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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성향의원들,극비외교전략-전시작전계획 다 들여다 본다.

강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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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좌파는 진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2.05.18 00:33 / 수정 2012.05.18 01:30

진보 가면 쓰고 있던 그들, 국회 입성 카운트다운
종북 성향 의원들, 극비 외교전략·전시작전계획 다 본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당선인은 17일 YTN과 두 개의 라디오에 출연해 “부정이 70%, 50%는 돼야 총체적 부정·부실로 표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2일 당 중앙위 폭력 사태에 대해선 “아주 일부에선 오히려 (비당권파가) 강행 처리를 함으로써 폭력을 유발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있다”며 비당권파의 폭력 유도설도 제기했다. 부정 경선, 폭력 사태에도 불구하고 비례대표를 사퇴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19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일은 30일이다. 이 당선인을 비롯해 종북(從北) 의혹을 받는 통진당 당권파 당선인들은 십여 일 뒤면 금배지를 단다. 이에 대해 진보를 ‘숙주’로 삼아 세력을 키워 온 종북파가 이제 진보의 주체인 양 전면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가 개원하면 이들은 국방예산과 전시작전계획을 다루는 국방위, 대외전략을 다루는 외교통상위, 치안을 관장하는 행정안전위에 들어갈 수 있다. 정부에 대한 정보접근권도 갖는다. 국회법이 정하는 의원의 특권이다. 종북 의혹이 따라다니는 이들에게 국가기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게 많은 국민의 걱정이기도 하다.

 괜한 걱정이 아니다. 2011년 8월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의 재판 기록을 보면 제도 정치권에 진입하려는 종북 진영의 움직임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진행됐는지 알 수 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대남공작기구인 북한 225국이 지난해 3월 왕재산의 총책인 간첩 김덕용(49)에게 보낸 ‘진보대통합당 건설 추진 문제’란 지령에서 북한은 민주당과의 연대 협상에 나선 당시 민주노동당에 “연립정부 구성이 아닌 국회 의석을 양보 받아내는 것, 정책적 담보를 받아내는 것 등 연대 방안들을 연구하고 토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정부를 꾸려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보다 국회 의석을 받아내는 게 더 효과적이란 지령이다.

 북한 225국은 PD(민중민주)계열의 진보신당을 맹비난하면서 종북파엔 방어논리를 제시했다. 225국은 “진보신당이 ‘북핵·인권·세습을 비판하라’ ‘종북·친북을 성찰하라’고 요구하면 우선 ‘진보는 반자주·반북·반통일이어야 하는가’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한편으로는 ‘지난 시기에 종북이 있었다면 개별적인 사람들 성향이다’라는 식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또 “조승수·노회찬 등 악질 종파분자들의 교활한 책동을 민노당 밖의 개별적 인사들이 직접 때리는 것도 필요하다”며 진보신당 정치인에 대한 공격 지령도 내렸다. 북한의 눈에 진보신당은 ‘반동’이었던 셈이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 진보와 종북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 종북을 진보의 부분집합으로 보기도 어렵다. 경제·복지 분야에선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듯하지만, 북한·안보에선 확연히 다르다. 보편적인 진보의 가치는 인권·분배·환경·반핵 등이다. 그런데 종북파는 북한 이슈만 나오면 과민반응을 보이며 이런 가치를 외면한 채 북한 두둔에 나섰다. 북한 핵과 인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한때 한살림을 차렸던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뿌리는 각각 NL(자주파)과 PD(평등파)다. NL은 주체사상에 경도돼 북한식 통일을 지향했고, PD는 정통 사회주의에 기울어 있었다. 이들은 민노당을 만들어 ‘진보’란 이름으로 공존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세력이다. 명지대 윤종빈 교수(정치학)는 “종북과 진보는 보수에 대항하는 같은 편이라는 논리 속에서 비정상적 동거를 했다”며 “진보가 곧 종북이라는 인식은 왜곡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총선 직후 벌어진 민노당 분당 사태는 상징적이었다. 심상정·노회찬·조승수 등 PD계열 인사들은 “북한 핵실험을 용인하고 사실상 고려연방제를 뜻하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대선 구호로 내세운 당내 종북세력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며 뛰쳐나와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지난해 9월 양당의 재통합을 막은 것도 북한에 대한 인식차였다. 민노당은 3대 세습에 대해 “북의 권력구조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말하지 않겠다”(이정희 당시 대표)고 했고, 진보신당은 “비정상적 국가의 행태”(조승수 당시 대표)라고 비판했다. 북핵에 대해서도 민노당은 “북의 핵 보유는 자위용”이라고 한 반면, 진보신당은 “어떤 핵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는 4·11 총선 전 “NL이 당권을 잡고 있는 한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이 아니고 종북주체일 뿐”이라고 했었다.

양원보 기자

  • 허태기 참으로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념으로 분단된 나라에 백주에 골수 빨갱이들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어 입법부에 들어가게 되어 이들에게 국가기밀과 국가정책을 맡겨야 한다니... 과연 대한민국과 같은 여건에서 이런 민주주의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2012-05-18 09:50 댓글삭제
  • 강길형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통진당 공동대표,9시간동안…" 유시민이 말하는 150일 문화 충격.

    [중앙일보] 입력 2012.05.18 00:28 / 수정 2012.05.18 09:54 통진당, 사무처 아닌 사무총국 … 총장은 대표 지시 안 따라 유시민통합진보당 유시민 전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내가 진보정당에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이해하기 힘든 점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유 전 대표가 이끌던 국민참여당은 지난해 12월 11일 민주노동당 등과 합당해 지금의 통합진보당으로 몸집을 불렸다. 그 150여 일 동안 이른바 ‘컬처 쇼크’(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충격)가 작지 않았다는 얘기다. 유 전 대표와 국민참여당 출신들이 보기엔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조직 문화 중에 기존 정당과는 다른, 그러나 납득할 수 없는 특유의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표현부터 기존 정당과 달랐다. 통합진보당은 사무조직 단위에 ‘총국’이란 말을 쓴다. 거의 모든 정당이 쓰는 ‘사무처’ 대신 통합진보당은 ‘사무총국’을 두고 있다. 민노당 시절부터 이어져온 표현이다. 북한의 내각과 군부도 조직 단위에 총국이란 용어를 쓴다. 군부의 정찰총국, 내각의 개성총국 등이 그 사례다. 문제는 사무총국의 수장인 사무총장의 막강한 권한이다. 국민참여당 출신의 한 인사는 “장원섭 전 사무총장은 당 대표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공동대표들의 지시를 거스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기존 정당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 전 대표가 제기했던 ‘애국가 논란’은 그중 한 예다.

     유 전 대표는 창당 시 애국가를 공식 행사에서 부를 것을 제안했고, 심상정·이정희 당시 공동대표도 동의했으나 장 총장이 끝까지 반대해 결국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사무총장은 통합진보당의 ‘돈줄’은 물론 조직과 정보를 움켜쥐고 있다. 총무실·조직실·대외협력실·홍보미디어실 등을 총괄하는 거대 조직이다. 또 다른 비당권파 인사는 “통합진보당 사무총국은 시·도 조직 및 민노총·전농·대학 학생회와 한대련 등의 외부 조직과 유기체처럼 움직여온 핵심 권력기관”이라며 “이 ‘정치 다단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게 당권파인 경기동부연합”이라고 말했다. 당권파가 사무총국을 꼭 움켜쥐고 있었던 까닭이다.

     ‘회의 풍경’도 남다르다. 지난 10일 중앙운영위원회의 후 유 전 대표는 “(국민참여당 시절) 저 혼자 당 대표를 하다 와서 그런지 회의는 2시간이 한계다. 그런데 이렇게 긴 회의는 참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회의는 장장 9시간 동안 이어졌었다.

     통합진보당의 긴 회의는 운영방식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정당이 회의를 할 때는 미리 상정 안건을 조율하는 게 기본이다. 원래 논의하기로 한 안건을 바꿔야 할 경우 수정안을 미리 제출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은 회의 시간 중에 상정해야 할 안건을 정하고, 즉석에서 수정안을 제안했다. 회의를 하러 모여 무엇을 토론할지 정한 것이다.

     표결 결과를 세는 방식도 독특하다. 참석 위원들이 자신의 명찰을 드는 방식이다. 재석 여부를 확인할 때나 발언을 신청할 때도 모두 명찰을 들었다. 표결 시엔 진행위원이 손으로 셌다. 대학교 학생회가 쓰는 방식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은 “발언 신청할 때는 명찰 들지 말고 ‘띵동’ 소리가 나는 음식점 호출벨이라도 쓰라”고 야유했다. 당원들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던 건 문화적 충격을 넘어섰다.

     비당권파 측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 탈당파 등 3계파의 당원을 급하게 합쳤는데, 이에 대한 명부가 아직까지 제대로 확인이 안 되고 있다”며 “당권파 말고는 당원 DB에 접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유 전 대표는 기자들에게 “(생소한 문화 때문에) 내 예측과 현실이 하도 어긋나 이제는 더 이상 예측을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2012-05-18 11:23 댓글삭제
  • 강길형 야권은 왜, 3개월 만에 망해버렸을까? [0]

    황장수(hjs3452) [2012-05-17 14:49:42]/야권은 왜, 3개월 만에 망해버렸을까?

    미래경영연구소/소장 황 장 수

    1. 불과 석달 전만 해도 총선 과반수와 대선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 기세 등등하던 야권이 총선이 끝난 뒤 한달 뒤인 현재 완전히 망해버렸다.

    현재로서는 독자적 12월 대선 승리는 난망한 상태이고 기껏 안철수를 끌어들여 공동정부 구성하자는 것이 자칭 원로들과 문재인 고문의 대안이다.

    정통 야당의 계보인 민주통합당은 『무엇을 할 것인지도 모른 채 지리멸렬한 채 썩어가는 집구석 문고리 주도권 싸움에 열중』이다. 야권연대의 한 축인 통합진보당은 『주사파』의 그늘 속에 막장까지 가고 있다.

    현재 야권 대선 주자의 지지도는 2010년 6월 지자체 선거 이전 수준으로 복귀해 죄다 보잘것없는 한자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한편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압도적 독주가 계속되고 있고 그나마 정체불명의 안철수가 그를 유일하게 뒤쫓고 있다.

    아마 한국 정치사에서 야권이 이토록 예상 밖의 패주를 거듭한 기록은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다.

    나는 이번 대선이 전세계적 경제대공황 하에서 한국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의 새로운 변화의 출발이 되기를 기대했다.

    지난 수십 년간의 성장우선, 부자독식사회, 양극화, 투기, 물질만능, 반칙사회 등의 부정적 유산을 세계적 대변화의 시기를 맞아 대선을 통해 여ㆍ야권이 공히 개혁적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지금 야권의 지리멸렬과 여권의 일방적 독주가 계속되면 대선은 사회개혁을 앞당기는 장이 되기보다 오히려 기득권 수구세력의 로비의 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 전 그토록 여야에서 외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총선이 끝난 뒤 쑥 들어갔다(나는 이를 ‘총선이 끝나면 잊혀질 소외계층’이란 글에서 예측한 바 있다)

    대선은 다음 5년을 끌어갈 비전제시와 지난 5년 전에 대한 평가의 기회이다.

    나는 기존 여야 정치권이 다 맘에 들지 않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은 여야 모두 아니 국민에게 해로운 것이기에 『야권이 석 달 만에 망한 이유』를 지적하고자 한다.

    원래 이쪽 저쪽에서 욕을 달고 살기에 개의치 않고 할말은 해야겠다.

    2. 야권이 망한 첫번째 이유는 총선시기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프레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친노로 구성된 야권 집행부가 1월에 등장한 이후 주요 프레임은 『노통 복수와 검찰개혁』, 『MB 심판』이었다. 이 두 가지 양념이나 윤활유는 될망정 이것으로 총선, 대선을 이길 만한 적극적 『아젠다나 이슈』 제시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상대가 잘못한 것을 말하는 것 외에 자기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면 야권은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적극적인 아젠다 제시로 언급할 것이다.

    복지에 관해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가 먼저 시동을 걸어 치고 나갔다. (물론 시민사회에서는 복지 논쟁이 훨씬 전에 제기되었지만 이는 수면하의 일이었다)

    경제민주화 또한 그 아이콘 김종인 전 장관을 새누리 측에서 비대위로 끌어들였다. 솔직히 야권이나 진보당 그리고 시민사회 측은 이 이슈가 오래 묵은 진보진영의 『전가의 보도』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언급했듯이 서민들이 계급을 배반하고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이유가 사실이나 진실을 몰라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유권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이 생각해온 가치제계가 있고 그 가치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와 사고 프레임에 근거하여 정당과 후보자에 투표를 한다.

    정치는 결코 논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유권자들은 박근혜의 『복지와 경제민주화』가 똑 같은 이슈를 말하는 총체적으로 부실한 야권연합 측보다 더 신뢰할만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총선이 끝난 한달 뒤인 지금 시점에 많은 유권자들은 현 야권의 모습을 보며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겠는가?

    쌍방이 똑 같은 말을 할 때 유권자의 선택은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는 무의식 속의 굳어진 가치관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다.

    야권은 여야 양측의 아젠다와 이슈가 비슷해질 때 『프레임의 재구성』을 했어야 했다.

    같은 복지나 경제민주화라도 전혀 방법이 다른 혁신적, 어프로치를 했어야 한 것이다.

    예를 들어 복지재원에서 기껏 얼마 되지 않은 부유세 논쟁보다 『불로소득과 탈세의 근원인 지하 경제를 불식시키는 획기적인 정책 대안 같은것』을 냈어야 했다. 물론 이럴 경우 상당수의 부유층의 지지는 상실할 것이다.

    선거란 지지 층과 결집시키고 중도 층 다수를 끌어오는 것이지 반대 층을 얻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더 중요한 것은 같은 말은 하더라도 그 말하는 사람의 신뢰성에 따라 신뢰도가 다른 법인데 야권은 공천과 경선 물갈이 등에서 이미 스스로 신뢰를 상실하고 열린 우리당 시절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갔다.

    그러니 기왕 서로 비슷한 말을 하는데 이왕이면 『무의식적 신뢰』가 구축된 박근혜를 선택한 것이다.

    만약 내 생각대로 세계 대공황이 더욱 가속화되면 불안한 국민들은 신뢰와 리더십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더 커질 것이다.

    3개월 만에 망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3. 둘째 야권은 『반미주사』와 『2008년 촛불시위』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지난 주말 야권 지도부는 시청 앞에서 열린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참석했다.

    어쩐지 그 모습이 상당히 초라해 보였다(나는 이번에 광우병 촛불시위는 절대 성공 못한다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솔직히 말하면 노통 탄핵은 2002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보수세력의 반동이었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는 야권과 진보진영의 2007년 대선 패배에 대한 반발이었다.

    집권을 하려 한다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지, 스스로 『부정적 프레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거나 지나치게 이념에 매몰되어 음모론에 가까운 추정을 아젠다화 하는 것은 자해행위이다.

    총선시기 때맞춰 벌어진 야권의 『한미 FTA 폐기논란』과 『제주강정기지 폐쇄』 투쟁은 이 이슈가 하루하루 삶이 고통인 중산층 이하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매우 생경 맞은 것이었다.

    때맞춰 열린 탈북자 북송 반대와 상기 이슈 중 어느 것이 더 국민에 어필했다고 생각하는가?

    시위에 나온 숫자가 국민의 지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때론 대세에 눌려 말은 안 해도 각자 자기만의 사고 기준과 틀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솔직히 다수국민은 중국어선의 영해 침범과 폭력행위, 중국의 영유권 침범, 한중FTA, 북한의 미사일 발사(이렇게 말하면 꼭 위성이라고 따지는 사람이 나온다) 등에 침묵하고 결사적으로 한미 FTA, 제주기지만 물고 늘어지는 것에 무언가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한미FTA 통과과정이 석연찮고 개정의 필요성이 있긴 한데, 민주당은 정제된 용어로 감정을 빼고 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지적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솔직히 SNS나 시위에서 상기 이슈를 주장하고 퍼트리는 열성지지자 표 결집만으로 대선 승리가 가능하며, 이들의 지지를 얻은 대가로 포기해야 될 지지가 얼마나 될지 계산이나 해봤는가?

    설사 백 번 양보해 상기 이슈가 진리와 정의라 할지라도 정치는 다수의 표를 얻는 게임이지 진리를 설파하는 장이 아님을 알아야 했다.

    이번에 터지고 나니 너도나도 패는데 앞장서고 있지만 그 동안 야권과 진보진영에 『주사파, 친북』의 그늘이 얼마나 짙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얼마나 서로 쉬쉬하며 금기시 되었는지 야권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민주당 원내대표는 저런 줄 몰랐다고 했고 야권연대를 재검토하겠다 했지만 과연 이 말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서로 색깔이 다른 진보세력은 갈라져 각기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북과 지원 교류하고 평화정착을 시키는 정책을 지지하지만 『종북』은 이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진보당 당권파가 정치를 하는, 원내에 들어가는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종북은 명분인지, 실제로 그런지, 자금이나 뺏지 때문인지 떳떳이 밝히지 않으면 진보정당 운동은 같이 자멸할 것이다.

    물론 과거 보수 수구 세력의 과도한 친미와 반공의 반작용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따른 『트라우마』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집권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의 콤플렉스에서 이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절대 촛불시위로 이번 대선은 못 이긴다. 2002년, 2008년에 촛불은 이미 끝났다.

    4. 이와 마찬가지로 친노의 자기 한계 극복도 중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공과를 안고 갔다. 친노가 정치를 계속 하는 이유가 『노통으로의 회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미 끝난 시대는 있는 그대로 역사적 평가에 맡겨야 한다. 친노가 잘하면 더 나은 역사적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솔직히 친노가 계속 『친노』를 주장하려면 기존 야권과는 파는 자신들의 차별성이 무엇인지 내세울 자신들만의 『고유한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한국 야권 최고의 지도자 DJ 이후 동교동계 마저 실체가 옅어져 가고 있는 마당에 친노에 『계파』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친노정신』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말해야 한다.

    여기저기 흩어진 친노를 전부 묶어 『노통정신 계승 세력』이라 말하기는 뭔가 이상하다.

    MB를 때린다고 해서 친노가 사는 것이 아님은 MB를 패는 면허를 친노만 받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MB의 존재 없이 왜 친노가 존립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하고 그것이 없다면 그냥 계파로 남아야 한다.

    집권은 복수나 과거 회고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하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친노는 과연 무엇을 자신만의 브랜드라고 보여준 게 있는가?

    5. 올해의 대선은 현재 야권은 보이지 않고 박근혜 안철수만 보인다.

    그런데 순전히 내 자신의 주장대로 안철수의 back up이 MB와 관련이 있다면 이번 대선은 박근혜, 이명박 간의 대선이다.

    지금 야권은 스스로 안철수와의 공동정부, 대통령, 총리 역할분담(나눠먹기)를 먼저 언급하고 있다.

    안철수의 곁불을 쬐며 기생하더라도 기어코 대선을 한 번 이겨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정권교체인가?

    막강한 대통령 제하에서 공동정부가 정말 구성될 수 있고 그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까?

    『안보는 보수』라는 안철수의 말을 수용하고 진보당과는 헤어질 것인가?(만약 그 뒤에 MB가 있다면?)

    한국 정치사에 이런 웃기는 야당이 또 있을 수 없을까? 이건 정당이 아니라 『대권 승리연합』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기회에 개헌판을 다시 벌리며 새판짜기를 재시도하는 새누리 친이 측이 야권보다 훨씬 과감하고 생산적이다.

    정당은 자신 고유의 가치, 이념, 철학, 정강, 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당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첨장』(묵은 간장)처럼 오랜 시간 쌓이고 쌓여서 굳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가치관이나 그 실체가 모호한(지금까지 안원장은 하나마나 한 자기계발서 같은 이야기만 했지 내용 있는 정치 철학이나 가치관을 말한 적이 없다) 안철수와의 무조건적 연합을 현시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솔직히 스스로 대선에 이길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에 절망적인 상황도 반전시킨 노통의 파이팅 이나 4수 끝에 기어코 이긴 DJ의 끈질김은 찾아볼 수가 없다. 민주당은 툭하면 등장하는 원탁회의 원로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원로의 자격요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6. 현재 야권은 용기가 없다.

    솔직히 2010년 6월 지자체 선거이전에 MB가 무서워 야권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MB가 스스로 무너져가자 동면을 끝낸 야권 진보진영은 너나 할 것 없이 MB 짜기에 앞장섰다. 이후 MB가 반격에 나서자 솔직히 야권은 침묵모드에 있다.

    지난 총선 때 야권이 야당다운 폭로나 투쟁을 한적이 있는가? 현재 야당에 출마해 당선된 이들 다수가 여당 못해 야당 하는 인물들 같다. 야당이 외부와 비공식적 이런저런 통로가 가동되고 있다고 소문이 나서 되겠는가? 강한 적과 싸우려면 선명성이 생명이다.

    나는 일찍이 『MB야 말로 모래판 10cm 앞에서도 쓰러져 가다가 되배치기로 이길 수 있는 한국 정치권 최고의 테크니션(?)이라 칭송한 바 있다』

    그 앞에 야권의 모든 뱃지들이 친노 동교동 할 것 없이 슬슬 기고 있다. 친노진영 수사, 저축은행 수사 등 MB는 자신 주변의 약점에도 『너는 깨끗한지 보자』고 야권을 향해 도박을 걸고 있다.

    솔직히 요즘 야당의원은 제보가 들어와도 서로 발표를 미룬다고 한다.

    내가 뱃지 오래 다는 게 중요하지 공연히 앞장서다 칼 맞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용기 없는 자들이 야권을 차지하여 자기편을 상대로 주먹이나 쓰는 것이 요즘 야권 실정이다.

    7. 야권과 진보진영은 『아무도 몰라』, 『유명인』, 『SNS』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상장을 앞두고 100조원 가치설이 나돈 페이스북이 미국에서 수년 만에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 여론이 확산되며 고전을 하고 있다.

    팟캐스트, 트윗, 페이스북 등 SNS는 그야말로 과거 『미니홈피』처럼 한때 지나가는 유행이다.

    마치 이것이 새로운 『전자 디지털 민주주의 혁명』이라도 도래한 듯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면 곤란하다.

    최근 야권 주변의 C급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유명인』과 팟캐스트 등이 불러 일으키는 사회적 염증과 반작용도 만만치 않다.

    무슨 일이든 잘 나갈 때 적당히 해야지 잘한다고 박수 치니 들떠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춤추다가 망신당하는 것이다.

    정치는 절제된 언어로 대중의 영혼과 마음을 울리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분노도 정화하여 정확한 논리로 상대의 심장을 향해야지 자기 만족용 욕설로 시간 때우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 폭로도 선동도 그에 상응하는 공부, 노력, 컨텐츠가 필요하지 자꾸 하수구 쪽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야권의 개념 유명인』들이 작년, 재작년 출판한 책들이나 예언한 대로라면 지금 벌써 정권교체는 눈앞에 있어야 한다.

    『SNS』에 넘치는 분노, 욕설, 조소, 야유만 보면 대선승리가 눈 앞인데 현실을 암담한 이유가 『끼리끼리 만의 자위』가 아무 쓸모가 없음을 입증한다.

    야권, 진보진영만의 냉소적 C급 개념ㆍ냉소 문화에 갇혀, 그것이 세상의 다 인줄 알았다가 눈떠보니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는 것이다.

    8. MB만 끝나면, 야권만 집권하면 파라다이스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오늘의 성실한 노력이 내일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야권의 모습을 보면 급변하는 세계적 차원의 변화에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무지하고 용기 없고 퇴행적이며 지리멸렬한 상태로는 정치세력으로서 존재의 의미가 없다.

    쓸데없는 논란 논쟁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직 『프레임』과 『skill』만 연마하는 일사 분란함, 단순한 여권이 야권에 앞서는 것은 그나마 효율성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통합진보당이 십 년 공든탑을 며칠 만에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습은 하루 아침에 그냥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누적된 모순이 쌓여 올 때까지 오다가 최대의 승리를 거둔 시점에 터진 때가 되어서 터진 것이다.

    민주당 또한 공천, 지도부 담합, 메시지, 리더십, 전략 등에서 한계에 다다른 총체적 부실을 보였음에도 누구도 변화하려 하지 않고 있다.

    성장ㆍ고용ㆍ복지ㆍ양극화ㆍ고령화 등 모든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전환기에서 복고와 C급 문화로 흘러간 유행가를 다시 틀어서는 앞날이 뻔하다.

    그런데 진보진영을 포함한 야권을 보면 공부나 성찰과는 너무 담을 쌓은 것 같다.

    공부를 해야 올바른 고민이 생기고 고민을 해야 어느 날 제대로 된 성찰이 나오는 것이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어들은 이야기로 적당히 대중에게 전달한다고 모두 표를 몰아주는 것은 아니다.

    성찰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이 바탕이 되어야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오늘날 야권 대선 주자가 전부 지리멸렬한 것은, 야권 대선주자들 중 어느 누구도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를 자기만의 가치관이 담긴 프레임으로 재구성해 말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는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온 가치를 스스로가 신념으로 믿고 진정성을 가지고 발언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야가 서로 긴장하여 더 나은 사회개혁이슈를 경쟁적으로 제기해야 한국의 승자독식 사회가 극복이 될 터인데, 최근 야당 꼴을 보면 하도 한심해 한마디 한 것이다.
    2012-05-18 16:51 댓글삭제
  • 강길형 [중앙일보] 입력 2012.05.19 00:03 / 수정 2012.05.19 04:35

    ‘종북의 뿌리’ 민혁당 출신, 김영환·이석기의 엇갈린 운명

    통합진보당 사태로 본 대한민국 지하당대한민국 정당사엔 공당(公黨)만 있는 게 아니다. 지하당(地下黨). 당비를 내는 ‘당원’이나 당사, 선거를 통해 확보한 ‘영토’ 따위는 애초에 있을 수 없는 비밀조직이다. 북한의 지령과 이념, 조직원만 있을 뿐이다. 이런 비밀조직이 엄연히 실재했던 게 사실이다.

     지하당의 뿌리는 깊다. 역사도 오래다. 해방 후 우파 민족주의 정당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다 김일성에 숙청당한 박헌영의 남로당(남조선노동당)에서 1980년대 이후 북한 주체사상에 심취한 NL(민족해방) 계열이 1992년에 만든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까지 지하당은 반세기가량 명맥을 유지해왔다.

     최후의 지하당 격인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요즘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영환, 이석기, 하영옥. 1982학번 동기로 NL의 원조다. ‘종북 주사파의 뿌리’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세 사람의 운명은 엇갈려 있다.

     ◆김영환=서울대 법대 82학번인 그는 북한에 포섭되지 않은 채 스스로 ‘구국의 소리’ 방송과 주체사상 관련 서적을 탐독한 자생적 종북주의자였다. 그러곤 “식민지인 한국은 반미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며 NL혁명이론(주체사상)을 주창했다.

     그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수도권 대학에 전파하기 위해 『강철서신』을 썼다. 『강철서신』에 담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는 한반도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낀 학생들에게 솔깃했다. “어차피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면 사회주의 세력인 북한을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한 민족·통일을 외치는 ‘토착 전술론’에 매력을 느낀 거다.

     그런 김영환에게 89년 7월 “김 선생과 통일사업을 논하고 싶소”라며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 윤택림이란 남파 간첩이었다.

     김영환은 그와 만난 후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평양으로 가서 91년 정식으로 입당식까지 치렀고, 북한으로부터 ‘관악산 1호’란 대호(代號·암호명)를 얻었다.

     윤택림으로부터는 평양방송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암호책자, 난수표, 해독표도 받았다. 그해 5월엔 북한 잠수정을 타고 두 번째 밀입북했다. 북한에 17일간 머물면서 급기야 묘향산에 있는 김일성 별장에서 김일성(당시 주석)과 두 차례 면담까지 하기에 이른다.

     국정원 수사기록에는 김일성이 그때 김영환에게 ‘선생’이란 호칭을 사용하면서 “강철서신은 참 훌륭한 글”이라고 칭찬했다는 대목이 있다.

     수사 기록에 따르면 김일성은 이런 말도 했다.

     “이란의 라프 산자니 대통령이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내가 ‘이란은 어떻게 혁명에 성공했느냐’고 물어봤더니 ‘따로 혁명조직이 있었던 게 아니라 회교조직을 통한 사상의 전파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 사령관의 부관을 먼저 끌어들인 뒤 (부관의 상사인) 사령관을 항복하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군인 30만 명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남조선 인민 1000명만 주체사상으로 무장시키면 남조선 혁명은 이룩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김영환은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남한에서 조직활동을 열심히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민혁당’은 그 후 창당됐다. 92년 3월, 김일성을 면담하고 온 뒤 8개월 뒤의 일이다. 김영환은 강화군 외포리의 ‘드보크’(간첩장비 비밀매설지)를 통해 40만 달러(당시 3억원), 권총 2정, 실탄, 무전기 2대 등을 받았다. 민혁당 출신 홍진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이사는 저서 『지성과 반지성』에서 민혁당의 조직원이 “전국적으로 100명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영향권에 있던 사람을 포함하면 수천 명에 달했을 거라는 추정도 있다.

     그런 김영환이 왜 전향을 한 것일까. 김영환은 훗날 “북한의 주체사상은 황장엽이 만든 주체철학에 민족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수령론을 합친 것인데 김일성은 주체사상에 대해 막상 거의 관심도 없고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북한 학자들과의 토론에서도 주체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휘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 상급자가 하급자를 고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에도 회의 하게 됐다. 자생적 종북주의자 김영환을 전향하게 한 계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방문 후였던 것이다. 민혁당은 결국 94년 김일성 사망 후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낀 김영환이 97년 7월 해체했다. 그러나 이때까지 당국에 의해 지하당 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난 건 아니었다. 김영환은 민혁당 해체를 선언했지만 이에 불응하고 민혁당을 계속 하려 한 이가 하영옥이다.

     ◆하영옥=국정원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는 민혁당 ‘넘버2’였다. 8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하영옥은 89년 ‘반제청년동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김영환(‘관악산 1호’)에 이어 ‘관악산 2호’가 됐다. 그는 북한에는 가지 않고 서울 도봉산에서 입당식을 했다. 그 자리에서 하영옥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해 매우 영광스럽고 당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한다”는 결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그는 97년 민혁당이 해산하자 이에 반발, 영남위원회와 경기남부위원회를 중심으로 당 조직을 수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98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북한이 직접 파견한 간첩으로부터 북한이 자신을 김영환 대신 민혁당 총책으로 임명한 사실과 입북 제의를 듣게 된다. 그러나 98년 12월 그가 타고 가려던 북한 반잠수정이 군에 발각돼 밀북 계획은 미수에 그친다.

     민혁당의 단서가 포착된 것은 이때였다. 당시 남해상에서 해군에 격침된 북한 간첩 침투용 반잠수정 안에서 발견된 유류품 때문이다. 잠수정 안에 있던 공작원의 시신 등에서 김영환·하영옥 등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이 나왔고, 이를 토대로 국정원이 추적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민혁당 하부망의 핵심 인물로 이석기를 찾아낸 것이라고 국정원은 발표했었다.

     국정원은 하영옥이 북한 공작원과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하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북한 공작원만 입북하려다 격침된 것으로 봤다. 김영환은 잠수정 침몰로 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난 줄 모르는 상태에서 99년 8월 귀국했다. 그러나 국정원이 민혁당의 존재를 파악한 것을 뒤늦게 안 김영환은 월간 말지를 통해 ‘간첩사건이 조작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한 뒤 출국을 시도했다. 말지 인터뷰는 김영환이 민혁당 관련자들에게 도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한 것이었다. 당국은 이런 움직임을 알면서도 김영환을 체포하지 않다가 나중에 하영옥 등과 함께 해외로 출국하려던 김영환을 체포했다.

     『진보의 그늘』 저자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에 따르면 ‘2차 민혁당’, 즉 재건된 민혁당은 97년 김영환이 해체한 직후부터 99년 그가 구속될 때까지 조직됐었다고 한다. 그는 99년 9월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8년형을 선고 받아 4년간 복역한 뒤 2003년 4월 30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후 경기도에서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 그가 민혁당 재건을 꾀하고 있다고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하자 하영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도, 선입견에 (맞춰) 내가 뭐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식으로 함부로 소설을 쓰는 짓은 너무한 게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지금 (통합진보당) 당원이지만 아무런 활동을 한 바 없다. 민혁당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후 애들을 먹여 살리려고 학원 강사를 한 지 8년이 됐고 아무런 활동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석기=두말할 것 없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현재는 ‘이석기 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국정원 수사 결과 그는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이었다.

     82년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과에 입학한 그는 89년 하영옥 등과 함께 민혁당 전신 격인 ‘반제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당시 하영옥이 중앙위원장, 이석기 등 4명은 중앙위원을 맡았다. 반제청년동맹엔 89년에 김영환도 중앙위원으로 합류했다.

     최근 하태경 새누리당 당선인은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인은 민혁당의 경기남부위원장 출신으로 서열 5위의 핵심 고위직이었다”고 주장했다. ‘넘버 5’란 하태경 당선인의 지적은 이석기가 중앙위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석기는 하영옥 등 99년 8월부터 민혁당 사건 연루자들이 줄줄이 검거됐을 때 붙잡히지 않고 2년 넘게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다 2002년 5월 체포된 뒤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고 2003년 8·15 특사로 풀려났다. 그에게 여전히 ‘종북’이란 의혹의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는 이런 전력 때문이다.

     한기홍 대표는 “이석기가 합법 정당으로 진입한 것은 검거 후 신분이 수사기관에 노출되면서 지하활동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이 나올 때마다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82학번 세 명 중 ‘넘버 1’이었던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은 전향 후 북한 주민을 위한 운동을 하다 ‘국가안전위해죄’라는 죄목으로 52일째 중국에 구금돼 있다. 민혁당 조직 중 김영환의 지휘 하에 있던 수도권의 지하지도부 등은 전향 후 활동을 접거나 북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반면 이석기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의 이름으로 의회 권력에 다가가고 있다. 10여 일 뒤면 그는 ‘지하당 출신 국회의원’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2012-05-19 07:19 댓글삭제
  • 강길형 [사설] 진보정치 몰락시키는 이석기/[중앙일보] 입력 2012.05.19 00:00

    통합진보당 사태가 최악의 국면으로 달려가고 있다. 사태의 핵심 인물은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인이다. 당연히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인물이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그의 행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진보정치 전체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당선인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당권파 경기동부연합의 실세이자 지하당(민혁당) 활동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던 주사파 거물이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그는 국회의원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자신을 비판하는 여론에 문제가 있다는 적반하장(賊反荷杖)식 태도를 고집하고 있다.

     이 당선인은 부정을 부정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부정이 70%, 50%는 돼야 총체적 부정, 부실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당의 선거부정이 당내 경쟁세력인 비당권파와 언론에 의해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조차 의심되는 발언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심한 사태가 벌어져야 문제를 인정하겠다는 것인가. 선거부정의 규모가 작다고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인가. 실제로 벌어진 부정도 결코 가벼운 정도가 아니다. 조사 결과 매우 광범하게, 온갖 방식의 부정투표가 자행됐다. 실제로 비례대표 순위가 바뀌었다.

     이 당선인은 폭력사태의 책임도 떠넘겼다. 분명 부정을 저지른 것도 당권파이고, 중앙위에서 폭력을 휘두른 것도 당권파다. 그런데 이 당선인은 “(비당권파의) 강행처리가 폭력을 유발시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있다”며 비당권파를 비난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궤변이다. 온 국민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폭력사태다. 책임전가는 온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이다.

     이 당선인은 국민여론까지 무시하고 호도하는 독선을 보였다. 그는 “국민여론도 해결책이 사퇴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반대다. 최근 본지 여론조사 결과 “사퇴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여론은 16%에 불과했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진보당의 모태인 민주노총까지 “이석기가 사퇴하지 않으면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정도다. 보수든 진보든 모든 언론이 그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권파는 거듭 배수진을 치고 있다. 사태 수습을 위해 만들어진 비상대책위원회가 사퇴를 요구하자 ‘업무정지 가처분 소송’으로 맞서려 하고 있다. 당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버텨 19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자세다. 이 당선인은 과연 어떤 확신에서 이런 행태를 보이는지 의심스럽다. 그는 지금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하고, 여론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해 온 진보정치 세력 전체를 무덤으로 끌고가고 있다.

     이 당선인은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가. 이 당선인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자진사퇴가 사죄의 길이다.
    2012-05-19 07:39 댓글삭제
  • 강길형 인민을 배신한 '변절자' 이석기의 최후는
    인민아닌 유일신 김씨 일가 추종 중국 감방에서 고초를 겪는 김영환은 인민을 위해 신념을 지키는데...
    곽대중 칼럼니스트 (2012.05.20 08:40:15)

    얼마 전 신문에 보니 통합진보당 이석기 씨의 ‘최측근’이라는 금영재 CNP전략그룹 대표이사가 이 씨를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이석기 당선자는 감옥을 갔다 온 뒤에도 신념을 잃지 않았다. 이번 총선에서 내부 결정에 따라 이석기 후보를 낸 것이다.”

    ‘신념’이라는 표현에서 울렁증이 일었다. 이들의 신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신념이란 말인가? ‘신념’이라는 고귀한 단어를 입에 담을 자격이,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에게는 없다. 당신들의 신념이란, 성폭행범이 징역을 살고 나와서 또다시 강간을 하더니 “나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자랑하는 꼴이다.

    진정으로 신념을 잃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정보기관의 어두운 조사실에서 고초를 겪고 있을 김영환,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 이들이야말로 ‘신념의 강자’다. 한때는 종북 주사파였다가 이들과 함께 전향하여 오늘도 사선을 넘나들며 북한민주화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인권운동가들, 민간 대북방송에 목소리를 싣고 있는 무명의 동지들…… 이들이야말로 ‘신념의 화신’들이다.


    ◇ 통합진보당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을 만나 사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이석기 당선자(사진 왼쪽)와 중국 국가안전청에 구금된 것으로 알려진 김영환 북한인권운동가. ⓒ데일리안/데일리NK

    통합진보당 주사파 …인류 최악의 변절자들!

    아직도 종북 유일신(唯一神)을 버리지 못한 어느 후배는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을 이렇게 욕했다. “일신의 안락을 좇아 변절했다”고! 웃기지 말아라, ‘변절’은 과연 누가 했는가.

    변절은 과연 누가 했는가. 인민들의 1년치 식량을 미사일 불꽃쇼로 날려버리는 독재왕조에 대해 “그들 내부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너절한 무면허 변호질이나 해주고 있는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인가, 북한의 참혹한 인권실태를 알리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세계의 진보주의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달려가는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인가.

    변절은 누가 했는가. 수많은 일자리가 보장되는 중앙당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정치깡패마냥 주먹질이나 해대는 바람에 한국의 진보를 세계의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인가, 월급 1백만 원이 될락말락한 급여에 월세방을 전전하면서도 숭고한 구도자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인가.

    변절은 누가 했는가. 오늘도 아득바득 금배지 몇 개 놓치지 않기 위해 국민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눈과 귀를 막아버린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인가, 화려하지도 않고 세상이 그리 알아주지도 않는 북한민주화운동의 길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15년 동안 변함없이 달려가고 있는 북한민주화 운동가들인가.

    변절은 누가 했는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독재왕조의 인권탄압 실태에 대해 “내 눈으로 보지 않아 모르겠다”는 식의 헛소리나 지껄이는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인가, 북-중 국경지대로 달려가 숱한 탈북자들의 증언을 들어보고 신빙성을 따져본 후 ‘실천’을 결심한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인가.

    변절은 도대체 누가 했는가.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달려가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 하겠다’는 운동의 초심을 변치 않고 오늘도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신음하는 북한 민중과 함께 하고 있는 북한민주화운동가들인가,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이제는 손자 김정은에게까지 충성을 맹세하는 독재세습정권에 대해 일언반구 말도 못하는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인가. 변절은, 추악한 변절은 과연 누가 했는가.

    김영환의 발끝만치라도 따라가 보라

    “한때는 한 배를 탔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다른 길을 갈 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나는 결국 양심과 용기, 신념의 문제라 답한다.

    애초에 학생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북한 독재정권에 충성해야겠다’고 다짐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어쩌다보니 가치관이 전도되었고 상황판단이 흐려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초심(初心)은 무엇이었냐’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어야 하는데, 이들의 양심의 나침반은 1990년대 중반에 멈춰버렸다.

    깡패 두목에게 바치는 의리도 신념이라 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가는 길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정도(正道)로 바로잡는 것도 운동가의 용기있는 자세다. 양심과 용기를 잃어버린 그들은 신념의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다시 묻건대, 변절은 과연 누가 하였나. 지금 중국에 억류된 김영환, 유재길, 강신삼, 이상용 - 우리 심장에 끌어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아름다운 이름들인가……, 이석기, 김선동, 오병윤, 이상규, 김미희, 김재연 - 진보의 이름에 똥칠을 해대는 이 추악한 이름들인가.

    물증을 눈앞에 들이대는 간첩단 사건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묵비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수사관이 소리만 조금 질러도 인권탄압이라 비명을 토하고, “변호사 불러오라”고 영웅처럼 호통을 치고, 들어오는 사식(私食)에 몸보신하며 조사를 받는 한국의 정보기관에 익숙한 통진당 주사파 당신들은 변호사 접견권조차 박탈당하고 지금 자신이 어디에서 조사를 받는지도 모른 채 50일이 넘도록 억류되고 있는 김영환 씨 일행의 고통을 알기나 할까. 어쩌면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충고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은 알고 있다만, 이석기 일파는 석고대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초심으로 돌아가라. 김영환의 발끝만치라도 따라가 보라. 지금까지 당신들이 역사 앞에 지은 죄, 2500만 북한 인민에게 지은 죄, 스스로의 인격을 향해 지은 죄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전향하라. 독재자의 품을 떠나 인민대중의 편으로 돌아오라. 더러운 변절의 탈선열차를 지금 당장 멈춰 세우라.

    중국에 억류된 이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조속히 송환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오늘도 북한민주화운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신념의 강자’들에게 부끄러운 격려의 인사를 드린다. 한반도 북녘땅에 민주주의의 깃발이 펄럭이게 되는 날, 북한민주화운동가 당신들의 오늘을 세상은 ‘전설처럼’ 이야기하리라!

    글/곽대중 중국거주 칼럼니스트(http://www.storyk.net)
    2012-05-20 09:30 댓글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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