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 스님
10일 오후 서울 조계사 내 불교역사문화기념관. 성철(1912∼93) 스님 탄생 100주년에 맞춰 고우 스님과 함께 공부하는 ‘백일법문 강좌’ 일곱 번째 자리가 열렸다.
남은 강연은 이제 세 번. 이날 스님은 사람의 의식세계에 대한 불교의 설명이 현대심리학과 얼마나 흡사한지를 짚었다.
‘불교의 심리학’으로 불리는 유식학(唯識學)을 통해 화두 참선이 중도(中道)를 깨닫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폈다. 『백일법문』(상권) 180~260여 쪽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고우 스님은 그릇된 상식을 깨는 것으로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파사현정(破邪顯正). 흔히 ‘그릇된 도리를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사자성어가 실은 중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파사현정은 삿된 것을 부숴버리고 바른 것을 세운다는 뜻인데, 여기서 삿된 것은 뭘까요. 놀라지 마십시오. 자기라는 변하지 않는 주체가 있다고 보는 것, 그런 생각을 버리고 나와 타인이 중도로 있다고 보는 것이 삿된 것을 피하는 것이고 동시에 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중도를 중시한 인도의 대승불교 갈래인 중관파가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종파가 삼론종인데, 이 종파의 핵심 교리가 파사현정이라는 설명이었다. 파사현정은 바로 중도를 강조하는 내용이고, 파사와 현정은 따로 분리된 과정이 아니라 동시에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얘기였다.
이어 유식사상에 대한 설명이 시작됐다.
스님에 따르면 현대 심리학자 융의 이론도 불교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유식학이 현대 심리학과 닮은 이유다. 스님은 우선 중도 교리가 ‘나란 존재는 없다’고 강조하다 보니 사람들이 허무의식에 빠지는 폐단이 나타났는데 이를 바로잡기 위해 4세기경 유식학이 성립됐다고 했다. 모든 생사유전의 원인을 ‘오직 식(唯識)’으로 파악해 허무를 극복하려 했다는 얘기였다.
스님은 “유식학은 사람의 정신세계를 8식(識)으로 나눠 설명한다”고 했다.
눈·귀·코·혀·몸 다섯 개 감각기관이 작용하는 단계인 5식, 이를 인식·분별하지만 관심 대상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바뀌는 상태인 6식, 인식하는 능력은 없지만 현대심리학의 무의식처럼 사람 의식 깊은 곳에 박혀 윤회를 거듭해도 바뀌지 않는 8식(아뢰야식), 8식에 의지해 나라는 존재에 집착하는 성향의 7식(말나식) 등이다.
결국 아뢰야식을 부숴야 대자유한 열반에 들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주관과 객관의 경계를 허무는 화두 참선을 해야 한다는 게 이날의 결론이었다.
즉 참선을 통해 분별하는 마음을 몰아내면 자연스럽게 모든 업보의 근원인 아뢰야식에도 이르러 이를 정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자상한 설명이었다.