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는 1975년도에 제작된 미국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도 상영이 되었다. 젊은 시절에 본 영화로 기억이 아물거리나 주인공인 수감자가 교도소에서 고의로 정신병동에 들어간 후의 경험을 그린 영화다.
대강은 정신병원에 수용된 환자들이 병원 측의 억압과 치유를 가장한 로보토미[lobotomy:뇌의 백질(白質)절제수술]시술로 희생된다는 내용이다. 집단조직이나 사회에서 강자에 억압당하는 약자들의 피해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켄 키지(Ken Kesey)의 1962년도 소설을 영화한 것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연상되는 것은 영화의 줄거리와 우리의 현실을 내용적인 면에서 비유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세상을 치유해야 하는 조직으로서 조계종과 그 승려들이 오히려 조직의 권력과 잘못된 제도와 습성 그리고 혁신의 외면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병들고 고립돼 가는 현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조계종은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의 최고 경지인 열반(涅槃)을 추구하고 이를 세상에 구현하려는 목적의 집단이다. 그런데 승려들이 오히려 파벌과 몇몇 권승들에 짓눌려 제대로 된 수행자상을 정립하지도, 누리지도 못한다. 오히려 조직으로 부터 습성적으로 로보토미 시술을 당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종단의 중심이 권력의 탐닉으로만 치달으니 교세는 시들해지며, 승려의 권위는 사라지고 세상에 감동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권력욕에 종단의 각종 선거가 금권과 패거리 형태로 이루어져도 이를 제도와 인식적으로 교정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부재함을 지난 종회의 결과가 잘 대변하고 있다.
누차 주장하는바 수입을 100% 전산화 및 기장하는 사찰이 드물며,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없다. 주지 인사권을 거머쥔 승려 또는 주지 독단에 의한 음침한 운영이 자행되는 사찰경영을 정상이라 할 수 없다. 종단과 사찰이 각종 영상(營商)행위의 주체로 전락하고 있으니 역시 문제다. 거대한 종교 집단으로서 이런 현상이 시대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자성과 쇄신’을 한다면서 각종 내부적 모순을 정비할 생각은 안 하고 대사회적 문제로만 치중하는 모양새를 갖추니 ‘자성과 쇄신’이라는 단어자체를 모르는 집단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종단의 혁신과 미래지향적 발전은 아예 기대를 저버렸다는 게 출재가의 이구동성이다.
“자성(自省)은 자기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스스로 반성함.” “쇄신(刷新)은 나쁜 폐단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출처 네이버 사전) 종단이 ‘자성과 쇄신’을 주장하면서 결사본부까지 꾸려가면서 우리 내부의 태도와 행동을 반성한 것이 무엇인가? 새롭게 고치려 한 것은 사실상 전무하다 시피하다.
종단 내부의 병폐부터 치유해 ‘멋’이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야만 출가자도 늘 것이다. 근자의 ‘중물(승려다운 습관)이라는 것이 승려들로 하여금 방관과 기회주의 그리고 권력에 길들여지는 행위의 습관화가 아니라 할 수 있나.
종단이 원칙이 무너지고 쇄신이 사라지니 감동을 줄 수 없다. 정책과 비전이 없으니 희망이 없다. 조계종 안에서 보고 느끼면 충분히 알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 종단 교역직들이 모여 앉으면 종단 혁신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권력의 향배나 논한다니 어찌할 것인가.
솔직히 조계종의 계파가 사회의 ‘일진’과 다를 바가 없다. 계파가 종단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계파에 속하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현실이니 종단 계파 즉 ‘일진’이라 해도 무방하다.
총무원 집행부가 종단의 병폐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유를 외면한다면 이교도의 훼불보다도 더한 훼불을 자행함을 자각하자. 자성과 쇄신을 외면한 조계종 집행부로 인해 승려들이 스스로의 제도(濟度)로부터 멀어지고 일생을 허비하니 불행한 일이다.
종단을 책임진 중진의 교역직들이 조금만 정직하게 노력해서 종단과 대중을 잘 이끈다면 조계종이야 말로 세상을 구하는 대보살이 가능하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사부대중은 이제라도 조계종과 1만2천명의 승려를 관리하는 그 중심관리체계의 인사들에 대한 냉철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부대중은 종단 교역직들에 대해 의심하고 그들을 분석해서 조치를 취할 의무와 책임 또한 있다. 이를 무시하거나 게을리한다면 그야말로 스스로 ‘로보토미’를 자청함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계행에 충실하며, 수행과 전법에 열중하시는 대부분의 교역직 및 일반스님들과는 무관하고 혁신보다는 권력욕으로만 종단을 좌지우지하는 일부 정치승려들에 대한 의견이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출처: http://cafe.daum.net/amtb/6JLp/2457 |
공정한 조사와 엄격한 처벌 없이 어물어물 같은 스님들이라는 동질감으로 구렁이 담넘어 가듯
또 넘어간다면 이는 청정한 승가가 아니라 도적놈들의 소굴과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될 것이다. 2012-05-14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