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월스님(慧月 1861∼1937)
김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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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스님(慧月 1861∼1937)
[ 자비도인慈悲道人, 천진불天眞佛 혜월스님 영정 ]
근대고승,충남 예산출생,속성은 신(申)씨, 경허스님의 제자,
스님은 1861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는데 속성은 신씨(申氏)였다.
1884년 천장암에서 경허 선사에게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을 배우면서부터 글공부를
시작했다.
스님은 처절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경허 선사로부터 인가를 받아 "그대는 남쪽
에 인연이 있으니 남쪽으로 내려가라"는 스승의 분부에 따라 선산 도리사, 팔공산 파계
사, 울산 미타암, 통도사 극락암, 천성산 내원사, 부산 선암사에서 선풍을 크게 드날리
고 1937년 부산 금정산 안양암에서 세수 77세, 법랍 66세로 입적했다.
[ 토굴에서 앉은 채 얼어 죽을 뻔하다 ]
혜월 스님은 어려서 글공부를 해본 일이 없는 까막눈이었다. 경허 선사를 천장암에서
모시고 있던 혜월은 어느 날 경허 선사에게 글공부를 하겠으니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뒤늦게 무슨 글공부를 하겠다고 그러는가?"
"글공부를 하는 데 이르고 늦고가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배우면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디 한번 배워보게나."
혜월은 그날부터 경허 선사로부터 <수심결>을 배우며 마음 닦는 법과 한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익히게 되었다.
그 후 혜월은 불교의 진리가 글자 속에 있지 아니함을 깨닫고 바위 밑에 뚫린 토굴에
들어가 오직 화두참구(話頭參究)에 매달렸다.
때는 엄동설한, 바위굴 속의 돌바닥에 정좌하고 며칠 동안 화두만 들고 있었으니 온몸
이 얼음처럼 얼어갔지만 혜월은 몸이 얼어 굳어가는 것도 잊은 채 참선삼매에 빠져 있
었다. 혜월이 바위 밑 토굴에 들어간 지 7일째 되던 날, 경허선사와 만공이 토굴에 들
어가 보니 혜월의 몸은 이미 얼어서 굳어 있었다.
"이것 보게 만공, 혜월의 몸이 얼어 앉은 채로 굳어버렸어."
"스님, 날씨가 너무 추워 얼어죽었나 봅니다."
"아니야, 눈빛이 아직 살아 있으니 죽지는 않았어, 어서 가서 따뜻한 물이나 갖고 오게
나."
만공은 급히 천장암으로 내려가 더운물을 가져다 가까스로 혜월을 구했다.
[ 짚신 삼던 중 깨달음을 얻다 ]
혜월은 짚신 삼는 솜씨가 뛰어나서 남이 한 켤레 삼을 동안 너끈히 세 켤레를 삼아낼
정도로 탁월한 솜씨를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짚신을 삼아서 나뭇가지에 걸
어놓고 아무나 필요한 사람이 신도록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다.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채 토굴에서 참선 삼매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스승 경허
선사가 짚단을 토굴로 던져 넣으며 한마디 했다.
"내일은 먼길을 떠나야겠으니 짚신이나 한 켤레 삼아주게나."
혜월은 스승의 분부를 받자 곧바로 짚신을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짚신을 다 삼은 후
마지막 손질을 하느라 나무망치로 짚신을 탁탁 두드렸다. 그 순간, 나무망치 소리에 천
하의 문이 활짝 열렸다. 드디어 깨달음의 한 순간이 혜월에게 찾아온 것이다.
혜월은 감격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경허 선사에게 달려갔다.
"그대는 대체 참선은 무엇하러 하는가?"
"못에는 물고기가 뛰고 있습니다."
"허면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는고?"
"산꼭대기에 바람이 지나갑니다."
경허 선사는 그 자리에서 혜월이 한 소식 얻었음을 인가하고 전법게송(傳法偈頌)을 내
린 뒤
"그대는 남쪽에 인연이 있으니 이 길로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일렀다. 그리고 제자가
마지막으로 삼아준 짚신을 신고 천장암을 떠났고, 혜월 또한 그 길로 남쪽으로 갔다.
이것이 스승과 제자의 마지막이 될 줄이야 혜월이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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