보다는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선거이다.

    내가 부산출신이라 그런지 선거기간중 "부산에서 親盧좌파가 많이 당선된다는데..."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그쪽 동향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 부산에 내려가 부산일보 강당에서 오후 2시부터 약400명의 청중들을 상대로 강연을 해왔다.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時局강연을 하면서 청중들의 반응을 재어본 느낌이, "부산사람들은 참 정치감각이 좋다"는 점이었다. 판단이 상식적이고 건전하다는 뜻이다. 여러 번 한국 정치판의 전체를 흔드는 행동이 부산 마산에서 나왔다. 李承晩 정권의 종말을 부른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 박정희 대통령의 종말을 부른 부마사태, 민주화 시대를 연 2.12 총선(1985년. 부산에서 여당 참패), 6.29 선언을 부른 6.18 대시위, 그리고 親朴 후보를 대거 당선시킨 2008년 총선. 부산사람들이 가진 정의감은 절묘한 균형감각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산은 以北 사람, 전라도 사람들도 많이 살고, 국제항구의 개방성에 특유의 행동력이 더해진, 생동하는 서민적 도시 분위기를 가졌다. 대중음악 흥행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중가요(트로트)는 부산에서 히트를 해야 全國으로 유행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보통 한국인의 평균적인 정서를 부산사람들이 많이 가진 모양이다.

    나는 부산에서 기자 생활을 10년간 했고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부산은 걱정 말라. 가장 선거를 잘하는 사람들이 부산사람들이야. 노무현이 부산사람이라고 그 사람들을 무조건 당선시켜줄 부산사람들이 아니야"라고 답하곤 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부산사람들의 마음은 내가 좀 읽을 줄 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제 선거결과는 내가 예측한 대로였다. 역시 부산사람들은 선거를 잘하는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나는 "선거를 잘못하면 피를 부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정치판에 들어올 수 없는 從北세력이 민주-진보세력으로 위장, 法網을 피하여 선거판에 끼여들었다. 투표를 통하여 이들을 걸러내지 않으면 정권을 잡고 이들을 敵으로 보는 국군과 대치하는 內戰的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한국의 총선은 충돌코스로 가지 못하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데 일단 성공하였다. 건전한 한국인들이 상식선에서 "좌빨은 안돼"라고 고함친 것이다. 선거로 流血사태를 막은 것이다. 그래서 '한숨 돌렸다'이다.

    한숨을 돌리는 것이지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從北좌익 세력은 이를 갈면서 오는 大選을 겨냥, 나라를 흔들어댈 것이다. 선거는 짧고 日常은 긴데, 한국의 日常을 지배하는 힘은 아직 좌파 손에 있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戰場으로 나가야 한다. 자유와 번영을 지켜내는 싸움은 멈출 수 없다. 종북저질집단과 하루 하루 싸우는 게 괴롭겠지만 나중 역사가들은 2012년의 한국인들이 아주 치열하게,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2012-04-15 19:34 댓글삭제
  • 허태기 강원도 충청도 분들이 시국판단을 적절히 잘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나라가 건전하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고맙습니다.() ^^*
    2012-04-15 23:37 댓글삭제
  • 허태기 이법철 스님! 현대의 서산대사 같은 분이시네요. 안보문제만은 불자들이 방관자 입장인 것 같아 주변분들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해 왔는데 스님같은 분이 계시니 일당백입니다. 호국불교의 진수를 보여주시는 말씀이십니다. 2012-04-15 23:36 댓글삭제
  • 강길형 "백만민란" 반역자 문성근 잡은 건 조영환의 殺身成仁"
    고함 친 국민: "좌빨은 안돼!"
    2012-04-16 05:02 댓글삭제
  • 허태기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기사내용 정말 감사합니다.
    이 나라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피와 땀과 노고가 있었는데
    저런 빨갱이들에게 조국을 더렵혀서야 되겠습니까. 문성근이 골수좌익이라는 사실은 애국심이 조금이나마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중도라든지 같은 동족으로 막연한 평화통일을 부르짓는 정체성이 없는 문어족들만이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또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빈깡통만 요란하게 굴리고 있지요.

    이번 선거에서 신망국활(身亡國活)의 정신으로 자유민주체제를 지키기위해 헌신적으로 싸운 숨은 정치인물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언젠가 남북대결의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평시에 누가 이나라를 북한에 바치려고 했는지를 잘 파악해둘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유사시 뒷통수를 맞고 쓰러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2012-04-16 11:26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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